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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76화 (76/169)

제76화

9장 화려한 축제(1)

전신을 감싼 흑색 로브와 4m는 훌쩍 넘는 체격, 그리고 한 손에 쥔 거대한 지팡이.

악랄한 밤의 지배자는 이름 그대로 밤을 지배하는 것처럼 압도적이고, 끔찍한 기운을 풍겼다.

그리고 자신들의 대장이 나와서 그런 걸까.

“캬아아악…!”

100여 마리의 잡몹들도 기세등등하게 포효했다.

S급 몬스터들이 만들어내는 흉흉한 분위기.

웬만한 베테랑이라도 혼비백산해 달아날 만한 광경임에도, 강철만과 지소영은 물러서지 않고 눈앞의 몬스터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지만 3페이즈 잡몹들이 전부 나올 때까지는 전열을 가다듬는다는 걸 알고 있는 탓이었다.

두 사람은 그저.

“저 녀석 면상 오랜만에 보네. 밖에서 보니 훨씬 못생긴 것 같은데?”

“그러게. 아주 그냥 바깥 공기 쐰다고 좋아죽는 표정이네.”

우스갯소리까지 하며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몸을 풀 따름이었다. 그리고 당황하지 않는 건 한상우도 마찬가지였다.

“보스 몬스터가 나왔네요. 협공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잡몹을 처치한 후, 강철만과 지소영의 옆으로 복귀해 보스 몬스터를 잡을 전략을 물었다.

하지만.

“한상우 헌터님께선 후방에서 잡몹을 처치하면서 지원만 해주시면 됩니다.”

“저 녀석은 저희가 처치할게요. 원래 입단 시험도 딱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기 직전까지만 볼 생각이었거든요.”

두 사람은 한상우를 보스 몬스터 처치 작전에 포함하지 않았다.

한상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밤의 지배자는 S급 헌터한테도 버거운 보스라서요. 이제 곧 주변에 절망의 악몽이라는 디버프를 깔고, 쫄몹들을 대량으로 생산할 겁니다. 한상우 헌터가 강한 건 알지만, 디버프에 걸리면 버티기 어려울 거예요.”

“맞아요. 인원이 많을 때는 공격과 보조를 나눌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으니까요. 보스 외의 몬스터들이 시내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부탁드릴게요.”

절망의 악몽.

보스 몬스터인 ‘악랄한 밤의 지배자’가 시전하는 저주로 한상우도 알고 있는 디버프였다.

S급 던전 레이드 참여가 확정된 후, 강철만으로부터 악몽의 던전에 관한 정보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E급 No. 46 던전에서 탐욕 많은 원숭이 주술사가 걸었던 저주처럼 헌터들을 악몽에 빠지게 만드는 디버프다.

물론 그 위력은 차원이 다르다.

악랄한 밤의 지배자는 전투 개시 5분 뒤, 저주를 퍼뜨리기 시작한다. 마법 저항력이 낮을 경우, 환각에 걸려 아군을 적으로 오인하거나 일시적으로 실명 상태에 이른다.

보통 A급 이하 헌터들은 저주에 대한 내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무래도 한상우가 버티지 못할 거라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앞의 일반 몬스터들의 디버프와는 또 다른 위력이었으니까.

‘음…. 저주에 면역이라고 말해야 하나.’

사실 한상우는 군주의 특성, 평정이 있어 정신 계열 마법에 면역이었지만 구태여 설명하진 않았다.

아직 상황이 최악은 아니기에 굳이 자신의 패를 깔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저는 일반 몬스터들을 맡도록 하죠. 보스는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한상우는 두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지소영이 감사를 표하며 강철만과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협조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강철만, 너 장비 마법 저항력으로 세팅 안 했지?”

“당연하지. 아이템 챙길 시간이 없었으니까. 마법 저항력 세팅 못 한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맞아. 급하게 오느라 중급 해독 물약 두 개밖에 못 챙겼어.”

“하나만 줘. 비상용으로 챙기고 5분 안에 끝내는 쪽으로 해보자.”

