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46화 (46/169)

제46화

5장 보너스 타임(4)

[C급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여 던전을 클리어하세요.]

‘여기가 그 유명한 물의 던전인가.’

허공에 보이는 메시지.

나는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풍경을 확인했다.

그러나.

밖에서 많은 사람이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는 다르게 경치가 썩 좋진 않았다.

배경 자체는 숲속이라, 동굴형인 보통 던전과는 다르게 탁 트인 맛이 있었지만 먹구름 낀 하늘과 어두침침한 수풀, 악취가 나는 구정물 웅덩이 등.

헌터들이 예찬하고 SNS에 줄기차게 올라왔던 사진과 동영상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물의 던전은 클리어를 하면 풍경이 바뀌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잡몹과 보스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고 나면 이곳은 SNS에 올라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숲으로 변한다고 한다.

만약 포탈에 진입하기 전, 검색으로 던전의 특징과 공략법을 미리 파악해두지 않았다면 나도 실망했을 것이다.

지금, 주변을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다크어둠처럼.

“어두침침하고 썩은 기운이 진동하고 있습니다. 바로 정리할까요, 마스터?”

“할 수 있겠어?”

“이 정도는 껌입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쾌속 이동을 사용합니다.]

다크어둠은 팔짱을 낀 채 내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답하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갸아아아악!!”

[캐릭터 : 다크어둠이 오염된 물의 정령(C)을 처치했습니다.]

[…….]

[캐릭터 : 다크어둠이 오염된 물의 정령(C)을 처치했습니다.]

나무 뒤와 물웅덩이 아래 등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던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처치했다.

역시 만렙 암살자라고 해야 할까.

어젯밤, 미리 확인했던 물의 던전 공략집에 따르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입구 첫 번째 부분이 제일 공략하기 까다로운 곳이라고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정표도 나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으로 보스 몬스터가 있는 방향을 찾아내야 하는데, 곳곳에서 물의 정령들이 보이지 않게 숨어 보스 수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정령들의 함정은 던전 재생성마다 랜덤한 장소에 생성될 뿐만 아니라, 탐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스 수색을 교란하면서 자잘하고 귀찮은 공격들을 시도하기에 물의 던전 공략에서 우선시되는 건 신중함이다.

하지만 다크어둠은 그 함정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간파하고 있었다.

신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함정이 반응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쌍단검을 휘두르며 함정을 순식간에 전부 해체했다.

숙련된 암살자이기에, 본능적으로 함정의 위치들을 파악한 것이다.

눈 깜짝할 새에 함정을 해체한 다크어둠은 이제 본격적으로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캐릭터 : 다크어둠이 오염된 물의 정령(C)을 처치했습니다.]

[…….]

[캐릭터 : 다크어둠이 오염된 물의 정령(C)을 처치했습니다.]

한 번 시야에서 사라질 때마다 정령의 비명과 함께 세 개가 넘는 처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압도적이라고 해도 부족할 사냥 속도.

확실히 딜러 포지션이라 그런지 탱커인 땡길거야보다 사냥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렇게 다크어둠의 활약을 지켜보자니.

‘이 경험치를 나 혼자 먹기엔 너무 아까운데?’

문득 제장이를 소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냥 속도를 따지자면 땡길거야를 소환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마나 소모량이 너무 커서 포션을 계속 마셔야 하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C급 던전이라 다크어둠 혼자 사냥하는 데 큰 무리가 없으니 제장이를 소환해 성장을 도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대장장이와 암살자 간의 상성을 확인할 필요도 있기도 하고 말이다.

결론을 내린 나는 곧바로 [캐릭터 소환]을 사용했다.

“나와라, 제장아.”

[캐릭터 : 제장이를 소환합니다.]

“안녕하세요, 군주님! 잘 지내셨나요!”

칙칙한 숲속으로 꼬마 대장장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뒤로.

[두 캐릭터를 동시에 소환했습니다.]

[캐릭터 간의 상성에 따라 동시 소환 효과가 발생합니다.]

[암살자 – 대장장이]

[동시 소환 효과 : 상생]

[상생 : 암살자와 대장장이는 장비를 매개로 상생하는 관계입니다. 동시 소환으로 암살자가 착용한 장비의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대장장이의 모든 스탯이 5% 상승합니다.]

다크어둠과 제장이의 동시 소환 효과가 시야에 떠올랐다.

‘상생? 의외네. 상극이 뜰 줄 알았더니.’

동시 소환 효과를 보며 나는 턱을 매만졌다.

사실 제장이를 소환하기 전, 나름 암살자와 대장장이의 관계를 생각해봤을 때는 상극이 나올 줄 알았다.

보통 대장장이들은 자신이 만든 무기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니 불법을 일삼는 암살자를 업신여기거나 배척할 거라는 추측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제장이와 다크어둠의 동시 소환 효과는 상생이었고, 관계 역시 좋은 편이었다.

동시 소환 효과를 관찰하는 사이, 주변 정리를 마치고 온 다크어둠이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제장이를 반겼다.

