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41화 (41/169)

제41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16)

“하, 한상우 헌터…!”

강철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루미나스가 판 함정에 빠져 생사를 알 수 없었던 한상우가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아니, 멀쩡한 게 뭔가.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은 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료도 데려왔다.

붉은 망토와 은빛 갑옷을 착용한 금발의 기사.

강철만의 앞에 서서 [유성의 심판]을 막고, 홍진성을 향해 방어 자세를 취한 그가 옆으로 다가온 한상우에게 나직이 말했다.

“다행히 늦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군.”

‘주군…?’

땡길거야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바닥에 반쯤 누워 있던 강철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관을 보고 외국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함은 물론이고 말투도 특이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음성이었다.

설명을 들으면 뭔가 기억이 날 것 같은 느낌.

강철만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한상우 헌터, 이분은 대체…?”

강철만의 목소리엔 궁금증이 가득했다.

한상우는 슬쩍 고개를 돌려 강철만을 바라봤다.

역시나.

바로 눈치채진 못했어도 강철만은 땡길거야가 낯이 익다고 느끼는 듯했다.

사실 밖으로 나오는 길을 발견한 후, 한상우는 잠깐 고민했다.

주변에 루미나스 헌터의 시체가 즐비한 걸 봤을 때 강철만이 제법 잘 싸우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강철만 혼자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하이어의 캐릭터를 소환할 필요가 없었다.

한상우, 자신의 가담만으로 충분할 테니까.

하지만 막상 나와서 보니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홍진성이라는 녀석이 SS급 몬스터로 변해 있기도 했거니와, 하얀 갑주를 두른 강철만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며 땅으로 추락한 탓이었다.

조금 더 지켜보고만 있다간 강철만이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기에 한상우는 [캐릭터 소환]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제장이는 계단에 숨겨 버프 스킬을 사용하게 하고, 땡길거야는 강철만 앞으로 이동시켜 낙하하는 유성을 막도록 지시한 것이다.

깊은 고민 끝에 노출한 [캐릭터 소환].

그러나 지금은 설명할 때가 아니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우선 저놈부터 잡죠.”

한상우는 하늘에 떠 있는 몬스터 홍진성을 보며 대답을 뒤로 미루었다.

그러자.

“네놈이 한상우로구나. 감히 대업을 방해하다니. 강철만과 같이 묻어주마!”

한상우의 등장에 홍진성이 분개하더니 지팡이를 높이 들며 지하실 전체를 [사념의 손길]로 짓눌렀다.

우우우우우웅-!!

강도 높은 압력에 진동하는 공기.

“크윽!”

그 위력이 얼마나 센지 강철만이 다시 한쪽 무릎을 꿇을 정도였다.

‘미친, 이 정도라면 한상우 헌터가 위험해…!’

강철만은 이를 악물며 대검을 들려고 애썼다.

SS급 헌터인 자신이 한쪽 무릎을 꿇을 정도라면 B급 헌터인 한상우는 으깨져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염력의 파괴력을 낮추어야 했다.

그런데.

“윽! 처음 보는 놈이 날 알다니. 나도 유명인이 된 건가?”

한상우는 의외로 잘 버텨내는 모습이었다.

강한 압력에 강철만처럼 한쪽 무릎을 꿇긴 했지만 걱정했던 것처럼 완전히 짓눌리진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찬란한 현자의 팔찌]에 있는 효과, 마법 저항 +5 덕분이었다.

단순 수치로 보면 높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마법 저항은 스탯에 존재하지 않기에 단 1만 있더라도 높은 효용을 지닌다.

한상우는 [찬란한 현자의 팔찌] 덕분에 5의 마법 저항이 있었고, 덕분에 강철만과 비슷하게 버틸 수 있었다.

‘어, 어떻게…?’

물론,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강철만은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한상우와 함께 나타난 기사였다.

분명 몬스터 홍진성이 막대한 마나를 방출하며 염력을 사용하고 있는 와중임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늠름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처치해.”

“알겠습니다, 주군.”

한상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염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쿵-! 파지직-!!

땅을 박차 앞으로 나가는 동시에 [끌어오기]를 사용, 공중에 떠 있는 몬스터 홍진성을 향해 오러 채찍을 날린 것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썼던 기술.