보스 몬스터의 저주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대처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일반적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마법 저항력이 높은 장비를 갖추거나, 저주를 쓰기도 전 화력을 집중해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다.

강철만과 지소영은 후자에 초점을 맞추려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로 마법 저항 장비를 입지 못한 탓에, 절망의 악몽이 깔리기 전에 전투를 끝내려는 심산인 듯했다.

“해독 포션 줄 테니까 선두에 서.”

“보스 몹은 내가 처치하는 게 더 빠른데, 네가 앞장서는 게 낫지 않아?”

두 사람은 혹시 모를 때에 대비해 해독 포션을 하나씩 나눠 가진 뒤, 구체적인 역할을 나누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여유롭게 대화할 시간은 없었으니.

“샤아아아…!”

“캬아악!!”

포탈에서 세 번째 페이즈의 몬스터들이 모두 나오자 보스 몬스터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진군을 명령한 탓이었다.

또다시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새롭게 게이트에서 나와 일제히 돌격하기 시작했다.

“제길, 먼저 가야겠네. 한상우 헌터, 뒤를 부탁합니다!”

“잡몹들이 시민들한테 가지 못하도록 막아줘요…!”

두 사람은 한상우를 뒤로한 채 악몽의 던전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작은 강철만이었다.

[유성참]

기마대처럼 돌진해오는 몬스터 부대를 향해 유성의 기운이 담긴 검기를 날렸다.

물론 선두의 몬스터들도 각자 무기와 방패를 앞세워 방어를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서걱-! 펑-! 콰과과과광-!!

SS급 헌터인 강철만의 [유성참]은 너무나도 강력해 잡몹들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진형을 갖추고 있던 몬스터의 2할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뒤로.

“하아아아앗…!”

[매화난무]

지소영의 공격이 이어졌다.

검을 연속으로 휘둘러 전방에 수많은 검기를 난사하는 스킬, [매화난무]를 몬스터들을 향해 날린 것이다.

촤차차차차착-!!

“키에에엑…!!”

지상에 있는 녀석들부터 하늘을 나는 몬스터까지.

광범위한 검기에 베인 놈들은 피를 매화처럼 흩뿌리며 비명횡사했다.

연이은 SS급 헌터들의 광역기로 초토화가 된 몬스터의 진영.

물론, 그 과정에서 몇몇 만티코어를 탄 밤의 약탈자들이 도심으로 향하려 했지만.

“어림없지.”

[캐릭터 소환]

[캐릭터 : 땡길거야가 끌어오기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만티코어를 탄 밤의 약탈자(S)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소환 해제]

한상우가 순간 소환으로 놈들의 진격을 막아냈다.

급하게 짠 전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얼른 가, 지소영!”

고속도로처럼 쫙 뚫린 몬스터 진영.

강철만은 그 길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잡몹들의 어그로를 끌며 외쳤다.

마침 악랄한 밤의 지배자는 저주 시전을 위해 캐스팅 중이었다.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가고 있어!”

“샤아아아…!”

강철만의 외침과 동시에 지소영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장기전은 불가하다.

보스 몬스터가 무방비 상태인 지금이 처치하기 최적인 상태였고, 설사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더라도 절반 이상 체력을 깎아 놓아야만 추후 승산이 있었다.

지소영은 세이버를 꽉 쥐며 다시 한번 [매화난무]를 시전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악랄한 밤의 지배자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그때.

쩌적-! 콰아아아앙-!!

“키야아아악…!”

방해꾼이 등장했다.

[척박한 대지의 바실리스크(S)]

장애물 하나 없던 길 위로, 갑자기 웬 거대한 뱀이 땅을 뚫고 솟구친 것이다.

“뭐, 뭐야 이건…!”

악몽의 던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몬스터의 습격.

“대지의 바실리스크? S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왜 여기에…!”

“그워어…!”

지소영은 바실리스크의 공격을 회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돌발 상황 속에서 내린 최선의 판단.

