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7장 전쟁의 서막(2)
“끄워어어!”
“캬아아아악…!!”
몬스터로 득실거리는 대로.
한상우가 달려나가자 좀비 도적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반겨주었다.
앞서 이은하가 거리에 있던 놈들을 한 차례 정리하고 지나갔지만 길 위의 포탈에서 추가로 나타났다.
짧은 시간에 열 마리는 넘게 불어난 수.
“크윽! 이 더러운 놈,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
저 멀리, 둔기를 든 공무원 헌터 한 명이 좀비 도적 한 마리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파앗-! 푹-! 서걱-!!
공무원 헌터의 위기를 감지하자마자, 한상우는 곧바로 지원에 들어갔다.
[침투]로 거리를 좁힌 다음, [반월 베기]로 목과 심장 등 갈라 일격에 처치한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조심하세요.”
한상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좀비 도적 세 마리를 가볍게 상대하고 있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잡몹을 잡는 건 그간 쉬지 않고 던전을 돈 덕분에 완전히 손에 익었으니까.
“캬아아악!!”
쉬익-!!
좀비 도적들이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기 위해 허리춤에 메어 둔 작은 그물을 던졌지만 통하지도 않았다.
한상우는 날아오는 그물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던 좀비 도적까지 베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검로.
“B, B급이라고 하지 않았나…?”
둔기를 든 공무원 헌터는 한상우의 활약에 싸우던 것도 잠깐 멈추고 입을 쩍 벌렸다.
직접 좀비 도적을 상대하고 있다 보니 한상우가 얼마나 강한지 확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상우의 활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잠깐 숨을 고를 법도 하건만, 좀비 도적들을 모두 벤 후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간 것이다.
그리고.
“흐읍…!!”
이번엔 다른 던전에서 튀어나온 놈들에게 접근했다.
[거대 흡혈박쥐(C)]
[거대 흡혈박쥐(C)]
사람들의 피를 빨기 위해 낮게 날아다니는 몬스터였다.
한상우는 단번에 거리를 좁힌 다음,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반월 베기]로 흡혈박쥐의 몸을 갈랐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몬스터라 [분화]나 [만월 가르기]를 쓸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차나 건물 등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최대한 폭발력이 적은 스킬을 사용했다.
도시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경우, 몬스터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원거리 스킬보다 효율이 떨어졌지만, 좀비 도적보다 약한 C급 몬스터였기에 처치하는 데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촤악-!!
“끼에익!!”
[거대 흡혈박쥐(C)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단말마와 함께 공중에서 반으로 갈라져 떨어지는 흡혈박쥐들.
‘좋아, 독존이 제대로 발동되는군.’
한상우는 허공에 뜨는 메시지들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헌터들이 근처에서 싸우고 있지만 던전 안이 아니기에 파티로 인식되진 않았다.
몬스터 홍진성을 잡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깥에서는 몬스터의 막타를 칠 경우 자신이 혼자 잡은 것으로 판정되는 모양이었다.
열심히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좀 더 속도를 올려볼까?’
한상우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화산검을 꽉 쥐고 땅을 박찼다.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됐다.
공중몹이든 지상몹이든 눈에 보이는 몬스터라면 [침투]와 [반월 베기], [급소 찌르기] 등을 아끼지 않으며 대로를 위주로 종횡무진했다.
골목길은 들어가지 않았다.
서면에 오기 전에 지도를 살펴보긴 했지만 지형을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골목의 던전은 공무원 헌터들과 이은하가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한상우는 대로를 뛰어다니다 점차 골목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길이 점점 익숙해지기도 했거니와 좀비 도적과 흡혈박쥐 등 대로의 몬스터는 나오는 족족 잡다 보니 어느 순간 씨가 마른 것이다.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양이 한상우의 사냥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던전 브레이크의 끝을 알리는 보스 몬스터 등장까지는 한참 남은 것 같았기에 한상우는 대로 옆의 골목까지 진출했다.
[잔혹한 개미 전사(B)를 처치했습니다.]
[암흑의 애벌레(C)를 처치했습니다.]
그야말로 경험치 파티였다.
한상우는 닥치는 대로 몬스터들을 처치했다. 공무원 헌터들과 대치하던 몬스터들도 지나가는 길에 베어버렸다.
“가, 감사합니다, 헌터님!”
