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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71화 (71/169)

제71화

8장 높은 곳으로 한 걸음(6)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항상 꽂히는 게 있다고.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취미, 돈, 게임, 음식 등 종류를 불문하고 한 가지에 푹 빠지게 되는 시기가 있다고.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강철만은 지금 한 사람에게 꽂힌 상태였다.

한상우.

시작은 F급 헌터였지만 단시간에 B급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루미나스도 격퇴했던 헌터.

뉴비 키우기에 흥미를 갖고 있던 강철만으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는데, 최근 행보를 보고 나선 더욱 빠져들었다.

부산 던전 브레이크 사태 해결.

그 중심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 헌터 한상우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언론과 대중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CCTV와 시민들의 촬영 영상이 떠돌고 곳곳에서 취재도 했지만, 사상 초유의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한 인물이 누구인지 전혀 알아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영상을 본 순간, 강철만은 단번에 눈치챘다.

‘그때랑 똑같아.’

은빛 갑옷을 입은 금발 헌터와 검은 복면을 쓴 헌터.

그들은 바로 자신과 함께 루미나스 부지부장, 홍진성을 격퇴했던 인물들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원인 모를 통증과 함께 의식을 잃어 통성명도 나누지 못했지만, 인상착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발 헌터가 활약하는 영상의 구석에서 한상우가 등장했다.

그가 어째서 부산 던전 브레이크 현장에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부터 보는 건 비밀로 해주세요.

홍진성을 상대할 당시 한상우는 그렇게 얘기했었고, 그 뒤로 영상 속의 헌터들이 나타나 사태를 해결했었다.

무력의 수준만 본다면 SS급 혹은 그 이상인 존재들이었는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그렇게 강한 헌터라면 아무리 해외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모를 리가 없거니와, 두 사람이 그 어떤 징조도 없이 너무 뜬금없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인맥과 정보통을 활용해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해봤지만, 그 어떤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SS급 이상이라면 그 수가 많지 않기에 대략적인 후보라도 나와야 하거늘 윤곽조차 잡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했다.

‘하이어의 캐릭터들이랑 너무 닮았어.’

그들의 행색이 자신이 하는 게임인 하이어의 캐릭터들을 너무나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후 게임에 접속하고 나서 그들의 옷이 하이어의 최상위 티어 장비와 굉장히 흡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우연이거나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부산 던전 브레이크의 영상에서도 둘은 게임에서 나오는 스킬과 굉장히 유사한 스킬을 사용했다.

수호 기사의 [끌어오기]나 암살자의 [그림자 긋기] 등 하이어에서 구현되는 여러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언론이나 일반 대중들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랭킹 1위를 달성할 정도로 하이어에 진심인 강철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게임인 하이어의 아이템이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헌터일 수도 있었다.

지금도 새로운 능력을 가진 헌터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니까.

문제는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

그들과 관련된 사건에 늘 끼어 있는 한상우만이 그나마 유력한 단서이지만, 쉽게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철만에게 그런 사실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괜찮아. 우리 편으로 영입만 하면 돼.’

강철만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먼저 한상우를 디바인 실드에 입단시킬 수만 있다면, 그 둘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영입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힘 그 자체와, 그것을 올바르게 쓸 수 있느냐다. 정체야 어떻든 상관없었다.

무료하던 일상에 찾아온 빅 이벤트.

강철만은 부산 던전 브레이크 사태 이후, 남희건 비서실장에게 지시해 한상우의 동선을 파악하게 했다.

그리고.

“음, 여기라고 했던 거 같은데….”

한상우가 헌터청에서 나왔다는 첩보를 입수하자마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뛰쳐나왔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오, 한상우 헌터님…!”

피시방으로 들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한상우를 발견한 것이다.

강철만은 한걸음에 달려가 한상우의 손을 맞잡았다.

“정말 엄청난 우연이군요. 이런 곳에서 다 만나고 말이죠!”

“아, 예…. 우연 맞죠?”

“그럼요! 가끔 오는 피시방인데 마침 한상우 헌터님이 계시네요. 옆자리에 앉아도 괜찮죠?”

