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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38화 (38/169)

제38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13)

앞선 강화 실험체들보다 월등한 몸집을 가진 곰이 계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등급도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높은 A급.

여태껏 상대하던 놈들보다 좀 더 강한 녀석이었지만 한상우는 긴장하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S급으로 분류된 몬스터 황대건을 상대하기도 했거니와.

[몬스터가 된 강화 실험체를 처치하세요(966/976)]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땡길거야와 제장이가 남은 몬스터를 처치해 퀘스트 완료까지 열 마리만 남겨둔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이 녀석만 잡으면 얼추 끝나겠군.’

끝이 보이자 고갈됐던 힘이 다시 샘솟는 느낌이었다.

다만, 눈앞에 있는 강화 실험곰은 A급. 지금까지처럼 일격에 끝내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리고 한상우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상우는 빠르게 승부를 보기 위해 거리를 좁혀 [반월 베기]를 사용했지만.

까아앙-!!

화산검이 강화곰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온 것이다.

“크워어어어!!”

막혀버린 공격 뒤로 날아드는 강화곰의 앞발.

한상우는 재빠르게 바닥을 구르며 앞발을 피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태를 파악했다.

분명 돌진하기 전엔 일반적인 곰과 다를 바 없었는데, 한 차례 충돌하고 나니 놈의 가죽이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해 있었다.

[반월 베기]를 사용하는 그 짧은 틈에 강화곰이 가죽을 강철처럼 강화하는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놈을 처치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는 땡길거야를 부르거나.

‘그래도 이 정도는 내가 해결해야지.’

한시가 급하긴 하지만 마지막 몬스터는 직접 마무리 짓는 게 좋을 듯했다.

마침 녀석을 처치할 방법도 떠올랐고.

한상우는 자세를 잡은 뒤, 다시 강화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크워어어어어!!”

강화곰이 포효하며 앞발을 휘둘렀다.

슈화악-! 슈화아악-!

멀리서 빠르게 쇄도하는 날카로운 오러 발톱들.

한상우는 몸을 틀어 회피하는 동시에 화산방패로 강화곰의 스킬을 막아냈다.

미처 피하거나 막지 못한 부분이 살짝 살갗을 스쳤지만 그쯤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화산검을 쥐고 검 끝으로 오러를 발현시켰다.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2식 반월 베기와 같은 기전.

그러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강화곰과 가까워진 순간, 검으로 선을 그리며 벤 게 아니라 그대로 멈춰서 점을 향해 내지른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상우가 쓴 것은 [반월 베기]가 아니라.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1식 - 급소 찌르기]

제국기사단 검술의 기초가 되는 [급소 찌르기]였으니까.

[반월 베기]와 달리 칼끝에 집중되어 면적이 좁으나 더 날카롭고 뾰족한 오러가 강화 곰의 뱃가죽에 닿았다.

한상우의 판단은 옳았다.

푹-!

검을 휘두를 때는 표면적이 분산되어 강철 가죽을 베지 못했지만, 검 끝으로 찌르니 힘이 한데 모여 강철 가죽을 뚫어냈다.

물론, 강화곰도 그사이 앞발을 휘두르며 반격을 가했지만 이미 한상우는 검을 빼고 바닥을 구른 뒤였다.

공격보다 한 박자 빠른 회피.

이어지는 공격 역시 한 박자 빨랐다.

한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강화곰의 옆구리를 향해 다시 한번 [급소 찌르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화산검이 강철 가죽을 뚫고 들어간 순간, [반월 베기]로 전환해 위쪽 사선으로 그어버렸다.

전술은 성공적이었다.

“그워어어….”

쿵-!!

[거대한 강화 실험곰(A)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반으로 갈라진 강화곰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그 뒤로.

“정복을 감축드리옵니다, 주군.”

“축하드려요, 군주님!”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땡길거야와 제장이가 한상우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더불어.

[긴급 퀘스트 완료]

[몬스터가 된 강화 실험체를 처치하세요(976/976)]

시스템도 축하하듯 긴급 퀘스트의 성공을 알려왔다.

한상우는 턱 끝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고맙다. 그런데 자축하기엔 아직 일러. 좀 더 싸워야 하니 쉬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주군.”

“언제든 불러주세요, 군주님!”