“속도를 올려! 시내로 가지 못하게 막아!”
급박한 상황임에도 도움을 받은 공무원 헌터들은 잊지 않고 한상우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한상우가 경험치 욕심을 낸다기보다는 던전 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한상우의 초점은 경험치 쪽에 좀 더 쏠린 게 사실이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지력 +1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체력 +1을 획득합니다.]
서면 일대를 돌며 몬스터를 처치한 덕분에 레벨이 계속해서 올랐기 때문이다.
던전 브레이크의 개수를 생각하면 사실상 던전 여러 개를 한 번에 돌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한상우로선 멈추지 않고 사냥할 수밖에 없었는데, 남들의 눈엔 열정을 불태우며 시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걸로 보이는 듯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가장 많이 일어난 구역에서 활약하던 이은하가 한상우를 돌아보며 장난투로 말했다.
“한상우 헌터님,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 아니에요?”
“용병이니까요. 활약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하셨으니 최대한 많이 잡을 겁니다.”
“그것까지 생각하신 거예요? 저녁내기에 인센티브까지…. 조만간 부자 되시겠는걸요?”
“그럼 바빠서 이만. 재벌 돼서 뵙도록 하죠.”
한상우는 이은하의 농담을 받아친 뒤, 다시 큰길로 향했다.
골목을 한 바퀴 도는 사이, 던전에서 몬스터가 나올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정확했다. 아니, 더 좋았다.
조금 전의 사이클대로 좀비 도적들을 처치하고 이동하자 보스 몬스터가 나오고 있었다.
[대왕 흡혈박쥐(B)]
“키에에에엑!! 핏! 핏!”
기존의 흡혈박쥐보다 훨씬 거대하고, 입에서 독침까지 쏘는 녀석이었다.
등급은 B급이지만 공중에서 공격하는 탓에 B급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타입이었다.
“헌터님, 도와 드리겠습니다!!”
대로를 맡고 있던 둔기를 든 공무원 헌터가 한상우 혼자서 상대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좀비 도적을 베어 넘긴 후에 합류하려 했다.
그러나.
한상우에겐 도움이 필요 없었다.
공무원 헌터가 움직이기도 전에 대왕 흡혈박쥐의 아래로 파고든 한상우가, 위를 향해 화산검을 휘두른 것이다.
공격이 닿기엔 터무니없이 먼 거리.
하지만 한상우가 화산검을 휘두른 순간.
서걱-!
“카아악!!”
대왕 흡혈박쥐는 공중에서 두 동강이 났다.
[만월 가르기]
[대왕 흡혈박쥐(B)를 처치했습니다.]
화산검의 궤적을 따라 생성된 초승달 모양의 오러가 보스 몬스터를 가르고 하늘로 솟구쳤다.
한상우가 공중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공무원 헌터에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보스까지 처치했으니, 이 던전에서는 더 이상 몬스터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여기 안쪽 골목길은 제가 맡도록 하죠. 좀비 도적 보스 몬스터 나오면 불러주세요.”
“네, 넵, 알겠습니다!”
C급 보스 몬스터를 일격에 갈라버리는 힘에 공무원 헌터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한상우는 상관도 아니고 그저 지원하러 온 용병일 뿐인데, 그 카리스마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것이다.
한상우는 대로를 정리한 뒤, 다른 던전 브레이크는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A급 보스 몬스터가 있으면 좋겠는데.’
몬스터들을 잡아 레벨업을 하는 건 좋았으나 업적도 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던전 브레이크 방어 때 얘기했던 A급 던전은 이은하가 전담하고 있어 막타를 먹는 건 쉽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웬 폭발음과 함께 비명이 들려왔다.
쩌어어엉-! 쿠구구궁-!
“꺄아아악!!”
“쳇!”
인원이 부족한 만큼 구역을 완전히 커버하지 못해 계속 이동하면서 수비를 하고 있었는데, 공무원 헌터가 배치되지 않은 구역에서 일이 터진 듯했다.
한상우는 곧바로 이동했다.
그러자.
[정예 부패 산적(A)]
“크르흐….”
“저, 저리 가, 이 자식아!!”
“흑흑, 흐으으윽…!”
커다란 몸집의 A급 몬스터와 젊은 여자를 지키는 던전 보초가 눈에 들어왔다.
