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52화 (52/169)

제52화

6장 한계 돌파(2)

[군주의 시험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군주의 성을 클리어하세요.]

[난이도 : 측정 불가]

포탈에 진입하자 처음 보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형성된 던전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 마냥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라던 기존의 던전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확실히 새롭다.

난이도가 측정 불가인 것도 그렇지만, 배경 역시 일반적인 던전과 달랐다.

돌로 된 바닥 위로, 사방을 막은 벽이 어두컴컴한 천장까지 올라가 있었다.

공간이 넓긴 하나 도망칠 곳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새로운 퀘스트와 조건도 나타났다.

[군주의 성(0/4)]

[층마다 부여되는 도전 과제를 클리어해 군주의 자격을 증명하세요.]

[군주의 성에서 캐릭터는 한 층당 한 명씩만 소환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성에서 한 번 소환한 캐릭터는 다시 소환할 수 없습니다.]

‘한 층당 캐릭터를 하나만 소환할 수 있다고? 이건 예상 못 했던 페널티인데.’

군주의 자격을 시험하는 던전이라 그런지 [캐릭터 소환]에 제한이 걸려 있었다.

한 층당 한 명씩에 재소환이 불가능하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군주의 특성, [평정]이 마음이 동요하는 걸 막아주기도 했거니와.

[1층 –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세요(0/300)]

쿵-! 쿵-! 쿠구구구궁-!!

메시지와 함께 천장에서 떨어지는 몬스터를 대비하기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노한 스켈레톤(D)]

[분노한 스켈레톤(D)]

딱딱-! 딱딱딱-!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천장에서 스켈레톤들이 비처럼 낙하하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다만 D급에 내구력도 낮은 몬스터라 그런지 조금 웃긴 상황도 발생했다.

[1층 –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세요(3/300)]

[1층 –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세요(0/300)]

낙하하면서 몸이 박살난 스켈레톤들이 킬카운트에 포함됐다가, 뼈가 달라붙어 부활하면서 다시 복구된 것이다.

‘뭐지 이게…?’

측정 불가라는 난이도에 [캐릭터 소환]까지 제약이 생겨 잔뜩 긴장했던 것치고, 적들은 약간 맥이 빠지는 상대였다.

설마 측정 불가라는 게 진짜 그냥 말 그대로 난이도가 측정이 안 되었던 것일까.

‘아니지, 아니야.’

난 고개를 휘휘 젓고 침착하게 생각을 이어갔다. 쉽게 느껴진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애초에 이건 4층 중 1층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는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단단히 쥐고, 주변을 에워싼 해골 병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포위됐을 때 대치해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지금까지 겪은 숱한 전투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작해볼까.”

딱딱-! 딱딱딱딱-!!

내 갑작스러운 돌진에 전방의 스켈레톤들이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하아아아앗!!”

퍼걱-! 콰과과과과과광-!!

[반월 베기]

[1층 –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세요(6/300)]

오러로 사거리를 늘린 화산검을 휘두르자 한 번에 여섯 마리의 스켈레톤이 명을 달리했다.

[1층 –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세요(0/300)]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낙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스켈레톤들은 다시 몸을 복구했다.

‘예상했던 대로다.’

나는 스켈레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화산검과 화산방배로 견제를 이어나갔다.

스켈레톤의 전투력은 하찮기 그지없지만, 귀찮은 건 저 부활 효과다.

일반적으로 언데드의 부활을 막기 위해선 몇 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성(聖) 속성의 공격을 하는 것.

마침 땡길거야의 [신성 폭발]은 성 속성의 광역 공격이다.

[캐릭터 소환 : 제장이]

하지만 나는 대신 곧장 제장이를 소환했다.

“안녕하세요, 군주님! 노는 시간인가요!”

작은 망치를 든 꼬마 대장장이가 내 앞에서 폴짝 뛰며 반갑다는 듯이 웃었다.

이번 퀘스트는 각 캐릭터를 한 번씩만 소환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위층이 남은 상태에서,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땡길거야나 다크어둠을 꺼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스켈레톤의 부활을 저지하는 방법은, 성 속성 공격만이 아니다.

