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54화 (54/169)

제54화

6장 한계 돌파(4)

‘몬스터가 말을 했어…?’

멈칫.

나는 왕좌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거대 스켈레톤이 자리에서 일어나길래 공격할 준비를 했는데 뜬금없이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말을 하다니.

세간에 알려지기론 몬스터에겐 대화를 나눌 정도의 이성이 없다는 게 정론이다.

그간 많은 헌터가 몬스터와 대화를 하려고 애썼지만 모두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인간을 적대할 뿐이었다.

이건 나도 레이드를 하며 직접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왕관을 쓴 스켈레톤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제법이군. 안식처의 역사를 통달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오다니.”

“안식처라…. 너도 하이어의 캐릭터인가?”

안식처.

내가 소환한 게임 캐릭터들이 하이어를 부르는 명칭이다.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물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군주의 탑]은 하이어의 몬스터와 맵이 나온다는 특징이 있었고, 왕관을 쓴 스켈레톤 역시 하이어의 존재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아닐 가능성도 존재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 하이어를 플레이하면서 빛바랜 망자들의 왕이란 몬스터나 NPC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건 다른 정보들을 연쇄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꽤 중요한 사실이었다.

만약 이 녀석이 하이어의 존재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몬스터도 하이어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빛바랜 망자들의 왕이 왕좌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글쎄, 비슷하다고 볼 순 있겠지. 동시대를 함께 풍미했으니. 다만 그들은 화신체가 되어 미래를 선택했지만 나는 실존자로 남아 검증을 택했을 뿐이다.”

“실존자로 남아 검증을 택했다고?”

“그렇다. 안식처의 선택을 받은 군주에게 우리를 구원할 힘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지.”

“구원? 그건 또 무슨 말이지?”

“궁금한가. 그건 나를 베고 진정한 군주의 길을 걷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스르릉-!

망자들의 왕은 왕좌 옆, 바닥에 꽂혀 있던 대검을 뽑더니 내게 다가왔다.

실존자, 구원 등 녀석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그건 망자들의 왕이 전투를 통해 내가 가진 힘을 시험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퀘스트 역시 이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빛바랜 망자들의 왕을 처치하세요(0/1)]

망자들의 왕이 왕좌에서 일어나 단상을 내려오자 퀘스트가 갱신됐다. 여전히 녀석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일반 몬스터가 아니라는 건 확인됐다.

그리고 뒤이어 알게 된 게 있었으니.

[캐릭터 소환 사용 불가]

[4층에서는 캐릭터 소환이 제한됩니다.]

[캐릭터 소환]을 쓰려고 시도해 봤지만, 마지막 층에서는 캐릭터 소환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럴 줄 알았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군주의 성이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층마다 캐릭터를 한 명만 소환할 수 있다는 제한 사항을 봤을 때부터 마지막 층에서는 누구도 소환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뒤의 일도 예상하고 있던 루트를 밟았다.

쿵-!

“나를 뛰어넘어 진정한 군주의 자격을 증명하라!”

망자들의 왕이 대검을 들고, 낡은 망토를 휘날리며 내게 쇄도해온 것이다.

‘혼자서 하는 수밖에 없겠군.’

캐릭터를 소환할 수 없으니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방법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빛바랜 망자들의 왕]

보통 몬스터의 인식표 뒤엔 [분노한 스켈레톤(D)]처럼 등급이 표시되는데, 망자들의 왕은 아무것도 뜨지 않는 것이었다.

하이어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이걸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이 녀석이 딱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유일 몬스터라는 거지.’

하이어에서 던전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한 번 클리어한 뒤에도 계속해서 들어갈 수 있는 일반 던전과 클리어하고 나면 사라져서 다시 진입할 수 없는 유일 던전.

그중 유일 던전에서 나오는 보스 몬스터는 이렇게 인식표 뒤에 등급이 뜨지 않는다.

