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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43화 (43/169)

제43화

5장 보너스 타임(1)

탁탁- 타다다닥-

널찍한 방 안, 한 아이가 유치원복을 입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아이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 하나.

강철만.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S급 헌터이지만, 그는 20년 전만 해도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다.

아니, 정확히는 평범하고 외로운 아이였다.

강철만의 부모님은 맞벌이인 데다 국가 프로젝트를 맡은 주요 요직 인사라 집에서 자는 날보다 밖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외동인 강철만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집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공부엔 흥미가 없었고, 친구들은 재미없는 학원에 가느라 시간이 맞지 않았다.

게임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놀이였다.

강철만은 게임 중에서도 특히 RPG를 좋아했는데, 가상 공간이긴 하지만 접속만 하면 수많은 사람과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 영웅이 된다는 게 좋았다.

비록 진짜도 아니고, 게임 회사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강철만은 용사가 되어 약한 사람들을 구하고 영웅으로 칭송받는 것에 짜릿함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어느 날.

-크와아아아!!

-캬아아아악!!

세상이 급변했다.

평화롭던 세계에 게임처럼 던전과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각성자들이 나타났고, 강철만도 그중 하나였다.

강철만은 곧장 레이드를 뛰며 헌터로 활약했다.

두려움보다 재미가 앞섰다.

마치 게임이 현실로 변한 듯했다.

그렇게 강철만은 SS급 헌터가 되어 수많은 던전을 공략하고 세상을 구했다.

-와아, 강철만이다!

-감사해요, 덕분에 살았어요!

-꺄악! 싸인해 주세요, 강철만 헌터님!

거리를 나갈 때마다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하핫, 별거 아닙니다.

강철만은 사람들의 환대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어렸을 때 하던 RPG 게임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엔딩 역시 비슷하게 흘러갔다.

-강철만 님, 같이 사진 찍어줄 수 있으신가요?

수많은 인파 속, 한 미모의 여인이 강철만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래, 모름지기 엔딩은 이래야지.’

강철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녀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 자신의 펜트하우스에 초대해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정말 멋져요, 강철만 님.

-그쪽이 더 아름답소.

점점 가까워지는 입술.

마치 게임 엔딩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런데 미모의 여인과 입맞춤을 하려던 찰나.

“길드장님…?”

갑자기 굵은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여인의 얼굴이 거뭇거뭇 수염 자국이 난 사내로 바뀌었다.

그리고 강철만은.

“으악! 뭐, 뭐야!!”

화들짝 놀라며 꿈에서 깼다.

“길드장님? 정신이 드십니까? 크헉!!”

쿵-! 철퍼덕-!

공중으로 치솟는 신형.

강철만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던 사내는 천장에 부딪힌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까, 깜짝이야. 대체 무슨…?”

어안이 벙벙한 상황.

사내를 밀어버린 강철만은 서둘러 주변을 돌아봤다.

탁 트인 풍경과 고급스러운 벽지, 그리고 손등에 꽂힌 링거가 전부인 작은 방.

강철만이 깨어난 곳은 병실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마등처럼 여러 장면이 지나가며 꿈에 그리던 여인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게다가 천장 높이 밀어버렸던 인물도 아는 사람이었다.

“응? 남 비서실장님?”

아신 길드 비서실장 남희건.

아신 길드 창설부터 자신을 보좌해온 비서실장 남희건이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꿈꾸다가 놀라 밀어버렸던 인물이 다름 아닌 남희건이었던 것이다.

“아야야, 대체 무슨 꿈을 꾸셨길래 이렇게 과격하게 밀어내십니까.”

“어, 그게…. 뭐 그런 게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비서실장님.”

강철만은 차마 방금 꿨던 꿈을 얘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남희건도 더 파고들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별문제 없으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너무 오래 누워계신 것 같아서 살짝 걱정했거든요.”

“오래?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죠?”

“열 시간입니다. 전투 중에 기절하신 건 5년 전, SS급 던전 보스 에레브와 싸운 후 처음 있는 일인데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혼자서 그 많은 루미나스 헌터들을 처치하셨으니까요.”

“루미나스 헌터…. 아, 그렇군요.”

꿈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강철만은 곧바로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미해결 던전 밖에 매복해 있던 루미나스 헌터들과 폐공장 단지의 실험체들, 그리고 몬스터로 변한 홍진성까지.

잠깐 잊었던 기억들이 빠르게 돌아왔다.

강철만이 남희건에게 물었다.

“한상우 헌터는 어떻게 됐죠?”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에 봤던 기억은 한상우의 얼굴이었다.

혹시 자신이 기절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한상우 헌터도 다른 병실에 있습니다. 다만 큰 상처는 없어서 찰과상만 치료받고, 헌터청의 이은하 헌터에게 사건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까 짧게 얘기를 들어 보니 길드장님께서 기절한 직후, 저희 아신 길드와 헌터청의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그랬습니까? 다행이네요. 그런데 혹시 저와 한상우 헌터 말고 다른 헌터는 없었나요?”

“다른 헌터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헌터청 지원 병력이 먼저 도착한 건가…. 비서실장님, 잠깐 제 태블릿 좀 주시겠어요? 들고 오셨죠?”

“예, 결재하실 게 많아 챙겨오긴 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길드장님.”