“잠깐, 조심해.”

그 순간, 해골 병사 서너 마리가 무방비한 제장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

하지만 제장이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들고 있는 작은 망치를 휘둘러 스켈레톤들을 산산조각 냈다.

저번 루미나스 사건에 이어, 하이어에서 얻은 경험치 덕분에 제장이의 레벨도 어느덧 120을 돌파해 D급 몬스터 정도는 가볍게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고, 피식 웃은 뒤 대답했다.

“그래, 신나게 놀아라.”

“와! 감사합니다, 군주님! 마침 저번에 새로 사주신 망치도 있으니까 잔뜩 놀게요!”

얼마 전, 하이어에서 제장이의 레벨업에 맞춰 장착해 준 무기가 마음에 든 것일까.

“그리고 ‘강철 전격’.”

“네! 강철 전격!”

[캐릭터 : 제장이가 강철 전격을 사용합니다.]

[스킬 : Lv 1. 강철 전격 – 망치에서 방출된 여러 다발의 번개가 적을 타격한 뒤 지면에 남아 지속적인 피해를 줍니다. 1회 사용 시, 마나 20 소모.]

내 명령을 복명복창한 제장이는 들고 있던 망치로 바닥을 세게 내려쳤다.

순간, 망치를 중심으로 방출된 여러 다발의 번개가 바닥에서 파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금 파괴된 스켈레톤들이 다시 붙으려다 떨어지고, 붙으려다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다 결국 완전히 멈췄다.

‘역시 생각대로였어.’

언데드의 부활을 저지하는 두 번째 방법은, 부활하지 못할 때까지 파괴하는 것이다.

이건 통할 때도 있고 안 통할 때도 있지만, 다행히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제장이의 스킬 [강철 전격]은 타격 후 바닥에 남아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는 통칭 ‘장판’ 스킬이었다.

한 번 죽은 스켈레톤은 몸이 붙기 전까지 이동할 수 없기에, 장판의 데미지를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부활의 개념도 천천히 체력이 회복되는 종류인지 부활을 시도했다가 장판 때문에 다시 체력이 0이 돼 죽는 게 반복되고 있었다.

나 혼자서 패고 또 패서 완전히 박살 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300마리의 스켈레톤을 잡으려면 하루를 꼬박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제장아. 말 안 해도 알지?”

“네! 군주님이 파괴하면, 제가 지지겠습니다!”

충성도가 높은 덕분인지, 제장이는 말 그대로 척하면 척이었다.

“가자!”

“넵!”

제장이와 나는 스켈레톤 무리를 뚫고 나가며 검과 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에잇, 에잇! 나! 도! 강해! 졌다고!! 나는! 레벨업을! 했다!”

앞에는 내가 부수면 전격을 날리겠다고 했지만, 제장이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앞장서 기합을 내지르며 전장을 휘저었고 해골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우수수 부서졌다.

[분노한 스켈레톤(D)을 처치했습니다.]

시야에 떠오르는 메시지.

전쟁의 서막이었다.

나는 제장이의 반대편으로 땅을 박차 [급소 찌르기]와 [반월 베기], [침투] 등을 사용하며 전장을 종횡무진했다.

퍼걱-! 파아아아악-!!

화산검을 휘두를 때마다 무수한 뼈다귀들이 솟구쳤다.

[강철 전격]

이어서 지축을 울리는 전격이 스켈레톤을 덮쳤고.

[1층 –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세요(57/300)

[1층 –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세요(68/300)]

장판이 여러 개 깔리면서 스켈레톤들의 수가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얘들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전투를 지속하며 해골 병사들을 바라보니 묘하게 익숙했다.

마치 어디선가 이들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좀 더 곰곰이 생각하면 떠오를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이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도 전에 사냥이 끝나버렸다.

[캐릭터 : 제장이가 분노한 해골 병사(D)를 처치했습니다.]

[1층 – 몰려드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세요(300/300)]

“군주님, 군주님!”

“아, 어. 왜 그래?”

“끝났습니다! 명령하신 대로 다 잡았어요! 헤헤!”