특히 이렇게 등급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엔 잠재적인 등급이 던전 난이도보다 최소 2단계는 더 높은 경우가 많은데, 이건 망자들의 왕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다만 이상한 것은 어째서 하이어에서나 통용되던 법칙이 여기서도 통하냐는 것이었는데.

눈앞의 적을 앞두고 한가하게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분화]

쿠구구구- 콰아아앙-!!

“잔재주를 부리는군.”

앞서 만난 군주의 성의 몬스터들은 가장 높은 등급이 B급이었는데, 화산검의 스킬을 대검으로 쳐내는 솜씨를 보니 최소 A급은 되어 보였다.

아니, 사실 그 이상으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분화]를 쳐낸 뒤, 망자들의 왕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 대검을 휘둘렀는데 그 위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분명 대검이 다가오는 타이밍에 맞춰 화산방패를 들고 [용암 전개]까지 사용해 방어력과 방어 범위를 넓혔는데.

쩌어어어엉-!!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묵직한 충격이 온몸을 강타한 것이다.

‘무슨…!’

땅이 움푹 파이고, 한쪽 무릎이 굽혀질 정도로 막대한 파워였다.

한 번 대검을 막아냈지만, 연타를 허용했다간 방패가 깨질 것 같았다.

깡-! 깡-! 후우우웅-!!

비교적 느린 박자로 이어지는 후속타들.

나는 방패로 공격을 막다가 살짝 틀어서 대검이 미끄러지게 만들며 반격을 감행했다.

[침투]로 몸을 빠르게 움직여 망자들의 왕의 사각지대로 이동한 뒤, [반월 베기]로 녀석의 옆구리를 공략한 것이다.

적의 강력한 공격에 몰렸던 불리한 상황에서 파고 들어간 빈틈.

‘들어갔다!’

효과는 뛰어났다.

파각-!

화산검 끝으로 연장된 오러의 칼날이 망자들의 왕의 갈비뼈를 베고 지나갔다.

그런데.

파사사삭-

화산검이 지나간 직후, 망자들의 왕의 갈비뼈가 다시 붙었다.

분명 정확하게 베었건만 앞서 1층의 스켈레톤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상처를 회복한 것이다.

심지어 그 속도 또한 빨랐다.

즉시 움직이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후우우우웅-!!

망자들의 왕은 반격당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검을 횡으로 그었다.

나는 자세를 낮춰 검격을 피함과 동시에 다시 한번 카운터 어택을 날렸다.

[급소 찌르기]

이번엔 칼끝이 정확하게 위쪽 가슴뼈를 노리고 들어갔다.

파각-!!

다시 한번 뼈다귀가 부서졌다.

그러나 이번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반격은 정확하게 들어갔으나 망자들의 왕은 빠르게 회복했고, 대검을 이용한 공격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빛망왕의 대검.

나는 황급히 화산방패를 들어 방어했으나.

쿠우웅-! 쩌어어어어엉-!!

조금 전보다 더 큰 충격이 몰려왔다.

[용암 전개]가 견딜 수 있는 충격을 상회하자, 용암이 파괴되며 스킬이 해제됐다. 게다가 지금까지 수 없는 싸움에서 흠집조차 나지 않은 화산방패가 일부 파손될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런데 망자들의 왕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법 큰 데미지에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잠깐 멈칫했는데 그 틈에 연타가 이어졌다.

망자들의 왕은 재차 대검을 휘둘러 위로 시선을 끈 다음, 발로 내 몸을 걷어찼다.

대검을 강하게 내려친 앞의 공격 자체가, 하단을 무방비하게 만들려는 노림수였던 것이다.

오러도 담기지 않은 평범한 올려 차기.

하지만 망자들의 왕이 3m에 달하기 때문일까?

“크윽!!”

단순히 걷어차인 것에 불과했지만 내 몸은 십수 미터를 날아가 왕실 벽을 뚫고 성 아래로 낙하했다.

눈 앞에 펼쳐진 낭떠러지.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해 이대로 떨어진다면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지.’

