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7장 전쟁의 서막(1)
파직-! 파지지지직-!!
“엥? 저게 뭐야…?”
“던전에서 붉은 번개가 치는데?”
“미친, 저거 던전 브레이크 전조 현상 아니야? 저쪽 던전 포탈도 마찬가지야!”
아침의 부산 서면, 출근하던 사람들이 길을 걷다 말고 던전 포탈을 보며 경악했다.
서면 곳곳에 형성되어 있는 게이트의 포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던전 브레이크의 전조 현상인 붉은 번개가 방출된 탓이었다.
빵-! 빠아아앙-! 쿵-!!
“던전 브레이크 현상입니다!”
“모두 최대한 멀리 떨어지세요!”
서면 일대 거리에서 공무원 헌터들과 던전 보초들이 상황을 모르고 다가오는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던전 브레이크의 전조 현상은 새벽에 발견되었지만, 상황을 모르고 다가왔던 시민들은 서둘러 차를 돌리거나 뛰어서 도망쳤다.
파직-! 파지지지직-! 고오오오-!!
던전 브레이크의 전조 현상인 포탈에서 새어 나오는 붉은 번개는 안전 상식으로 자리 잡았기에 시민들은 한시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치는 게 정답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벽에 전조 현상이 조금씩 생기자마자 헌터청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 대응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 여러분, 밀지 말고 신속하게 대피하세요!”
“지원 오신 헌터 분들은 이쪽으로 와서 전투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넓은 지역에 비해 출동한 인원이 고작 십여 명밖에 되지 않아,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전조가 발생한 새벽부터 인원들을 최대한 끌어모았으나, 다른 임무로 인해 급파할 수 있는 인원은 이게 전부였다.
길드들에도 지원군을 요청했지만, 도착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곧 부산 헌터청에서 구한 지원군이 온다고 하니, 그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친,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난리야?”
“티, 팀장님, 어떻게 된 거죠?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던전이 너무 많습니다!”
서면 사냥터의 여러 던전에서 동시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있었기에 안 그래도 부족한 인원을 계속 나눠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민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현상을 해결하는 공무원 헌터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인 것이다.
전염병처럼 번져나가는 불안.
“괜찮아. 등급만 낮으면 충분히 해볼 만해.”
공무원 헌터들을 지휘하는 부산 헌터청 던전팀 제2 팀장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을 들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있는 서면 던전들의 등급을 확인했다.
[No. 465 던전 – A급]
[…….]
[No. 398 던전 – B급]
[No. 277 던전 - C급]
태블릿 화면에 표시된 지도 위로 던전들의 정보가 떠올랐다.
“미친, 열 개가 넘는데 왜 하필 등급이 높은 던전만…!”
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을 이었다.
“설마 던전을 클리어 안 한 건가?”
“그럴 리가요. 서면의 던전들은 주기적으로 클리어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던전 정보 클릭해 보시면 마지막으로 클리어한 날짜도 나올 텐데요.”
“나도 알아! 믿기 힘들어서 그런 거지. 젠장, 저걸 다 어떻게 처리하냐?”
“혹시 지원군 없을까요? 열 개의 던전이 동시에 터지면 몬스터가 거의 천 마리는 쏟아질 것 같은데요.”
확실히 평균 등급이 B급밖에 되지 않는 공무원 헌터 십여 명으로 해결하기엔 무리가 있는 규모였다.
그런데 그때, 다행히도 지원군이 도착했다.
부산헌터청에서 섭외했다는 지원군은 단 두 명으로,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안녕하세요, 긴급 지원 나온 서울 제1 던전팀 팀장 이은하입니다.”
“헉! 이, 이은하 헌터님…?”
부산 헌터청 제2 팀장은 화들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헌터청의 간판, S급 헌터 이은하가 부산 출신이라는 것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부산 헌터청에서 긴급 지원을 요청한 게 이은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휴가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은하는 헌터청 제복 코트 안에 경량 갑옷과 철제 부츠, 레이피어 등 자신의 장비를 풀세트로 착용하고 왔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던전 브레이크는 처음이네요.”
그녀의 뒤를 따라온 사내도 꽤 강해 보였다.
검은색 재킷과 청바지 등 평범한 차림에 아이템도 착용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위용이 느껴진 것이다.
자신만 이렇게 느낀 건 아닌 듯했다.
“헉, 혹시 옆에 계신 분도 랭커인가요?”
“아니. 처음 보는 얼굴인데….”
“풍기는 분위기만 봐서는 이은하 헌터님 못지 않은데요.”
옆에 있던 공무원 헌터 역시 멍한 표정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만큼 이은하와 한상우가 뿜는 아우라는 대단했는데, 정작 본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은하가 주변을 돌아보며 한상우와 대화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던전 브레이크가 생기는 건 흔치 않은데…. 처음에 보고 받았을 땐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요.”
“그러게요. 시간이 남았는데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긴 한데,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건 처음 봤어요. 몬스터가 꽤 많이 쏟아질 거 같은데 등급이 어떻게 되죠?”
“잠시만요. 물어볼게요. 팀장님, 현재 상황 말씀해 주시겠어요?”
“예? 아, 예…!”
이은하는 한상우와 대화하다가 공무원 헌터들에게 시선을 돌렸고, 팀장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며 보고했다.
“오늘 새벽, 서면의 몇몇 던전에 던전 브레이크 전조 현상이 생기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십여 명의 공무원 헌터들이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고,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던전은 확인된 것만 열 개가 넘고 등급도 최소 C급에서 최대 A급으로 높은 편입니다.”
