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35화 (35/169)

제35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10)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열쇠 회수 작전 실패로 제1 진행팀장 황대건이 몬스터로 변해 사망했고, 제1 지원팀장 민수아는 제3 실험실로 후퇴했다고 합니다.”

“실패한 이유는 미해결 던전에서 한상우와 함께 아신 길드의 길드장 강철만이 나왔기 때문이고?”

“예.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두 사람이 함께 레이드를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부지부장님.”

성북동 대저택의 지하실.

루미나스 헌터가 부지부장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보고를 올렸다.

부지부장 홍진성.

165cm 남짓한 키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로브를 입은 그는 루미나스 한국 지부의 두 번째 서열인 부지부장이었다.

그러나.

높은 서열과는 다르게 전혀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다.

키가 작고, 외모와 목소리 또한 20대처럼 앳되어 권위가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물론, 실제 나이는 40세고 헌터 등급 또한 S급으로 분류되지만 스펙과 외형이 주는 위압감은 별개였다.

그래서일까?

“좋아, 수도권에서 지금 당장 가용 가능한 인원이 얼마나 되지?”

“임무 중인 팀을 제외하면 100명 내외밖에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각 팀장들한테 연락해서 전부 제3 실험실로 집결시켜.”

“네? 제3 실험실을 버리는 게 아니라요?”

부지부장 홍진성의 말에 일반 단원이 의문을 표했다.

“지금까지는 적에게 은거지가 발각됐으면 폐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강철만까지 따라붙고 있는데….”

“알아. 그래서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위기를 기회로! 네 말대로 강철만은 제1 지원팀장을 추격하고, 제3 실험실을 찾아낼 거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강철만을 처치한다면?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지. 이건 기회다. 해외 본부에 잘 보일 기회!”

부지부장 홍진성은 강철만을 처치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다면 지부장님께 보고를 드리도록 할까요?”

“지부장은 지하실에 폐관 수련하러 갔어. 최소 일주일은 걸릴 거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그 녀석은 나랑 동기잖아? 내 계획 들으면 반대하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홍진성은 자신만만했지만, 일반 단원은 의구심을 가졌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지부장이 이 작전을 듣는다면 승인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홍진성의 표정이 변했다.

“야.”

상명하복, 절대복종.

강함에 따른 절대적 서열이 루미나스의 규칙이고, 몇 번이고 반복된 단원의 대꾸는 그 규율을 깨는 것이었다.

한두 번은 참아준 홍진성이었지만, 결국 역린에 닿고 말았다.

“너, 나 무시하냐?”

“컥! 커헉…!”

손이 닿지 않는, 멀리 떨어진 거리였으나 홍진성이 손을 들어 올리자 일반 단원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염력].

사념의 힘으로 물체를 조종하는 홍진성의 스킬이 발휘된 것이다.

홍진성이 염력으로 일반 단원의 목을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내가 예전부터 경고했지? 내 말에 토 달지 말라고. 너넨 같은 내용이더라도 지부장이 말하면 복종하고, 내가 말하면 귓등으로 듣더라? 내가 만만해?”

“아, 아닙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지부장이랑 친구에다 입단 동기라서 부지부장 된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오, 오해이십니다, 부지부장님….”

턱밑까지 차오른 숨.

일반 단원이 공중에서 바둥거리며 시뻘게진 얼굴로 말을 쥐어 짜냈다.

그러자 홍진성이 손아귀를 풀며 일반 단원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콰당-!

“켁! 케헥…!”

“마지막 경고다. 다시 한번 내가 명령하는데 지부장 들먹이면… 그냥 죽여버린다.”

“죄, 죄송합니다, 부지부장님! 말씀하신 대로 바로 병력 준비하겠습니다!!”

일반 단원은 바닥을 기더니 그대로 지하 회의실을 나섰다.

홍진성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회의실 구석,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바라봤다.

자신의 상관인 동시에 입단 동기이자 친구인, 지부장 마강진이 수련을 하러 내려간 장소.

홍진성도 함께 내려가서 수련을 하고 싶었으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곳은 오직 지부장에게만 허락된 장소이기에.

‘며칠 후면 더 강해져서 나오겠지.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돌이켜 보면 항상 그랬다.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했지만, 지부장 마강진은 늘 자신보다 앞서 있었다.

왜 그런 애들 있지 않은가.

분명 노는 건 같이 놀았는데 꼭 성적은 자신보다 높은 인간.

홍진성에게 있어 그런 인간이 바로 마강진이었고, 그건 루미나스에서도 이어졌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늘 자신보다 마강진이 한 단계 더 뛰어난 성장과 성과를 보인 것이다.

때문에 홍진성은 늘 마강진과 비교당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열등감을 느끼게 됐다.

자그마치 20년 동안 지속된 비교.

어느새 홍진성의 마음속엔 마강진을 뛰어넘는 게 최우선 목표가 되어 있었다.

‘이번 기회에 강철만을 제거하고, 내가 마강진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증명한다.’

SS급 헌터 처치는 아직 마강진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분명 이걸 성공적으로 해내면 본부에서도 알아주리라.

‘그럼 시작해볼까.’

홍진성은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남양주에 있는 천마산으로 향했다.

* * *

“여기인가요? 신호가 끊겼다는 곳이.”

“네, 아무래도 이 폐공장 어딘가에 숨은 것 같습니다.”

