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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57화 (57/169)

제57화

6장 한계 돌파(7)

“감히 나한테 그 개망신을 주고, 두 발 뻗고 자려고? 그렇게는 안 되지.”

한상우가 묵고 있는 광안리 호텔 옥상.

마스크를 쓴 윤형민이 기둥에 로프를 묶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몇 시간 전, 윤형민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장비를 챙겼다.

적갈색 가죽 갑옷, 금색으로 빛나는 너클, 벽을 탈 수 있는 가죽 부츠 등.

전용으로 커스텀한 희소 등급의 아이템들을 꺼낸 것이다.

상급 등급 던전을 공략할 때가 아니면 착용조차 하지 않는 거금의 애장품들, 아니 애장템들이었다.

윤형민은 애장템들을 착용한 후, 조금 전에 확인해 두었던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옥상으로 이동한 뒤, 한상우가 묵고 있는 객실로 침투할 준비를 했다.

물론, 진입하는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철컥철컥-

-누구세요? 옥상은 못 올라갑니다.

옥상문이 잠겨 있을 뿐만 아니라 계단에서 경비원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조용히 넘어가기는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윤형민은.

-닥치고 옥상 열어. 그리고 나 본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아, 알았습니다.

경비원에게 공포감을 심어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위기를 타개했다.

일전에 광안리 해변에서 서희진에게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압박감으로 경비원의 정신을 지배해 행동을 조종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공포 장악]

[스킬 : Lv 2. 공포 장악 –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심어 의식을 지배합니다. 공포 장악의 유지 시간은 명령의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마나 200 소모.]

윤형민이 가지고 있는 스킬 덕분이었다.

상대방의 의식에 침투해 심은 공포로 행동을 장악할 수 있는 [공포 장악].

아직 스킬 레벨이 높지 않아 타인을 완전히 꼭두각시로 만들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단편적인 지령은 얼마든지 부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윤형민이 파티에서 무례하게 굴어도 크게 배척당하지 않는 이유였다.

선을 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해도 [공포 장악]과 다른 스킬을 적당히 이용하면 파티원들은 스스로 원해서 그랬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큭큭, 역시 정신계열 스킬이 꿀이라니까.’

윤형민은 옥상 문을 열어주고 내려가는 경비원의 뒷모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 헌터들은 공격 스킬을 최고로 꼽는다.

보조 스킬로 분류되는 정신계열 스킬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탓이다.

헌터청에서도 공격 스킬은 특수 샌드백까지 설치해 가며 집중관리 하지 않던가.

그러나 윤형민은 그런 헌터들의 고정관념을 무식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격할 거 없이, 남한테 시키면 되지. 지금 옥상 문을 열게 한 것처럼.’

몬스터 사냥?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등급 높은 헌터를 꼬셔서 같이 레이드를 뛰면 그만이었다.

아이템 획득? 등급이 높은 게 나오면 자신에게 양보하라고 파티원들을 세뇌하면 됐다.

공격 스킬이 필요하면 강한 공격 스킬을 가진 헌터가 자신을 따르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굳이 공격 스킬에 집착할 필요도, 좋은 길드에 들어갈 이유도 없었다.

종종 뒷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과 장악의 정도에 개인차가 있다는 부작용만 감수하면 충분히 군림하여 살 수 있었다.

그야말로 왕처럼.

‘그런데 B급 따위가 나한테 개망신을 줘?’

윤형민은 옥상에서 위치를 확인한 뒤, 지체없이 몸을 던졌다.

일반인이 하면 그저 투신밖에 되지 않는 일이었겠지만, A급 헌터인 그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윤형민은 떨어지던 중, 목표로 했던 방의 창문 샷시를 잡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큭큭,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 될 거다!’

콰앙-!! 쨍그랑-!

창문을 깨고 안으로 진입했다.

‘개자식, 죽어라!!’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객실로 진입한 직후, 윤형민은 침대 위의 신형에게 달려들어 금색 너클을 휘둘렀다.

야심한 시각, 장비를 착용한 채로 자는 게 아니면 막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침대에 누운 채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B급 헌터가 눈에 들어왔다.

계획대로였다.

녀석이 자고 있지 않은 건 변수였지만, 예상했던 대로 무방비 상태였다.

