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64화 (64/169)

제64화

7장 전쟁의 서막(6)

한상우.

C급 레벨에 B급 스탯, A급 공격 스킬을 가진 종합 등급 B급 헌터.

데이터는 정확하다.

헌터청에서 등급 측정 당시, 이은하도 옆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B급 헌터라고 하기엔 너무 강해.’

오늘 보여준 모습은 B급이라 볼 수 없었다. 최소 A급 이상.

공격 스킬은 이미 A급 판정을 받았지만, 그 외에 종합적인 신체 능력이나 반사 신경, 판단력 등을 봤을 때 스탯 역시 B급이 아니라 A급 이상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혹시 그사이에 레벨이 오른 건가? 아냐, 등급이 바뀔 정도로 성장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리는데…. 아이템이 좋아진 건가?’

이은하는 한상우를 바라보며 얼마 전, 헌터청에서 마주쳤던 순간을 떠올려봤다.

그러나 아이템의 외형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은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한상우가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곤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시죠?”

“아! 그, 그게… 혹시 아직도 부산 헌터청에 가실 생각이 없으신가 해서요. 아깝잖아요. 열심히 싸우셨는데 보상도 마다하시고. 친구분들도 그렇고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마주친 눈빛.

이은하는 한상우의 물음에 서둘러 변명했는데 다행히 어색하진 않았다.

재빠르게 둘러대기도 했거니와 주제 역시 아까 얘기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한상우도 이은하의 말에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괜히 갔다간 귀찮아질 거 같아서요. 기자들도 몰려들 테고, 쉬지도 못할 테니까요. 신경 써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친구들도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산 전역에서 일어난, 사상 초유의 던전 브레이크 현상.

자칫 잘못했다간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희생자가 나올 수 있었지만, 한상우와 그의 친구들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서면의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한 이후 한상우는 금발 헌터와 꼬맹이를 다른 지역으로 보냈는데, 그들이 지나가자 몬스터들이 빠른 속도로 소멸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한상우가 얘기한 금발 헌터의 친구가 활약했는지 신원미상의 인물에 의해 던전 브레이크가 해결됐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왔다.

헌터청 간부들과 언론에서는 갑자기 몬스터들이 정리되자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는데, 이은하는 한상우의 설명 덕분에 알고 있었다.

다만 부산 헌터청에 보고하지는 않았는데, 한상우가 원치 않기도 했거니와 괜히 보고했다간 일이 커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한 인물들의 신원 추적부터 취재까지.

부산 헌터청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온갖 정보를 요구할 게 분명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들의 정체가 아니라 던전 브레이크의 해결이었다.

그리고 괜히 한상우의 친구들을 귀찮게 했다간 나중에 또 도움이 필요할 만한 상황에서 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은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한상우를 따라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이런 특이사항에 대해서는 보고가 원칙이긴 하지만, 더 큰 공익을 위해 묵혀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은하는 그 정도의 권한과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다른 헌터와는 달라. 엄청난 실력자들을 알고 있기도 하고.’

업무적인 부분을 떠나서 인간적으로도 흥미가 생겼다.

대부분의 헌터의 꿈은 부귀영화와 입신양명인데, 한상우는 반대로 겉으로 능력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아이템으로 치자면 흔치 않은 레어템 같다고 해야 할까.

이은하는 한상우의 대답에 옅게 웃으며 말했다.

“신기하네요. 보통은 어떻게든 실적을 부풀려서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 하던데. 한상우 헌터님은 좀 특별하신 것 같아요.”

“그런 건 아닙니다. 저도 돈 좋아해요. 다만 보상은 이미 충분히 받아서 괜찮은 겁니다.”

“네? 아직 입금은 안 됐을 텐데요?”

“돈 말고 다른 거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보상으로 뭔가 준 게 있던가?

이은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한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야 한쪽에 남아 있는 메시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캐릭터 : 다크어둠이 설산의 오우거(A)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용암의 골렘(C)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절뚝거리는 심연의 병사(B)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제장이가 강철 가재(C)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던전 브레이크 사태를 해결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캐릭터 소환]을 사용할 당시, 한상우는 고민했었다.

