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63화 (63/169)

제63화

7장 전쟁의 서막(5)

“상황 보고해.”

“처, 청장님 오셨습니까!”

해운대 고급 아파트 앞, 각이 잘 잡힌 헌터청의 제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거리를 가득 메운 몬스터와 헌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근처에서 몬스터와 혈투를 벌이던 공무원 헌터 중 직급이 높아 보이는 자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상택 청장님.”

“상황 보고하라니까.”

“네, 넵! 오늘 새벽 3시경, 일부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 전조 현상이 발견돼 인원들을 출동 시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추가로 던전 브레이크가 동시에 다발적으로 발생해서….”

“일정 관리는 제대로 된 거 맞아? 클리어 주기 확인했어?”

“예. 부산 던전은 관광객들도 많아서, 클리어 주기는 어긋난 적이 없습니다.”

“하아….”

부산 헌터청장, 오상택은 뒷골을 세게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에는 왠 양아치 헌터가 호텔에서 난동을 부리지를 않나.

멀쩡한 던전들이 갑자기 제멋대로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질 않나.

밤새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급하게 상황 보고를 받고 와 보니 이 꼴이다.

“파견된 인원은 어느 정도 되지?”

“지, 지금은 열 명이 조금 넘는….”

“뭐? 열 명? 미쳤냐! 열 명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막겠다는 거야! 인원이 부족하면 타 길드나 타 지역 헌터청에 지원 요청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죄송합니다!”

공무원 헌터는 불같이 화를 내는 오상택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를 바득 갈 수밖에 없었다. 공무 목적을 위해 타 헌터청 또는 길드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헌터청장의 독립적인 권한이다.

애초에 던전 브레이크 전조 현상이 발생해서 지원을 요청했음에도, 고작 두 명만 보내주고 연락을 받지 않은 것은 오상택 본인 아니었던가?

과거 헌터 시대 초창기, 세계가 멸망의 위기를 겪었을 때는 제법 활약했고 그 공로로 부산 헌터청 청장까지 오른 오상택이다.

하지만 세계가 평화로워지면서 실전에서 멀어지자 예전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점점 옅어지며 권세에 찌들었고, 그 결과 지금의 참사가 발생했다.

그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오상택의 전화기가 울렸다.

-처, 청장님, 지금 부산 전역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파악된 것만 30개에 달해 사태가 심각합니다!

“뭐? 해운대만 터진 게 아니라고?”

-그, 그렇습니다. 다대포부터 부산역, 서면, 노포동에 이르기까지 30개에 달하는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습니다. 청장님 명령으로 타 지역 및 길드에도 지원을 요청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젠장, 무슨 말도 안 되는…!”

오상택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장 해운대에 기어 나온 몬스터의 수만 해도 엄청났는데 부산 전역이라니.

정확하게 집계는 할 수 없어도 그 정도 던전 브레이크라면 수천에 달하는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이건 대헌터시대 초창기에 버금가는 긴급상황이었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참혹한 옛 기억.

짜증에 잠식돼 있던 눈동자가 날카로워지며, 오상택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본청에 상황 보고하고, 대구 헌터청에 긴급 지원 요청해. 그리고 파견 나간 팀장들에겐 몬스터 처치를 최우선으로 하되 역부족일 경우 남포, 서면, 동래 등 주요 거점으로 후퇴하라고 전파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청장님!

귀찮음을 드러내던 지금까지와 다르게 오상택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통화를 끊은 후, 앞서 대화하던 공무원 헌터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전투 벌이고 있는 헌터들, 전부 내 뒤로 후퇴하라고 지시해.”

“예? 처, 청장님 그랬다간 몬스터들이 주거 지역으로 쏟아질 겁니다!”

“아니, 그럴 일은 없다. 한 번에 전부 쓸어버릴 거니까.”

“……!”

오상택의 말에 공무원 헌터가 입을 쩍 벌리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곤 말을 이었다.

“힘을 쓸 생각이시군요. 하지만 그랬다간 분명 건물들에 피해가….”

“근처에 시민들이 없는지만 확인해.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일어난다. 건물 몇 개 부서지는 걸로 막을 수 있으면 천만다행인 거야.”

이은하와 달리 오상택은 추가적인 피해를 감당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시민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주저하지 않고 큰 기술을 쓸 준비를 했다.

“아, 알겠습니다. 전원 퇴각하라!!”

공무원 헌터는 오상택의 지시에 따라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헌터들을 피신시켰다.

그 사이, 오상택은 허리춤에 채워뒀던 검을 뽑아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얼마 만에 쓰는 것일까.

부산 헌터청장이 된 뒤로는 레이드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실로 오랜만에 뛰는 현장이었다.

그러나 현장을 마주하고, 몬스터들의 피 냄새를 맡자 대헌터시대 초창기에 다져뒀던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오상택은 양손으로 검을 쥔 뒤, 거리를 점령한 몬스터들을 노려봤다.

“캬코옥!”

“그파아!!”

[용맹한 드라코닉 패잔병(A)]

[개조된 검투사(B)]

몸집은 거대하고 기세는 흉폭하지만, 잡몹에 최대 등급이 A급이라 자신의 가장 강한 공격 스킬을 쓴다면 일격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장님, 투입됐던 헌터들이 모두 퇴각했습니다.”

때마침 현장에 있던 헌터들도 후퇴해 극소수의 인원만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었다.

이제 환경은 모두 갖춰졌다.

