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58화 (58/169)

제58화

6장 한계 돌파(8)

번쩍- 번쩍-

깜빡- 깜빡-

“와, 새벽에 갑자기 무슨 난리래?”

“건물 창문이랑 벽이 완전히 부서졌는데? 가스 폭발이라도 일어났나?”

“에이, 호텔에서 무슨 가스 폭발이야. 테러겠지.”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우리나라에서 테러가 왜 일어나?”

“요새 테러에서 안전한 나라가 어딨어? 헌터들이 테러하는 건 세계적인데.”

부산 광안리의 해변 도로.

수많은 경찰차와 소방차가 늘어선 가운데,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달마저 저문 깊은 새벽, 갑자기 호텔 상층에서 굉음과 함께 창문과 벽이 부서졌다.

폭탄이라도 터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컸던 충격.

새벽이라 소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고, 사람들은 투숙객이 사고를 당했다, 테러가 일어났다 등 저마다 여러 추측을 해댔는데 진실은 의외로 단순했다.

헌터들끼리 치고받고 싸운 것이다.

“한상우 님, B급 헌터 맞으십니까?”

“예, 맞습니다.”

“쓰러지신 분과는 어떤 관계죠?”

“오늘 처음 본 사람입니다. 낮에 던전 입장줄에서 실랑이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앙심을 품고 저를 습격한 것 같습니다.”

쑥대밭이 된 객실 안에서 한상우가 경찰의 물음에 대답했다.

한바탕 전투를 벌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몰려왔다.

윤형민이 워낙 요란하게 침투한 탓에, 호텔 측에서 소리를 듣자마자 경찰에 곧바로 신고한 것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을 때 한상우는 침대에 걸터앉아 폰 게임을 하고 있었고, 윤형민은 피를 흘린 채 바닥에 기절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건 현장을 발견했을 때, 경찰들은 한상우를 제압하려 했지만 차마 달려들지 못했다.

창문과 벽, 침대 등 파손 정도를 봤을 때 한눈에 봐도 일반인이 했다고는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헌터들의 싸움.

아무리 경찰이라 하더라도 일반인이 함부로 달려 들었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실제로 체포 매뉴얼 중 용의자가 헌터일 경우, 최소한으로 대처하고 지원을 요청하라는 행동 강령이 있을 정도였다.

경찰들은 사건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머뭇거렸는데 다행히 한상우는 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침입자는 제압했어요. 저는 선량한(?) 투숙객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양손을 들고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안심시킨 다음, 경찰에게 습격당한 경위를 설명하고 어플로 숙소를 예약한 내역도 보여주었다.

그 뒤론 일사천리였다.

이후 도착한 소방관들은 다른 객실 투숙자 중 피해자가 있는지와 안전 설비를 점검했고, 경찰관들은 한상우와 윤형민의 신원을 확인했다.

“경위님. 지문 감식 결과, 이분은 A급 윤형민 헌터라고 합니다.”

바닥에 기절해 있는 윤형민을 살펴보던 경찰이 신원 조회 결과를 얘기했다.

그 말에 한상우는 피식 웃었다. 하루 사이 두 번이나 주먹을 섞은 놈인데,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윤형민…? 아, 그놈이었네요. 얼굴이 상해서 못 알아봤습니다.”

한상우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경찰에겐 익숙한 모양이었다.

“유명한 놈인가요?”

“예, 서면이랑 광안리 일대에서 사람들한테 시비 거는 걸로 유명한 헌터입니다. A급 헌터인 데다 뒷배도 있어서 저희도 어쩌지 못했었고요. 언젠간 크게 돌려받는 날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네요. 감사합니다, 헌터님.”

“아닙니다, 별말씀을.”

상대방을 때려 눕혔는데 칭찬을 듣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물의 던전 앞에서 시비를 걸었던 것도 그렇고, 막무가내로 호텔 창문으로 들어와 습격한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벌인 짓만 봐도 평소의 행적이 훤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봐야 할 경찰도 윤형민이 업보를 고스란히 돌려받은 걸로 판단할 정도였다.

한상우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윤형민을 보며 말했다.

“쌍방 폭행으로 처리될까요?”