서면에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만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부산 전역에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를 모두 해결할 것인가?

능력은 있었다.

전달받기로, 던전 브레이크 징조를 보였던 던전은 서른 개 남짓.

등급도 최대 A급으로 S급 이상은 없었으니 만렙인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활약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두 캐릭터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노출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죽음을 외면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어차피 [캐릭터 소환]의 비밀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기를 때까지만 감추기로 마음먹기도 했으니까.

결론을 내린 한상우는 곧바로 실행에 나섰다.

서면과 근방의 몬스터들은 땡길거야와 제장이를 활용해 처치하고, 나머지 지역은 기동력이 뛰어난 다크어둠을 이용해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수십 개의 던전 브레이크를 단 세 명의 캐릭터로 해결한다는 발상은 얼핏 들으면 무리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곧 현실이 되었다.

땡길거야와 제장이가 열 개가량의 던전을 클리어하자 다크어둠이 나머지 스무 개가 넘는 던전을 혼자서 정리해버린 것이다.

하이어의 딜러 직업 중에서도 딜량 1위를 자랑하는 암살자가 현실에서 활약하자 혼자서 던전 수십 개를 쓸어버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 결과.

[상태창]

[이름 - 한상우]

[레벨 - 136]

[고유 특성 - 하이어의 군주]

<스탯>

[힘 : 228] [민첩 : 201] [지력 : 282] [체력 : 244] [마력 : 335]

<스킬>

<특성창 열기>

<장비>

단숨에 35레벨이 올랐다.

몬스터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던전 수십 개에 달하는 경험치가 한꺼번에 들어온 것이다.

던전의 랭크가 높지 않았던 것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금 이보다 더 좋은 보상이 어디 있을까.

멀게만 느껴졌던 150레벨 달성이 한 발 가까워지자 없던 힘이 절로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하여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한 후, 한상우는 부산에 남아 인센티브를 협상하는 것보다 서울로 올라가는 걸 택했는데 이걸 이은하가 알 리는 없었다.

“비밀입니다. 다음에 친해지면 알려 드릴게요.”

“저희 세 번이나 봤는데 친한 거 아닌가요?”

“그걸 세고 계셨어요? 그리고 친하다기엔 서로 전화번호도 모르지 않나요?”

“네? 번호요? 지금 드릴 테니 빨리 알려주세요!”

이은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상우에게 폰을 내밀었다.

‘뭐지, 농담 아니었나.’

예상치 못한 전개에 한상우는 볼을 긁적일 따름이었다.

“…진짜 주시게요? S급 헌터의 연락처는 극비 사항이라고 들었는데요.”

“상관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사람 궁금하게 만들고 도망가는 거거든요?”

이은하는 한상우에게 폰을 내밀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얘기했다.

그러나 태연한 겉모습과 다르게 그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애쓰는 중이었다.

타인에게, 그것도 남자에게 먼저 번호를 물어보는 건 이은하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처음인 것치고는 자연스럽게 상황이 조성된 데다 명분도 있어 금방 성공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은하의 기대와 다르게 한상우의 번호를 받는 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은하야…!”

누군가 갑자기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탓이었다.

부산역 대합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이은하는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랐다.

“외, 외삼촌…?”

50대 초반의 남성이 여러 명의 수행원을 대동한 채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남성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은하의 외삼촌이자 부산 헌터청장인 오상택이었다.

이은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불어.

한상우도 그녀에게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다. 오상택이라면 대헌터시대 때도 크게 이름을 날렸기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 헌터청장님이 외삼촌이셨어요?”

“네? 아, 그게….”

한상우의 물음에 이은하는 우물쭈물했다.

극비 사항까진 아니고 주변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었는데 뜬금없이 이런 곳에서 밝히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이은하의 외삼촌인 부산 헌터청장, 오상택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을 건 탓이었다.

“갑자기 서울로 간다니 무슨 소리냐, 은하야!”

“여긴 왜 오셨어요? 사건 현장 정리하셔야죠, 청장님.”

이은하의 입에선 사무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괜찮은 흐름이었는데 갑자기 오상택이 나타나서 분위기를 망쳤기 때문이다.