강화 실험체들을 처치한 건 좋았지만 아직 축배를 들 때는 아니었다.

강철만이 루미나스 헌터들을 모두 처치하면 좋을 테지만, 방금 위층에서 들려온 굉음으로 봤을 때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캐릭터 : 땡길거야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캐릭터 :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한상우는 마나 소모를 줄이기 위해 두 캐릭터의 소환을 해제하고 포션을 마신 뒤, 위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계단에 발을 올리려던 찰나, 추가로 도움이 될 만한 게 눈에 들어왔다.

[긴급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터치할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바로 긴급 퀘스트의 보상이었다.

어떤 보상이 주어질지는 몰랐지만, 어떤 것이든 지금 루미나스를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만큼은 확실했다.

게다가.

긴급 퀘스트 완료 보상 말고도 수령해야 할 게 더 있었다.

[다섯 번째 업적을 클리어했습니다.]

[다섯 번째 업적 – 미해결 던전을 클리어하세요(1/1)]

[메시지를 터치할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바로 강철만과 함께 다니느라 수령을 미뤘던 다섯 번째 업적의 보상이었다.

‘올라가기 전에 도움이 될 만한 건 최대한 긁어모으는 게 낫겠지.’

한상우는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눌러 두 개의 퀘스트 보상을 동시에 수령했다.

* * *

“허억, 허억….”

숨소리가 울려 퍼지는 널따란 지하실.

강철만은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대검을 꽂은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더불어 볼을 타고 피와 땀도 흘러내렸는데, 겉모습만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강철만을 포위하고 있는 루미나스 헌터들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큭큭, 천하의 강철만도 별거 없네.”

“진짜 SS급 헌터 맞아? 부지부장님한테 손 한 번 못 대고 있잖아.”

“하긴. 부지부장님 염력이 장난 아니긴 하지.”

곳곳에서 비웃음이 쏟아졌다.

그중에는 사막 던전 앞에서 맞부딪혔을 때, 황대건을 버리고 도망쳤던 녀석들도 간간이 보였다. 상황이 유리하게 바뀌니 강철만을 에워싸고 희희낙락거리고 있던 것이다.

이 모든 건 부지부장 홍진성이 투입되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보이지 않는 사념의 힘, 염력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홍진성은 강철만의 공격과 방어를 쉽고 간단하게 파훼하고 있던 것이다.

거기다 홍진성 특유의 결단력 있는 통솔력을 발휘, 루미나스 헌터들을 이용해 강철만을 압박하니 승리는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철만은 통로의 함정을 돌파하고 안쪽의 널따란 지하실까지 진입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된 체력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그 지하실은 미리 그를 상대할 준비를 철저하게 해놓은 상태라, 독 안에 든 쥐 꼴이 된 것이다.

옆에서 보좌하던 제1 지원팀장 민수아가 감탄할 정도였다.

“대단하십니다, 부지부장님. 부지부장님의 염력은 언제봐도 감탄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뜬금없이 뭐야. 제1 지원팀장, 너 평소에 나 무시했잖아?”

“무, 무시라뇨, 부지부장님. 제가 진짜 존경하는 분과는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 거죠, 호호.”

“흥, 말이라도 못 하면….”

민수아는 갑작스럽게 들어온 추궁을 부드럽게 넘기며 홍진성을 재빠르게 스캔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

강화 포션을 마신 것 같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부지부장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홍진성 본인도 얘기했듯 평소 그저 지부장의 동기라는 후광으로, 어울리지 않는 힘으로 부지부장이라는 직책만 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확실히, 보는 눈이 달라졌다.’

홍진성은 자신을 향한 인식이 바뀐 것에 쐐기를 박기 위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하실 한가운데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강철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후후. 실망이군, 강철만. 한국을 대표한다는 헌터가 고작 이 정도라니.”

“쫑알쫑알 말 되게 많네. 그냥 덤벼, 땅딸보 녀석아.”

“따, 땅딸보!?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딴 소리를…!”

강철만의 도발에 홍진성이 발끈하며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우우우웅-!

더불어 빛을 발하는 지팡이의 보석.

그러나 이내 빛은 잦아들었으니, 홍진성이 마나를 거둔 탓이었다.

‘이 정도면 힘은 충분히 보여줬다. 통솔력과 포용력도 보여줘야 해.’