역시 SS급 헌터 중 유쾌한 성격으로 유명한 사람이랄까.

강철만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너스레를 떨더니 한상우 옆자리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반대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헌터님 옆에 컴퓨터가 세 대나 켜져 있네요?”

방금까지 누가 있던 것처럼 한상우 옆자리엔 컴퓨터가 켜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의자도 뒤로 나와 있었다.

사실 강철만을 발견한 직후, [캐릭터 소환]을 해제해서 그런 것이었지만 한상우는 시치미를 뗐다.

“컴퓨터를 여러 대 쓸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제가 게임을 하거든요. 하이어라고 아시나요?”

“네, 들어는 봤습니다만….”

한상우는 모니터 바탕화면에 있는 하이어 아이콘을 슬쩍 쳐다보며 얼버무렸다.

누구보다 잘 아는 게임이지만 굳이 지금 밝힐 필요는 없었다.

강철만은 이런 한상우의 심정도 모른 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역시 아시는군요. 제가 그 게임 랭커입니다. 순위를 유지하려면 억지로라도 게임을 해야 해요. 그런데 한상우 헌터님께선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컴퓨터도 여러 대 돌리시고.”

“저야 뭐, 던전 입찰하러 왔죠. 아무래도 피시방에서 하면 좀 더 빠르니까요.”

“아아, 그렇죠. 던전 입찰 중요하죠!”

마침 한상우의 모니터엔 B급 No. 400 던전 입찰 페이지가 떠 있었다.

강철만이 곁눈질로 확인하며 다시 한번 너스레를 떨었다.

“오호, 축하드립니다. 열렙 던전, 입찰받기 쉽지 않은데 성공하셨네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럼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즐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헛! 벌써 가십니까?”

“예, 용무가 끝났으니까요.”

“그럼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강철만은 서둘러 한상우를 붙잡았다.

피시방에 있다길래 옆에서 게임이나 같이 하면서 천천히 얘기를 나누려 했는데 너무 무른 생각이었다.

한상우는 다르다.

강철만은 다시 한번 느꼈다.

보통 사람의 경우, 랭커인 자신과 어떻게든 더 대화하려고 애쓰는데, 한상우에겐 그런 게 없었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

알아본 바에 따르면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한상우는 각성 이후 끊임없이 레이드를 돌며 항상 바쁘게 산다고 했다.

그건 함께 미해결 던전을 돌고, 함께 루미나스를 상대했던 자신도 느낀 바였다.

성향으로 보건대 질질 끌 거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듯했다.

한상우도 그 정도는 허락했다.

“들어보죠.”

“혹시 S급 던전 레이드, 함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S급 던전 레이드요?”

“예, S급 No. 510, 별칭 악몽의 던전입니다. 값비싼 아이템들을 많이 주지만 난도가 높은 곳이죠. 이번에 던전 브레이크 주기가 얼마 남지 않아 클리어해야 하는데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제 등급 아시지 않나요? 저는 B급 헌터입니다, 길드장님.”

제안은 고마웠다.

S급 던전 레이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한 번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10억도 넘게 벌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역량이 되어야 하는 법.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듯, 괜히 주제도 모르고 갔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물론, 한상우에겐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있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캐릭터 소환]을 모르는 강철만이 B급 헌터인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도 이상하고 말이다.

그런데 강철만은 괜찮다는 듯 재차 S급 던전 레이드를 권유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매화 길드의 지소영 길드장도 함께 갈 거니까요. 파티원도 실력이 보장된 헌터 10명 이상으로 꾸릴 예정입니다.”

지소영. 대한민국 SS급 헌터 8인 중 한 명으로 대형 길드인 매화 길드의 길드장이다.

S급 던전 레이드에 SS급 헌터가 두 명이나 간다니.

이 정도면 안전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한상우는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않는 모습이었다.

“헌터로서 굉장히 좋은 기회네요. 그렇지만, 굳이 저한테 호의를 베푸시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한상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강철만은 곧바로 대답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는 한상우 헌터님을 디바인 실드에 입단시키고 싶습니다.”

