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55화 (55/169)

제55화

6장 한계 돌파(5)

화산검에서 생성된 푸른 빛이 초승달 형태로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

돌진해오던 망자들의 왕이 순간 멈칫했다.

동일한 패턴으로 공격하고 후퇴한 게 유인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서걱-! 서걱-!

검의 궤적을 따라 발사된 푸른 오러가 망자들의 왕의 대검과 건틀릿, 망토 등을 가르고 지나갔다.

만월 가르기.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3식으로, 마나를 달빛의 기운으로 바꾼 다음 검의 궤적에 따라 전방으로 날리는 기술이다.

처음 사용하는 기술이기는 하지만, 얻은 지는 조금 되었다.

얼마 전, 강철만과 미해결 던전에 갔다가 루미나스와 얽힌 바로 그 날.

[긴급 퀘스트 완료]

[몬스터가 된 강화 실험체를 처치하세요(976/976)]

[보상이 수여됩니다.]

[보상 : 무작위로 스킬 하나의 스킬 레벨을 2단계 상승시킵니다.]

[선정 완료]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스킬 레벨이 1에서 3으로 2단계 상승합니다.]

[제국기사단 검술 제1식과 제2식의 파괴력이 증가합니다.]

[제3식 만월 가르기가 개방됩니다.]

[Lv 3.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1식 급소 찌르기]

[제2식 반월 베기]

[제3식 만월 가르기]

[조건 미충족, 잠김]

[조건 미충족, 잠김]

폐공장단지에서 루미나스의 강화 실험체들을 만났던 당시, 긴급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었던 보상.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안 그래도 [캐릭터 소환] 때문에 마나가 부족한데, [만월 가르기]는 [반월 베기]보다 10배는 더 많은 마나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나의 소비량이 큰 만큼, 효과도 앞의 두 기술과는 차원이 달라 뒷감당이 만만찮았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근접 공격인 [반월 베기]로는 흠집도 나지 않았던 망자들의 왕의 장비들이, 원거리 공격인 [만월 가르기] 한 방에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쿵-! 쿵-! 쿠구구구궁-!!

만월 가르기의 검격은 망자들의 왕을 베는 것을 넘어 뒤쪽에 있던 성벽과 성까지 갈라버리며 저 멀리 날아갔다.

수없이 스킬을 쓰면서 싸워대도 멀쩡했던 건물이 [만월 가르기]가 가르고 지나가자 모래성처럼 허물어진 것이다.

게다가 [만월 가르기]의 이점은 강력한 절삭력만이 아니었다.

화르륵-!!

[만월 가르기]가 베고 지나간 자리엔 제장이의 전격 충격이 남긴 전기처럼 푸른 불꽃이 남아 추가적인 데미지를 주며 회복을 막았다.

“크윽! 이 힘은…!”

뭔가 떠오른 게 있는 것일까.

망자들의 왕이 장비에 붙은 불을 바라보며 당황한 음성을 뱉었지만, 뒷얘기를 들어줄 생각 따윈 없었다.

“형편없는 전투력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뭘 놀라고 있어?”

돌격해 오던 망자들의 왕은 충격 때문에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고, 나는 그쪽을 향해 [만월 가르기]를 다시 한번 날렸다.

그런데.

팅-! 콰아아아앙-!!

이번엔 망자들의 왕이 방어에 성공했다.

날아드는 푸른 오러를 대검을 휘둘러 성벽 쪽으로 쳐낸 것이다.

“중앙 제국의 검술을 제법 잘 흉내 내는군. 하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대검 주변으로 일렁이는 노란빛 오러.

어떤 힘인지 정확하겐 알 수 없어도, 숨겨뒀던 힘을 개방해 [만월 가르기]를 쳐낸 듯했다.

“글쎄, 그건 두고 봐야지.”

나는 또다시 화산검을 겨눴다.

그리고.

[분화]

불꽃을 발포해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성벽에 부딪히고 메아리가 울렸다.

소리는 제법 컸지만 앞서 두 번이나 실패했기에 피해를 입힐 거란 예상은 하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눈 가리기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자욱하게 흙먼지가 퍼져 있는 사이, 마나 포션을 마셨다.