강철만은 남희건이 건네주는 태블릿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강철만은 전자 문서 어플이 아니라 하이어에 접속했다. 그러자 침대 옆에 서서 지켜보던 남희건이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절했다가 깨어나셨는데 게임부터 접속하십니까.”

열 시간이나 기절했다가 깨어났는데 제일 처음 하는 일이 게임이라니.

남희건의 시각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강철만의 입장에선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뭐지? 거의 똑같이 생겼잖아?’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몬스터 홍진성을 일격에 처치했던 헌터들의 스킬이 하이어에 있는 캐릭터 스킬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인할 겸 하이어에 접속했는데 이게 웬걸?

스킬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비슷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게임 속 캐릭터들이 고스란히 밖에 나온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강철만은 의구심을 느꼈지만 당장 이걸 파고들 수는 없었다.

똑똑똑-

“헌터청 이은하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태블릿을 보며 기억과 캐릭터들 대조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 뒤로 헌터청의 간판, 이은하 헌터가 방문한 탓이었다.

강철만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남희건이 이어서 말했다.

“예, 들어오세요.”

“어라? 깨어나셨네요, 강철만 길드장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헌터청의 제복을 입은 이은하가 병실로 들어와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없고 탈진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눈빛과 목소리도 맑고 컨디션도 제법 좋아 보였다.

강철만이 이은하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한상우 헌터는 어떤가요? 진술을 듣고 있다고 전해 들었는데요.”

“한상우 헌터는 퇴원하고 귀가했어요. 그리 많이 다치지 않아서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폐공장에서 있었던 일도 대부분 다 들려 주셨어요. 강철만 길드장님이 대부분 처치해서 자기는 할 게 없었다던데요?”

“제가 다 처치했다고요…?”

“예, 자기는 함정에 빠졌었는데 위로 올라오고 나니 다 해결되어 있다고 했어요. 그걸 듣고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S급 헌터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 길드장님께서 좀 대단하긴 하시죠.”

“…….”

이은하와 남희건이 각자의 엄지를 치켜들며 강철만을 추켜세웠지만 정작 당사자는 웃을 수가 없었다.

루미나스 헌터들을 처치한 건 자신이 맞지만, 가장 고전했던 몬스터 홍진성을 처치한 건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 한상우 헌터가 진술한 내용이에요. 혹시 다른 점 없나요?”

이은하가 건넨 진술에는 한상우의 활약은 쏙 빠져 있었다.

이런 진술로 짐작해보건대 한상우는 마지막 전투 때 등장했던 신원미상의 헌터들을 숨기고 싶어 하는 듯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을 하긴 했지만 답은 나와 있었다.

강철만은 이은하가 건네준 진술서를 돌려주며 말했다.

“예, 다른 점은 없습니다. 제가 다 처치했거든요.”

“역시 그렇군요. 루미나스 녀석들을 처치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사건 정리와 조사는 저희 헌터청 쪽에서 한 뒤,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릴게요.”

“네, 그럼 이만 푹 쉬세요.”

이은하는 미소와 함께 살짝 고개를 까닥이더니 그대로 병실을 나섰다.

남희건이 밖으로 나가는 이은하를 보며 감탄했다.

“일을 수습하고 처리하는 게 엄청 깔끔하네요. 명성이 허투루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저희도 깔끔하게 일하죠. 비서실장님, 디바인 실드에 연락하세요. 긴급 회동을 연다고.”

강철만도 질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보통 업무 지시를 내리면 싫어할 법도 하건만 남희건의 얼굴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이 생겨서 좋다는 듯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아, 이번 사건에 대해 논의하실 생각이시군요.”

“사안이 사안인 만큼 빠르게 공유해야죠. 그리고 추가로 전파하세요.”

강철만은 남희건에게 얘기하며 태블릿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게임 속에서 몬스터를 처치하는 수호 기사와 암살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천재 헌터도 발견했다고.”

* * *

“후, 얼마 만에 누워보는 거냐.”

가구와 책상이 전부인 원룸.

나는 매트리스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일까.

병원에서 진술을 마친 후,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이은하 헌터가 금액 신경 쓸 필요 없이 병원 1인실에서 며칠 요양해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많이 다친 곳도 없었고, 모름지기 휴식이란 집에서 하는 게 가장 좋기 때문이다.

휴식이라.

생각해보니 언제 마지막으로 쉬었는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각성을 한 이후로는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레이드를 돌았고, 던전에 들어가지 않을 때는 하이어를 플레이하며 캐릭터들을 키웠다.

물론, 큰 시각에서 보면 생활 패턴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게임을 한다.

그러나 그 밀도와 강도가 달랐다.

먹고 자고 싸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두 레이드와 게임에 쏟아부었으며 루미나스 헌터들과 싸우는 등 일반적인 헌터가 겪지 못하는 일을 해결했다.

피로도가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간 성장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는데 그래도 큰일을 치렀으니 오늘만큼은 푹 쉬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뭘 해야 하나….’

모처럼 맞이한 휴식 타임이었지만 어떤 걸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게 휴식이란 대부분 게임을 하거나 혼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게 끝이었으니까.

돈도 벌었겠다 오랜만에 쇼핑을 하는 것도 있지만,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밖에 나가고 싶진 않았다.

‘일단 정산이나 해볼까.’

할 게 없다면 잠깐 소일거리를 하면 되는 법.

나는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켜 가방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폐공장에서 주운 아이템을 꺼내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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