해골 병사를 베어 넘기는데 그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내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1층 클리어 완료]

[캐릭터 : 제장이의 소환이 해제됩니다.]

[2층으로 이동합니다.]

화아아악-!!

제장이의 소환이 자동으로 해제되더니 몸이 붕 뜨면서 배경이 바뀌었다.

[2층 – 깃발이 꽂힌 출구를 찾아 15분 안에 미로를 탈출하세요(0/1)]

[남은 시간 – 14분 59초]

순식간에 올라온 2층.

숨을 고르기도 전에 주변 풍경이 급변하면서 두 번째 퀘스트가 시작됐다.

빌딩이 연상될 정도로 높은 벽이 눈앞으로 쭉 이어져 있는 가운데, 제한 시간이 부여됐다.

“너무 촉박한 거 같은데.”

얼마나 길고 복잡한지도 알지 못하는 미로를 15분 안에 통과하라니.

문득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평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곧장 미로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갈림길을 향해 달려가던 그때.

콰아아아앙-!!

별안간 바닥이 폭발하더니 거대한 꽃이 솟아 나와 아가리를 쩍 벌렸다.

동굴 속에서 번뜩이는 날카로운 이빨들.

함정이 갑작스럽게 발동했지만 나는 재빠르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한 차례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키야아아아악!!”

목을 쭉 펴서 연이어 추격해오는 꽃을 향해 화산검을 조준했다.

[분화]

콰아아아아앙-!!

화산의 기운을 머금은 폭발이 꽃을 집어삼켰고, 발광석이 박힌 동굴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어둠 바닥의 식인꽃(C)을 처치했습니다.]

쿵-!

“함정치곤 너무 단순하네.”

나는 바닥에 착지한 뒤,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숯구이가 된 거대 식인꽃을 바라봤다.

한데.

‘이것도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앞서 상대했던 해골 병사와 마찬가지로 식인꽃 역시 어디서 본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건 몬스터만이 아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갈림길과 함정의 위치 또한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

‘잠깐, 이거 혹시…?’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한 가지 가능성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추측을 검증하기 위해 곧바로 [캐릭터 소환]을 사용했다.

“나와라, 땡길거야.”

“부르셨습니까, 주군.”

사실 미로의 특성을 생각하면 다크어둠을 소환하는 게 맞았다.

다크어둠의 직업, 암살자는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을 이용하면 벽을 타고 높이 올라가 미로의 길을 한눈에 파악해서, 나에게 공략법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곳을 클리어하기에 적합한 건 다크어둠이 아니라 땡길거야였다.

‘이쯤일 텐데.’

나는 길 끝에 형성된 두 개의 갈림길로 다가갔다. 그리고 정 가운데에 있는 벽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땡길거야, 지금부터 돌진하면서 방패 치기를 사용한다.”

“예. 알겠습니다, 주군.”

“돌아볼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 지금부터 전력으로 정면을 들이받아서, 일직선으로 벽을 부수면서 나아간다.”

“예, 주군. 명을 받들겠습니다.”

언뜻 보면 괴롭히는 거 아닌가 싶은 명령이었다. 이렇게 단단한 벽에 방패를 들고 돌진하라니.

하지만 땡길거야는 언제나처럼 내 명령을 군말 없이 수행했다. 이해를 떠나, 나를 믿는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명령을 따른 것이다.

순간 앞을 가로막은 높고 두꺼운 벽을 보자 땡길거야가 큰 데미지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쾅-! 쾅-! 쿠구구구궁-! 콰앙-!!

땡길거야가 마나를 끌어올려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기 시작하자 벽이 무너지고 돌덩이들이 뒤로 날아갔다.

이윽고 드러난 벽 너머의 미로.

앞서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좌우로 쭉 뻗은 길과 벽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땡길거야는 거침없이 전진했다.

그리고.

아무리 두껍고 높은 벽이 막고 서 있어도, 멈추지 않고 벽을 부수면서 돌진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남은 시간 – 8분 13초]

제한 시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건만 원하던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예상이 맞았네.”

펄럭- 펄럭-

일직선으로 부순 벽 너머로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제단이 나타난 것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곳은 하이어에 등장했던 미로 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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