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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40화 (40/169)

제40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15)

하얀 투구와 갑옷을 장착한 강철만의 등장.

일반 단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루미나스에 떠도는 격언 중에 하얀 갑주를 마주하게 되면 그날은 동료 절반을 잃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일단 성가신 피라미들부터.”

강철만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땅을 박차자.

쾅-! 푹-! 콰직-!

“크헉…!”

“끄아아악!!”

순식간에 신형이 사라지더니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루미나스 헌터 셋이 비명횡사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의 움직임이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루미나스 헌터들에 홍진성은 서둘러 [사념의 손길]을 사용했지만 강철만을 막진 못했다.

직접 움직임을 제한하려면 적어도 시야에 잡혀야 하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강철만을 막지 못하는 건 민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스킬을 사용해서 일반 단원의 그림자 위로 작살을 생성해 반격하려 했지만, 강철만은 손쉽게 피할 뿐이었다.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 강화 포션! 모두 강화 포션을 마셔!!”

이미 한계치까지 마셔 더 이상 복용했을 경우, 몬스터로 변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선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당장 민수아부터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냈는데, 그녀는 끝내 포션을 마시지 못했다.

서걱-

“어…?”

뚜껑을 열고 강화 포션을 들이키려는 순간, 손목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변화를 인식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땅은 위로, 하늘은 아래로.

시야가 빙글 돌더니 민수아는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미, 미친…!”

“지원팀장님이 당했어!”

“모두 도망쳐! 이건 절대 못 이겨!!”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루미나스 헌터들은 혼비백산했다.

부지부장 홍진성이 아직 살아 있긴 하지만 강철만이 디바인 실드의 갑주를 입고 무쌍을 펼치자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뭣들 하는 거야! 포위망을 유지해! 도망치지 마라!!”

홍진성이 목청껏 소리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루미나스 헌터 수십 명이 명령을 듣지 않고 각개격파 당하기 시작했다.

홍진성은 추가로 명령을 내리려다 입을 다물고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강화 포션을 꺼내 들었다.

부하들을 데리고 강철만을 상대하는 건 더 이상 무리였다.

이젠 혼자서 강철만을 상대해야 할 것 같았는데 문제는 이미 이곳에 오기 전, 포션을 한계치까지 마셨다는 점이었다.

만약 여기서 더 마신다면 몬스터로 변할지도 몰랐다.

한번 몬스터로 변하면 해독제가 없기에 인간으로 돌아오진 못한다.

홍진성 입장에선 도박이나 다름없었는데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대로 가면 전멸하는 건 시간 문제기 때문이다.

이젠 승진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홍진성은 결심한 듯 콧김을 세게 내뿜더니 손에 쥔 강화 포션들을 들이켰다.

그 사이, 강철만은 루미나스 헌터들을 계속해서 정리해 나갔다.

‘시간이 얼마 없어.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해.’

푹-!

“끄아아악!!”

피가 솟구치고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 속, 강철만은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대검을 휘둘렀다.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 기술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성력을 깨웠습니다.]

[신성갑주]

[남은 유지 시간 – 3분 28초]

[남은 신성력 – 12%]

신성 스킬, [신성갑주]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성 스킬은 디바인 실드의 수장, 셀리나 칸데바가 직접 전수해주는 특별한 스킬로 마나를 소모하는 일반 스킬과 다르게 신성력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이 신성력은 마나와 다르게 포션으로도 채울 수 없고 유지 시간도 짧기에 결정적일 때만 사용해야 한다.

현재 강철만은 이틀 전에 있었던 임무를 수행하느라 신성력을 대부분 소진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강철만이 최후의 최후까지 디바인 실드의 힘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였다.

남은 신성력이 얼마 없었기에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만 써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략도 중요했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를 처리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기에 쉬운 것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강철만은 일반 단원과 중간 관리자부터 처치했고, 이건 꽤 잘 먹혀들었다.

신성력을 일깨운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절반이 넘는 루미나스 헌터들을 처치한 것이다.

이제 나머지를 정리하고, 염력을 쓰는 부지부장을 처치하면 될 듯했는데 상대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철만의 예상을 뛰어넘는 힘을 보여줬다.

“으, 으악! 살려줘!”

목숨을 구걸하는 루미나스 헌터를 베려던 찰나, 갑자기 아까와 같이 염력이 움직임을 방해한 것이다.

‘내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을 텐데?’

강철만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아, 신의 힘이 따로 없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꼬마에 불과했던 홍진성의 몸집이 좀 더 커져 있었다.

더불어 온몸에 새겨진 루미나스의 각인이 붉게 빛났는데, 녀석은 입고 있던 로브도 벗어던진 채 붉게 변한 눈동자로 눈웃음을 짓더니 공중으로 떠올랐다.

“오오, 부지부장님께서 각성하셨다!”

“이제 강철만은 끝이다! 우리가 이겼어!!”

루미나스 헌터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부지부장이 각성해 강철만을 멈췄으니 다시 승기를 가져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홍진성이 손을 뻗어 주먹을 꽉 쥐자.

우우웅- 우두두둑-!

