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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49화 (49/169)

제49화

5장 보너스 타임(7)

“후우, 망할 개자식. 더럽게 안 나오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사냥터.

A급 헌터, 윤형민은 모래사장 위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깨물며 물의 던전 포탈을 주시했다.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던, 건방진 B급 헌터가 던전에 들어간 지도 세 시간이 지났다.

일반적인 파티의 경우, 슬슬 레이드를 끝낼 시간이건만 녀석은 아직 밖으로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자식, 일부러 늦게 나오는 거 아냐?”

포탈을 주시하던 윤형민은 분통을 터트리며 그렇게 추측했다.

물론, 합리적인 추론은 아니었다. 뒤쪽에 있던 동료들도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였다.

“에이, 두 명이었으니까 당연히 오래 걸리지. 등급도 B급이고.”

“맞아, 그리고 레이드 시간 규정은 네 시간이니까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한 시간이나 남았어. 만약 늦으면 보상금을 받으니까 나쁠 것도 없고.”

B급 헌터에게 불평을 쏟아내 프레임을 씌우려 했으나 동료들이 호응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윤형민은 멈추지 않았다.

“쳇, 이래서 허접들은 안 돼. 보통 세 시간이면 떡을 치고, 뒷사람 생각해서 한 시간 만에 나오는 파티도 있는데 이게 뭐야? 나오기만 해봐라. 제대로 손 봐주겠어.”

어떻게든 B급 헌터를 나쁜 인간으로 몰아붙이며 보복을 다짐했다.

그러자 그 모습에.

“어휴, 형민 오빠는 다 좋은데 저 다혈질이 문제야.”

“얘, 조용히 말해. 오빠 듣겠다. 그래도 A급이라 같이 레이드하면 편하잖아.”

같은 여성 파티원들이 수군거렸다. 나름대로 안 들리게끔 속삭이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다 들렸다.

윤형민은 그 얘기를 듣고도 대꾸하거나 반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한상우에 대한 분노가 더 두껍게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딱히 참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슈화아아악-!

한소리 하려던 찰나, 포탈에서 빛이 발하며 B급 헌터가 밖으로 나온 탓에 말하지 못한 것뿐.

“저 개자식…!”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윤형민은 B급 헌터, 한상우를 보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반면.

짝짝짝-!

“오, 제법 실력이 있나 본데? 둘이니까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최소 30분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다른 파티원들은 박수를 쳤다.

B급이지만 인원이 두 명밖에 되지 않아 주어진 레이드 시간을 꽉 채우거나 클리어를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균 시간 내에 끝낸 탓이었다.

그래서일까.

“야, 따라와. 저놈 조지러 가자.”

“아, 형님. 좀….”

윤형민이 파티원들에게 함께 린치를 가할 것을 제안했지만 다른 파티원들은 난색을 표했다.

“형님, 오늘은 모처럼 다 같이 놀러 왔는데 봐주는 셈 치는 것도….”

“야.”

“네?”

“닥치고 따라오라면 따라와. 뒤지기 싫으면.”

“…….”

순간, 일행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굵고 낮게 깔린 윤형민의 목소리에서, 평소와는 다른 기색을 뚜렷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를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다른 새끼들은 잠자코 보기나 해. 너, 따라와.”

윤형민은 갑옷을 입은 헌터를 가리켰다. 지금은 그의 말을 따르는 게 상책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갑옷 헌터는 조용히 그를 따랐다.

윤형민은 주변을 쓱 돌아본 후, 몸을 홱 돌려 게이트를 나오는 두 명의 B급 헌터, 한상우와 다크어둠을 향해 걸어갔다.

비록 자신을 따라오는 건 갑옷 헌터밖에 없었지만, 솔직히 B급 헌터 정도라면 자기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히 B급 주제에 나대? 본때를 보여주지, 큭큭!’

윤형민은 물의 던전으로 가는 척하다가 마주 오는 헌터 중 한상우와 의도적으로 어깨를 부딪쳤다.

고의로 시비를 걸기, 소위 어깨빵이라 불리는 행위를 한 것이다.

술집에서도 마찰이 있을 때면 으레 해왔던 일이기에 상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어쭈, 쳤냐? 이게 아까부터 날 호구로 보고….”

윤형민은 언제나처럼 자신이 먼저 부딪히고 상대방이 잘못한 것으로 몰아가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갑옷 헌터도 뒤에서 한몫 거들었다.

“뭘 꼬나 봐, 새끼야!”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

“저, 저기 봐! 시비 붙었나 봐!”

“헐, 헌터끼리 싸우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 경찰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주변에 있던 일반인들도 낌새를 눈치채고 하나둘씩 모여 들였다.

해수욕장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반면.

“…….”

시비 걸린 B급 헌터, 한상우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코앞까지 다가온 윤형민을 노려보다가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도망치시겠다? 마음대로는 안 되지.’

한상우는 그냥 무시하고 떠나가려 했지만 윤형민은 틈을 주지 않았다.

수많은 길거리 싸움을 통해 깨달은 게 있었다.

도발이 먹히지 않는다면?

먹힐 때까지 시비를 걸면 된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씹냐? 이게 어디서 건방지게…!”

윤형민은 다시 한상우의 앞을 가로막은 뒤,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내리칠 듯 위협했다.

그러자 마침내 B급 헌터가 도발에 넘어왔다.

다만 그 대상이 한상우가 아니라 옆에 있던 다크어둠이었다.

“죽일까요, 마스터?”

“뭐…?”

“풉! 무슨 영화 찍냐?”

