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9장 화려한 축제(2)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는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던전 보초 시절, 갑작스럽게 터진 던전 브레이크에 각성을 하면서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걸 몸소 경험한 탓이었다.
그러나.
모든 위기가 곧 기회냐고 묻는다면 나는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각성뿐만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경험은 제법 있었지만, 모든 위기가 기회였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작금의 상황은 위기인가, 기회인가.
우선 상황만 놓고 보자면 위기였다.
강철만과 지소영의 전략 아래, 보스 몬스터인 악랄한 밤의 지배자를 처치할 작전을 펼쳤지만.
쩌적-! 콰아아앙-!!
[척박한 대지의 바실리스크(S)]
“뭐, 뭐야 이건…!”
예상치 못한 방해꾼의 등장에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악랄한 밤의 지배자가 절망의 악몽을 퍼트립니다.]
“이런 젠장…!”
“케케켁!!”
보스 몬스터의 저주는 완성되어 게이트 일대를 완전히 뒤덮었기 때문이다.
지소영과 강철만은 시각을 잃은 듯 마구잡이로 스킬을 난사했고, 악몽 던전의 몬스터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신이 난 모습으로 더욱 날뛰었다.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며 찾아온 위기.
그러나 나에겐, 기회였다.
[절망의 악몽이 침습합니다.]
[군주의 특성, 평정이 발동합니다.]
[절망의 악몽에 저항합니다.]
보스 몬스터가 흩뿌린 저주는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고, 강철만과 지소영은 저주에 영향을 받아 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는 도심 쪽 역시 시커먼 연기에 휩싸여 시야가 제한됐다.
그래서 나는.
[캐릭터 소환 : 땡길거야]
[캐릭터 소환 : 다크어둠]
‘최대한 소리 내지 말고,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된다.’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을 소환했다.
강철만과 지소영이 절망의 저주에 걸린 틈을 타 몬스터들을 처치하려고 한 것이다.
‘시간 없으니까 짧게 말한다. 여기 있는 몬스터들, 소환 해제할 때까지 최대한 많이 쓸어버려.’
무모한 짓이긴 했다.
두 사람이 디버프로 인해 시각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해독 포션을 마시고 있어서 곧바로 감각을 되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확실하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30초 남짓.
하지만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의 무력 수준은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명 받들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마스터.
명령 직후, 두 사람이 땅을 박차자.
[캐릭터 : 땡길거야가 만티코어를 탄 약탈자(S)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악랄한 밤의 도굴꾼(S)을 처치했습니다.]
[…….]
[캐릭터 : 다크어둠이 악랄한 밤의 약탈자(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스탯을 +1 획득합니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잡몹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공중의 몬스터들은 땡길거야가 높이 떠올라 [신성 폭발]로 일격에 처치하고, 지상의 몬스터들은 다크어둠이 [그림자 긋기]로 단숨에 쓸어버린 것이다.
A급 헌터에게도 버겁다고 알려진 S급 몬스터를 무 썰듯 단칼에 베다니.
둘의 협공에 맥을 못 추는 건 난데없이 등장한 S급 보스 몬스터, 바실리스크도 마찬가지였다.
“키야악…!”
두 캐릭터의 활약에 위기를 느낀 듯 녀석은 땅속으로 도망쳤지만.
[캐릭터 : 땡길거야가 끌어오기를 사용합니다.]
땡길거야가 오러 채찍을 날려 끌어올리자.
콰과과과과과광-!!
땅을 박살 내며 그대로 낚여 올라왔다.
마치 물에서 하는 낚시를 땅에서 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마무리 역시 미끼를 물은 물고기와 비슷했다.
땡길거야가 바실리스크를 낚아 올리자 다크어둠이 뜰채처럼 재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복면을 쓴 신형이 순식간에 거대한 뱀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그 뒤는 볼 것도 없었다.
쩌어어엉-!!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척박한 대지의 바실리스크(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마력 +1을 획득합니다.]
다크어둠의 쌍단검이 바실리스크의 머리를 강타하자 녀석은 그 즉시 명을 달리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15초.
그 사이, 강철만과 지소영은 해독 포션을 마시고 회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마신 게 중급 물약이었으니 감각을 회복하는 데 약간은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래봤자 10초 정도다. 그 안에 끝을 봐야 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야아…!!”
[악랄한 밤의 지배자(S)가 악몽의 망령을 소환합니다.]
[악몽의 망령(S)]
[악몽의 망령(S)]
[…….]
잡몹과 바실리스크가 당하는 사이, 사태를 파악한 악몽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백여 마리에 이르는 쫄몹들을 소환했다.
방금 정리한 수보다 훨씬 많은 병력.