한상우와 강철만은 핸드폰에 찍히는 빨간 점을 따라 천마산을 내려와 폐공장 단지로 내려왔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주변에 건물이 수십 채가 있었지만 버려져서 그런지 곳곳이 낡고, 부서져 있었다.

게다가.

인기척 하나 없었다.

천마산에서 도주한 루미나스의 인원이 수십 명에 달하건만 작은 소음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건 핸드폰 화면으로 빨간 점이 찍힌 건물 근처까지 와도 마찬가지였다.

2,000평은 될 법한 대형 창고.

한상우와 강철만은 철문 앞에 선 채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스킬을 준비한 후, 동시에 들어가 루미나스를 일망타진할 신호를 주고받은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콰아아아앙-!!

강철만이 철문을 날려버리며 먼저 안으로 진입했다.

어차피 아까 전투를 벌인 이상, 조용히 잠입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들어가서 적들이 공격해오면 반격을 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

창고 문을 박살 내며 요란하게 진입했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창고 안엔 아무도 없었으므로.

뒤이어 들어온 한상우가 경계 태세를 풀고, 휑한 주위를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군요. 숨을 만한 곳도 안 보입니다.”

“그렇네요.”

밖에서 봤을 때 건물의 도색이 다 벗겨져 있었는데 공장 안도 마찬가지였다.

기계나 설비 하나 없이 썰렁한 모습이었다.

슬쩍 둘러만 봐도 반대편 출구가 보이는 게 숨을 곳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수상한 점은 있었다.

너저분하긴 하지만 바닥 곳곳이 파헤쳐져 있고, 여러 가지 작업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마치 조금 전까지 작업이 이루어지던 현장 같은 모습이었다.

강철만도 의아하게 느꼈는지 폐공장 바닥에 파인 구덩이로 다가가 도구들을 살펴봤다.

“새것이네요. 방금까지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땀을 닦은 수건도 아직 안 말랐어요.”

“여기도 뭔가 있네요. 이거… 추적 장치 아닙니까?”

한상우도 루미나스의 흔적을 찾아냈다.

다른 구덩이 속에서 패치처럼 생긴 작은 장치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맞습니다. 제가 부착했던 거예요.”

“저절로 떨어졌을 확률은 낮고…. 부수지 않고 놔둔 걸 보니 이곳으로 저희를 유인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였을 확률이 높겠네요.”

일반적으로는 추적 장치를 발견하면 부수는 게 당연하다.

위치가 발각된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그걸 알고도 그냥 뒀다는 것은 추격하는 자를 일부러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시간을 끌어서 그사이 더 멀리 도망가기 위해 추적 장치를 남겨둔 것이다.

“…하지만, 여기 말고 천마산 근처에 숨을 곳은 없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대규모로 이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고요.”

한상우의 말에 강철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제 생각에도, 이 폐공장 단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네요.”

이중 트릭.

한상우는 루미나스가 추적 장치를 남겨두고, 이 주변에 숨어 있을 거라고 유추했다.

한상우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도망치는 헌터를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주어진 상황과 요소들을 가지고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잠시만요.”

한상우는 마찬가지로 다른 비밀 통로를 찾고 있던 강철만에게 말하고, 입구 옆쪽으로 이동하더니….

“동서남북, 하늘까지 포함해 그 어디로도 이동한 걸 못 봤고 흔적도 없다면, 답은 하나겠죠.”

스윽- 스윽-

바닥을 손으로 훑어 손잡이를 찾아냈다.

“땅으로 꺼지는 거.”

하지만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철컹거리는 소리를 보니 잠금장치가 걸려 있는 듯했다.

“아, 마침 저한테 문을 따는 스킬이 있습니다.”

“잘됐네요.”

한상우는 몸을 옆으로 움직여 강철만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다.

쿠웅-! 콰직!!!

강철만은 대검을 내리찍어 바닥에 있던 비밀 통로의 문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한상우는 문이 박살 나면서 드러난 비밀 통로를 보며 말했다.

“정말 대단한 스킬이네요.”

“제가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런 스킬을 여러 개 익히고 있습니다. 저희 길드에 입단하시면 이런 노하우를 다 알려드릴 수 있는데.”

“괜찮습니다. 아는 게 많아지면 머리가 아파서요.”

한상우는 강철만의 농담을 받아친 뒤,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들고 어두컴컴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대검을 들고 있는 강철만보다는 방패를 들고 있는 자신이 앞장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강철만도 동의하는지 별다른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뒤에 바짝 붙어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 앞을 비췄다.

계단은 길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오자 탁 트였던 위쪽과 달리 서너 명 정도 여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나타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 한상우가 방어 태세를 유지한 채 말했다.

“생각보다 깊네요. 루미나스 녀석들, 무슨 짓을 꾸미는 걸까요.”

“글쎄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다년간 놈들과 맞부딪쳐본 결과,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강철만은 한상우의 말에 대답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계단 옆의 벽에서 차단기를 발견하고 이어서 대답했다.

“녀석들은 강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한다는 겁니다. 이런 장소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딸각-! 지직-! 우우우웅-!!

강철만이 차단기를 올리자 환하게 변한 통로가 두 사람을 반겼다.

이번에도 난관은 쉽게 해결됐다.

그러나 통로가 밝아진 순간, 두 사람은 아까와 다르게 웃을 수 없었다.

기다란 통로 좌우로 웬 유리통과 기계들이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보고도 믿기 힘든 게 둥둥 떠 있었다.

한상우가 유리통 안에 들어가 있는 물체를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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