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9장 화려한 축제(9)
“…….”
한상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마음 같아선 순간 이동 스킬을 사용한 거라고 둘러대고 싶었지만, 속을 눈치는 아니었다. 강화 물약 덕분에 강화된 감각으로 방금 자신이 쓴 스킬을 간파한 듯했으니까.
헌터가 스킬을 직접 사용하는 것과 사용하지 않는 것엔 많은 차이가 있어 둘러대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캐릭터 재소환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으니,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공무원 헌터들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건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헉! 금발 헌터님, 감사합니다!”
“막아주시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헌터청 입구에서 루미나스를 제압하고 있던 공무원 헌터들이 땡길거야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은 [공간 왜곡]의 폭풍으로 아비규환이 된 상황이라 마강진을 제외하곤 땡길거야가 소환수라는 걸 눈치챈 이는 없는 듯했다.
한상우는 마강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약을 먹더니 제정신이 아닌가 보군.”
파앗-!
예전에 루미나스가 그랬던 것처럼 오리발을 내미는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가 화산검을 휘둘렀다.
땡길거야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이 소환수라는 걸 마강진이 눈치채긴 했어도 어차피 달라질 건 없고, 또 눈치챘다고 해도 제거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을 하나 파악당한 것일 뿐이건만 전황이 확 바뀌었다.
마강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명령을 내리자.
“루미나스 전원! 목숨 걸고 한상우를 공격하라!!”
“예!”
“전원, 돌격해라!”
오합지졸처럼 흩어져 있던 루미나스 헌터들이 일제히 한상우에게 달려들었다.
주차장 곳곳에 [공간 왜곡]이 회오리치고 다크어둠과 제장이, 그리고 공무원 헌터들이 무기를 휘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쇄도한 것이다.
물론 한상우도 가만히 있지 않고 땡길거야를 재소환해 마강진을 공격했다.
‘가자, 땡길거야!’
-알겠습니다, 주군!
[반월 베기]로 시작해 [만월 가르기], [급소 찌르기]로 이어지는 연계기를 마강진의 양옆에서 동시에 사용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협공은 무용지물로 돌아가고 말았다.
화아아아악-!!
합을 맞춰 연계기인 [월광 폭발]을 일으켰지만, 마강진이 몸 주변에 [간이 포탈]을 생성하자 푸른 섬광이 다른 지역에서 폭발한 것이다.
심지어 [간이 포탈]이 생성된 출구 포탈의 위치도 최악이었다.
“웬 폭발이…!”
“으, 으악! 다들 도망쳐!!”
콰아아아앙-!!
헌터청 건물과 루미나스 헌터 옆에 나타났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시민들에게 대피 지시를 내리던 공무원 헌터들 쪽에 생성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하앗…!!”
[간이 포탈]이 생성된 순간, 이은하 헌터가 세이버를 휘둘러 푸른 화염을 중화시킨 덕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랄까.
물론, 공무원 헌터 몇몇이 충격파에 휩쓸려 경상을 입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현장에 마강진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큭큭, 급하게 만든 간이 포탈의 출구는 랜덤이지. 출구가 이상한 곳에만 형성돼서 운이 없는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은 내 편인 것 같군!”
마강진의 말이 진짜인지 블러핑인지 알 순 없었지만, 한상우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막무가내로 공격했다간 또다시 간이 포탈에 막혀버릴 거고, 자칫 잘못했다간 방금처럼 공무원 헌터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탓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루미나스 헌터 수백 명도 문제였다.
루미나스의 분위기와 상급자의 명령이라면 죽음도 불사하도록 받은 체계적인 훈련 때문인지, 베어도 베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없이 밀려들었다.
‘전략을 바꾼다. 일단 뒤로 물러난 다음, 루미나스 헌터들의 수부터 줄인다.’
-알겠습니다, 주군. 다만 적들이 너무 많으니 동료 보호를 걸어 드리겠습니다.
한상우는 뒤로 훌쩍 물러나며 전략을 수정했다.
전투 초반처럼 마강진은 견제만 하고 루미나스 헌터들을 처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그사이.
[캐릭터 :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를 사용합니다.]
[동료 보호를 획득했습니다.]
[충격량 1천만을 버틸 수 있는 보호막이 씌워집니다.]
[남은 충격량 - 10,000,000 / 10,000,000]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로 방어막을 씌워줬다.
쿵-! 쿵-!
추격하던 루미나스 헌터들이 멀리서 스킬을 난사했지만, 한상우에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만렙 수호 기사답게 [동료 보호]가 버틸 수 있는 충격량이 워낙 높은 덕분이었다.
게다가 놈들은 연이어 스킬을 날리지도 못했으니.
“마스터에게 위해를 가한 죄, 죽음으로 갚아라.”
“감히! 우리 군주님을…!”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제장이가 강철 전격을 사용합니다.]
다크어둠과 제장이가 몰려드는 루미나스 헌터들을 계속해서 응징했다.
그 틈에 한상우는 마나 포션 두 병을 연거푸 들이켰다.