그러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쓸어버려.’
-예, 마스터.
촤아아악-!!
[캐릭터 : 다크어둠이 그림자 긋기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악몽의 망령(S)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악몽의 망령(S)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스탯 +1을 획득합니다.]
녀석이 소환하면 소환할수록 나는 레벨업만 계속할 뿐이었으니까.
200레벨도 안 되는 레벨에 S급 몬스터를 혼자서 처치하고, 거기다 경험치 20배를 얻다 보니 몬스터 서너 마리만 잡아도 금방 레벨업을 하는 것이다.
“다했냐? 좀 더 소환하지 그래?”
그럼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악랄한 밤의 지배자를 바라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약이 오른 것일까?
“샤아아…!”
녀석은 괴성을 지르더니 손을 번쩍 들어 지팡이 끝으로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절망의 악몽도, 쫄몹 소환도 통하지 않으니 직접 마법을 쓰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통할 리 만무했다.
쿵-!
밤의 지배자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마자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동시에 치고 나가 검으로 녀석의 손바닥을 꿰뚫어 땅에 박아버렸다.
“키야아아악…!!”
시커먼 연기 사이로 지배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나 그것도 잠시, 녀석의 괴성은 곧 잦아들었으니.
[침투][급소 찌르기]
두 캐릭터가 놈을 바닥에 고정한 사이, 내가 접근해 화산검을 내지른 탓이었다.
푹-!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감각을 끝으로.
[악랄한 밤의 지배자(S)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체력 +1, 지력 +1을 획득합니다.]
녀석은 절명하며 내게 보상을 남겼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난 순간.
“어라…?”
“음…?”
강철만과 지소영이 감각을 되찾았다.
방금까지 게이트 일대의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로 격투를 벌였건만, 두 사람 모두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 것이다.
나는 [캐릭터 소환]을 해제한 뒤, 두 사람을 돌아보며 모르는 척 물었다.
“여기 있는 몬스터, 제가 다 처치했는데 괜찮죠?”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 연기.
하지만 사태를 무마하기엔 무리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들 눈에는 S급 던전 브레이크를 B급 헌터 혼자서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해결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강철만과 지소영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이거… 한상우 헌터가 다 처치한 겁니까?”
“마,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어떻게 한 거죠, 한상우 씨?”
뭐라고 답해야 할까.
대답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어떻게’와 ‘왜’.
첫 번째, ‘어떻게’는 답할 수 없다. [캐릭터 소환]으로 사태를 해결했지만, 이걸 굳이 내 입으로 밝힐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왜’도 말해줄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S급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기 위해서긴 하지만, 굳이 나선 것에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곱 번째 업적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일곱 번째 업적 – S급 던전을 클리어하세요(1/1)]
[일곱 번째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메시지를 터치할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7/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내가 직접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야 했으니까.
150레벨 달성 후, 갱신됐던 일곱 번째 업적.
처음 이걸 봤던 당시, 솔직한 심정은 ‘잘됐다’였다.
150레벨 선행 조건을 클리어했을 때, 강철만과 S급 레이드를 진행하기로 약속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유추했던 A급 클리어가 아닌 S급이 나와 당혹스럽긴 했지만, 강철만이 준비한 디바인 실드의 추천 시험에 참여하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일주일간 따로 S급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고 레벨을 올리는 데 집중했는데, 오늘 이렇게 S급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버렸다.
던전 브레이크에서 잡는 몬스터는 파티 플레이로 인식되지 않는다.
직접 처치하지 않는 이상 업적이 클리어되지 않을 수 있기에 해결할 수 있는 각이 보인 순간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어쨌든 내 입장에선 ‘어떻게’와 ‘왜’ 둘 다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네요.”
답변을 미루었다.
거짓말을 하거나 어설프게 둘러대는 대신, 비밀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그러자 강철만과 지소영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부분은 나중에 듣기로 하죠.”
“그래요. 얘기는 상황이 끝나고 들어도 늦지 않으니까요.”
SS급 헌터의 여유일까, 추궁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한 걸까?
이유야 어찌 됐든 두 사람은 순순히 내 말에 따라주었다.
게다가 사태가 아직 완전히 정리된 것도 아니었다.
“기, 길드장님! 한상우 헌터님과 지소영 길드장님도 와 계셨군요…!”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저 멀리 도심 쪽에서 아신 길드의 비서실장 남희건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강철만이 숨을 세차게 몰아쉬는 그를 보며 물었다.
“비서실장님 괜찮아요?”
“예! 저는 괜찮은데, 그게….”
“무슨 일 있어요?”
“지금 서울 전역에 A급과 S급 위주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