홍진성의 최종적인 목표는 지부장 마강진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무력도 무력이지만 그 외에 다른 능력도 보여줘야 했다.

만약 여기서 강철만을 루미나스로 끌어들인다면?

본부에서 자신을 이전보다 더 높게 평가할 게 분명했다.

물론,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후우, 네놈을 당장 찢어 죽이고 싶지만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지. 아신 길드의 길드장 강철만, 내 밑으로 들어와라.”

“…갑자기 무슨 개수작이지? 그냥 하던 대로 해.”

“개수작이라니. 그냥 죽이기엔 재능이 아까워서 호의를 베풀어주는 걸 모르겠나?”

“호의? 네놈한테 그딴 거 받을 생각 없으니 그냥 덤비지?”

살의를 눌러가며 영입을 제안했지만, 강철만은 피식 웃으며 이죽거릴 뿐이었다.

까드득-

홍진성은 이를 악물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가 이내 멈칫했다.

마지막으로 인내심을 발휘해 다시 한번 영입을 제안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대신 이번엔 좀 더 근거를 댈 필요가 있었다.

“강철만, 너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나?”

“새로운 세상?”

“그래, 잘 생각해봐. 세상은 바뀌었다. 10년 전부터 던전이 나타나고, 각성하는 헌터들이 등장했지. 이제 세계는 헌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바뀌었다. 그런데 헌터에 대한 대우는 어떻지?”

홍진성의 얘기는 헌터들을 루미나스로 포섭할 때 하는 연설이었다.

홍진성은 땅으로 내려와 강철만과 눈높이를 맞추며 말을 이었다.

“감시, 강제 동원, 살인적인 세금 부과. 대중들은 헌터들을 선망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불과해. 각성했다는 이유로 스탯과 스킬을 강제로 오픈해야 하고, 50%가 넘는 세금을 부과하며 위급 상황 시, 애국심과 인류애를 들먹이며 헌터를 사지로 몰아넣지. 그러다 희생자가 발생하면 때로는 살인 용의자로 몰고 가기도 하고 말이야. 이런 현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나?”

“…….”

홍진성의 연설이 계속됐다. 그런데 강철만은 이전과 다르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런 불합리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는 듯 묵묵히 듣기만 할 따름이었다.

홍진성은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며 이어서 얘기했다.

“우리는 신인류다. 힘도, 능력도 없는 버러지 같은 인간들에게 목숨을 바칠 이유 따윈 없어! 우린 선택받은 존재들이다. 주어진 능력을 개발해 인간들을 통치하고 그 위에 군림해 위대한 존재로 추앙받아야 하지!”

홍진성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됐다.

루미나스 헌터들 역시 감명받은 듯 주먹을 꽉 쥔 채 연설을 듣고 있었다.

“어때, 강철만. 우리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지 않겠나? 각성자가 각성자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신세계를 만드는 거다!”

홍진성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강철만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적막이 내려앉은 사위.

강철만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홍진성의 손을 바라만 봤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뗐다.

“인상적이네. 신인류라니…. 확실히 너희들이 왜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지 몰랐는데 이제 좀 알겠어.”

강철만은 대검을 지팡이 삼아 지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맞는 말이야. 헌터들에게 부과된 의무는 막중한데 대우는 시원찮지. 때로는 별로 구해주고 싶지 않은 인간들도 더러 보이고 말이야.”

홍진성의 말이 맞았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로 활동했지만 회의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가장한 감시에 숨이 막혀올 때도 있었고, 던전 내부의 상황도 모른 채, 겨우 살아돌아온 헌터에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만 하는 대중들에게 신물이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도구로 여기면 안 되지, 개자식들아…!”

그게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근거가 될 순 없었다.

후우우우웅-!!

강철만은 바닥에 꽂아놨던 대검을 뽑아 홍진성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멍청한 자식. 결국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홍진성은 뒤로 훌쩍 뛰어 기습을 피한 뒤였다.

협상은 끝났다.

홍진성은 지팡이로 마나를 보내며 스킬을 발동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강철만에게 공격을 퍼부으려던 그 순간.

쿠궁-! 쿠구구구궁-!

굉음과 함께 지하실 천장이 무너지더니.

[유성의 심판]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유성이 낙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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