“예…?”

S급 던전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디바인 실드라니?

게임의 시끄러운 소음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은 듯했으나, 지금의 강철만은 그런 것쯤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한상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강철만이 이어서 얘기했다.

“홍진성을 처단할 때 보셨을 테지만 저는 디바인 실드의 일원이고, 한상우 헌터님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다만 디바인 실드는 입단이 까다로워서 여러 테스트가 필요하죠. S급 던전 레이드는 그 일부라고 봐 주시면 됩니다.”

“디바인 실드….”

강철만의 설명에 한상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홍진성을 상대할 당시 보여줬던 힘과 하얀 갑옷은 디바인 실드의 상징과도 같으니까.

세계의 유수한 헌터들로 이루어진 비공식 국제 헌터 조직.

그러나 세계의 온갖 사건에 손을 대는 그들의 영향력은 어떤 선진국보다도 막강하다.

세계를 중심에서 수호하는 건 국제연합이 아닌 디바인 실드라는 말이 항간에 나돌 정도였다.

입단 방법도 베일에 가려져 최상위의 극소수 헌터만이 비밀리에 가입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헌터로서 커리어의 정점과도 같은 곳.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안이었지만 오히려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한상우가 재차 말했다.

“강철만 길드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B급 헌터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F급이셨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S급, 아니 SS급이 되실지도 모르고요. 아닌가요?”

“그건….”

한상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그에게 등급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땡길거야와 다크어둠만 해도 헌터의 등급 시스템으로 보자면 SS급이 아니라 SSS급도 넘을 테니까.

[캐릭터 소환]을 배제한 자신의 등급 역시 지금 다시 측정한다면 A급은 우습게 넘길 것이다.

강철만도 이 점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저는 한상우 헌터님의 성장 속도를 보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표면적인 등급은 홍진성을 처치한 순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한상우 헌터님께선 부인하실 테지만, 저는 어째서인지 한상우 헌터님을 영입하면 그 친구분들도 자연히 힘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홍진성과 부산 던전 브레이크 때처럼요.”

강철만의 날카로운 눈빛이 한상우를 향했다.

[캐릭터 소환]을 알아챈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땡길거야와 다크어둠, 그리고 한상우의 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것이었다.

역시 겉으로는 가볍고 유쾌해 보여도 괜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S급 헌터가 아니었다.

평소와 다르게 의표를 찌르는 강철만의 모습에 한상우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저한테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단순히 성장 속도만 얘기하기엔 저 말고도 강한 사람은 많을 텐데요.”

“이유야 수십 가지를 댈 수 있지만 한마디로 하자면… 감입니다. 한상우 헌터님이라면 다른 헌터들처럼 부나 명예를 좇기보다는 더 높은 걸 추구하실 것 같거든요.”

‘더 높은 것이라….’

확실히 그렇긴 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행보가 당장의 부와 명예를 위해 움직인 건 아니었다.

다만 강철만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한상우가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저도 돈 좋아합니다. 용병도 그래서 뛰는걸요.”

“아, 그 부분은 오히려 좋네요. 디바인 실드에 입단하시면 돈은 질리도록 벌 수 있으실 겁니다. 능력제이긴 합니다만 원한다면 억 단위를 넘어서 조 단위로 돈을 쓸어 담을 수도 있어요.”

“조 단위요…?”

“예, 진담입니다.”

강철만이 하이어에 수십억을 흔쾌히 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확실히 세계를 무대로 해서 그런지 스케일이 남달랐다.

솔직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레벨도 이 정도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수준이 되기도 했고, 디바인 실드면 세계 최고의 헌터 단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시 가입하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건 기밀이지만… 길드처럼 강제성은 없습니다. 루미나스와 같이 평화를 위협하는 단체들을 견제해야 하는 임무는 있지만, 상황에 따라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이익은 없어요. 힘을 주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자유인 거죠.”

가입한다고 해서 ‘독존’을 활용하지 못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이건 기회였다.

높은 곳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물론 리스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전할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한상우는 팔짱 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습니다. 참여하도록 하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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