세 캐릭터의 유지 시간이 길어지고, 많은 마나를 소모하는 연계기까지 쓰다 보니 마나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마강진이 웃음을 지으며 다시 [공간 왜곡]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래, 저 정도로 강한 소환수를 소환하려면 필시 막대한 마나가 들 터. 이제 고작 B급인 네 녀석에게 그 정도의 마나가 있을 리가 없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유리해진다는 뜻이지!”
콰과과과과-!!
[남은 충격량 - 7,300,000 / 10,000,000]
투명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동료 보호]의 방어막을 빠른 속도로 깎아나갔다.
보호막이 화산방패보다 더 넓은 범위에 위치하다 보니 막을 수도 없었다.
“제길, 역시 까다롭네.”
촤아아악-!!
가까스로 [공간 왜곡]의 폭풍에서 빠져나온 한상우는 달려드는 루미나스 헌터를 베어버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쉽지 않을 걸 예상하긴 했다.
하이어에서도 그렇지만 수호 기사와 암살자는 공간 계열 마법사에게 상성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주변에 루미나스 헌터들이라도 없으면 어떻게든 틈을 찾아 공략했을 테지만, SS급에 강화 물약까지 마신 마강진을 빠른 속도로 제압하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한상우 헌터님! 조금만 버티세요! 청장님과 다른 SS급 헌터님들께 연락했으니 금방 올 거예요!!”
저 멀리서 이은하 헌터가 루미나스 헌터들을 베어 넘기며 한상우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시간이 많진 않았다.
“크하하핫! 내가 그거 하나 계산하지 못할 것 같나? 슬슬 끝내주도록 하지. 모두 퇴각할 준비를 해라!”
“예! 지부장님!”
마강진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병력을 데리고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듯했다.
전열을 재정비하는 한편, 건틀릿을 높이 들어 [공간 파동]을 크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도주하기 전에 막강한 스킬을 던져 포탈을 만들고 후퇴할 시간을 벌려는 속셈인 듯했다.
-마스터, 공격할까요?
다크어둠도 마강진의 속셈을 파악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한상우는 고개를 가로저을 따름이었다.
‘안 돼. 저 녀석을 공략하려면 땡길거야와 협공해야 하는데, 그렇게 했다간 공무원 헌터들이 위험해. 간이 포탈의 출구가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고.’
변수가 한두 개가 아닌 터라 무리할 수는 없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방법도 있었고.
한상우는 우측 상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일곱 번째 업적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일곱 번째 업적 – S급 던전을 클리어하세요(1/1)]
[메시지를 터치할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7/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S급 던전 클리어 후, 수령하지 않은 보상이 남아 있었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 뒤로 미뤄놨던 보상 수령이었는데, 한상우는 곧장 손가락을 움직여 터치했다.
이제는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상은 곧장 수령됐다.
[일곱 번째 업적 달성 보상으로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상승합니다.]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6에서 7로 상승합니다.]
[스킬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선출 가능 횟수가 1회 충전됩니다.]
[유일 스킬 : Lv 7. 캐릭터 소환]
[현재 소환 캐릭터 : (3/3)]
[보유 캐릭터 : 3]
[선출 가능 횟수 : 1]
‘됐다!’
선출 횟수 충전.
머릿속으로 그렸던 보상 리스트 중 지금 가장 필요한 보상이 따라왔다.
[네 번째 캐릭터를 소환합니다.]
[선출되는 캐릭터는 무작위입니다.]
한상우는 지체하지 않고 선출을 사용했다.
그사이.
“즐거운 전쟁이었다. 마지막으로 주는 내 선물이다!!”
거대한 크기의 [공간 파동]을 완성한 마강진이 한상우 쪽을 향해 건틀릿을 내질렀다.
조금 전에 만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다.
땡길거야의 [수호의 방패]로 막는다고 해도 그 충격파로 인해 헌터청 건물이 날아가고, 주변이 풍비박산 날 건 자명했다.
“피, 피해요, 한상우 헌터님!”
이은하도 위험을 감지한 듯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하지만 한상우는 검과 방패를 늘어트린 채 여유롭게 웃을 따름이었다.
“전쟁…? 이상하네. 내 눈엔 아무리 봐도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 축제로밖에 안 보이는데 말이야.”
이유는 곧 밝혀졌다.
[공간 파동]이 날아오는 순간.
파앗-!
섬광이 일면서 웬 회색 머리칼의 사내가 나타나더니 지팡이를 휘둘러 [공간 파동]을 없애버렸다.
방어도 아니고, 회피도 아니었다.
소멸.
말 그대로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그 거대하던 공간 응축의 힘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무, 무슨…?”
마강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한상우 앞에 등장한 인물은….
[캐릭터 명 - 매직킹]
[레벨 - 999]
[직업 - 마법사]
<스탯>
[힘 : 580] [민첩 : 520] [지력 : 920] [체력 : 670] [마력 : 950]
<스킬>
[에너지 볼트] [디스펠] [텔레포트] [마력 강화] [레비테이션] […….]
[충성도 – 510 / 999]
마법의 정점에 이른 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