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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39화 (39/169)

제39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14)

“……!”

“이, 이게 무슨…!”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무더기와 유성들.

루미나스 헌터들은 경악했지만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폭발이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낙하하는 유성과 건물 잔해의 양이 너무 많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그렇게 루미나스 헌터들은 눈을 질끈 감으며 팔을 들어 올렸는데.

“……?”

아무런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념의 가호]

홍진성이 루미나스 헌터들의 머리 위로 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어 폭발과 건물의 잔해를 모두 막아낸 것이다.

휘이이익-! 쿵-!!

홍진성은 아래에서 위로 지팡이를 휘저어 보호막 위에 쌓인 돌덩어리들을 밖으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흥, 허튼짓을.”

혼란을 틈타 지척까지 다가온 신형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하아아앗!!”

후우우우웅-!!

자욱한 연기를 뚫고, 강철만이 빛을 머금은 대검을 홍진성에게 휘둘렀다.

[유성의 심판]을 사용하긴 했지만, 반복되는 전투와 소모된 마나로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을 것은 예상한 바다.

그래서 강철만은 [유성의 심판]을 연막처럼 활용, 치밀한 계산 아래 한 박자 빠르게 연계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철만이 준비한 회심의 일격은 홍진성에게 닿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버렸으니.

[사념의 손길]

염력을 이용해 움직임을 제한하는 홍진성의 스킬이 강철만의 기습을 막아냈다.

마치 깊은 물 속에서 대검을 휘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강철만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길, 또…!’

강철만은 홍진성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벌써 몇 번째던가.

매번 공격이 성공하려 할 때마다 투명한 힘이 온몸을 짓눌렀다.

아니, 공격뿐만이 아니었다.

적들의 스킬을 막거나 회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홍진성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움직임이 둔화되거나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망할 염력 같으니. 협공할 사람만 있었어도 별거 아닌데. 아니, 그냥 딱 한 대만 맞히면 끝나는 건데…!’

강철만은 홍진성의 힘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염력.

보이지 않는 힘으로 사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으로, 희귀하긴 하지만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염력을 사용하는 헌터와 레이드를 진행해본 적도 있고, 반대로 염력을 쓰는 몬스터를 상대해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파훼법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염력을 상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염력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마법 저항력을 높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협공을 이용해, 염력에 집중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염력은 고도의 집중력과 비교적 긴 시전 시간을 요구해, 견제가 들어오면 스킬의 위력이 약화되는 특성이 있다.

게다가 마나를 많이 잡아먹어 아이템 역시 마나 위주로 세팅해야 하기에, 방어력이 현저하게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염력을 사용하는 마법사는 협공에 취약하고 강한 공격 한 방에 전투 불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홍진성만 해도 발목까지 내려오는 로브 외엔 딱히 방어구를 착용한 게 없었다.

딱 한 번.

[유성참]을 머금은 대검이 닿기만 하면 될 텐데 그 기회가 오지 않았다.

강철만은 마법 저항력이 높지 않기에 홍진성이 스킬을 쓸 시간을 주지 않아야 염력을 파훼할 수 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였다.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인원은 홍진성 쪽이 더 많았다.

“이 개자식! 우리가 고생해서 만든 실험실을 부수다니…!”

“죽어라, 강철만!”

제1 지원팀장 민수아부터 일반 단원들까지.

폭발의 연기가 걷히자 루미나스 헌터들이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고 강철만에게 여러 스킬을 날렸다.

불과 얼음, 암흑 작살 등 무수히 많은 스킬이 쏟아졌다.

원래라면 손쉽게 피했을 강철만이지만.

‘젠장, 발이…!’

움직일 수 없었다.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홍진성이 [사념의 손길]로 강철만의 발을 묶고 뒤로 물러난 것이다.

“크하핫! 끝이다, 강철만!!”

홍진성의 웃음소리가 쑥대밭이 된 지하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뒤로.

콰아아아앙-!!

루미나스 헌터들의 스킬이 한데 모여 강철만을 강타했다.

“끝났네, 큭큭!”

“우리가 강철만을 잡았어!!”

생존하더라도 멀쩡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루미나스 헌터들은 환호하며 무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아무리 SS급 헌터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강한 공격에 정통으로 맞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헌터의 감이랄까.

비록 시신을 확인한 건 아니었지만 이건 사실이나 다름없었고, 루미나스 헌터들로선 승리를 확신할 만했다.

그런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그 순간.

번쩍-! 촤악-! 촤촤자작-!!

갑자기 섬광이 일더니 연기 속에서 무수히 많은 빛의 칼날이 쏟아져 나왔다.

“무, 무슨…!”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홍진성은 재빠르게 [사념의 가호]를 펼쳤으나 지금까지와는 그 양상이 달랐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강철만의 스킬을 모두 막아냈는데, 이번엔 빛의 칼날들이 [사념의 가호]를 찢으며 밖으로 나온 것이다.