“진술하신 게 사실이라면 그럴 확률은 적을 겁니다. 폭행법이나 자기방어 관련해서 헌터법이 따로 있거든요. 다만 윤형민이 소속된 길드에서 문제를 삼아서 민사 소송을 걸 수도 있는데, 그건 또 별개이니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봐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경찰서로 이동해야 할까요?”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헌터 사건은 헌터청 담당관에게 인계해야 해서요. 공무원 헌터 쪽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는데 곧 온다고 하네요.”

물의 던전을 시작으로 D급 던전 레이드, 군주의 성 클리어, 윤형민의 습격 등 계속해서 달려온 터라 당장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일이 커져 수습해야 했다.

다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

“아니, 뭐 하는 놈이길래 꼭두새벽에 호텔에 쳐들어와서 난동을 부려? 이게 말이 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객실 밖, 비상구 쪽에서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게다가 긴급 출동한 공무원 헌터는 한상우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어느덧 객실 입구까지 다가온 발걸음.

“대체 누가 개념 없이…. 어라? 한상우 헌터님?”

헌터청의 간판, 이은하가 훈계하며 들어오다 말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 * *

“부산에서 뵙게 되니까 왠지 더 반갑네요, 한상우 헌터님.”

“저도 이은하 헌터님을 이런 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쌀쌀한 새벽 공기가 감도는 부산 헌터청의 회의실.

이은하는 종이컵에 따뜻한 커피를 타 내밀었고, 한상우는 그녀가 건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화답했다.

경찰이 얘기했던 헌터청 담당관은 바로 이은하 헌터였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 한상우는 잘못 본 줄 알았다. 자신이 있는 곳이 서울이 아닌 부산이었고, 이런 단순한 사건에 팀장급이 출동하는 경우도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은하 헌터는 진짜였다.

한상우는 조금 전, 그녀와 대면했을 때를 잠시 떠올렸다.

-이은하 헌터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네? 저는 부모님 댁이 광안리에 있어서 쉬러 왔어요. 새벽에 사건이 발생했는데 출동할 수 있는 헌터가 없다고 사정하길래 어쩔 수 없이 온 거고요. 한상우 헌터님이야말로 여기서 뭘 하고 계세요?

-저도 잠시 휴가 온 겁니다만….

이은하의 얼굴엔 황당함이 떠올라 있었다.

아마 자신의 얼굴에도 비슷한 표정이 떠올랐겠지.

어쨌든 얼떨결에 타지에서 지인을 만나게 됐으니 나쁠 건 없었다.

경찰한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뒤, 이은하가 사건을 빠르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호텔엔 투숙객 중 피해자가 없는 걸 확인하고서 경찰과 소방관들을 철수시켰으며, 기절한 윤형민은 부산 헌터청의 유치장으로 이송하고 규정에 따라 왕진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부산 헌터청장에게 곧바로 전화해, 윤형민을 구속하고 소속 길드를 압수 수색할 것을 요청했다.

인맥의 힘이란 게 이런 것일까.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고 안면을 튼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은하는 한상우의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다.

게다가 상냥하기까지 했다.

“모처럼 휴가 오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부산까지 오셨는데 안 좋은 일에 휘말리셨네요.”

한상우를 보고 싱긋 웃으며 윤형민 때문에 망한 휴가도 걱정해준 것이다.

‘역시 이미지랑 실제는 다른 건가? 듣기로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친절하네.’

한상우는 커피를 홀짝 마시며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은하는 세간에 차갑고 도도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고, 방송이나 인터뷰 역시 얼음 같은 표정으로 딱딱하게 하는 편인데 지금은 잘 웃고, 목소리 또한 부드러웠다.

그러고 보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쌀쌀맞은 느낌은 아니었다.

한상우는 역시 실제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라 생각하며 이은하의 말에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헌터 상대 경험 좀 쌓았다고 생각하면 되죠, 뭐.”

“여유가 넘치시네요. 역시 이래서 헌터님께서 인기가 많으신가 봐요.”

“인기요? 제가요?”

