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73화 (73/169)

제73화

8장 높은 곳으로 한 걸음(8)

‘격상 횟수가 충전됐다고?’

뜬금없는 타이밍에 날아온 희소식.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스킬, [격상]의 횟수가 충전됐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몬스터를 잡은 것도 아니고, 하이어에서 퀘스트를 한 것도 아니건만 제장이의 레벨이 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제장이의 레벨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는데, 현실의 물건을 수리하며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게 된 듯했다.

제장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왓, 군주님! 저 한층 성장했습니다!!”

땡길거야와 다크어둠도 제장이의 반응에 티격태격하다 말고 피식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일상생활을 통해 경험을 쌓았구나, 꼬마 대장장이여.”

“어릴 땐 포크질만 해도 성장하는 법이지. 옛날 생각나는군.”

“포크질이라…. 뒷골목도 나름 살만했나 보군. 너 같은 녀석에게 밥을 주다니.”

“그래, 포크로 너 같은 궁중 샌님들의 목을 뚫고 빵을 받았지. 어떻게 했는지 보여줄까?”

어째 잠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싶었는데 금세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역시 타고난 상성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은 후, 제장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둘의 다툼보다는 [격상]을 활용하는 게 더 중요했다.

“제장아, [격상]으로 어떤 걸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지 확인해줄 수 있니?”

“네! 저번엔 첫 단계라 선택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원하는 걸 고를 수 있어요! 군주님께서 원하는 아이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요!”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라….”

제장이의 말에 나는 착용 아이템을 꺼내 봤다.

화산검과 화산방패, 그리고 대현자의 팔찌가 다였다.

물론, 레이드를 돌며 모은 아이템들이 인벤토리에 있긴 하지만 모두 거래소에 팔 것들이었다.

[격상]을 쓸 만한 가치는 없는 것이다.

‘착용 아이템이 적긴 하지.’

세 개밖에 안 되는 선택지.

사실 착용 아이템 세 개면 헌터들 사이에서 그리 많은 수는 아니다.

나처럼 검과 방패를 쓰더라도 보통 가죽 갑옷을 입거나 경량화 마법이 걸린 철갑옷을 입는다.

하지만 나는 착용 아이템의 수를 늘리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돈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마나 포션도 충당해야 하고, 하이어에 현질도 해야 하니까.’

대현자의 팔찌로 마나 소모량이 줄긴 했지만, 그 전엔 수백만 원이 넘는 마나 포션을 물 마시듯 마셨다.

어디 그뿐인가.

던전을 도는 동안엔 하이어를 플레이할 수 없으니, 레이드 후엔 현질을 통해 이벤트 퀘스트나 종결템 도전 등 부족한 성장을 따라갔다.

아이템 독식을 통해 돈을 벌어도 고스란히 지출로 이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사무실을 임대하면서 보증금과 월세도 적지 않게 나갔다.

화산 세트나 대현자의 팔찌를 생각하면 다른 아이템도 고가로 맞출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엔 너무 많은 지출이 따랐다.

생활비는 사치를 부리기에도 부족함이 없지만, 헌터의 아이템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니까.

‘뭐, 괜찮아.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템만 잘 업그레이드시키면 돼.’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처럼 잡템 여러 개를 주렁주렁 달고 있어봤자 고등급 아이템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비록 가진 아이템은 세 개밖에 안 되지만 [격상]으로 성능을 향상해 나간다면 꿀릴 게 없다.

애초에 정말로 필요했다면, 돈을 아껴서라도 아이템을 샀겠지만 그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은 아이템들이었으니까.

‘문제는 어떤 아이템을 업그레이드시키느냐인데….’

나는 바닥에 세 개의 아이템을 내려놓은 뒤,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화산검과 화산방패, 대현자의 팔찌 모두 전승 등급이다.

[격상]을 사용하면 전승의 위 단계인 영웅 등급이 될 텐데, 어떤 걸 먼저 업그레이드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화력을 생각한다면 검을, 방어를 생각한다면 방패를, 마나를 생각하면 팔찌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맞는데 [격상]의 횟수는 잘 충전되지 않으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일이면 S급 레이드를 해야 하는 상황.

나는 세 아이템을 바라보다가 가운데에 놓인 걸 집으며 말했다.

“제장아, 화산 방패 업그레이드해 줄래?”

“네! 알겠습니다, 군주님!”

나의 선택은 방어, 즉 화산방패였다.

제장이는 화산 방패를 받더니 인벤토리에서 모루를 꺼내 세팅을 시작했다.

그러자 사무실 한쪽에서 티격태격하던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변화를 눈치채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화산방패를 선택하셨군요, 주군.”

