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17)
[다섯 번째 업적 달성 보상을 획득합니다.]
[다섯 번째 업적 달성 보상으로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상승합니다.]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4에서 5로 상승합니다.]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선출 가능 횟수가 1회 충전됩니다.]
[유일 스킬 : Lv 5. 캐릭터 소환]
[현재 소환 캐릭터 : (0/2)]
[보유 캐릭터 : 2]
[선출 가능 횟수 : 1]
조금 전, 강화 실험체들을 처치하고 한상우는 두 개의 보상을 수령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 선출이었다.
얼마 만에 얻는 캐릭터 선출이던가.
[세 번째 캐릭터를 소환합니다.]
[선출되는 캐릭터는 무작위입니다.]
보상 획득 직후, 한상우는 지체하지 않고 선출을 사용했다.
일단 위에서 홀로 버틸 강철만을 생각하면 빨리 보상을 정리하고 위층으로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굳이 아껴봤자 좋을 것도 없었으며, 이번에 소환한 캐릭터가 어떤 변수를 창출해줄지 몰랐다.
그 결과.
-내 이름은 다크어둠. 심연을 주시하는 어둠의 암살자입니다. 그쪽입니까, 내가 따라야 할 마스터가.
175cm 정도 되는 키에 검은 두건과 마스크를 쓰고, 검은 도복을 입은 암살자가 팔짱을 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캐릭터 명, 다크어둠.
음지의 황제로 불리는 캐릭터로 파티 플레이나 PVP에서 극딜 포지션을 맡는 암살자였다.
‘좋았어, 만렙 캐릭터다!’
캐릭터를 확인하고 한상우는 쾌재를 불렀다.
제장이처럼 레벨이 낮은 부캐가 소환되면 어쩌나 했는데, 땡길거야처럼 레벨이 999인 만렙 캐릭터가 소환된 것이다.
이제 적을 상대할 때, 특히 보스몹을 상대할 때 훨씬 더 여유가 생길 것이었다.
그러나 다크어둠을 시도 때도 없이 소환할 수는 없었다.
레벨이 상승하고, [찬란한 현자의 팔찌]도 착용해 마나의 양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 만렙 캐릭터 두 명의 소환을 오랫동안 유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한상우는 다크어둠을 결정적일 때만 소환하기로 했다.
마나 소모가 부담스럽기도 했거니와 아직 전투에서의 효율을 몰라 적극적으로 활용하긴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우선은 땡길거야와 제장이를 기본으로 소환하고, 두 캐릭터로도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면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한 뒤, 다크어둠을 소환하는 방식이 최선일 듯했다.
그리고 한상우의 전략은 옳았다.
[캐릭터 :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현재 소환 캐릭터 : (1/2)]
[캐릭터 소환]
[캐릭터 : 다크어둠을 소환합니다.]
[현재 소환 캐릭터 : (2/2)]
기존의 방법으로는 몬스터 홍진성을 처치하는 게 버겁다고 판단, 숨겨놓은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하고 다크어둠을 소환해 홍진성을 처치할 걸 지시했는데.
너무나도 손쉽게 승기를 잡았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은신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침투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맹독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다크어둠은 소환 즉시, [은신]을 사용해 신형을 숨기고 [침투]로 홍진성의 뒤로 이동하더니 무기에 독을 바르는 [맹독]을 사용하고, 후방에서 공격할 시 3배의 데미지가 들어가는 [배후 강타]를 써서 기습을 감행했다.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커헉…!”
사념의 힘으로 전장을 압도하던 홍진성의 신형이 단 일격에 꿰뚫린 것이다.
강철만을 사지로 몰아넣고, 폐공장 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강력했던 녀석이지만, 녀석은 전형적인 술사형 몬스터였기에 방어력이 약해 단 한 방이면 충분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열등한 사념술사 홍진성(SS)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민첩 +1, 지력 +1을 획득합니다.]
쿵-!!
다크어둠의 단검에 몸을 관통당한 몬스터 홍진성이 그대로 고꾸라져 땅으로 추락했다.
‘쯧, 아직 안 쓴 보상이 있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렸네.’
바닥에 널브러진 채 서서히 먼지로 변하는 몬스터 홍진성을 보며 한상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다섯 번째 업적 보상 말고도 긴급 퀘스트 완료로 얻은 보상도 남아 있는데, 쓰기도 전에 적이 죽어버렸다.
물론, 그렇게 아쉬워할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만큼 다크어둠이 강하다는 뜻이고, 레벨도 상승했으니까.
강철만이 상대하던 몬스터였지만 던전 밖이기에 파티로 인식되지 않아, 막타를 친 사람에게 온전히 경험치가 들어왔다.
이로써 한상우의 레벨은 93이 됐다.
미해결 던전에서는 강철만과 파티 상태라 경험치를 얼마 획득하지 못했지만, 함정에서 강화 실험체들을 학살하고 SS급인 몬스터 홍진성까지 처치하며 그야말로 폭렙업을 한 것이다.
