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9장 화려한 축제(5)
“하, 한상우 헌터님…!”
헌터청 특별관 앞.
흙먼지가 걷히면서 드러난 신형에 이은하가 반가운 목소리로 외치며 다가갔다.
서울 전역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와 몬스터 연구소 습격에 지원군은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그것도 한상우가 찾아와 준 것이다.
이은하가 반짝이는 눈망울로 한상우에게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전파가 차단돼서 연락도 못 받으셨을 텐데요.”
“그건….”
이은하의 물음에 한상우는 뒷말을 흐렸다.
사실 답은 간단했다.
악몽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한 후, 강철만과 지소영은 몬스터 연구소로 지원을 가고, 자신은 근처에서 일어난 다른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고 있었는데.
-군주님! 헌터청이 습격당했어요! 몸 곳곳에 있는 스페이드 문양을 보니 아무래도 그때 그 나쁜 놈들인 것 같아요!
헌터청이 위험하다는 걸 제장이에게 전해 들었던 것이다.
제장이는 하누이트의 꼬리를 건네받고 [격상] 스킬을 사용하느라 헌터청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그곳이 루미나스의 목적지였다.
다만 이걸 사실대로 얘기할 수는 없었으니, 제장이와 연락했다고 하기엔 전파가 차단되어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기도 하거니와 지금은 구구절절 대화를 나눌 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건 이따 얘기하죠. 지금은 루미나스에 집중하고요.”
한상우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하며 대답한 뒤.
“군주님…. 아니, 삼촌! 여기 방패 있습니다!”
“고맙다, 제장아.”
제장이가 건네주는 방패를 받고 서서히 걷히는 연기 속의 신형을 주시했다.
그러자.
“네놈이… 한상우로군.”
[분화] 스킬에 타격을 당했던 마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틀릿을 낀 양팔을 교차시켜 피해를 최소화한 자세.
다만 워낙 갑작스러웠던 공격이라 모든 걸 막을 순 없었는지 볼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한상우와는 일면식도 없는 인물.
그러나 마강진은 곧바로 한상우를 알아봤으니, 얼음 요새부터 홍진성의 사망까지 근래 있었던 모든 사건에 한상우가 있었던 탓이었다.
보고서를 통해 들었던 인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마강진은 한상우가 익숙할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당사자는 피식 웃을 따름이었다.
“유명인 다 됐네. 루미나스에서 날 모르는 놈이 없어.”
“그렇게 설치고 다녔는데 모를 수가 없지. 확실히 듣던 대로 B급이라고 보긴 힘든 실력이군. 하지만… 나대는 것도 거기까지다.”
딱-!
마강진은 볼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낸 후, 손가락을 튕겨 [공간 왜곡]을 사용했다.
한상우 주변의 공간이 시계 방향으로 일그러지면서 주변의 물체들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콰과과과과-!!
가히 폭풍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막강한 파괴력.
“윽…! 일단 피해요!”
스킬이 얼마나 강한지 S급인 이은하도 맞받아치는 건 고사하고, 피하기 급급했다.
그런데.
한상우는 달랐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난 가만히 있었어. 설친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지.”
도망가는 대신 [침투]로 마강진과의 거리를 좁혀 화산검을 휘두른 것이다.
쩌어어어엉-!!
마강진의 건틀릿과 한상우의 화산검이 맞부딪치며 헌터청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뭐, 뭐야…!”
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변에서 전투를 벌이던 루미나스 정예 헌터와 공무원 헌터들이 돌아볼 정도였다.
두 사람의 격돌은 단순히 소리만 큰 게 아니었다.
쿵-! 쩌어어엉-!!
한 번, 한 번 건틀릿과 화산검이 부딪칠 때마다 충격파도 터져 나와 땅과 건물을 진동시켰다.
힘과 힘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살 떨리는 광경이었는데 그 끝 또한 화려했다.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연계기가 완성됐습니다.]
[연계 효과 : 월광 폭발]
콰아아아앙-!!
근접전으로 무기만 부딪치던 도중, 한상우가 [반월 베기]와 [만월 가르기], 그리고 [급소 찌르기]로 이어지는 연계기를 완성해 푸른 섬광을 일으킨 것이다.
“크윽…!”
마강진은 그대로 푸른 화염을 뒤집어썼고.
“지, 지부장님…!”
“저 녀석이 감히 지부장님을…!!”
루미나스 정예 헌터들은 아연실색하며 무기를 바로잡았다.
공무원 헌터들과 벌이던 전투를 종료하고서 마강진의 상태를 살피러 온 것이다. 그중 몇몇은 한상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말은 좋지 않았다.
파지지직-! 촤아악-!
“끄아아악…!!”
한상우에게 달려들던 루미나스 정예 헌터들은 별안간 오러 채찍에 감싸여 끌려가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절명했다.
“뭐, 뭐지…?”
“루미나스 헌터들이 순식간에 죽었어!!”
한상우가 순간 소환으로 땡길거야를 소환해 처리한 것인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공무원 헌터뿐만 아니라 SS급인 마강진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한상우가 보여주는 무력의 수준은 결코 B급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제법이군. 얕봤다는 걸 인정해야겠어.”
푸른 화염에서 벗어난 후, 마강진은 반쯤 녹아내린 갑옷을 벗어 던지며 한상우를 칭찬했다.
그리고.
챙-! 우우우웅-!!
“끄아아아아악!!”
기회를 틈타 단검을 투척했던 공무원 헌터의 공격을 쳐내고, [공간 왜곡]으로 반격하며 말을 이었다.
“애송이들은 빠져라. 저놈을 처치하고 나면 천천히 손 봐줄 테니.”
