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65화 (65/169)

제65화

7장 전쟁의 서막(7)

“부산에 일으킨 강제 던전 브레이크가 반나절 만에 해결됐다고…?”

서울 성북동 대저택의 지하 회의실.

루미나스 한국 지부의 지부장 마강진이 건틀릿을 착용하다 말고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그, 그렇습니다. 방금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사전에 준비했던 던전 브레이크는 성공했으나 34개 전부 클리어됐다고 합니다.”

루미나스 일반 단원이 회의실 입구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재차 보고를 올렸다.

마강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 그게 말이 되나? 최소 C급 이상으로만 던전 브레이크 수십 개를 일으켰는데 그걸 반나절 만에 전부 해결했다고? 부산에는 SS급 헌터도 없을 텐데?”

“저도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라고 합니다. 부산 헌터청엔 인원도 얼마 없어 문제없이 작전이 성공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 헌터들이 난입했다고 합니다.”

“외국인 헌터…?”

“예, 은빛 갑옷을 입은 금발의 헌터와 단검을 사용하고 복면을 쓴 헌터였다고 하는데, 사태가 끝날 때쯤 갑자기 사라져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파악하지 못했다고? 분명 목숨 걸고 하라고 했을 텐데. 일 처리를 그것밖에 못 하나? 아니면… 목숨이 넘쳐나는 건가?”

털컹-!

부실한 보고에 마강진은 부하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손에 끼우던 건틀릿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졌다.

그 순간.

끼기기기긱-!

일반 단원 옆에 있는 벽과 시계가 뒤틀리면서 공간 왜곡이 발생하더니 점차 그 범위가 넓어졌다.

팍-! 끼긱-! 쿠구궁-!!

어느새 일반 단원의 머리 옆까지 커진 공간의 뒤틀림.

“사, 사, 살려 주십시오, 지부장님!!”

일반 단원은 공포심에 몸이 굳은 듯 도망가지도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떨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목이 날아갈 상황.

그래도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으니.

벌컥-!

공간 왜곡이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비서 윤채연이 회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덕분이었다.

“지부장님, 방금 입수한 영상입니다.”

사아아악-

마강진의 총애를 받는 S급 헌터, 윤채연의 등장에 공간 왜곡이 일순간 사라졌다.

마강진은 윤채연이 내미는 태블릿을 바라봤다.

영상은 총 두 개였다.

하나는 기사 같은 차림의 금발 헌터가 검과 방패로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을 도륙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복면을 쓴 암살자가 수백에 가까운 몬스터 사이를 순간이동 하듯이 움직이며 처치하는 것이었는데 둘 다 얼굴을 자세하게 잡지는 못했다.

영상을 빌딩 옥상에서 찍은 터라 전체적인 움직임은 잘 보였지만 이목구비를 담기엔 너무 빠르고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상착의는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마강진이 태블릿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군.”

“네, 국내 헌터는 아닌 것 같고 최초 보고처럼 외국에서 온 헌터인 것 같습니다. 영상의 실력을 보면 등급은 S급에서 SS급으로 파악되고요.”

“흠…. 하필이면 부산에 이런 헌터들이 있었다니.”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눈으로 진상을 확인하자 조금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마강진은 턱을 매만지다가 태블릿에 손가락을 올리며 앞뒤로 영상을 돌려봤다.

그런데 그때.

“잠깐. 이 녀석은 그때 그…?”

영상에서 낯익은 인물이 보였다.

최근 보고서에서 자주 봤던 헌터가 금발 기사 헌터와 함께 몬스터들을 도륙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 영상 분석을 마친 윤채연이 마강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한상우, B급 헌터로 부지부장과 제1 진행팀장, 그리고 제1 지원팀장을 죽게 만든 원흉입니다. 얼음 요새에서 저희의 작전을 방해하고 열쇠 조각을 가져가기도 했고요.”

“근래 너무 자주 마주치는군. 반복되는 우연은 우연이 아니라던데…. 정보가 새어 나간 건 아니겠지?”