다행히도 캐릭터 소환에만 제약이 걸려 있을 뿐, 물약을 마시는 것에 대한 제한은 없었다.

몇 병의 마나 포션을 마시고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쯤, 나는 다시 [만월 가르기]를 날렸다.

다만 이번에는 거대한 하나의 검격이 아닌, 여러 개의 작은 검격이었다.

쉭- 쉭- 쉬쉬쉬쉭-!

총 여섯 개의 초승달 모양 오러가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공격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요행이나 부리다니…! 군주의 긍지도 없는가!”

하지만 역시나 이 정도로 망자들의 왕은 죽지 않았다.

대검을 제외한 장비 대부분이 넝마가 되고, 뼈다귀 곳곳이 불에 타는 등 만신창이가 됐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에게 달려들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뭐래. 이기면 장땡이지.”

군주의 긍지?

일단 살아남아야 그런 것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시야를 가리는 행위가 망자들의 왕의 입장에선 치졸하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이 착착 완성돼 가고 있었으니까.

나는 망자들의 왕을 향해 화산검을 휘둘렀다. 녀석도 지지 않고 흠집이 난 대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쿠웅-! 까아아앙-!! 콰아아앙-!!

검이 교차할 때마다 금속음과 파공음, 폭음 등 다양한 소음이 발생했다.

제국기사단의 검술이 달의 기운을 머금었다면, 망자들의 왕이 펼치는 검술은 태양의 힘을 담은 듯했다.

상극의 힘끼리 만들어내는 격전의 파노라마.

서걱-! 피빗-!!

순간순간 허공에서 검이 부딪히고 튕기며 선혈이 낭자했다. 큰 동작을 할 때마다 어깨와 허벅지에서 피가 튀었다.

물론, 망자들의 왕도 뼈가 부서지며 뼛가루가 흩날렸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반월 베기]를 비롯한 검격들은 [만월 가르기]의 지속 데미지가 아닌 이상 뼈끼리 붙으며 회복되었고, [만월 가르기]의 불씨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죽지 않는 망자들의 왕과 어디까지나 인간의 몸인 나.

전투가 길어질 때 불리한 쪽이 어느 쪽인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뿐만 아니라 순수한 스펙의 차이도 있었다.

까앙-!!

“으윽!”

결국, 나는 녀석의 대검을 받아내다가 힘에서 밀려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다…!”

망자들의 왕이 승리를 확신한 듯 대검을 높게 들었다.

그러나 녀석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게 바로 내가 기다리던 모습이라는 것을.

한층 커진 동작.

망자들의 왕이 노란 오러가 일렁이는 대검을 머리 위로 들어 내리친 순간, 나는 빠르게 세 개의 스킬을 연계했다.

깡-!!

“으읏?”

먼저 [반월 베기]로 내려오는 대검을 쳐내고,

[만월 가르기]

무방비해진 녀석의 가슴을 향해 [만월 가르기]를 날린 다음.

“끝이다!”

[만월 가르기]가 남긴 푸른 불씨를 [급소 찌르기]로 찌른 것이다.

그러자.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연계기가 완성됐습니다.]

[연계 효과 : 월광 폭발]

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앙-!!

푸른 섬광이 부풀어 오르며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3초.

[월광 폭발]이 사그라드는 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망자들의 왕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군주의 길을 걷는 자여, 빛바랜 세상에 다시 한번 영광을….”

폭발음 뒤로 망자들의 왕이 남긴 유언만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빛바랜 망자들의 왕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힘 +1을 획득합니다.]

공중에 떠오르는 글자들이 전투가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제국기사단의 검술이 가진 힘을 끌어올려 폭발시키는 연계기, [월광 폭발].

이걸 발동시키기 위해선 [반월 베기]로 달의 힘을 끌어올리고, [만월 가르기]로 상대의 몸에 달빛의 불씨를 심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푸른 불씨에 [급소 찌르기]를 정확하게 맞춰 폭발을 일으켜야 한다.