한상우는 몬스터 홍진성이 오러 채찍에 휘감겨 땡길거야 앞으로 끌려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파직-! 우우웅-!!

몬스터 홍진성의 발밑에서 오러 채찍이 멈췄다.

‘쳇, 역시 까다롭네. 처치하기 쉽지 않겠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성공했던 기술이 홍진성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한상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화산검을 들어 홍진성을 조준했다.

하이어에서도 보스 몬스터에겐 [끌어오기]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땡길거야의 스킬이 언젠가 막힐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다.

땡길거야도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공격을 이어나갔다.

쿵-!

지면을 박차고 몬스터 홍진성을 향해 높이 도약했다.

“큭큭,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는 몰라도 칼잡이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패턴이로구나!”

앞서 강철만과 같은 공격 방식에 몬스터 홍진성이 비아냥거렸다.

[사념의 손길]을 버티고 뛰어오르는 모양새를 보니 강철만과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으나 강철만과 비슷한 전술을 구사한 탓이었다.

한 번 막아봤던 공격에 또 당할 리는 없었다.

홍진성은 [사념의 손길]을 강화해 공중에서 땡길거야를 묶으려 했다.

그런데 홍진성이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으니, 지금은 전황이 아까와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되지.”

[분화]

콰아아아아앙-!!

한상우의 화산검 끝에서 분출된 화염이 홍진성을 향해 쇄도했다.

물론,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고 홍진성의 주변에 염력으로 만들어진 보호막, [사념의 방패]가 있어서 큰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크윽, 저 애송이가…!”

홍진성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충분한 공격이었다.

덕분에 땡길거야는 한층 더 높게 도약했고.

[캐릭터 : 땡길거야가 반월베기를 사용합니다.]

검이 닿을 거리는 아니었지만, 검 끝으로 오러를 형성해 몬스터 홍진성을 향해 휘둘렀다.

그 결과.

쨍그랑-!!

홍진성 주변에 형성되어 있던 보호막, [사념의 방패]가 깨졌다.

“무, 무슨…!”

단 한 번 닿았을 뿐인데 보호막이 이렇게 무력하게 깨지다니.

홍진성은 경악하며 위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손바닥을 아래로 펼치고 일시적으로 염력을 방출하는 스킬, [사념파]를 사용했다.

쩌어어엉-!!

손바닥에서 대포처럼 발사된 염력의 파동이 땡길거야에게 쏟아졌다.

홍진성의 몸이 위로 솟구치는 반작용이 발생할 정도로 막강한 파괴력.

땡길거야는 공중에서 방패를 들어 [사념파]를 막아냈으나 그 여파로 추락했다.

그 모습에 강철만은 주먹을 꽉 쥐었다.

‘엄청난 실력자다. 홍진성이 위로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추가로 검을 휘두를 각이 나왔을 거야…!’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전투를 보다 보니 절로 감탄이 일었다.

염력의 힘만 아니었어도 땡길거야가 피해를 입혔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땡길거야의 실력은 강철만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땡길거야는 몸이 낙하하는 사이, [신성한 기사단장의 장검]을 몬스터 홍진성을 향해 겨누더니.

[캐릭터 : 땡길거야가 신성 폭발을 사용합니다.]

콰아아아아앙-!!

[분화]와 비슷한, 그러나 파괴력 면에서는 훨씬 뛰어난 스킬 [신성 폭발]을 발사했다.

“뭐, 뭐야…!!”

몬스터 홍진성은 서둘러 지팡이를 앞세워 [사념의 방패]를 형성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콰직-! 화아아아악-!!

초록 불꽃이 그대로 홍진성의 오른팔을 집어삼켰다.

“끄아아아아악!!”

공중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강철만이 한상우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 짧은 틈에 몸을 이동시키다니.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명줄 한번 질기네요.”

확실히 강철만의 말대로였다.

몬스터 홍진성은 한쪽 팔이 날아갔지만 잠깐만 고통을 느낄 뿐, 계속해서 싸울 기세였다.

“감히 저급한 인간 주제에…!”

녀석은 붉게 변한 눈으로 한상우와 땡길거야, 그리고 강철만을 노려보더니 남은 팔을 들어 다시 한번 염력을 발동시켰다.