“어라, 모르셨어요? 한상우 헌터님 지금 인기 폭발이에요. 대형 길드에서 헌터청 인사과로 매일 전화 온다던데요? 한상우 헌터님과 제발 연결 좀 시켜달라고. 얘기 들어보니 신대훈 과장님께서 그거 막느라 격무에 시달리시는 거 같더라고요.”

이은하 헌터가 재밌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신대훈 과장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아무래도 일전에 했던,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한상우의 얘기를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는 듯했는데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물론 신대훈 입장에선 한상우를 다른 곳에 뺏기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일 테지만, 어쨌든 덕분에 귀찮은 연락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전혀 몰랐습니다. 다음에 점심이라도 대접해 드려야겠네요.”

“후훗, 과장님 입이 귀에 걸리시겠네요. 그런데 한상우 헌터님께선 어째서 혼자 다니시는 건가요? 지금까지 보여주신 실력만 봐도 대형 길드는 그냥 들어가실 것 같은데요.”

“음, 조사의 일환인가요?”

“아뇨, 윤형민 건은 이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요.”

한상우를 바라보는 이은하의 눈이 반짝거렸다.

마치 장난감을 바라보는 강아지 같은 눈빛이었는데, 한상우는 그녀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대화를 그만두진 않았다.

이번에 이은하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거니와 충분히 에둘러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성격이 특이해서요. 남 밑에 들어가는 걸 싫어합니다.”

“아, 헌터 중에 그런 분이 종종 계시긴 하죠. 용병으로도 활동하셔서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줄 알았어요.”

“필요하면 협력도 하겠지만 특정 단체에 들어가서 규율에 얽매이는 건 원치 않아서요. 이은하 헌터님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랬군요.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혹시 헌터청에 불만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했어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신대훈 과장님과 이은하 헌터님께 감사하죠.”

신대훈 덕분에 던전 입장도 편해졌고, 귀찮아졌을 만한 일도 많이 막아줬다고 한다. 이은하도 이번 윤형민의 사건 때 도움을 받았고.

“저, 정말요? 그럼 다행이네요.”

한상우의 대답에 이은하가 눈에 띄게 기뻐했다. 쉬는 날 새벽에 일 때문에 튀어온 그녀에게 모두 고맙다고 했지만, 동료들의 말보다는 외부인인 한상우의 말이 더 와닿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은근히 편하네.’

그리고 워낙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늘 만나는 게 상사 아니면 부하라 그런가, 업무적인 관계가 없는 동년배의 헌터와 대화를 하는 게 마음이 놓였다.

모처럼이고 하니, 좀 더 친해져도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저기 한상우 헌터님. 혹시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시간이 되면 내일 좀 더 자세히 이야기라도 나눠 봐야겠다고 이은하가 생각한 순간.

그런데 그녀의 결심은 안타깝게도 일그러지고 말았다.

타다다닥-!

“이, 이은하 헌터님! 여기 계셨군요. 죄송합니다만 혹시 지금 출동 가능하십니까?”

갑자기 헌터청 직원이 달려와 회의실 문을 벌컥 열면서 다짜고짜 출동을 얘기한 것이다.

“출동이요…?”

새벽에 출동을 나와 일을 끝내고 이제 쉬려는 찰나,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난입에 마음속에서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이은하는 쏘아붙이는 대신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것으로 표현을 대신했다.

다행히도 헌터청 직원은 불편한 그녀의 심기를 눈치챘다.

“죄, 죄송합니다. 비번이신 건 알지만 워낙 급박한 사안이라….”

“후우, 일단 들어보죠. 한상우 헌터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 네. 천천히 다녀오세요.”

이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한상우를 두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만약 큰일이 아니라면 이번에는 확실하게 선을 긋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은하가 회의실로 돌아왔을 땐 그녀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생글생글 웃던 표정이 한껏 굳어졌을 뿐만 아니라 방금 회의실로 들이닥쳤던 헌터청 직원처럼 한상우에게 뜬금없이 부탁을 한 것이다.

“저기, 한상우 헌터님?”

“예?”

“아까, 필요하면 용병으로 협력도 하겠다고 하셨죠?”

“네, 그랬었죠.”

“그럼 혹시, 용병 한번 뛰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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