“그럴 확률은 낮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더 철저하게 대비했을 겁니다.”

마강진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윤채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마강진 자신이 보기에도 자신의 가설은 억측이었다. 이번 작전은 소수의 인원으로 극비리에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B급 헌터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건, 그만큼 상황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후우,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군.”

마강진은 핏줄이 선 이마를 짚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번 작전은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기존에 세웠던 계획대로라면 최소 이틀은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일.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고, 본격적인 작전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던전 브레이크가 해결되고 말았다.

이대로는 출전한다고 해도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비서 윤채연도 이 점을 아는 듯 넌지시 의중을 물어왔다.

“후속 계획은 어떻게 할까요, 지부장님.”

“이대론 실행해도 의미가 없다. 돌격조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도록.”

“네, 알겠습니다. 혹시 작전을 완전히 중지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 칼을 뽑았으면 휘두르기라도 해야지.”

“그런데 준비한 카드가 막혔습니다만…. 어쩌실 생각이신가요?”

정면 충돌은 승산이 없다.

윤채연도 이 점을 알고 있기에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차선책이 있는 듯했다.

“어쩌긴.”

마강진은 태블릿에 재생되는 한상우의 영상을 보며 말을 이었다.

“더 강한 걸 터뜨려야지.”

* * *

“하암, 얼마나 잔 거지.”

찌뿌둥한 전신.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뜨자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보였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어제저녁, 부산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잤으니 대략 열두 시간 넘게 잔 듯했다.

근래 이렇게 오래 잤던 적이 있던가.

각성한 이후, 던전 레이드와 하이어 노가다 등 여러 일을 병행하다 보니 하루 네 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었다.

휴가로 떠난 부산에서도 각종 퀘스트와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한 터라 피로는 더욱 누적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집으로 오자마자 뻗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눈을 붙이긴 했지만,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의 피곤이 몰려왔던 것이다.

하이어도 잠깐 쉬었다.

‘캐릭터들 자동사냥이 끊겼을 테지만 개운하긴 하네.’

하이어는 자동사냥 시스템을 지원하긴 하지만 네 시간에 한 번씩 설정을 해줘야 한다.

헌터로 각성한 이후 이때까지 한 번도 시간을 낭비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자느라 기회를 흘려보내게 되었지만 큰 손해는 아니었다.

제장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는 만렙이고, 얻을 수 있는 건 뽑기를 위한 재료뿐이니까.

‘그래도 루틴은 지켜야지.’

나는 하이어에 접속하기 위해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화면을 켜니 웬 문자가 와 있었다.

<이은하 헌터 – 안녕하세요, 한상우 헌터님, 잘 들어가셨나요? 부산 던전 브레이크 관련해서 몇 가지 들어온 정보가 있어서요.>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이은하 헌터였다.

‘이은하 헌터의 문자라니. 현실성 없네.’

내 핸드폰에 유명 인사인 이은하 헌터의 문자가 와 있으니 아직 꿈속인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드는 묘한 기분.

그런데 더 비현실적인 것은 실제로는 이은하 헌터가 먼저 내 번호를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뒤,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그녀가 다가와 번호 좀 찍어달라고 한 것이다.

특별한 호감은 아니고 업무적인 연락 때문에 그런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은하 헌터가 먼저 다가온 건 맞았다.

말도 안 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는 잠에서 깨기 위해 한 차례 눈을 비빈 후, 그녀가 보낸 문자를 정독했다.

문자는 기분 좋은 내용과 기분이 좋지 않은 내용, 두 가지가 담겨 있었다.

<이은하 헌터 - 현재 공무원 헌터들이 한창 조사하고 있는데, 던전 브레이크의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전조증상이 발생하기 전, 로브를 쓴 수상한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거린 CCTV를 확인했는데 루미나스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친구분들의 정체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데, 추적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날 것 같아요. 추가적인 정보가 들어오면 알려 드릴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푹 쉬셔요!>

“여기서도 루미나스라고? 역시 나쁜 짓엔 항상 빠지지 않는 놈들이네.”