이제 너클로 놈을 흠씬 패주고 느긋하게 돌아가면 모든 게 완벽할 것이었다.

그런데.

쿠우우웅-!

마무리가 이상했다.

분명 ‘퍽’하는 소리가 나면서 피가 튀어야 하는데 웬 푹신한 감촉이 먼저 손잡이로 전해진 것이다.

진상은 곧 드러났다.

어두컴컴한 방안, 한상우가 옆으로 구르면서 너클이 애꿎은 침대만 부쉈다.

“뭐야, 이 쥐새끼는.”

빗나간 공격.

한상우는 침대 옆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윤형민은 당황했다.

기습이 무위로 돌아간 것도 그랬지만 한상우의 태도가 너무 여유만만한 탓이었다.

보통 이렇게 습격을 당하면 혼비백산해서 패닉에 빠지기 마련인데, 한상우에겐 그런 기색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천하태평 그 자체였다.

무기도, 방어구도 착용하지 않았건만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으며 작금의 사태를 평가할 뿐이었다.

“루미나스에서 나온 것치고는 병력이 너무 허접한데…. 아! 너, 아까 걔구나? 해수욕장에서 맞고 기절한 찐따.”

“찌, 찐따? 이 새끼가 아직도 주제 파악 못 하고 감히…!”

후우우웅-!!

한상우의 비아냥거림에 윤형민은 참지 못하고 재차 너클을 휘둘렀다.

공격 계열 스킬과는 별개로, 육체 능력은 A급에서도 부족하지 않게 단련해 온 윤형민이었다. 근접 격투 전문인 그의 공격은 보통 B급 헌터라면 쉽게 피하지 못할 속도였다.

그런데 한상우는 너무나도 쉽게 피해버렸다. 침대에서 연이어지는 윤형민의 공격을 피하고 방 가운데로 빠져나온 것이다.

쾅-! 후두두둑-!

윤형민의 너클은 또다시 애꿎은 벽만 부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퍽-! 퍼벅-!!

“크악!!”

한상우는 회피하는 과정에서 윤형민의 코에 정통으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이 자식이…!’

더는 봐줄 수 없었다.

원래 계획은 좀 더 가지고 놀다가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윤형민은 곧바로 한상우를 노려보며 비장의 수를 사용했다.

[공포 장악]

“꿇어.”

이대로 끝내긴 싱겁지만, 정신계열 스킬을 써서 굴복시키려 한 것이다.

한데.

“……?”

한상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뭐 하느냐는 듯 볼을 긁적이며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분명 [공포 장악]은 제대로 사용했는데 전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윤형민은 서둘러 다른 정신계열 스킬을 사용했다.

[공포 심기]

[스킬 : Lv 1. 공포 심기 –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심어 전투력을 5% 낮춥니다. 마나 50 소모.]

[공포 장악]만큼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전투력을 감소시키는 정신계열 스킬이었다.

그러나 먹히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상이 스킬에 저항합니다.]

‘마, 말도 안 되는…!’

윤형민은 경악했다.

S급 헌터에게 정신계열 스킬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 떴던 메시지가 한상우한테 나타났기 때문이다.

터벅- 터벅-

급변한 분위기.

“주제 파악 못 하는 건 네놈인 것 같은데?”

한상우가 윤형민에게 다가가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털썩-!

별안간 윤형민이 무릎을 꿇었다.

윤형민은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자, 허망하게 한상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한상우는 당연하다는 듯 윤형민을 내려다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상우의 시선이 허공에 뜬 메시지를 향했다.

[군주의 특성, 평정이 발동합니다.]

[정신계열 스킬에 저항합니다.]

윤형민이 쓴 정신계열 스킬은 모두 [평정]에 막혔다.

반대로 한상우가 사용한 새로운 특성은 제대로 먹혔다.

한상우는 조금 전, 침대에 누웠을 때 열어뒀던 특성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고유 특성 : 하이어의 군주]

[고유 특성을 획득해 여러 효과를 얻습니다.]

[특성 1 : 지휘]

[특성 2 : 평정]

[특성 3 : 독존]

기존 세 개의 특성 외에도 이번에 새로 얻은 특성의 정보가 자리하고 있었다.