“흐읍…!!”

오상택은 전신으로 순환시키던 마나를 검으로 옮겨 스킬을 사용하려 했다.

그런데 마나를 응집시킨 검을 휘두르려던 그때.

스으윽-

이변이 발생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하던 거리가 고요해지더니, 해가 떠오르는 아침임에도 도시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그리고.

샤아아아아악-!!

털썩-! 털썩-!

저 멀리, 대로 끝에서부터 몬스터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부터 시작해 열, 백, 천 마리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몬스터가 낫에 베이는 갈대처럼 목과 가슴에서 피를 흩뿌리며 우수수 쓰러졌다.

그러자.

“오오, 청장님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많은 몬스터를 일격에 처치하시다니…!”

옆에서 보좌하던 공무원 헌터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환호하는 건 뒤로 물러나 있던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이 보이지도 않았어!”

“역시 대헌터시대의 영웅이야!”

“건물은 피해가 하나도 없고, 몬스터만 잡았어!”

다들 처음엔 오상택의 명령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과거의 영웅이라고는 하나, 사람은 현재의 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남는다는 것이 오판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격에 몬스터 수백 마리를 썰어 버리다니.

같은 헌터로서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는데, 정작 오상택은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된 건지? 아직 공격 안 했는데…?’

검을 뽑긴 했지만 갑자기 스산한 기운이 맴돌아 잠시 대기하고 있었는데, 몬스터들이 알아서 픽픽 쓰러졌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그러나 다른 헌터들과는 다르게 오상택의 시야에 들어온 게 있었다.

쓰러지는 몬스터들 사이로, 웬 천 자락이 휘날린 것이다.

쿵-!

오상택은 곧장 앞으로 뛰쳐나가며 그 흔적을 추격했다.

“처, 청장님?”

공무원 헌터가 불렀지만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 있다!

오상택은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파도처럼 쓰러지는 몬스터 떼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다른 헌터들이 보기엔 직접 적들을 처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쳤다! 혼자서 몬스터 수백 마리를 쓸어버리고 계셔!”

평소 오상택을 뒤에서 욕하던 헌터들마저 진심 어린 존경을 담아 존댓말까지 쓰고 있었다.

그러나 오상택에겐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거리에서 몬스터 사이를 휘젓는 존재를 쫓기 바빴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면서 몬스터들을 도륙하다니.

S급? SS급?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헌터일 게 분명했다.

오상택은 열심히 달린 끝에 몬스터를 몰살시키는 신형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자, 잠시만…!”

그의 정체를 묻기 위해 있는 힘껏 외쳤지만, 신형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

퍼펑-!!

밀집되어 있던 몬스터들을 모두 처치한 뒤, 말없이 연막탄을 터트리고 사라질 뿐이었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정체불명의 인물.

그러나 결과는 분명히 존재했다.

긴급 사태를 선포했을 정도로 거리를 가득 메웠던 몬스터들이 모두 처치되어 서서히 먼지로 변하고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부산 헌터청장 오상택은 옅어지는 연막과 한순간에 정리된 거리를 돌아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 * *

헌터들이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가 있다.

만약 모든 던전이 동시에 터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망상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피해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클 것이기 때문이다.

전멸, 혹은 대참사.

무수히 많은 헌터가 얘기했었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모든 던전이 동시에 터진다면 굉장히 많은 이들이 희생될 거라고.

일반인만 죽거나, 헌터들까지 전멸하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렇게 결론지어졌다.

실제로 그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 대헌터시대 초창기에는 엄청난 참사가 발생했다.

그런데.

부산에서 사상 초유의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수십 개의 던전이 동시에 터졌고, 그걸 해결할 헌터의 수는 부족했던 것이다.

많은 술자리에서 오갔던 얘기대로라면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350만 명의 부산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 상황.

그러나 다행히도 부산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 사태는 무사히 해결됐다.

부상자는 꽤 나왔지만 사망자 한 명 없이, 사건 발생 반나절 만에 모든 던전 브레이크가 클리어된 것이다.

기적.

사람들은 이번 일을 딱 한 단어로 정의했다.

거리를 점령했던 몬스터들이 어느 순간 허물어지며 소멸했기 때문이다.

<[속보] 부산 전역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 반나절 만에 해결돼.>

<도시에 가득했던 몬스터들, 갑자기 쓰러지면서 소멸해.>

<곳곳에서 목격담 쏟아지는 목격담. 몬스터를 처치한 해결사는 사람이었다.>

<부산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한 헌터는 누구?>

포탈 뉴스엔 온통 부산 던전 브레이크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동영상 플랫폼에도 시민들이 찍은 영상이 계속해서 올라왔는데, 다들 어떻게 해결됐는지 구체적인 경위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보기엔 멀쩡했던 몬스터들이 누군가에 의해 순식간에 소멸한 걸로 보일 뿐이었으니까.

몇몇 시민이 촬영한 핸드폰 동영상에 누군가 몬스터 떼를 쓸어버리는 모습이 찍히긴 했지만 거리가 멀고, 몸집이 큰 몬스터에 가려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미궁 속으로 빠져 버린 해결사의 정체.

하지만.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이은하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이번 사태에 큰 공을 세운, 기적의 장본인을.

‘진짜 이 사람, 정체가 뭘까?’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부산역 대합실.

이은하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앉은 인물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도륙했던 그는.

“음, 이번 뽑기도 꽝이라니.”

폰으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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