“C급에서 A급이라…. 색깔을 보니 이제 곧 몬스터들이 쏟아질 거 같은데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것 같습니다. 병력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현재 헌터청과 연락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혹시 추가 병력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있으십니까?”
“지원 병력은 저희가 다예요. 지금 여기 말고도 던전 브레이크가 부산 전역에서 발생했거든요.”
“예? 그, 그게 무슨…?”
부산 전역에서 발생했다니?
공무원 헌터 팀장은 이은하의 말을 믿기 힘들었지만 추가로 질문할 수는 없었다.
파지지지직-!! 쿠우우웅-!!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저 멀리 대로변에 있는 던전이 굉음을 내며 마침내 몬스터들을 토해냈기 때문이다.
“옵니다, 전투 준비하세요.”
이은하는 거리로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허리춤에서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쿵- 쿵- 쿵쿵쿵쿵-!!
[낙오된 좀비 도적(B)]
[낙오된 좀비 도적(B)]
[낙오된 좀비 도적(B)]
“끄워어어어!!”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도로 위에 세워진 차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며 포효했다.
놈들은 2m 가까이 되는 키에 부패한 피부를 가졌는데 손에는 녹슨 검을 들고 있었다.
등급도 등급이지만 악취가 상당해 처치하기 곤욕일 것 같은 모습.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하기 앞서 이은하가 한상우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한상우 헌터님. 휴가 중이신데 괜히 고생시키는 것 같네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저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정말요? 말씀이라도 그렇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은하는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한상우는 진심이었다.
여러 던전을 공략하고 윤형민의 습격까지 받아 피곤하긴 했지만, 지원을 요청받고 이은하가 장비를 가지러 간 사이 살짝 눈을 붙이기도 했거니와.
[여섯 번째 업적이 개방됩니다.]
[여섯 번째 – A급 던전을 클리어하세요(0/1)]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5/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성을 클리어하면서 개방된 여섯 번째 업적을 깰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로 퀘스트를 수행하는 건 처음이지만, 미해결 던전 때 그랬던 것처럼 보스 몬스터를 처치한다면 퀘스트의 성공 조건을 달성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으니.
‘수리는 다 됐나?’
제장이에게 맡겨뒀던 화산검과 화산방패의 수리 진척도였다.
군주의 성에서 나온 직후,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제장이의 인벤토리에 넣고 하이어로 이전시켜 수리를 부탁했는데 그게 완료돼야만 했다.
지금 스탯이라면 맨손으로 싸우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지만 장기전이 될 가능성도 있고, 아무래도 검술이 익숙하기에 화산검이 있는 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한상우는 슬쩍 핸드폰을 꺼내 하이어에 접속했다.
그 사이, 이은하는 먼저 전장으로 뛰쳐나갔다.
“먼저 출발할게요. 몬스터가 많다 보니 최대한 빠르게 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힘들면 말씀하세요, 지원 가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제가 이은하 헌터님보다 더 많이 잡을 예정이라서요.”
“푸훗, 내기하자는 건가요? 돈이 많으신가 봐요.”
“제가 근래 좀 벌어서요.”
“좋아요. 지는 사람이 저녁 사는 걸로 하고… 이따 봬요. 잠깐 수다 떠는 사이에 몬스터가 너무 많이 나왔네요.”
타앗-!
갑작스럽게 내기가 성사된 후, 이은하는 땅을 박차 도적 좀비들을 향해 달려갔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른 던전에서도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수가 수십 마리를 넘어 수백에 달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팀장님, 가시죠!”
“그래, 아침 운동 제대로 한다고 생각하자!”
공무원 헌터들은 일찌감치 뛰쳐나가 싸우고 있었다.
한상우도 슬슬 움직여야 했기에 하이어에 접속해 제장이의 인벤토리를 확인해봤다.
다행히도 수리가 끝났는지 화산검과 화산방패의 내구도 수치가 100%였다.
‘좋아, 한번 실험해볼까?’
[캐릭터 소환 : 제장이]
한상우는 보는 사람이 없도록 빈 버스에 제장이를 소환한 다음, 인벤토리에서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꺼내 손에 쥐었다.
수리는 완벽 그 이상이었다.
부서진 부분이 복구된 건 물론이고, 처음 만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칼날과 방패에서 번쩍번쩍 광이 났다.
한상우는 곧바로 전언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생했다, 제장아. 완벽해.’
-아닙니다, 항상 최전선에서 싸우시는 군주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수리하면서 좀 더 군주님의 손에 맞게 디자인을 바꿨으니 마음껏 휘둘러 주세요!
[캐릭터 : 제장이가 꼬마 대장장이의 용기를 사용합니다.]
[스킬 : Lv 1. 꼬마 대장장이의 용기 – 1분 동안 제작 아이템 사용자의 능력치를 20% 상승시킵니다.]
보는 눈이 많아 버스 안에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제장이는 전언과 버프 스킬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상우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음성과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제장이가 수리해준 화산검을 휘둘러 등 뒤에서 기습해오던 몬스터의 목을 갈라버렸다.
“끄웨에엑…!!”
쿵-!!
단말마와 함께 쓰러지는 신형.
[낙오된 좀비 도적(B)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외형도 외형이지만 성능 역시 완전히 복구됐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급소를 베어 데미지가 더 들어간 것도 있지만, 제국기사단의 검술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B급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린 것이다.
제장이의 말마따나 확실히 손잡이가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좋아, 시작해볼까.”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이 느낌 그대로라면 수백, 수천 마리도 거뜬히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상우는 새로워진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들고 전방의 몬스터들을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