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9장 화려한 축제(8)
후우웅-! 깡-!!
헌터청 주차장에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건틀릿과 교착 상태를 이룬 화산검.
마강진이 코앞까지 다가온 칼날을 쳐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내 건틀릿을 버틸 수 있는 검이라니…. 확실히 아이템도 보통이 아니로군.”
B급 헌터에 걸맞지 않은 움직임과 실력.
하지만 마강진이 가장 놀란 건 바로 한상우의 장비였다.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분쇄의 건틀릿]은 신화 등급 아이템으로, 희소 등급 이하의 아이템은 10회 타격 안에 파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보통 B급 헌터가 전승 이상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잘 없어서 한상우의 검과 방패 역시 기껏해야 희소 등급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 이상인 듯했다.
검과 건틀릿이 맞부딪친 횟수가 10회를 넘었는데도 파괴되기는커녕 흠집조차 나지 않은 것이다.
감탄과 껄끄러움이 뒤섞인 마강진의 말에 한상우는 왼손의 방패를 앞으로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키운 대장장이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준 건데.”
[기폭]
콰아아앙-!!
화산방패에서 나온 충격파가 마강진을 덮쳤다.
조금 전, 방패를 들었던 꼬마 대장장이가 썼던 것과 같은 스킬.
하지만 시전자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파괴력이 세 배는 더 세진 느낌이었다.
“크윽!”
“지, 지부장님…!”
마강진은 뒤로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고, 근처에 있던 루미나스 정예 헌터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한상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이 개자식…! 어라?”
루미나스 정예 헌터들이 거리를 좁힌 순간, 한상우의 신형이 사라졌다.
몸을 숙이거나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한순간에 없어진 것이다.
진상은 곧 밝혀졌다.
촤악-!
“크악…!”
갑자기 사라진 목표에 멀뚱멀뚱 서 있던 정예 헌터의 등이 갈라지면서 한상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났다.
은빛 암살자의 잠행술 중 하나인 [은신]으로 신형을 감추었던 것이다.
“으, 은신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은신]은 몇몇 헌터도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기에 루미나스 정예 헌터들은 사태를 파악하고 스킬을 난사했다.
하지만 한상우의 공격은 [은신]으로 몸을 숨기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침투]를 사용해 정예 헌터 뒤에 나타나 [반월 베기]를 사용했다.
루미나스의 정예 헌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
“멍청하긴…! 마나를 방출해서 놈의 기척을 파악해라!”
몸을 추스른 마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답답하다는 듯 훈수를 뒀지만.
“이쪽… 커헉!!”
루미나스 정예 헌터들의 피해는 계속해서 누적됐다.
종종 위치를 파악하기도 했지만, 한상우는 화산방패로 여유롭게 막으며 재차 반격을 가한 것이다.
‘저게 정녕 B급 헌터란 말인가…?’
한상우의 계속되는 활약에 마강진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한상우만이 아니었다.
“이, 이쪽에 복면 헌터가 있다! 너무 빨라! 크악!”
“제길! 저 금발 녀석은 방어 스킬이 몇 개인 거야? 전혀 타격을 받지 않잖아!”
“저 꼬마 녀석도 만만찮아! 망치에서 전격이 나와서 닿는 것만으로도 감전된다고…!”
한상우가 부른 동료들도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전쟁의 대미를 장식할 목적으로 소집해놓은 전국의 루미나스 헌터들을 단 세 명이서, 그야말로 가지고 놀 듯 상대했다.
그간 루미나스 헌터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신인류를 구축하기 위해 마강진은 밤낮없이 노력했다.
정치권과 결탁해 연구소를 설립하고, 레이드 없이 강해지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을 납치해 불법적인 일을 벌였다.
오직 강해지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 키운 조직이 이름도 모르는 세 명의 헌터에게 쓸리다니?
“으하, 으하, 으하하하하핫…!”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광경에 마강진은 실소를 터트리며 박장대소했다.
그 모습에 한상우는 루미나스 정예 헌터 하나를 베어버린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드디어 미친 건가?”
“지, 지부장님…?”
영문을 모르는 건 루미나스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마강진은 이마를 짚고 한참을 웃더니.