[강화 사념의 손길]

구우우우우웅-!!

“크윽!”

이전보다 한층 더 강해진 염력이 세 사람을 짓눌렀다.

동시에.

몬스터 홍진성은 염력으로 루미나스 헌터들의 시체에서 남은 강화 포션을 모으더니 그대로 섭취했다.

무려 30개가 넘는 개수.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전부 날려주마!!”

[사념의 폭풍]

몬스터 홍진성이 염력을 토네이도처럼 회전시켜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낸 것이다.

콰과과과과-!!

무너진 대형 창고의 잔해와 지하실의 돌들이 폭풍을 따라 회전했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구궁-!!

한상우와 땡길거야, 그리고 강철만을 덮쳤다.

“제길…!”

몬스터 홍진성이 스킬을 시전하던 찰나, 한상우와 땡길거야가 [분화]와 [신성 폭발]을 날렸지만 [사념의 폭풍]이 생성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한상우는 방패를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폭풍의 범위가 워낙 넓어 옆이나 뒤에서 오는 잔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웅-!!

한상우의 몸 주변으로 투명한 보호막이 형성됐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를 사용합니다.]

땡길거야가 동료의 몸에 일시적으로 방어막을 부여하는 스킬 [동료 보호]를 사용한 것이다.

역시 만렙의 수호 기사가 있어 방어 능력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강철만한테도 동료 보호를 거는 게 낫겠지.’

이 정도 폭풍이라면 SS급 헌터도 버티기 힘들 게 분명했다.

한상우는 강철만에게도 [동료 보호]를 걸어주려 했는데 애초에 땡길거야가 그렇게 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샤아아아악-!!

한상우가 강철만을 찾으려는 순간, 돌풍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헉, 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바람은 바람으로 제압해야죠.”

강철만이 대검을 끊임없이 휘둘러 폭풍을 중화시켜버린 것이다.

가진 마나를 거의 다 쓴 것인지 강철만은 대검을 땅바닥에 박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과연 SS급인 이유가 있었다.

그러자 몬스터 홍진성이 세 사람을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사념의 폭풍]을 준비했다.

“마지막까지 발악하는구나. 하지만 결국엔 내가 이길 것이다!!”

또다시 형성되는 돌풍.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강철만에게, 한상우가 말했다.

“강철만 씨.”

“예?”

“홍진성의 염력은 공간 전부를 짓누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

강철만은 한상우의 말에 아차, 하면서도 동시에 감탄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한상우는 포기하고 절망하지 않고 활로를 찾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방 전체의 압력 가운데서도, 루미나스 헌터들의 시체에서 포션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 위치에 따라 가해지는 압력의 차이가 있었다.

“예, 맞습니다. 염력은 집중의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홍진성의 경우 시야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 같네요.”

“즉, 시야 밖으로만 가면 염력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강철만은 염력을 뚫고 갈 만한 체력이 남아 있지 않고, 한상우는 압력을 뚫을 만한 힘이 없었으며, 땡길거야는 돌풍에서 한상우를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한상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간단하네요.”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강철만은 몬스터 홍진성의 시야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심했는데 의외로 한상우는 쉽다는 투로 얘기했다.

뭔가 비책이 있는 것일까.

강철만은 거친 숨을 내쉬며 한상우를 돌아봤는데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끝이다!!”

[사념의 폭풍]이 더욱 비대해진 순간.

푹-!!

“아…?”

웬 흑색 단검이 몬스터 홍진성의 배를 뚫고 나온 것이다.

“……?”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홍진성뿐만 아니라 강철만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기척도 없었건만 홍진성의 등 뒤로 검은 도복에 복면을 쓴 사내가 나타나 기습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한 치도 예상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상우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몬스터 홍진성의 등을 꿰뚫은 인물은….

[캐릭터 명 - 다크어둠]

[레벨 - 999]

[직업 - 암살자]

<스탯>

[힘 : 680] [민첩 : 920] [지력 : 770] [체력 : 720] [마력 : 590]

<스킬>

[은신] [침투] [기습] [맹독] [착지] [간파] [그림자 교환] […….]

[충성도 – 380 / 999]

한상우가 세 번째로 소환한 캐릭터였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