휘이이이잉-
헌터청 특별관 입구로 을씨년스런 바람이 휘감았다.
한차례 격한 전투가 지나가고, 잠시 진형이 나뉘어 소강상태가 이루어진 것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로운 분위기 속, 이은하가 한상우의 옆으로 와 말문을 열었다.
“마강진은 루미나스의 한국 지부장이에요. 공간을 다루는 스킬을 주로 쓰니까 조심하세요. 추정 등급은 SS급인데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것 같아요. 다른 루미나스 헌터들도 정예라 A급 이상인 것 같고요.”
“저 녀석이 SS급이라고요? 못 들어본 것 같은데요.”
“비공식 정보예요. 루미나스의 등급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포탈을 여는 스킬부터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능력까지.
확실히 마강진이 보여주는 힘은 SS급이라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주변엔 루미나스 정예 헌터들까지 포진하고 있어서 지원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은하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앞으로의 전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한상우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아니, 주눅이 무엇인가.
긴장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은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여러 정보를 알려 주었지만.
“공무원 헌터들을 지켜주세요. 저 녀석은 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
* * *
“하아, 어디 특종 없나….”
“그러게요. 하늘에서 취잿거리 좀 떨어졌으면 좋겠네요.”
서울 강남대로.
헌터 일보의 박대성 차장과 하일건 기자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벌써 몇 시간째던가.
대형 길드, 중소형 길드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건만 기삿거리를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핸드폰이 있는 최첨단 시대에 발로 뛰는 취재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요즘 날이 갈수록 헌터들의 콧대가 높아져서 기자들의 연락은 거의 받지 않으니까.
헌터들이 기자들에게 연락하는 경우는 홍보 자료를 뿌릴 때뿐이지, 그 외에는 아예 무시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특히 고급 정보일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욱 짙어졌는데, 얼음 요새에서 루미나스를 제압한 헌터청의 용병이 딱 그 경우였다.
딱 봐도 특종 냄새가 솔솔 나는 소재였는데, 헌터청에서 한 번 모습을 보인 이후로 관련 정보가 뚝 끊겨 버렸다.
분명 여러 길드에서 프로필을 구한 것 같았는데, 아신 길드의 길드장 강철만이 손을 쓴 것인지 기자들에게는 관련 정보가 거의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물론, 정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름과 인상착의 정도는 알아냈으나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라 확인이 필요했다.
아무렇게나 기사를 써서 냈다간 오보를 내거나 고소를 당할 수도 있으니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길드와 헌터청에서 얼음 요새의 용병에 관해선 함구하고 있어 진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해당 사건을 취재하던 박 차장과 하 기자는 손가락만 빨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자의 감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초대박급 특종이라는 걸.
“차장님, 발이 너무 아픈데 잠깐 카페에서 쉬다가 가는 게 어떨까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아니다, 잠깐 쉬자. 어차피 다음 길드 사무실 가도 문전박대당할 테니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옛날에는 기자가 방문하면 잠깐 쉬다 가라고 커피나 다과를 주기도 했었는데 요즘엔 찬밥 신세가 따로 없었다.
박 차장은 하 기자와 잠깐 쉬어 가기로 결정하고 근처에 보이는 카페로 이동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때.
우우우웅-!
갑자기 박 차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헌터 일보 콘텐츠본부>
“콘텐츠본부에서 갑자기 왜?”
박 차장은 카페에 들어가다 말고 전화를 받았고.
“차장님?”
하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페에 들어가다 말고 전화를 받는 박 차장의 모습에서 뭔가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것이다.
하 기자의 직감은 정확했다.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를 듣던 박 차장이 돌연 전화를 끊더니 대로로 튀어 나갔다.
“빨리 택시 잡아! S급 No. 510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헉! 예, 알겠습니다!!”
박 차장의 외침에 하 기자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도로에 빈 택시도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는데.
“제길, 도로가 왜 이렇게 막히는 거야?”
차는 100m도 움직이지 못했다.
원인은 곧 드러났다.
쿠궁-! 쿵쿵-! 쿠구구구궁-!!
저 멀리, 웬 굉음이 연속해서 들려오더니 사람들이 단체로 도망치며 소리쳤다.
“다, 다들 도망쳐요! A급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어요!!”
“S급 던전도 터졌대요! 차 버리고 대피하세요!!”
근래 부산 던전 브레이크 사태로 강화된 안전 수칙에 따라 사람들이 허겁지겁 대피하며 외친 것이다.
박 차장과 하 기자도 택시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차, 차장님! 아무래도 부산처럼 서울에도 대규모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것 같은데요?”
“미친, 이거 취재가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할 수준인데?”
“일단 대피하시죠. 대규모 던전 브레이크는 위험해서 현장 취재를 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 얼른 가자. 촬영은 회사에서 헬기 띄우겠지.”
두 사람도 취재를 접고, 회사로 복귀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런데 막 발을 떼려던 찰나.
쿠우우웅-!!
저 멀리 건물에서 폭발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박 차장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잠깐, 저긴… 헌터청 본청인데? 폭발이 왜 일어나지?”
“이상하네요. 저쪽엔 던전도 없을 텐데 어떻게 된 걸까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긴급 상황이긴 해도 정황상 헌터청에서 폭발이 일어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규모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헌터가 모여 있는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다니.
“하 기자, 성과급 두둑하게 챙길 생각 없나?”
“가시죠, 차장님. 저는 생명 보험도 들어 놨습니다.”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특종이 될 만한 일이 발생했다는 걸 느꼈다.
위험하긴 해도 그만한 보상이 따라올 거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좋아. 분명 뭔가 건질 게 있을 거야…!”
박 차장과 하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헌터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