“오, 꼬마 대장장이로군. 그간 잘 지냈나?”

“엇! 안녕하세요, 암살자님! 오랜만에 뵙네요!”

“그렇네. 안식처 밖이라 그런지 더욱 반가워.”

“헤헷, 여기서 암살자님을 뵈니 저도 기쁘네요. 저희 대장간에서 쌍단검을 손본 지 좀 된 것 같은데, 사용하시는 데 불편한 건 없으신가요?”

“최고의 대장간에서 손봤는데 불편한 게 있을 리가. 잠깐 여기서 기다리겠나? 그때 수리비도 제대로 못 냈던 것 같은데 경험치 선물이라도 줘야겠어.”

“앗, 아니에요. 저도 같이 싸울 수 있어요!”

“아냐, 전엔 내가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에 갚아야지. 금방 다녀오도록 하마.”

다크어둠은 짧은 대화 뒤로 다시 검은 연기를 흩날리며 사라지더니 물의 정령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제장이에게 말했다.

“저 녀석, 너랑은 잘 지내는구나. 땡길거야와는 서로 잡아먹을 듯하더니.”

“헤헷, 어쩔 수 없죠. 수호 기사님은 제국법을 지키는 분이고, 암살자님은 제국법을 무시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분이니까요.”

“음, 너는 어떻니? 네가 만든 칼이 무고한 이를 해하는 데 쓰일 수도 있는데.”

다소 난처한 질문일 수 있지만 둘의 관계가 상생인 이유를 알고 싶었기에 나는 제장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말을 하면서도 어렵거나 곤란한 내용이라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제장이는 빠르게 막힘없이 얘기했다.

“대장장이는 그저 만들 뿐이다. 제 스승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에요. 제가 만든 칼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는 뜻이죠.”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반란이 일어났다고 가정하죠. 검으로 폭군을 살려 수많은 백성이 죽는다면, 비록 그 검은 폭군을 살리는 데 사용됐지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셈이 돼요. 반대로 검으로 폭군을 죽여 수많은 백성의 삶이 나아진다면 비록 그 검은 폭군을 죽이는 데 사용됐지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죠.”

“현명한 답이구나.”

“헤헷, 아니에요. 스승님께서 알려주신 걸 군주님께 그대로 말씀드릴 뿐인걸요.”

난해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곧바로 이해했다.

검의 사용에 따른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니 구태여 걱정과 편견에 휩싸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추상적인 개념과 무한한 가능성 뒤에 숨어 가치 판단을 호도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제장이는 인간적으로도 다크어둠을 지지하는 듯했다.

“그리고 저는 암살자님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표면적으로는 법을 무시해서 지탄받지만, 그래도 검을 휘두를 땐 양심과 신의를 잊지 않는 분이거든요. 다른 암살자들처럼 마냥 돈만 좇지도 않으시고요.”

확실히 다크어둠은 지금도 열심히 혼자 사냥 중이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오염된 물의 정령(C)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오염된 물의 정령 기사(C)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오염된 물의 정령 궁수(C)를 처치했습니다.]

딱히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건만 제장이에게 진 신세를 갚겠다며 혼자서 물의 던전의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땡길거야 앞에서 보여줬던, 일일이 득실을 따지던 행동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원래 그런 성격인가 했는데, 그때는 상성이 안 좋은 땡길거야와 함께 있었기에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 확실히 그런 것 같네.”

나는 제장이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렇게 제장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띠링-!

[암살자의 히든 연계 퀘스트 발생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암살자 연계 퀘스트 발생 조건]

[몬스터 100마리 암살(100/100)]

[조건을 달성하여 암살자 연계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암살자 연계 퀘스트]

[다크어둠의 그림자 밟기(0/1)]

갑자기 알림음과 함께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히든 연계 퀘스트? 제장이를 소환했을 때 했던 거랑 비슷한 건가.’

처음 보는 형태의 퀘스트였지만 나는 재빠르게 사태를 분석했다.

아무래도 앞서 소환했던 두 캐릭터와 비슷하게 암살자도 연계 퀘스트가 존재하는 것 같았는데, 그 생성 조건이 몬스터 100마리를 처치하는 것이었던 듯했다.

마침 다크어둠이 물의 정령들을 쓸어버려서 그 조건을 완수했고 말이다.

‘다크어둠의 그림자를 밟으라고?’

다만 연계 퀘스트의 내용이 너무 단순했는데 그렇다고 안 할 이유는 없었다.

곧바로 다크어둠에게 전언을 보냈다.

‘다크어둠, 잠깐 이쪽으로 와볼래?’

-예, 마스터.

슈확-!

처음 사라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크어둠이 시커먼 연기를 흩날리며 나타났고.

나는 코앞에 깔린 다크어둠의 그림자를 밟았다.

그 순간.

[다크어둠의 그림자 밟기(1/1)]

[캐릭터 : 다크어둠의 기억 일부가 재현됩니다.]

히든 연계 퀘스트가 갱신되더니.

촤아아아악-!

다크어둠의 어두운 그림자가 솟구쳐 내 전신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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