[특성 4 : 압도 – 군주의 권위를 발산, 주변 적들에게 위압을 걸어 전투력을 감소시킵니다. 위압의 전투력 감소 비율은 적의 수준과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군주의 힘을 선택하는 보상 당시, 한상우는 강화와 개방 중 후자를 선택했다.

보상 내용상 강화는 기존에 가진 특성의 강화고, 개방은 추가적인 특성의 획득인 듯했는데 당장은 새로운 걸 확인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강화는 우선 개방으로 얻게 되는 특성을 확인하고 해도 늦지 않을 듯했다.

[개방을 선택했습니다.]

[군주의 네 번째 특성, 압도를 획득했습니다.]

한상우는 개방을 선택했고, 그 판단은 옳았다.

정신계열 스킬을 평정으로 무력화한 뒤, 압도를 사용했는데 윤형민이 갑자기 휘둥그레진 눈으로 털썩 무릎을 꿇어버린 것이다.

새로 얻은 특성은 한상우에겐 이름 그대로 압도적인 힘을 가져다 주었다.

반대로 윤형민에겐 극복하기 힘든, 압도적인 힘이었다.

[군주의 위용을 마주했습니다.]

[효과 : 위압에 압도당합니다.]

[스탯의 효과가 20% 감소합니다.]

[전투 의지가 20% 감소하여 스킬의 파괴력이 20% 감소합니다.]

연속에서 떠오르는 메시지.

윤형민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이 고작 B급이라고? 이건 말도 안 돼…!’

갑자기 전신을 감싸는 불길한 기운에 이 악물고 버티려고 했으나 무릎이 절로 꿇어졌다.

정신계열 스킬인 듯했다.

자신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스킬인 만큼 상대방의 정신계열 스킬에 당했다는 걸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건 안다고 해서 파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크…으…. 젠, 장…!”

그래도 나름 의지력을 발휘해서 몸을 일으켰지만.

덜덜덜덜-!

이번엔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그 모습에 한상우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싸우려고? 그럼 더 다칠 텐데.”

“닥쳐!!”

남은 건 아집밖에 없었다.

윤형민은 앞으로 돌진하면서 너클을 휘둘렀다.

비록 정신계열 스킬에서 밀려 페널티를 먹었지만, 그래도 자신에겐 희소 등급 장비가 있으니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후우우웅-!!

금색 너클이 공기를 가르며 한상우를 노렸다.

물론, 앞선 공격과 마찬가지로 첫 타격은 빗나갔다. 두 번째 타격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윤형민은 실망하지 않았다.

아무리 피한다고 한들 여긴 좁은 객실이다. 계속해서 피할 수는 없다.

조금 전처럼 주먹으로 반격을 먹인다고 해도 버텨서 금색 너클로 한 대만 맞히면 방어구도 없는 B급 헌터는 곤죽이 될 게 분명했다.

‘딱 한 대만 맞히면 된다!’

윤형민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무지성으로 너클을 낀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한상우는 너클을 회피한 후, 오히려 윤형민의 몸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빈틈을 파고들어.

퍼벅-! 퍽-! 퍼퍼퍼퍽-!!

가슴, 턱, 얼굴 등을 빠르게 주먹으로 가격한 뒤, 발로 복부를 걷어차 벽으로 날려버렸다.

“커헉! 우욱!!”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훅 몰려온 고통에 윤형민은 반격은 생각도 못 하고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만 해댔다.

‘무슨 파워가…!’

이로써 승패는 정해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눈앞의 녀석은 B급을 훨씬 뛰어넘는 실력이었다.

비장의 무기인 정신계열 스킬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윤형민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했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이, 한상우가 주먹을 풀며 다가왔다.

“뭐야, 벌써 쓰러지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머, 멈춰.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윤형민에게 남은 건 한 줌 남은 자존심이었지만 한상우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머리 박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국에 끝까지 자존심을 챙기다니. 넌 좀 맞아야겠다.”

“헉! 사, 살려 줘…. 아니, 살려주세요! 제발요!”

윤형민은 뒤늦게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그러나 기회는 이미 지나간 뒤였다.

“늦었어. 딱 죽기 직전까지만 맞자.”

“아, 안 돼…. 으아아아악!!”

그날, 광안리의 호텔과 바닷가엔 한 남자의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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