“끄아아아악!!”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루미나스 헌터들의 몸이 이리저리 꺾였다.

“부, 부지부장님…? 크허억!!”

부하들이 상관을 부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소용없었다.

홍진성은 계속해서 루미나스 헌터들을 찌그러트렸다.

그건 부하를 증오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위가 아니었다.

그저.

쿵-! 파앗-!

이리저리 도망치는 강철만을 따라 공격하면서 생긴 일일 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부하들의 안위를 생각해 제대로 공격을 못 하거나 최소한 범위라도 줄였을 텐데, 지금의 홍진성은 강철만을 잡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땅을 박차며 회피 기동을 하는 도중, 강철만이 말문을 열었다.

“멍청하긴. 네놈들 눈엔 아직도 저게 인간으로 보이냐?”

“……!”

“크윽! 부지부장님도 결국…!”

강철만의 얘기에 루미나스 헌터들은 이를 악물었다.

공중에 높이 떠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홍진성의 머리 위로, 몬스터처럼 인식표가 떠 있었던 것이다.

[열등한 사념술사 홍진성(SS)]

홍진성은 무려 SS급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미친, SS급이라니…!”

“전부 도망쳐! 몬스터가 된 이상 우리도 못 알아볼 거야!!”

사태를 파악한 루미나스 헌터들은 혼비백산했다.

강화 물약의 부작용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작전에 희망이 없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쿠구구구궁-!!

몬스터 홍진성이 지팡이를 휘둘러 [사념의 손길]을 전개했다.

“크윽! 무, 무슨 압력이…!”

“끄아아아악! 살려줘!!”

분화구가 되어 버린 지하실 공동 곳곳에서 고통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법 저항력이 약한 루미나스 헌터들은 전신이 찌그러지거나 눈과 코, 입 등에서 피를 쏟아냈다.

몬스터 홍진성이 강철만을 잡기 위해 아예 지하실 전체에 [사념의 손길]을 깔아 짓누른 것이다.

물방울 하나 빠져나갈 틈 하나 없이 꽉꽉 들어찬 염력.

그 압력은 루미나스 헌터들이 전멸할 정도로 강했지만, 강철만의 목숨까지 빼앗진 못했다.

“흐읍!!”

돌무더기 속 잔해에 숨어 있던 강철만이 땅을 박차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대검을 휘둘렀다.

나름 최적의 타이밍에 최고의 속도로 돌격을 감행한 것이다.

[사념의 손길]을 뚫고, 단숨에 몬스터 홍진성의 앞까지 날아올 정도로 강한 추진력이었다.

그러나.

강철만은 홍진성을 베지 못했다.

신성력을 머금은 대검이 홍진성의 목 앞까지 다가왔으나 염력에 막혀 지척에서 멈춰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설상가상.

[신성력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신성갑주가 해제됩니다.]

디바인 실드의 힘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오, 역시 디바인 실드인가. 하지만… 약해. 약해도 너무 약해.”

몬스터 홍진성은 이성도 있는 상태였다.

‘몬스터가 됐는데도 이성이 남아 있다고…?’

몬스터 황대건과 여러 실험체를 상대해본 결과, 인간이 몬스터로 변하면 전부 이성이 날아갔는데 홍진성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이건 꽤 중요한 문제였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뜻이고, 그만큼 여러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 전투 패턴이 복잡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과연, 몬스터 홍진성은 까다로운 상대였다.

[유성의 심판]

강철만이 교착 상태를 이룬 사이, 남은 마나를 쥐어짜 몰래 스킬을 사용했으나.

“이런 허접한 잔머리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몬스터 홍진성이 이를 간파하고 머리 위로 낙하하던 유성의 경로를 틀어버린 것이다.

동시에.

“크윽!!”

콰아아앙-!!

몬스터 홍진성은 강철만을 [사념의 손길]로 밀어내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 결과.

화르륵-! 슈화아아아악-!!

[유성의 심판]이 강철만의 위로 떨어지게 됐다.

현재 강철만은 신성갑주마저 사라진 상황.

그대로 직격타를 맞는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당장 박차고 일어나야 했지만.

“큭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군.”

몬스터 홍진성이 염력으로 짓누른 터라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인가.’

남은 건 체념하는 일뿐이었다.

강철만은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꼼짝없이 불타는 유성과 충돌하게 된 찰나.

쿵-!

웬 신형이 강철만의 앞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방패를 들어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유성을 막아냈다.

‘대체 누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속, 강철만은 눈을 뜨고 자신의 앞에 선 인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제일 먼저 시야에 잡힌 것은 후폭풍에 흩날리는 금발과 붉은 망토였다.

강철만은 머릿속으로 여러 동료를 떠올렸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 보는 인상착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묘하게 낯이 익었다.

강철만은 조금만 더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을 수만은 없었다.

“갑자기 웬 놈이지?”

저 멀리, 공중에 떠 있는 몬스터 홍진성이 이를 갈기도 했거니와.

탁-

붉은 망토의 기사와 더불어 의외의 인물이 바람을 타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보는 건 비밀로 해주세요.”

한상우.

루미나스의 함정에 빠졌던 B급 헌터가 어느새 강철만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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