창을 들어 몬스터를 겨누긴 했으나 겁에 질린 표정과 헌터라고는 보기 힘든 어정쩡한 자세.
아무래도 도망치지 못한 미각성자 던전 보초인 듯했는데,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크라아아아!!”
정예 산적이 못이 박힌, 거대한 몽둥이를 치켜 들었는데도 던전 보초와 여인 모두 아무런 대처도 못 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두 사람은 몽둥이에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상황.
콰아아아앙-!!
하지만 그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다.
[분화]
정예 산적이 몽둥이를 내려치려던 그 순간, 옆에서 날아온 거대한 불덩이가 녀석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헌터님!”
“흑흑, 감사합니다!”
던전 보초와 여인은 자신들을 구해준 헌터에게 감사를 표했으나 몬스터를 날린 장본인, 한상우는 둘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대신.
파앗-! 서걱-!!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 [분화]에 죽지 않은 정예 산적의 숨통을 끊으며 말했다.
“대로 쪽으로 도망치세요. 거긴 몬스터가 없을 겁니다.”
“조, 조심하세요, 헌터님!!”
두 남녀는 감사 인사가 아닌 당부를 남기며 서둘러 도망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르….”
[정예 부패 산적(A)]
[정예 부패 산적(A)]
[정예 부패 산적(A)]
몬스터를 한 마리 처치하긴 했지만 근처 포탈에서 정예 산적들이 추가로 나왔기 때문이다.
무려 스무 마리를 훌쩍 넘었다.
결코 B급 헌터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지만, 한상우는 아무렇지 않았다.
몬스터를 한데 모아 잡는 건 일상이거니와 일전에 루미나스의 함정에 빠져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한 번에 상대해 본 적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우선 몬스터들의 등급이 A급이기도 했거니와.
“키케에에엑!!”
“캬아아아악!!”
지성이 없는 몬스터임에도, 정예 산적이라는 이름에 맞게 진형을 갖춰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거기다 육중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까지.
쿠우우웅-!! 까아아앙-!!
“쳇…!”
한상우는 공격을 감행하는 대신 몸을 틀고, 화산방패로 [용암 전개]를 사용하며 정예 산적들의 공세를 막아냈다.
‘제길, 너무 만만하게 봤나.’
사실 지금까지 잡몹을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가 얼마든 [반월 베기] 한 번이면 일격에 모두 처치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A급부터는 달랐다.
공격부터 진형을 갖춰 전술적으로 움직일 뿐만 아니라 일격에 죽지도 않았다.
잡몹들의 공세가 펼쳐지는 와중, 틈을 파고들어 정예 산적의 가슴을 베었지만 처치하지 못한 것이다. [분화]로 한 방에 보내지 못한 게 우연이 아니었다.
최소 두 번, 급소가 아니라면 세 번은 공격에 성공해야만 소멸시킬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난이도.
그러나 해결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일격에 죽지 않는다면 두 번, 세 번 공격하면 되므로.
한상우는 [침투]와 [반월 베기]를 반복하고 골목길을 누비며 빠르게 정예 산적들을 정리해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슈화아아아악-! 쿵-! 쿵-!
일격에 처리할 수 없는 만큼, 한상우가 몬스터를 처치하는 속도보다 포탈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속도가 더 빨랐다.
“캬아악…!”
어느덧 수십 마리까지 불어난 정예 산적의 수.
몬스터가 늘어날수록 몸엔 더욱 많은 생채기가 쌓여갔다.
“후우, 미치겠군.”
한상우는 잠시 뒤로 물러난 후, 주위를 둘러봤다.
마음 같아선 땡길거야나 다크어둠을 소환하고 싶었지만 건물의 옥상을 올려다보니 몇몇 시민들이 공포에 떨면서도 핸드폰으로 던전 브레이크 현상을 찍고 있었다.
대놓고 [캐릭터 소환]을 사용했다간 전국에 자신의 능력이 탄로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차선책이 필요한 상황.
그때, 머릿속으로 한 가지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한상우는 화산검을 들어 주변을 에워싼 정예 산적들을 겨누었다.
그리고.
“덤벼, 새끼들아. 대신, 여기가 너희 무덤이라는 걸 알아둬야 할 거다.”
[압도]
지금껏 감추었던 군주의 위용을 방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