“한층 더 강인해지셨군요. 감축드리옵니다, 주군.”
땡길거야도 한상우의 레벨업을 느끼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축하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인사는 나한테 해야 하지 않나, 수호 기사. 적장의 숨통을 끊은 건 나다.”
어느 틈에 복귀한 다크어둠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싸늘한 어조.
이에 땡길거야가 다크어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건방지군, 암살자.”
“글쎄, 거만한 제국의 기사단장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아니꼬우면 체포해 보시지.”
“체포? 안식처였다면 네 녀석을 제국법에 따라 즉결 처형했을 것이다. 통합을 추구하는 주군께 감사하도록.”
철천지원수가 이런 것일까.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나누는 대화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로운 분위기.
‘이 둘…, 상성이 별로 안 좋군.’
한상우는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의 대화를 듣다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두 캐릭터를 동시에 소환했습니다.]
[캐릭터 간의 상성에 따라 동시 소환 효과가 발생합니다.]
[수호 기사 – 암살자]
[동시 소환 효과 : 대립]
[대립 : 수호 기사와 암살자는 법의 수호와 파괴를 놓고 대립하는 관계입니다. 동시 소환으로 암살자와 수호 기사의 충성도가 일시적으로 3% 하락합니다.]
제장이를 소환했을 때는 상생 효과로 버프가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대립이라는 디버프 효과가 생겼다.
같은 동시 소환인데 이렇게 효과가 다르다니.
실질적으로 스탯이나 스킬을 변화시키진 않고, 충성도 하락에 그쳐 전투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앞으로 상황에 따라 캐릭터 간의 관계도 고려해서 소환해야 할 것 같았다.
동시 소환에는 부담이 따르는 만큼 마냥 버프만 있을 줄 알았던 한상우로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더 당황스러운 건 뒤에 강철만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 한상우 헌터. 저분들은 대체 어디서 온 분들입니까? [유성의 심판]을 막고, 홍진성을 일격에 처치하시다니….”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강철만이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을 보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음, 그게….”
한상우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상황이 급박해 일단 캐릭터들을 소환해서 몬스터 홍진성을 처치하긴 했지만 이대로는 강철만에게 자신의 능력을 공개해야 할 판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적당히 둘러대기엔 땡길거야는 SS급 헌터인 강철만의 스킬을 막아냈고, 다크어둠은 SS급으로 분류된 몬스터 홍진성을 일격에 처치했다.
그 말인즉,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은 최소 둘과 같은 SS급이거나 그보다 높은 SSS급이라는 소리다.
현재 대한민국에 SSS급 헌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SS급 헌터는 강철만을 포함한 8명뿐.
강철만이 나머지 SS급 헌터를 모를 리 없으니 한상우로선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의 정체를 SS급 헌터라 얘기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리고 스킬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뭐랄까, 마치 게임에서 보던 게 고스란히 재현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한상우 헌터, 혹시 하이어라는 게임 알고 있습니까?”
강철만은 이미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의 스킬을 알아봤다.
게임 캐릭터가 밖으로 나왔다는 것까진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적어도 두 캐릭터가 사용한 스킬의 이펙트는 제대로 본 것이다.
역시 강철만도 하이어의 고인물이라 그런지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수호 기사와 암살자의 스킬을 알아봤다.
한상우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러나 미리 각오했던 일이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여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상우가 고심하던 그때.
-내가 해결할까요, 마스터?
한상우의 머릿속으로 다크어둠의 전언이 들려왔다.
따로 전언을 사용한 건 아니었지만 한상우의 고민이 두 캐릭터에게 전달된 듯했다.
땡길거야도 전언을 사용했다.
-또 무슨 협작질을 하려는 거지?
-협작질이라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간편한 해결책을 쓰려는 거다.
땡길거야가 다크어둠의 말에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해결책? 그게 뭐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상우의 물음에 다크어둠은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런데 두 분의 복장도 뭔가 게임에서 본 것 같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강철….”
[캐릭터 : 다크어둠이 침투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약점 치기를 사용합니다.]
퍽-! 털썩-!
스킬을 사용해 자신을 소개하며 다가오는 강철만의 등 뒤로 이동해서 목을 쳐 기절시킨 것이다.
전투 상황이었다면 강철만도 반격하거나 회피했을 테지만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고, 전투가 끝나 긴장이 풀린 터라 다크어둠의 기습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힘 조절을 해서 죽이지 않은 것이랄까.
“…….”
“예전에 대도께서 한 말씀이 있습니다. 난감할 땐 재워버리는 게 최고라고.”
“주군, 명령만 내리시면 즉결심판을 하겠습니다.”
스릉-!
눈치 없는 다크어둠의 모습에 땡길거야가 한 발짝 다가가며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그러자 한상우가 손을 들어 멈출 것을 지시했다.
“괜찮아. 어찌 됐든 해명할 필요는 없게 됐잖아. 좀 과격한 방식이긴 하지만.”
나중에 깨어나면 문제가 될 것 같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한상우는 바닥에 엎어진 강철만을 바라보며 볼을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