“뭐, 뭐야!”

“으아아악!!”

부지부장을 믿고 멀뚱멀뚱 서 있던 루미나스 헌터들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설상가상 홍진성도 빛의 칼날에 어깨를 베이고 말았다.

피빗-!

붉은 피가 로브를 적셨다.

“크윽! 갑자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홍진성이 한 손으로 어깨를 부여잡은 채 자욱하게 퍼지는 흙먼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저벅- 저벅-

그 속에서 강철만이 걸어 나왔다.

루미나스 헌터들의 스킬을 정통으로 맞았지만 그걸 버텨내고 반격까지 날렸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 잠깐 저게 뭐지?”

“뭔가 착용한 것 같은데…?”

강철만의 행색이 조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길드 제복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흙먼지를 뚫고 나오는 이의 윤곽은 전보다 커지고 각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실루엣이 드러날수록 루미나스 헌터들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가, 갑옷…?”

하얀 투구와 하얀 갑옷.

흙먼지를 헤치고 나온 건 다름 아닌 중갑 기사였다.

혹시 다른 사람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금빛 각인이 새겨진 투구 속, 강철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넨 오늘 살아서 돌아갈 생각하지 마라, 악마 새끼들아.”

듣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음성에 루미나스 헌터들은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오싹한 것도 있지만 행색이 완전히 드러나자 하나둘씩 그 정체를 알아본 탓이었다.

“자, 잠깐. 저거 디바인 실드의 갑주잖아…!”

디바인 실드를 상징하는 하얀 갑주.

강철만이 힘을 개방했다.

* * *

‘후우, 어디로 가야 하지?’

희끄무레한 어둠 속, 한상우는 핸드폰 불빛으로 주변을 비춰 봤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길이 너무 많았다.

강화 실험체들을 처치한 후, 한상우는 보상을 수령하고 무저갱을 탈출하려 했다.

사실 처음 올라올 때만 해도 금방 강철만이 있던 곳으로 도착할 줄 알았다.

내려올 때 한 번에 내려왔으니 올라가는 길 역시 그러할 거라 추론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일로 가득했다.

개미굴이라고 해야 할까.

무저갱은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돌연 내리막길이 나오고, 내리막길이다 싶으면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중간중간 두 갈래 길, 세 갈래 길도 나왔다.

지금 한상우의 눈앞에는 네 갈래 길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오래 헤맨 것은 아니었다.

같은 자리를 맴돌지는 않았으니 조금만 더 가면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좀 더 속도를 올릴 필요는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강철만은 혼자서 루미나스를 상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까 얻은 보상을 쓰면 더 빨리 나갈 수 있으려나?’

한상우는 조금 전에 퀘스트를 완료하며 수령한 두 개의 보상을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사용할 만한 것들은 아니야.’

보상 중 하나는 마나의 소모량이 너무 심해 다음에 이어질 전투를 대비하려면 지양하는 쪽이 나았고, 다른 하나는 파괴력이 너무 강해 통로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지금으로선 직접 통로를 찾거나, 마나 소모량이 적은 제장이를 소환해 탐사를 돕게 하는 게 좋을 듯했다.

당장 앞의 전투 중 마신 마나 포션의 양도 적지 않아, 가능한 마나는 아끼는 편이 좋았다.

번쩍-!

섬광이 점멸하고, 한상우의 앞으로 꼬마 대장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장아, 위로 나가는 길을 찾아볼래?”

“네, 군주님! 제게 맡겨만 주세요!”

“그래, 잘 부탁하마.”

“그런데 출구를 발견하면 보고한 뒤에 어떡할까요? 바로 나가서 그 아저씨를 도울까요?”

“그건….”

제장이의 물음에 한상우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강철만을 지원한다라….’

원래는 강철만 앞에서 절대 하이어의 캐릭터들을 보여주지 않을 계획이었고, 그렇게 해왔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일각을 다투는 상황에 제장이가 먼저 출구를 발견한다면?

얼마나 도움이 될진 미지수지만 제장이의 모습을 노출해서라도 강철만을 구하는 게 맞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캐릭터 소환]의 능력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만 비밀로 하기도 결심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던전의 난도가 올라가고 소환 캐릭터 개수가 많아지면 숨기기도 힘들 것이었다.

순간 소환도 한계가 있고 말이다.

‘그래도 숨길 수 있다면 비밀로 하는 게 낫겠지. 강철만이 루미나스 헌터를 모두 제압했을 수도 있고 말이야.’

한상우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며 계획을 세운 후, 결론을 내렸다.

“그래, 만약 출구를 먼저 발견하고, 강철만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되면….”

그런데 제장이에게 결론을 공유하려던 그때.

쿵-! 콰아앙-!!

멀리서 연이어 파공음이 들려왔다.

긴말할 필요가 없었다.

한상우는 곧바로 제장이와 함께 어둠 속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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