“응, 내일 있을 S급 레이드도 그렇고 앞으로 난이도가 높아질 텐데, 그럼 방어 능력이 중요할 거 같아서. 몬스터 처치야 너희한테 맡기면 되니 당장 필요하지 않기도 하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지만, 이미 충분한 공격력이 마련되어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아마 내일 S급 던전 레이드는 물론이고, 혼자 사냥할 때도 화력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내일은 SS랭커 두 명이, 나 혼자일 때는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있으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 아무리 강한 화력이 있어도 내가 당해 버리면 의미가 없어진다. 공격 카드는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 방패를 강화하는 편이 미연의 상태를 방지할 수 있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마스터. 적들의 목숨은 제가 빼앗도록 하죠.”

다크어둠이 쌍단검을 들어 보이며 의지를 어필했다.

하이어에서는 과묵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인데 이렇게 다른 면을 보자니 왠지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너만 믿으마.”

나는 옅게 웃으며 다크어둠에게 화답한 다음, 제장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격상]의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제장이는 빛나는 꼬마 망치를 위로 번쩍 들었다.

그리고.

[캐릭터 : 제장이가 격상을 사용합니다.]

모루 위에 놓인 화산방패를 내리치며 제련을 시작했다.

깡-! 깡-!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맑고 청아한 소리.

대현자의 팔찌가 업그레이드됐던 것처럼 화산방패도 이제 곧 등급이 상향될 것이다.

그런데.

[격상 효과를 받은 아이템의 등급이 상향됩니다.]

[완성까지 남은 시간 – 24시간]

“음…?”

뭔가 이상했다.

[격상]의 튜토리얼 때는 등급 상향이 곧바로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즉시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완성까지 남은 시간이 24시간이나 되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제장이에게 물었다.

“제장아, 이거 24시간이나 망치질해야 하는 거니?”

“네! 맞아요, 군주님! 전승 등급이라 그런지 제련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음….”

침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루씩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그랬지만, S급 레이드가 시간으로 따지면 20시간도 안 남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격상]이 진행되는 동안 소환을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제장이는 마나 소비가 많지 않은 편이긴 하지만, 소환에 소비되는 마나도 계속 신경을 써야 하니까.

나는 제장이에게 재차 물었다.

“그거 혹시 하이어 안에서는 못 하니?”

“네! [격상]은 군주님의 세상에서만 할 수 있어요! 중간에 끊는 건 가능하지만, 남은 시간은 멈출 거예요!”

“그렇구나. 혹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잠시만요! 이 스킬은 튜토리얼 이후로 처음이다 보니…. 아! 있어요, 군주님!”

“그래? 뭔데?”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24시간은 마냥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니까.

그러나 시간 단축 방법을 듣는 건 잠시 뒤로 미루어야 했다.

또각- 또각-

갑자기 복도에서 웬 구두가 소리가 들려오더니.

똑똑똑-

“안녕하세요, 여기가 군주 길드 사무실인가요?”

누군가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누굴 초대한 적은 없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리로 된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방문객의 정체는 곧바로 드러났다.

“이은하 헌터님…?”

“반가워요, 한상우 헌터님. 신대훈 과장님께 길드 창설하셨다고 들어서 축하드리려고 왔는데…. 방해된 건 아니죠?”

헌터청의 간판스타, 이은하 헌터가 찾아온 것이었다.

다만 평소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만…. 사복 입으셨네요?”

“아, 네. 축하드리러 오는데 전투복을 입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동안 헌터청 제복을 입은 모습만 봤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일반적인 코트에 치마까지 입은 것이다. 그리고 품에는 선물까지 안은 상태였다.

“참, 별건 아니지만 이거 받으세요. 길드 창설 축하 선물이에요.”

“감사합니다.”

이은하가 들고 온 건 화분이었다.

리본에 축하 인사까지 적혀 있었는데, 사실 크게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건네는 화분을 받은 뒤,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정리가 덜 되긴 했는데, 잠깐 구경하실래요?”

“앗, 네! 그럼 조금만 쉬다가 갈게요!”

아직 [캐릭터 소환]을 해제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나는 이은하 헌터를 안으로 들였다.

애써 찾아와준 사람을 매몰차게 내쫓을 순 없거니와 이은하 헌터는 내 캐릭터들과 구면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캐릭터들을 보자마자 꾸벅 인사했다.

“어라? 안녕하세요, 헌터님들. 부산 던전 브레이크 이후로 처음 뵙네요. 그때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손님.