나는 공중에서 재빠르게 몸을 돌린 뒤, 화산검 끝으로 오러를 형성했다. 그리고 몸을 펼쳐 성벽 가까이 활강한 다음, 냅다 검을 꽂았다.

퍽-! 까드드드드득-!!

결과는 훌륭했다.

성벽에 화산검이 박히면서 낙하 속도를 줄여주었고, 무사히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이 확보된 건 아니었다.

펄럭-! 쉬이이이익-!

성벽 앞에 착지하기 무섭게 망자들의 왕이 뒤이어 낙하해 대검을 내리꽂았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앙-!!

“크윽!!”

나는 재빠르게 반응했지만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굉음과 함께 시야가 빙글 돌았다.

몇 바퀴나 바닥을 굴렀을까.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실망이군. 안식처의 군주라는 자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다니.”

성벽 아래, 빛망왕이 우두커니 선 채 깔보듯이 말했다.

나는 입안에 맴도는 피를 뱉으며 대꾸했다.

“우습네. 이제 겨우 탐색전이 끝났는데 벌써 기고만장하다니 말이야.”

비록 방패가 부서지고, 온몸에 상처가 생겨 피가 줄줄 흘러 내렸지만 최대한 여유 있게 행동했다.

망자들의 왕이 예상보다 강했기에 기세마저 밀리면 더는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

‘더럽게 세네. 등급이 얼마나 되는 거야?’

나는 화산검을 늘어뜨린 채 망자들의 왕을 노려봤다.

보이지 않는 등급.

사실 전투 직전, 녀석은 A급이나 S급이 아닐까 추측했다. 3층의 증식하는 거울 전사가 B급이었으니 그보다 한두 단계 더 높은 난이도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망자들의 왕은 순수한 힘이라면 S급을 넘어 루미나스의 홍진성과 비슷한 SS급의 수준인 듯했다.

염력이나 어둠 등 특별한 속성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순수 무력만으로 나를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순수한 무력이 높은 적이 가장 까다로운 상대였다.

차라리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홍진성을 스피드로 제압했던 다크어둠처럼 약점을 파악해 공략할 텐데, 순수한 무력은 그 파훼법이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아웃 파이터가 되어 전장을 넓게 쓰면서 원거리 스킬로 조지는 것인데, 내겐 그렇게 할 만한 스킬이 없었다. 가진 것 중 그나마 원거리 공격이라고 할 수 있는 [분화]는 앞에서 이미 막힌 적이 있고 말이다.

사실상 정면 승부밖엔 답이 없는 상황.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다.”

망자들의 왕도 그걸 아는 듯 대검으로 나를 겨누며 돌격할 자세를 취했다.

위기였다.

[캐릭터 소환]은 사용할 수 없고, 정면으로 부딪치기엔 스탯 차이가 너무 심했다.

어디 그뿐인가.

화산방패는 파손됐고, 온몸은 자상으로 가득해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고, 목숨이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겨내야 할 길이므로.

나는 화산검을 치켜들며 망자들의 왕을 향해 쇄도했다.

[침투]로 거리를 좁힌 후, [반월 베기]와 [급소 찌르기]를 연속해서 날린 것이다.

기존과 동일한 패턴이었다.

“가소롭도다! 그게 통할 거라 생각하는가!”

사실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통했던 것도 아니고, 막혔던 공격을 재탕하다니.

망자들의 왕은 코웃음을 치는 것을 넘어 분노하기에 이르렀다.

까아아아아앙-!!

화산검이 대검에 막히는 건 당연지사였다.

무위로 돌아간 돌격.

나는 재빠르게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물론,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망자들의 왕이 아니었다.

“화가 날 정도로 형편없는 전투력이로다!”

더 두고 볼 가치도 없다는 듯, 망자들의 왕이 전보다 빨라진 속도로 땅을 박차며 거리를 좁혀왔다.

그 순간 나는.

“흐읍!!”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3식 – 만월 가르기]

다가오는 망자들의 왕을 향해, 아껴뒀던 비장의 스킬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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