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53화 (53/169)

제53화

6장 한계 돌파(3)

방랑자의 미로.

유저 레벨 200대에 권장되는 미로 던전으로 15분 안에 탈출해야 하지만 길이 복잡하고, 곳곳에 함정과 몬스터들이 배치되어 있어 제법 시간을 잡아먹는 곳이다.

초행자는 반드시 실패하고, 다섯 번 넘게 도전해도 클리어를 장담할 수 없는 뉴비들의 통곡의 벽.

나도 처음엔 수없이 실패했지만 열 번을 넘게 시도하고 나서야 겨우 깼던 스테이지다.

그리고 이제는.

‘숨겨진 파훼법까지 알고 있지.’

길을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면 된다는 걸 알게 된 수준에 이르렀다.

세 번째 캐릭터를 키울 때였나.

밤새워 던전 보초를 서다가 미로 던전에 들어왔는데 나도 모르게 폰을 누르며 졸은 적이 있었다.

덕분에 캐릭터가 3분 가까이 앞으로 나아가며 벽을 치게 되었는데 결과는?

엔딩 지점 도착이었다.

그건 꽤 획기적인 발견이었고, 커뮤니티 사이트에 미로 공략법으로 올려 월간 인기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물론 아무 벽이나 되는 것은 아니었고, 연속해서 뚫리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짧게 한 번만 뚫리는 곳도 있었다. 나는 일부러 실패를 반복하며 여러 번 시도한 결과, 일직선으로 미로를 돌파할 수 있는 루트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을까 했지만 어차피 중저레벨 구간의 던전이고, 독식해서 이득을 챙길 만한 정보도 아니라 그냥 풀었는데 어떻게 발견했냐며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었다.

‘재밌는 추억으로 남았던 던전인데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오래된 일이기도 했고, 화면으로 보는 것과 실제 던전으로 체감하는 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 바닥의 식인꽃이라는 몬스터명과 미로 초입을 보고 깨달았다.

이곳이 하이어에 등장했던 ‘방랑자의 미로’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봤던 분노한 스켈레톤도 하이어에 나왔던 몬스터인 것 같은데?’

아까는 익숙한 느낌만 받았지만, 연결고리가 생기자 곧바로 떠올랐다.

100레벨 중반, ‘어둠의 굴’로 향하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필드 몬스터가 바로 분노한 스켈레톤이었던 것이다.

‘던전과 몬스터가 현실에서 똑같이 구현되다니. 게임 캐릭터를 소환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개인적인 퀘스트에서 던전이 파생됐다는 것도 그렇지만, 하이어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만 이에 대한 단서는 당장 얻을 수 없었다.

“땡길거야, 혹시 이 던전 하이어에서 본 적 있어?”

“이 던전이라면, 방금 뚫고 나온 미로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땡길거야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주군. 저에겐 안식처와 이곳 모두 하나의 세계로 인식됩니다. 그저 주군의 부름에 따라 보필하느냐, 그 준비를 하고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안식처’에서는? 이런 미로를 본 적이 없나?”

“안식처에서라면….”

땡길거야는 다시금 고민했지만, 고개를 젓는 결과는 똑같았다.

“…죄송합니다. 만족하실 만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호기심에 땡길거야에게 물어봤지만, 그도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듯했다.

‘우선은 퀘스트를 하면서 살펴 봐야겠네.’

나는 제단으로 걸어가 나부끼는 깃발을 잡았다.

그러자.

[2층 – 미로를 15분 안에 탈출하세요(1/1)]

[2층 클리어 완료]

[캐릭터 : 땡길거야의 소환이 해제됩니다.]

[3층으로 이동합니다.]

파앗-!!

땡길거야의 소환이 자동으로 해제되며 또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하이어의 던전이나 몬스터가 나오는 것일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전, 나름대로 유추를 해봤는데.