그러나.

발생한 돌발 상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악랄한 밤의 지배자가 절망의 악몽을 퍼트립니다.]

“뭐, 뭐야!?”

“벌써 캐스팅이 끝났다고?”

바실리스크를 상대하느라 잠깐 멈칫한 사이, 아직 여유가 있을 터인 저주의 캐스팅이 완성된 것이다.

악랄한 밤의 지배자의 지팡이에서 나온 검은 연기가 던전 게이트 주변을 잠식했다.

[절망의 악몽이 침습합니다.]

“이런 젠장…!”

매캐한 냄새와 함께 눈앞에 뜨는 메시지.

뒤쪽에서 어그로를 끌고 있던 강철만은 황급히 소매로 코를 막았다.

그러나 마법 저항력이 낮아 상태 이상에 빠지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절망의 악몽의 효과로 10분간 시각과 청각이 상실됩니다.]

[절망의 악몽 남은 시간 – 10분]

두우웅-!

기분 나쁜 종소리 뒤로 시야가 암전됐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길, 후각과 촉각이 남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순식간에 눈과 귀가 멀어버린 상황.

당황스러울 법도 하건만 강철만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작전이 무위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간 이것보다 더한 상황도 많이 겪어왔다.

주변 건물과 시민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유성의 심판] 같은 필살기를 제한했지만, 지소영과 힘을 개방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강철만은 우선 몬스터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사방으로 [유성참]을 난사하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해독 포션을 들이켰다. 촉각만으로 해독 포션의 위치를 찾고 마시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중급 해독 물약이 작용합니다.]

[절망의 악몽의 효과를 대폭 감소시킵니다.]

[남은 시간 - 1분]

중급 포션이어서 그런 것일까?

저주를 완전히 풀진 못했다.

시간을 대폭 감소시키긴 했지만 1분가량 남은 것이다.

‘망할, 애매하잖아.’

차라리 시간이 많이 남았다면 신성력을 개방해 악몽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신성 스킬로 만들어내는 갑주에는 각종 저주에 면역인 효과도 탑재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강철만은 신성력을 개방하는 대신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남은 시간이 1분으로 애매하기도 했고, 지금처럼 도심에서 싸우는 경우에는 CCTV나 시민들의 카메라에 찍힐 수 있어서 디바인 실드의 힘을 개방하는 건 지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성력의 개방은 루미나스와의 교전에 한하며, 개방할 경우 주변 루미나스를 모두 척살할 것.

이것은 디바인 실드의 불문율이었다. 지소영도 아마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성갑주]를 사용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상황에 따라서 정말 급하다면 모를까, 지금은 규칙을 깰 정도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다음 악몽은 10분 뒤니까 저주가 풀리면 반드시 끝낸다.’

칠흑 같은 암흑 속, 강철만은 그렇게 다짐하며 후각과 촉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유성참]을 난사해 주변을 한 번 쓸어버리긴 했지만, 몬스터가 추가로 달려들거나 마법이 날아올 경우에 재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탓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전장에서의 1초는 매우 긴 시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1분이 거의 다 될 때까지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원거리 공격도 없었다.

진상은 곧 드러났다.

[절망의 악몽이 해제됩니다.]

시각과 청각을 회복한 뒤, 주변을 둘러봤는데.

“어라…?”

아까와 다르게 멀쩡히 서 있는 몬스터가 하나도 없었다.

잡몹들은 죄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대지의 바실리스크는 고개가 꺾인 채 쓰러져 있었으며 지소영은 그 옆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심지어.

[악랄한 밤의 지배자(S)가 처치됐습니다.]

악몽 던전의 보스 몬스터도 처치된 상태였다.

강철만이 시각과 청각을 잃었던 시간은 대략 1분 남짓.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진 알 수 없었지만 단서는 있었다.

무수히 많은 몬스터의 시체 사이로.

“여기 있는 몬스터, 제가 다 처치했는데 괜찮죠?”

한상우가 홀로 검을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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