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45화 (45/169)

제45화

5장 보너스 타임(3)

촤아아악- 싸아아아-

파도가 치며 하얀 거품이 밀려드는 광안리 해수욕장.

“사진 찍어줄게! 포즈 취해 봐!”

찰칵-!

“날이 좋아서 그런가? 사진 잘 받는데?”

많은 사람이 모래사장에서 사진을 찍거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부산의 대표 관광지다운 모습.

그런데 이곳엔 특이하게도 바다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인파가 있었으니.

바로 No. 389 물의 던전에 들어가려는 헌터들과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이었다.

“뭐야, 저기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려 있어?”

“몰라? 저기 물의 던전이잖아. 요즘 헌터들 사이에서는 제일 핫플이라고 하던데.”

No.389 물의 던전은 휴양지의 해변가를 연상시키는 투명하고 맑은 물, 청량한 던전 환경 등으로 C등급 던전임에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럼 저기 있는 사람이 다 C등급 이상 헌터인가?”

“아닐걸? 관광하듯이 쩔해주는 헌터들도 있다고 했으니까, 저등급 헌터나 구경하는 일반인도 섞여 있을 거야.”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군데군데 모여 있는 헌터들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모래사장 한 편엔 던전 진입 대기 중인 헌터들로 인산인해였다.

물의 던전은 광안리 사냥터 안에 존재했는데, 인기가 많아서인지 진입을 기다리는 헌터 외에도 취소되는 게 생길까 대기하는 인원이 더러 있었다.

거기다 사냥터가 해수욕장에 형성되어 다른 사냥터보다 비교적 부지가 좁았는데, 그 때문에 다른 던전에 들어가려는 헌터들까지 뒤섞여 제법 많은 군집이 형성됐다.

그리고 그 많은 인파 사이, 한상우가 검은 재킷을 입은 채 서 있었다.

‘던전 입찰에 성공한 게 신기할 지경이군.’

부산으로 출발하면서 한상우는 물의 던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전에 검색을 하기도 했거니와 던전 입찰에 성공해서 몸만 가면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한상우는 어젯밤 바로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온 뒤, 별생각 없이 숙소에서 자고 날이 밝자마자 물의 던전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있을 줄은 몰랐다.

물의 던전이 요즘 인터넷에서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인기가 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취소 표를 어떻게 입찰받았는지도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한상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아이템을 착용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 옷 어때? 정령이랑 깔맞춤 했는데 잘 어울리려나?”

“예쁜데? 근데 그거 방어력 있는 거야?”

“이거 아이템 아니고 그냥 옷이야. 던전 안에서 갈아입을 데가 없어서 미리 입었는데 던전 돌면서 입긴 무리려나.”

두 여인이 옷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걱정스럽다는 투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하하, 걱정하지 마. 정령들이 크게 위험하진 않으니까.”

“맞아. 정령들은 오빠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는 즐기기만 하면 돼.”

“우와, 진짜요? 고마워요, 오빠!”

“완전 멋있어요!”

파티원인 것처럼 보이는 사내들이 으스대며 호응했다.

‘…적응 안 되네.’

해변의 분위기는 휴양지처럼 화기애애했지만 한상우로선 낯설 따름이었다.

이때까지 자신이 겪어온 던전 주변의 분위기는 언제나 칙칙하고, 긴장감으로 꽉 찼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관광지라 그런지 몰라도 던전 진입을 대기하는 헌터들도 활기찬 분위기에 선남선녀가 많았다.

다른 무리를 둘러봐도 사정은 비슷했다.

“물의 정령, 의외로 세다던데 괜찮겠지?”

“하하, 걱정 마. 여기 계신 A급 헌터님께서 지켜줄 테니까.”

파티 대부분은 남녀로 이루어져 있었고, 인원 역시 최소 6명 이상이었다.

물의 던전의 등급이 C급이다 보니 레벨이 낮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짠 듯했다.

그중엔 고등급 헌터를 용병으로 둔 사람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파티원인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고용한 듯했다.

물의 던전이 절경인 데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특수성으로 인기가 많다 보니 던전이 레벨업을 위한 곳보다 관광 코스처럼 변한 것이다.

수많은 파티 대기 인원 중 혼자인 사람은 한상우뿐이었다.

‘앞으로 10분 남았나? 이렇게 번잡할 줄 알았으면 딱 맞춰서 올 걸 그랬어.’

시간을 아끼기 위해 평소처럼 미리 와서 대기했는데 이 정도 수준인 줄 알았으면 좀 더 늦게 오는 게 나을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앞선 파티가 빠르게 레이드를 끝낸 덕분에, 몬스터의 재생성이 끝나면 시간에 맞춰서 바로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랄까.

한상우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묵묵히 하이어를 플레이했다.

이렇게 멍하니 시간을 죽이느니 일일 퀘스트라도 하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한상우는 조용히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줄을 서고 있던 한상우 다음 타임 파티의 대화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 배고파. 빨리 레이드하고 밥 먹고 싶은데.”

“나도 그래. 우리가 이번에 들어가는 거면 좋을 텐데 아쉽네. 그런데 앞 타임 사람, 혹시 혼자 온 건가? 곧 진입 시간인데 파티원이 안 보이네.”

“에이, 설마. 물의 던전에 혼자 들어갈 리가 있겠어.”

“혼자인 것 같은데? 혹시 혼자 오셨으면 타임 바꿔주실 수 있는지 한 번 물어보자.”

귓가에 들려오는 남녀의 대화에 한상우는 고개를 들어 뒤쪽에 모여 있는 무리를 쳐다봤다.

남자 넷, 여자 넷.

대화 내용만 들으면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것 같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한상우와의 거리는 2m도 채 안 되는데 목소리는 마치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으니까.