“홍진성이 당한 게 강철만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군. 좋다, 전력을 다해서 싸워주마.”
아공간 효과가 있는 작은 포탈을 생성했고, 그 안에서 강화 포션을 꺼내어 마셨다.
한상우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왜? 너도 몬스터로 변하려고?”
루미나스의 수법이라면 몇 번이고 겪었다.
수세에 몰린다 싶으면 항상 품 안의 포션을 마셔서 강해지는데, 복용량이 늘어나면서 결국엔 몬스터로 변했다.
처음에야 놀랐지, 두어 번 경험하고 나자 이젠 예측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우습군. 내가 약물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얼간이인 줄 아나?”
마강진은 앞선 녀석들과 다른 듯했다.
한 병을 넘어 두 병, 네 병, 일곱 병….
마시는 강화 물약의 개수가 점점 늘어났지만 몬스터로 변하지는 않았고, 몸 여기저기의 스페이드 문양만 붉게 빛을 발할 뿐이었다.
다만, 이성을 유지하고 있어도 인간성은 몬스터처럼 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시켜 주지.”
딱-!
물약의 섭취를 마친 마강진은 손가락을 튕겨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공간 왜곡]을 사용했는데.
콰과과과과-!!
“헉! 왜 우리까지…?”
한상우를 노리는 과정에서 루미나스 정예 헌터들이 휩쓸렸음에도 스킬을 멈추지 않았다.
“끄아아아아악!!”
“크하아악…!!”
사방에 울려 퍼지는 처절한 비명.
이건 루미나스 정예 헌터에만 국한되진 않았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소용돌이…! 공간이 소용돌이치고 있어!!”
한상우의 캐릭터들과 전투를 벌이던 루미나스 헌터 수백 명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마강진이 만든 원형의 [공간 왜곡]이 토네이도로 강화되어 헌터청 주차장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현장.
그러나 한상우는 아무런 동요 없이 [공간 왜곡]에게서 멀리 떨어져 피하며 나직이 중얼거릴 따름이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네.”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 한상우는 마강진의 폭주를 염두에 두고 전국에서 모인 루미나스를 먼저 노렸다.
이은하의 말에 따르면 마강진은 몬스터 홍진성과 같은 SS급인데, 공간을 왜곡하는 특성이 있어서 처치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여 부하들의 수를 먼저 줄이면 홍진성과 황대건이 그랬던 것처럼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폭주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딱 맞아떨어졌다.
마강진은 몬스터가 되진 않았지만 [공간 왜곡]을 증폭시켜 아군에게도 피해를 입혔고, 그 결과 전국에서 모인 루미나스 헌터들은 수가 절반가량 줄어 공무원 헌터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다만 예측이 적중했다고 해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으니.
콰과과과과과-!!
“이, 이은하 헌터님! 마강진의 스킬이 너무 강합니다!”
“다들 헌터청 밖으로 나가서 시민들을 대피시켜요! 루미나스 녀석들도 처치하고요!”
마강진의 스킬이 생각보다 강해서 이은하와 공무원 헌터들만이 아니라 헌터청과 그 바깥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헌터청만이 아니라 다른 건물들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2차, 3차 피해가 발생해 연쇄 붕괴와 화재 등 도시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쿵-! 쿵쿵-!! 끼기기기긱-!!
“빨리 끝내야겠군.”
헌터청 건물들이 뜯겨나가는 아수라장 속, 한상우는 [용암 전개]로 [공간 왜곡]을 막아내며 캐릭터들에게 전언을 보냈다.
‘전원, 마강진을 노리도록.’
-명 받들겠습니다, 주군.
-바로 처치하겠습니다, 마스터.
-저는 옆에서 지원할게요, 군주님!
루미나스 헌터들과 싸우던 캐릭터들이 마강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전이라면 다소 무리가 따를 일이었지만, 적의 수가 줄어들고 루미나스 헌터들도 [공간 왜곡]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는 터라 마강진에게 향하는 길은 뻥 뚫려 있었다.
한상우의 명령에 따라 제장이는 앞을 가로막는 루미나스 헌터들을 정리하고,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은 마강진에게 쇄도했다.