캐릭터들은 기척을 느꼈던 것인지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떻게 대처할지 나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나는 캐릭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전언으로 평범하게 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별말씀을.”

땡길거야는 짧게 대답했고.

-곤란하시면 죽일까요, 마스터?

다크어둠은 쌍단검을 만지작거렸으며.

깡-! 깡-!

제장이는 화산방패 업그레이드에 집중했다.

-싸울 일 없으니까 땡길거야와 아까 하던 바닥 청소를 마저 하도록.

-알겠습니다, 마스터.

-예, 주군.

나는 전언으로 다크어둠과 땡길거야를 보내고, 이은하의 옆에 서며 말했다.

“친구들이 낯을 많이 가려서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아요, 좋은 분들인 건 부산에서 뵀을 때 충분히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조카분이랑 아이템 수리하고 계셨나 봐요?”

부산에서 제장이를 조카로 소개했기에 이은하는 [격상] 사용을 아이템 수리로 착각하는 듯했다.

이걸 보여줘도 될 것인가.

잠깐 고민은 들었지만 크게 상관은 없을 듯했다.

부산 던전 브레이크 이후, 언론이나 헌터청에 소문이 퍼지지 않은 걸 보면 이은하의 입은 제법 무거운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모든 걸 말하는 대신 사실만 조금 드러내는 식으로 대답했다.

“수리는 아니고 강화입니다. 조카가 대장장이 계열 스킬을 얻어서요. 그런데 강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네요.”

“얼마나요?”

“24시간이요.”

“헉, 오래 걸리네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그건….”

조금 전에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은하가 와서 그런지 제장이는 [격상]에 한껏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전언으로 물어볼까.

그런데 고민하고 있던 찰나.

띠링-!

[시간 단축 재료 : 하누이트의 꼬리]

[시간 단축 재료 1개당 제작 시간이 6시간 단축됩니다.]

알림음과 함께 화산방패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간 단축 조건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하며 말을 이었다.

“하누이트의 꼬리가 필요합니다. 4개 정도.”

“하누이트의 꼬리요…? 그거 A급 여우 던전 보스 몬스터가 드랍하는 거라 구하기 꽤 어려울 텐데요.”

“아이템 거래소에 가 봐야겠네요. 내일 S급 던전 레이드가 있어서 마냥 기다릴 순 없거든요.”

나는 아이템 거래소로 향하기 위해 발을 뗐다.

[격상]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방법을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이은하가 손을 뻗으며 날 만류했다.

“잠시만요, 한상우 헌터님. 제가 드릴게요.”

“이은하 헌터님이요?”

“네, 하누이트의 꼬리는 드랍률도 극악해서 매물이 거의 안 올라오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헌터청에선 연구나 긴급상황을 대비해 아이템을 품목별로 10개 정도 보관해놓고 있어요. 그걸 드릴게요.”

“그래도 괜찮나요?”

“원래 공무원 헌터가 아니면 안 되지만 한상우 헌터님께선 헌터청에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까요. 대신 앞으로도 자주 도와주세요.”

“뭐, 그거야 당연한 겁니다만…. 알겠습니다, 감사히 받을게요.”

준다는데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럼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으신가요? 신청인 없이 저 혼자 가면 절차가 좀 복잡해서요. 같이 가면 바로 가져올 수 있을 거예요.”

“예. 같이 가시죠.”

생각지도 못한 난관을 맞이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연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이은하와 함께 헌터청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곧바로 그녀를 따라나설 수는 없었으니.

우우우웅-!

사무실 출입문으로 향하는 순간, 갑자기 핸드폰이 진동하면서 연락이 왔다.

<아신 길드 남희건 비서실장>

‘남희건? 갑자기 무슨 일이지?’

얼음 요새 사건 이후, 헌터청에서 번호를 교환하고 거의 연락하지 않는 인물이 전화를 걸어왔다.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네, 괜찮아요.”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남희건의 전화를 받았다.

강철만의 성격을 봤을 때,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직접 연락했을 텐데 비서실장이 연락하는 걸 보면 뭔가 다른 일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예감은 적중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한상우 헌터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핸드폰 너머로 남희건의 상기된 목소리가 넘어왔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응했다.

“무슨 일이시죠, 실장님?”

-악몽 던전 레이드에 한상우 헌터님 도움이 필요해서요! 혹시 지금 당장 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악몽 던전 레이드는 내일 아닙니까?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약속은 이미 잡혔고, 날짜는 내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착각한 것일까?

지금 당장 와달라는 갑작스러운 남희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아, 아뇨! 예정되었던 악몽 던전의 레이드는 내일이 맞습니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남희건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악몽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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