과연, 대화가 끝나자마자 무리 중 갑옷을 입은 남자와 상의를 탈의하고 수영복 차림인 남자가 한상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실례지만 혹시 혼자 오셨나요?”

“아뇨, 파티가 있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사실 혼자서 진입할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어떤 걸 요구할지 뻔히 보였기에 한상우는 적당히 둘러댔다.

물론, 그런다고 두 남자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저희가 다음 타임 파티인데, 사람이 많아서 혹시 레이드 시간을 바꿔줄 수 있으실까 해서요.”

“그건 힘들 것 같네요. 저도 일정이 있고, 진입 시간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럼 파티를 같이 맺고 들어가는 건 어떠세요? 분배는 조금 더 쳐 드리고, 저희가 확실히 서포팅하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일행이 있어서요.”

애초에 그렇게 해줘야 할 이유가 없었고, 경험치건 아이템이건 나누는 순간 손해가 발생한다.

같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말하면서도 무리라는 걸 아는 걸까.

갑옷을 입은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하며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일행 중 상의를 탈의한 근육질의 남자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며 공격적인 말투로 들이댔다.

“아, 좀 바꿔주지. 그 뭐 어려운 일이라고.”

“헉! 형, 왜 그러세요.”

“…….”

한상우에게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기세가 위협적이었고, 논리도 없었으며 말리는 사람 역시 시늉만 할 뿐이었다.

대충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이대로 물러났다간 체면이 서지 않으니 그런 듯했다.

문제는 조금씩 선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상의 탈의를 한 헌터가 주머니에서 웬 돈다발을 꺼내며 말했다.

“돈 한 오백이면 돼요? 이거 주면 바꿔줄래요?”

“거절합니다.”

한상우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길게 말해도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었기도 하거니와.

“12시 레이드 신청하신 헌터님, 앞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던전 보초가 게이트 정리를 마쳐 입장할 차례가 됐기 때문이다.

한상우는 가운데에 있는 물의 던전으로 걸어가며 저 멀리 보이는 화장실을 바라봤다.

그리고.

[캐릭터 소환 : 다크어둠]

남자 화장실 안쪽에서 다크어둠을 소환한 다음,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도록 지시했다.

저벅- 저벅-

광안리 해변 산책로를 따라 복면을 쓴 암살자가 걸어 나왔다.

“점심 뭐 먹을까?”

“저 앞에 맛집 있다던데 한 번 가볼래?”

터번 같은 두건과 마스크, 그리고 암살복을 입어 시선이 집중될 법도 하건만 다크어둠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크어둠은 기본적으로 기척을 지우고 인식 방해 기술을 사용하기에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인파 중 몇몇 헌터들은 다크어둠의 등장을 눈치채고 시선을 줬으나 다크어둠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소환한 주인의 앞으로 다가갈 뿐이었다.

“가자.”

“예, 마스터.”

한상우는 다크어둠과 함께 보초한테 이동한 다음, 자신의 헌터증과 전에 발급받은 특급 헌터증을 제시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힝, 그냥 갔네.”

“아깝다. 충분히 같이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다음 타임 파티의 여인들은 볼을 부풀리며 아쉬움을 토로했고.

“하, 저 새끼….”

상의를 탈의한 헌터, 윤형민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의도한 대로 되지 않은 것도 화가 났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상대방의 태도였다.

A급 헌터에 사나운 외모를 가진 윤형민은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나 위협을 통해 얻어냈다.

대부분의 상황은 원하는 대로 흘러갔고, 안 될 때는 돈 좀 쥐어 주면 그만이었다.

윤형민은 그렇게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주변에서 우러러보는 시선을 느꼈고, 그것을 즐겼다.

그런데 방금 상대는 어땠는가?

자신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시하듯 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가오 하나만으로 살아오던 윤형민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자신을 추하고 한심하게 여기는 듯한 주변의 시선은 굴욕적이었다.

“싸가지 좀 봐라. 둘이 들어가서 뭐 할 거 있다고.”

“야 형민아, 신경 쓰지 마.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해.”

파티원 중 남자들이 위로하듯 말을 건넸지만 윤형민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건 그에게 있어 설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의 승부였다.

윤형민은 친구들의 말을 무시하고는 던전 보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저씨, 방금 들어간 헌터 등급이 어떻게 되죠?”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법이 그래서요.”

헌터도 개인 정보 보호법의 적용을 받기에 다른 사람에게 신상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윤형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아까 한상우에게 건네려고 했던 오백만 원을 테이블에 올렸다.

“그래요? 제가 귀찮은 부탁을 했네요. 고생하실 텐데 이걸로 커피라도 한잔 드세요. 뭐,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윤형민은 그렇게 말하며 동시에 살기를 풍겼다. 몬스터를 수없이 죽이고 저랭크 헌터들을 공격하면서 몸에 냄새처럼 스며든 살기는 일반인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으, 으흠! 요즘 B급 헌터가 많이 보이네요. 던전 등급이 C급이라 그런가….”

던전 보초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한상우의 등급을 에둘러 얘기했다.

돈이라는 당근과 위협이라는 채찍.

윤형민은 대다수의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활용했고, 상대는 지금의 던전 보초처럼 굴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위협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돈을 줬으니 정당하다는 나름대로의 계산도 있었다.

‘B급이라…. B급이 나를 씹고 갔다 이거지.’

윤형민은 보초의 말을 듣고, 더욱 분개해 한상우가 들어간 포탈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건방진 새끼. 이따 던전 밖에서 보자. 제대로 손을 봐줄 테니.”

하지만, 보초가 말해주지 않아 윤형민은 속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한상우가 특급 헌터증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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