다만 당사자는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조카의 차가운 태도에 당황할 따름이었다.

“네, 네가 서울로 간다고 하니 시간 내서 마중 나온 거다. 무사한지 얼굴도 확인할 겸. 그런데 왜 이렇게 급하게 가는 게냐?”

“상황이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야죠. 어차피 여기 있어봤자 일만 시키실 거잖아요?”

광안리 헌터 난동 사건부터 던전 브레이크까지.

이은하는 휴가차 부산에 내려왔지만 일을 한 기억밖에 없었다.

쌀쌀맞은 말투에 더해진 묵직한 일침.

“하, 하하! 그건 네가 워낙 일을 잘하니 그런 게지. 가까이 있기도 했고.”

그녀의 말에 오상택이 비지땀을 흘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

“한데 이분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이은하의 옆 의자에 앉아 있는 한상우의 존재를 그제야 파악한 것이다. 이에 이은하가 한상우를 소개했다.

“이번에 저처럼 부산에 휴가를 왔다가 용병으로 뛴 한상우 헌터님이세요. 서면 던전 브레이크 해결에 큰 공을 세우셨어요.”

“아, 은하와 함께 도와주셨다는 그분이시군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부산 헌터청장 오상택입니다.”

“B급 헌터, 한상우입니다.”

오상택이 청하는 악수에 한상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음…?’

오상택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한상우라는 헌터는 분명 자신을 B급 헌터라고 소개했는데,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찮았다.

게다가.

‘B급? 아니, 이건 최소 A급 이상이야. 그리고 아까 해운대에서 봤던 그 어두운 기운도 약간 느껴지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미약하긴 해도 해운대 던전 브레이크에서 뒤쫓았던 헌터의 기운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뭔가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오상택은 실마리를 찾으려 애썼지만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해운대에서 봤던 헌터의 기운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악수를 하는데 손을 너무 오래 잡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길어지는 악수에 한상우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오상택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맞잡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아쉽다는 눈빛으로 이어서 질문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느 길드 소속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소속된 길드는 없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혹시 부산 헌터청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혹시 공무원 헌터의 봉급이 별로라서 그런 겁니까? 그런 거라면 내 어떻게든 노력을….”

잠깐 악수를 한 게 전부였지만 손을 타고 전해지는 기운에 오상택은 한상우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영입을 제안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좋으면 남들이 보기에도 좋다고 했던가.

자신만 몰랐지 한상우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은하가 입을 가리고 옅게 웃으며 말했다.

“외삼촌, 한상우 헌터님은 대길드의 제안도 거절하는 분이에요. 회유는 소용없으니 그쯤 하시고 놓아주세요.”

“허허, 엄청난 분이셨군. 역시 내 안목은 안 죽었다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상우 헌터님, 이번 일도 도와주셨으니 다음에 부산 오시면 저한테 한번 연락하십시오. 내 국밥이랑 밀면부터 회까지 부산 관광 한번 제대로 시켜드릴 테니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걸 다 먹으면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한상우는 구태여 사족을 달지는 않았다.

부산에 다시 내려올 일이 있을까 싶었기에.

그리고 때마침.

-6시 20분, 서울로 향하는 기차가 곧 출발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늦지 않게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며 자리를 뜰 명분이 생겼다.

“그럼 저는 이만…. 던전 브레이크 후속 조치도 힘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가볼게요, 외삼촌.”

한상우가 기차가 있는 플랫폼으로 이동하자 이은하도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래, 조심해서 가거라!”

짧은 만남이 아쉬웠지만, 오상택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보냈다.

한상우의 말대로 던전 브레이크 후속 조치부터 발생 원인 조사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때 오상택의 마음을 눈치챈 듯 수행원 중 한 명이 옆으로 말했다.

“저 청년이 꽤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청장님께서 직접 영입을 제안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그런가? 잠깐이긴 하지만 꽤 큰 가능성이 느껴졌어. 그리고 만약 내 느낌이 맞는다면 저 헌터는….”

오상택은 이은하와 함께 대합실을 빠져나가는 한상우의 뒷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상당한 거물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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