순서가 꼬이거나 힘이 부족하면 발화조차 하지 않지만, 땡길거야의 기억을 봤던 덕분인지 성공적으로 연계기를 완성했다.

“하아, 하아….”

턱 끝까지 차오른 숨.

나는 바닥에 벌러덩 누우며 숨을 내쉬었다.

뚝뚝-

어느덧 잦아든 비가 피와 땀으로 범벅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렇게까지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지금까진 캐릭터들이 레이드를 도와줘서 느끼지 못했지만 몬스터를 상대한다는 건 정말 사선을 넘나드는 힘든 일이었다.

던전 보초를 설 때, 던전에서 나온 헌터들이 기진맥진하는 걸 자주 봤었는데 어째서 그랬던 것인지 이제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이젠 진짜 쉬고 싶다….’

지금까진 휴식을 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이 지경이 되자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올라왔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인 걸까.

막상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일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

후우우우웅-!

겨우 망자들의 왕을 처치하고 숨을 고르는데, 돌연 들판에 널브러진 대검이 빛으로 분해돼 내 몸속으로 들어오더니.

파앗-!!

[빛바랜 망자들의 왕의 기억 일부가 재현됩니다.]

그대로 의식을 앗아갔다.

* * *

-칼레스 전하, 이제 곧 원정대가 출발한다고 합니다.

횃불의 빛만이 비추는 지하 창고.

웬 중갑 기사가 왕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공중을 나는 것처럼 둥둥 떠 있는 시야.

모든 게 갑작스럽게 변했지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이건… 기억 재현이로군.’

[평정]이 있기도 하고, 다른 이의 기억을 구경하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앞의 경험들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기억을 관전하게 된 대상이 캐릭터가 아니라 몬스터인 망자들의 왕이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억 재현이 시작된 장소를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으레 왕이라면 휘황찬란한 공간에 있어야 하거늘, 횃불이 일렁이는 거대한 지하 창고에서 웬 보물 상자만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게다가 왕과 기사가 나누는 대화도 알아듣기 힘들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결론이 났나 보군.

-그렇습니다, 전하. 합류하시려면 지금 출발하셔야 합니다.

-아니, 나는 여기 남을 것이다. 왕이 되어서 백성을 남기고 떠날 순 없지.

-진심이십니까? 여기도 곧 놈들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차라리 원정대에 합류해 후일을 도모하시는 것이….

-미래가 있으려면 현재를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 나는 이곳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희망을 구축할 것이다.

-그런 뜻이 있으셨군요. 그렇다면 저 상자는….

기사의 물음에 왕관을 쓴 왕이 몸을 돌렸다.

금발과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얼굴이 횃불 빛에 반사됐다.

빛바랜 망자들의 왕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었다.

국왕 칼레스가 보물 상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먼 훗날, 원정대가 성공했을 때를 위해 남겨놓은 선물이다.

-역시 그랬군요. 궁금합니다. 저걸 가져갈 이가 있을지 말이죠.

-원정대의 바람대로 세상을 구원할 군주가 있다면 당연히 가져갈 수 있을 테지. 과연, 그럴 만한 인재가 미래에라도 나타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야.

원정대, 구원.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됐지만, 맥락이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다.

다만 아주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좀 더 얘기를 듣는다면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질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더 많은 걸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화 속의 정보가 불완전하기도 했거니와 왕과 기사의 대화 뒤로.

탁탁탁탁-!

갑자기 한 병사가 지하 창고로 달려와 한쪽 무릎을 뚫으며 보고를 올린 것이다.

-전하, 절멸의 부대가 서쪽 산맥을 넘어 왕성으로 진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군. 전군에게 전투 준비 태세를 지시하라. 멸망을 바라는 적들에게 우리가 이룩한 찬란한 영광을 선물해주도록 하지.

-보좌하겠습니다, 전하.

왕을 필두로 기사와 병사가 거대한 지하 창고를 나섰다.

그러자 그 뒤로.

끼이이익-

문이 닫히며 횃불의 빛에 반짝이던 보물 상자가 어둠 속으로 잠겼다.

[기억 재현이 종료됩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빛바랜 망자들의 왕, 칼레스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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