[3층 – 소환되는 몬스터를 처치하세요(0/1)]

[증식하는 거울 전사(B)]

정답이었다.

딸각-!

잿빛 먹구름 아래, 온몸이 거울로 이루어진 전사가 널따란 투기장 위에 검을 들고 서 있었다.

권장 레벨이 300인 거울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스켈레톤과 방랑자의 미로에 이어 증식하는 거울 전사라니.

녀석을 본 내 첫 감상평은.

“실제로 보니 더 분간하기 힘드네.”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거울 전사는 온몸이 거울로 이루어져 배경을 반사하다 보니 하이어에서 수동으로 조작할 경우 클릭하기 힘들다는 평이 있었다.

실제로 지금 보니 인식표가 없다면 투명한 몬스터로 오해했을 뻔했다.

만약 직접 싸운다면 더 분간이 힘들 테지만 다행히도 내가 나설 필요는 없을 듯했다.

녀석을 상대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캐릭터 소환 : 다크어둠]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 안식을.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이번 층에서 소환할 수 있는 마지막 캐릭터, 다크어둠이 시그니처 대사와 함께 등장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 녀석 기억나? 거울 던전의 몬스터인데.”

“어렴풋하군요. 오래된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

다크어둠이 무대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거울 전사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만렙이니 300레벨이 옛날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지금까지 잡은 몬스터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그럼 공략법을 알려 줘야겠네. 저 녀석, 죽일 때마다 분열돼서 두 배로 늘어나는 놈이거든.”

“그럼 사실상 지금 있는 녀석들의 수십 배를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야겠군요.”

“그래. 정확하다.”

증식하는 거울 전사는 이름 그대로 죽을 때마다 분열해 두 배로 증식한다.

온몸이 거울로 이루어져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도 있지만, 증식을 반복하는 녀석을 모두 처치해야만 1마리를 죽인 것으로 인정한다.

게다가 부차적인 문제도 있었는데.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게 있는데….”

“괜찮습니다, 마스터.”

다크어둠은 공략법이 없어도 된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쌍단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조심하기 전에… 전부 베어버리면 되니까요.”

협공하자고 얘기할 새도 없었다.

쿵-!

다크어둠은 땅을 박차 거울 전사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쨍그랑-!!

쌍단검을 휘둘러 일격에 적을 반으로 깨버렸다.

꿈틀꿈틀- 까드드득-!!

이등분된 거울 전사가 은빛 액체로 분열, 두 개의 거울 전사로 다시 증식했지만.

“흐읍…!”

쨍그랑-! 쨍그랑-!!

다크어둠이 다시 쌍단검을 휘둘러 놈들을 처치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투력 차이였다.

‘역시 다크어둠을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게 답이었군.’

거울 전사의 특징은 상대방의 스킬, 스펙, 전투법을 일부 가져오는 고유 능력 [행동 모방]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크어둠은 속도가 워낙 빠르고, 적을 일격에 처단할 수 있는 공격력이 있다 보니 [행동 모방]을 쓸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속 두 배로 늘어나는 거울 전사의 수가 늘어나 한 번에 처리할 수 없게 됐을 때.

살아남은 거울 전사들이 하나둘 [행동 모방]을 사용했지만, 그 또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후웃!”

다크어둠의 강점은 빠른 속도와 공격력이다.

[행동 모방]으로 그 스펙을 가져간다 해도, 거울 전사들이 얻는 건 속도와 공격력뿐이다. 그리고 속도와 공격력이 올라간 정도라면, 다크어둠이 처리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서 땡길거야를 소환했다면, 꽤나 고역이었겠지?’

반면, 땡길거야의 장점은 단단한 방어력과 체력 등의 탱킹 능력.

하나의 캐릭터만 소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땡길거야의 탱킹 능력을 일부 가져간 적이 512마리였다면, 제한 시간 안에 클리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적은 삽시간에 512마리까지 늘어났고, 하나하나 적을 처리하던 와중 [행동 모방]으로 [배후 강타]를 얻은 녀석들이 다크어둠의 등 뒤를 노렸지만 내가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케겍!!”