먼저 도착한 것은 다크어둠이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쾌속 이동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암살자의 빠른 몸놀림으로 땡길거야보다 한발 앞서 마강진의 후방에 침투했다.
그런데 뒤를 잡은 다크어둠이 재빠르게 단검을 내리찍었건만.
후우우웅-!!
“……!”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호기롭게 단검을 내리찍은 순간, 마강진의 등 뒤로 웬 소형 포탈이 생기더니 단검의 칼날이 아공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배후 강타]의 충격은 애꿎은 곳에서 들려왔다.
콰아아앙-!!
헌터청 특별관의 건물 외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마강진이 생성한 소형 포탈의 출구가 건물 외벽 옆에 생성되어 [배후 강타]가 그대로 벽에 꽂힌 것이었다.
땡길거야의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흐읍…!”
다크어둠과 다르게 정면으로 돌진, [급소 찌르기]를 내질렀으나.
촤아아악-!!
정면으로 소형 포탈이 열리면서 땡길거야의 검이 다른 곳에서 나오게 했다.
포탈이 열린 곳은 루미나스 헌터들이 모인 곳이었고.
“크헉!!”
애꿎은 루미나스 헌터가 검에 찔려 피를 토해냈다.
그렇게 둘의 공격을 흘려낸 마강진은 다크어둠과 땡길거야를 향해 건틀릿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폭발.
비공식 SS급이라는 게 허명이 아닌 듯 막대한 파괴력이 아닐 수 없었는데, 다행히 다크어둠과 땡길거야는 각자 쌍단검과 방패로 막아내 피해는 입지 않았다.
마강진은 이전과 다르게 한층 강해진 모습이었다.
한상우는 막바지에 [분화]를 날려 공격했으나, 마강진은 일시적으로 양방향의 포탈을 만들어내는 스킬인 [간이 포탈]을 사용해 불꽃을 다른 공간으로 보냈다. 그리고 자세를 고쳐잡는 한상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협공해봤자 소용없다. 주변의 피해만 감수한다면 지금의 나는 최강이나 다름없으니.”
“처음부터 주변의 피해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헌터청 건물이 꽤 마음에 들었다. 공들여 키운 부하들도 아까웠고. 하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지. 부정한다고 해서 진실이 변하진 않으니, 비꼬는 건 저승에 가서 마음껏 해라.”
마강진은 한상우의 비아냥을 코웃음으로 받아치더니 건틀릿을 내질렀다.
다시 시작되는 [공간 왜곡]을 이용한 공격.
건틀릿에서 파생된 공간의 파동이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다만, 그 공격의 타깃은 한상우와 그 친구들이 아닌.
우우우웅-! 콰과과과과-!!
“뭐, 뭐야…!”
시민들을 대피시킨 뒤에 루미나스 헌터들과 싸우고 있는 공무원 헌터들이었다.
일대일로 대치하고 있던 상황을 깨고서 루미나스 헌터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공무원 헌터들을 먼저 노린 것이다.
당연히 자신과의 전투에 집중할 거라 생각했던 한상우에겐 의외의 상황이었다.
공무원 헌터들도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공간 파동]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아연실색했다.
달려가서 막기엔 이미 늦은 상황.
그러나.
“젠장, 땡길거야! 막아…!”
“예, 주군!”
한상우는 땡길거야에게 방어를 지시했다.
추격할 수 없는 속도라면 다른 방법으로 따라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캐릭터 : 땡길거야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를 소환합니다.]
캐릭터 재소환.
한상우는 땡길거야의 소환을 해제한 뒤, 공무원 헌터들 앞에 좌표를 위치시켜 재소환했다.
효과는 예상대로 확실했다.
마강진의 [공간 파동]이 쇄도하기 직전, 땡길거야가 강림해 [수호의 방패]로 녀석의 스킬을 막아낸 것이다.
쩌어어어엉-!!
굉음 뒤로 사라지는 파동.
땡길거야는 성공적으로 마강진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존재했으니.
마강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한상우에게 말했다.
“호오, 네놈의 친구들…. 인간이 아니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