다크어둠이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을 내뱉었지만 윤형민과 갑옷 헌터는 코웃음을 쳤다.

다크어둠의 음성이 섬뜩하긴 했으나 말투가 꼭 인터넷이나 영화에서만 나올 것처럼 유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상우는 더 가관이었다.

“적당히 손 봐줘.”

귀찮다는 뉘앙스로 툭 명령을 내리더니 자신을 지나쳐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들이 장난치나….”

B급 주제에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어쭙잖은 고수 흉내나 내다니.

진짜 고수가 뭔지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윤형민은 한상우의 뒷머리를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파바박-!

‘엥…?’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한상우의 머리채를 잡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시야가 거꾸로 돌며 몸이 위로 붕 뜬 것이다.

그리고 한상우의 뒷모습 앞으로 복면을 쓴 얼굴이 나타났다.

자신이 손을 뻗은 순간, 복면 헌터가 발을 걸어 공중에서 몸이 반 바퀴 돌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틈에…!’

윤형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은 A급 헌터, 그것도 주먹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근접 격투 타입의 헌터인데 복면을 쓴 헌터의 움직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제길, 방심해서 그런 걸 거야!’

A급인 자신이 B급의 움직임을 놓칠 리가 없다.

윤형민은 그렇게 결론을 내린 후, 가까워지는 땅을 한 손으로 밀어내 뒤로 물러나며 착지했다.

복면을 쓴 헌터가 후속타를 날릴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거리를 벌린 것인데 다크어둠은 윤형민을 추격해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뚜둑- 뚜둑-

“감히 마스터를 공격하려 하다니.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주지.”

손을 풀며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기습 한 번 성공했다고 기고만장하긴…! 네놈은 반병신으로 만들어 주마!!”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한 녀석이 으스대는 꼴을 보자 절로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와, 방금 봤어?”

“아니, 아무것도 안 보였어. 저렇게 빠를 수가 있나?”

“저 수영복 입은 헌터도 A급이라던데?”

“나는 복면 쓴 쪽이 이긴다에 건다.”

“나도.”

딱 한 번 반응이 느렸을 뿐인데, 주변에선 그것만으로 윤형민을 상대보다 아래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은 복면 헌터의 승리를 점치며 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제 적당히 해서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윤형민은 주머니에서 너클을 꺼내 착용하며 말했다.

“너,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윤형민의 주특기는 격투였고, 그에 맞는 무기는 너클이었다. 방금은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을 당한 것이고,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생각한 윤형민은 땅을 박차 다크어둠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 모습에.

“헉! 진짜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저거 정통으로 맞으면 죽을 수도 있어!”

윤형민의 파티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성격이 더러워서 그렇지 윤형민은 A급이라는 등급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B급 헌터라도 너클에 직격으로 맞는다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과연, 윤형민이 내지른 주먹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퍽-! 콰아아아앙-!!

다크어둠과 윤형민이 한 차례 충돌했을 뿐인데 해수욕장의 모래들이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굉음과 함께 위로 솟구친 것이다.

“오오오오…!”

“……!!”

구경꾼들이 움찔하며 물러나고, 헌터들이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강력한 충돌이었다.

“아까 경찰 불렀다고 하지 않았어? 경찰 언제 온대?”

“진짜 누가 좀 말려봐! 경찰 오기도 전에 죽겠다!”

모래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윤형민의 파티원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들도 말리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윤형민의 힘을 믿고 온 만큼 지금 윤형민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파티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물의 던전 레이드는 고사하고 살인 사건에 휘말릴 듯했다.

“모래가 걷히면 형님 데리고 바로 들어가자.”

“네, 그러죠.”

그런데.

후두두둑-!

위로 솟구쳤던 모래가 바닥으로 떨어져 시야가 확보된 순간, 윤형민의 파티원들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

광활한 모래사장 위, 윤형민이 대자로 뻗어 있던 것이다.

“뭐야, 한 방에 뻗은 거야?”

“에이, 시시해.”

구경꾼들은 복면 헌터의 승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윤형민의 파티원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는데 이건 갑옷 헌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혀, 형님…!”

윤형민의 패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으니.

“자, 잠깐. 아까 그 복면 쓴 헌터가 어디 갔지?”

“어라? 같이 있던 B급 헌터도 없어졌어!”

윤형민과 싸웠던 복면 헌터와 B급 헌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모래사장 위에 있었는데, 솟구쳤던 모래가 낙하하고 나자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뭐, 뭐야! 귀신이었나?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폭발에 산산조각이 난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주먹 한 방에 그럴 리가….”

“그리고 쓰러진 건 저쪽이잖아.”

주변에 수십 명의 구경꾼이 있었지만 아무도 두 사람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윤형민과 다크어둠이 격돌해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던 그 순간.

[캐릭터 : 다크어둠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은신]

한상우는 다크어둠의 소환을 해제하고 은신을 사용했으니까.

이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미 싸움이 끝난 상황이라 다크어둠의 소환을 유지할 필요도 없거니와 마침 은신도 획득했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인파가 몰려든 상황.

시비를 거는 헌터를 때려 눕혔으니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할 텐데, 사실 그것만큼 귀찮은 게 없었다.

그래서 한상우는 새로 얻은 보상의 성능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다크어둠과 윤형민이 격돌해 모래가 솟구친 사이, [은신]을 사용했는데 수십 명이 넘는 인원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몇몇은 옆을 지나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성능 한번 확실하네.’

한상우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린 뒤, 기절한 윤형민과 넋이 나간 사람들을 뒤로한 채 유유히 해수욕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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