콰아아아앙-!!

증식하는 거울 전사들이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 나는 다크어둠과 등을 맞대고 화산검을 휘둘렀다.

선제 타격으로 [분화]를 날리고 [침투]로 거리를 좁혀 [반월 베기]로 갈라버린 것이다.

[증식하는 거울 전사(B)를 처치했습니다.]

[증식하는 거울 전사(B)를 처치했습니다.]

연이어 올라오는 메시지.

B급의 몬스터라 1층과 달리 나름대로 화력을 냈는데, 제법 강해진 덕인지 두세 번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거울 전사를 여럿 처치할 수 있었다.

물론, 다크어둠은 내가 나서는 걸 원치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송구스럽습니다. 도움을 받고 말았군요.”

“괜찮아. 내 싸움인데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아닙니다. 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요. 좀 더 속도를 내겠습니다, 마스터.”

혼자서 B급 몬스터를 정리하지 못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인 걸까.

다크어둠은 한쪽 무릎을 꿇더니 가슴 앞에서 양팔을 좌우로 교차시켰다.

그리고.

“흐읍!!”

X자로 쌍단검을 그으며 스킬을 시전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그은 칼질이었지만, 그 파괴력은 지금까지 일격에 목숨을 끊어온 수많은 공격보다 뛰어났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그림자 긋기를 사용합니다.]

스으윽- 서걱-!

다크어둠이 한 것은 단순한 칼질이 아니라 스킬 시전이었기 때문이다.

[스킬 : Lv 3. 그림자 긋기 – 일정 범위 내의 적들의 그림자 위로 분신을 소환해 뒤에서 기습합니다. 치명타가 발동합니다. 최대 마나의 25%가 소모됩니다.]

수많은 거울 전사의 등 뒤로 다크어둠의 시커먼 그림자 분신들이 솟아나 단검으로 목을 그었다.

겉으로 봤을 땐 폭발이나 굉음 등 큰 효과가 없는 스킬.

그러나 최대 마나의 25%를 소모하는 스킬답게 위력은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림자들이 연기로 변해 사라지자.

터걱-! 쨍그랑-! 터걱-! 쨍그랑-!

[캐릭터 : 다크어둠이 증식하는 거울 전사(B)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증식하는 거울 전사(B)를 처치했습니다.]

목을 그인 거울 전사들이 땅바닥 위로 허물어지며 깨졌다.

퀘스트도 완료됐다.

[3층 – 소환되는 몬스터를 처치하세요(1/1)]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이어에서 플레이할 땐 시간이 제법 걸렸던 것 같은데 이렇게 금방 클리어하다니.

그러나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다.

‘이게 측정 불가의 난이도라고?’

캐릭터들 덕분에 쉽게 클리어할 수 있었지만, 이 정도 난이도를 측정 불가라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은 터였다.

선택을 틀렸거나 공략법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위기였을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난이도 자체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의문은 다음 층에서 풀리게 되었으니.

화아아악-!!

[3층 클리어 완료]

[캐릭터 : 다크어둠의 소환이 해제됩니다.]

[4층으로 이동합니다.]

[진정한 군주의 자격을 증명하세요.]

투기장에서 왕실로 배경이 바뀌면서 긴 복도 끝, 한 신형이 왕좌 옆 바닥에 대검을 꽂은 채 앉아 있었다.

누군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빛바랜 망자들의 왕]

기존 몬스터와는 다른, 은빛의 인식표가 머리 위에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뚜벅- 뚜벅-

장엄하게 울리는 발소리.

나는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든 채, 왕좌에 앉아 있는 몬스터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왕관을 쓰고 낡은 망토를 두른 거대 스켈레톤이 왕좌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인가.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우리를 구원할 군주가.”

나를 바라보며 중후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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