나는 이은하 헌터의 문자를 읽은 후, 나직이 중얼거렸다.

우선 기분이 좋지 않은 내용은 루미나스에 관한 것이었다.

녀석들의 악행은 익히 들어온 터였다.

놈들은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어떤 흉악한 짓도 서슴지 않는데, 대헌터시대 초기에는 몬스터의 편에 선 적도 있다고 들었다.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는데도 자신의 안위와 절대적인 무력을 추종해 동족인 인간마저 배신한 것이다.

저번에 겪었던 일도 그렇고, 이번 일도 놈들 소행이라면 앞으로도 이렇게 엮일 일이 많을 듯했다.

뭐랄까,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할까.

세간에 떠도는 얘기로는 헌터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루미나스에 대한 악감정도 높아진다고 하던데, 슬슬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에 만나면 씨를 말려 버려야겠어.’

골칫거리가 있다면 그 원인을 제거해 버리는 게 낫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곤 기분 좋은 소식으로 시선을 옮겼다.

소환 캐릭터들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다행인데 심지어는 신원 추적조차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다행인 소식이었다.

[캐릭터 소환]은 소환한 순간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게 되는 스킬 특성상 완전히 숨기는 게 불가능해서 언젠가는 능력이 세상에 공개될 텐데, 어찌 됐든 유예 기간이 늘어나게 됐다.

‘그럼 좀 더 레벨업을 해볼까?’

큰 힘엔 큰 책임뿐만이 아니라 큰 관심도 따른다.

그 속에서 중심을 지키려면 더더욱 강해져야 하는 법.

나는 매트리스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던전 입찰을 위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폰으로 해도 되지만 던전 입찰의 경우 PC로 조작하는 게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업적 개방의 조건은 150레벨.

현재 내 레벨은 136인데, 빠른 레벨업을 위해선 최대한 높은 등급의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레벨이 오를수록 낮은 등급의 던전은 클리어해 봤자 경험치를 얼마 주지 않으니까.

‘A급 던전이 좋겠지?’

아직 한 번도 진입해 보진 않았지만 부산의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A급 몬스터도 손쉽게 상대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A급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좋을 듯했다.

그러나.

딸각- 딸각-

“음, 역시 안 되네.”

A급 던전을 입찰받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예악이 꽉 차거나 입찰 비용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저.

<신청할 수 없습니다.>

자격이 없을 뿐이었다.

A급 이상의 던전은 위험성이 크기에 길드가 없으면 입찰 자체가 불가능하다.

용병을 뛸 순 있지만 다른 길드가 입찰받은 곳에 파티원으로 들어가야 하고 단독으로 입찰받지는 못하는 것이다.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혹시나 몰라 시도해 봤는데 역시나 A급 던전은 입찰이 불가능했다.

‘제약이 많아지네. 길드에 가입해야 하나?’

현재 내 스펙으로 갈 수 있는 길드는 많다.

아니,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강철만의 아신 길드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독존]을 활용할 수 없고, 만약 활용한다 치더라도 혼자 A급 던전을 들어가는 사실이 알려지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게 뻔했다.

“차라리 게임 캐릭터들이 길드원이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사실 그게 제일 좋은 결과다.

어차피 내게 필요한 건 길드라는 타이틀뿐이기에 게임 캐릭터들로 길드원을 채우기만 한다면 어느 던전이든 자유롭게 가고, 여러 의심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될 리가 없지.”

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해 추적할 수 있는 나라다. 게다가 헌터의 경우, 헌터청에서 일일이 시험까지 보면서 등급을 부여한다.

내가 게임 캐릭터들을 데리고 가서 길드를 만들겠다고 해도 서류 단계에서부터 걸러질 게 뻔한 것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잠깐.’

그때, 한 사람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에게 임시 특급 헌터증을 만들어줬듯 길드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떠오른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이라면 길드를 만들고자 하는 내 계획에 도움을 줄지도 몰랐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신대훈 과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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