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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85화 (85/169)

제85화

9장 화려한 축제(10)

“너는… 누구지?”

마강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180cm에 달하는 키에 회색 머리칼, 은빛 안경, 금색으로 자수가 된 흰색 로브와 보라색 보석이 박힌 백금 지팡이 등.

초면이었지만 방금 보여준 힘과 행색만 봐도 범상찮은 인물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SS급 실력의 마강진이 사력을 다해 만든 [공간 파동]을 아예 소멸시켜 버리다니.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강진 뒤에 정렬해 있던 루미나스 헌터들은 단체로 입을 쩍 벌렸고.

“방금 봤어? 마강진이 쓴 스킬이 순식간에 소멸됐어!”

“저 안경 쓴 헌터님이 한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공무원 헌터들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사태를 주시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새로 등장한 청년만 바라봤다.

일순간, 전장에 내려앉은 침묵.

다들 청년의 정체를 알고 싶어 입을 다물었지만.

-보고 듣는 이가 많군요. 전언으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매직킹, 만물을 탐구하는 지혜의 탐사자죠. 귀하이십니까, 제가 보좌해야 할 로드가.

안경을 낀 회색 머리칼의 청년은 오직 한상우만 들을 수 있도록 전언으로 얘기할 뿐이었다.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마법사라 그런지 눈치도 상당히 빨랐다.

하이어에서 마법사는 특유의 센스와 유머로 인기 있는 캐릭터 중 하나다.

한상우는 하이어와 똑같은 매직킹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전언으로 화답했다.

‘반갑다, 매직킹. 피아식별은 알아서 잘할 수 있지?’

-당연하죠, 로드. 마침 딱 상대하기 좋게 삼삼오오 모여 있네요.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처음 소환하는 것이기에 혹여나 피아식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히 매직킹의 상황 파악 능력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매직킹은 한상우에게 묵례를 올린 뒤, 마강진과 그 일당을 돌아봤다.

그리고.

“야, 이 개쉐리들아.”

찰진 욕을 날렸다.

“……!?”

“……?!”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이런 것일까.

침묵 속에서 모두가 경악했다.

마치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와 느낌표 등 각종 기호가 떠오르는 듯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급스러운 외모에 마강진의 스킬을 막아낸 범상찮은 인물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그 내용과 억양이 너무 저급한 탓이었다.

그 뒤는 더 가관이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어디서 행패야? 돌았냐? 그리고 그 구린내 폴폴 나는 물약은 뭐냐? 감히 무고한 생명을 마나로 치환해? 실력이 안 되면 집에서 발 닦고 잠이나 잘 것이지 감히 그딴 걸 처먹고 로드에게 대들어? 너희들은 오늘 뒈졌다고 복창해라.”

매직킹은 래퍼라도 된 듯 격한 말을 속사포로 쏟아내며 마강진과 루미나스 헌터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넋이 나간 건 이은하와 공무원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매직킹의 고급스러운 외모와 질 낮은 욕지거리의 갭이 인지 부조화를 일으킨 것이다.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할 말을 잃었다.

단 한 사람, 한상우만 빼고.

한상우는 오히려 매직킹이 생각보다 순하게(?)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음, 하이어보단 훨씬 덜하네.’

하이어에서 마법사는 이중인격의 소유자로 평소엔 온화하나 싸움이 벌어지면 욕설을 뱉고 상대를 조롱하는 등 성격이 격하게 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 진면모는 메인 에피소드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욕인 듯 욕이 아닌 광기 어린 대사를 끝없이 쏟아낸다.

그 덕분에 마법사는 하이어에서 이렇게 불린다.

매드 킹(Mad King).

한마디로 캐릭터 중에서 최고로 미친놈이라는 뜻이다.

사실 한상우도 마법사의 캐릭터 명을 매드킹으로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 선점한 닉네임이라 매드킹과 비슷한 매직킹으로 이름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게임에서만 보던 욕지거리를 눈앞에서 직관하게 되다니.

하이어의 고인물인 한상우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는데,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벙찌는 듯했다.

멈춰버린 전투 속, 이은하가 한상우의 옆으로 다가와서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저기… 한상우 헌터님? 저분도 한상우 헌터님의 친구분인가요?”

“뭐… 예. 그렇다고 보시면 됩니다.”

“역시 그랬군요. 그런데 다른 친구분들은 어디 가셨죠? 방금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세 분 모두 갑자기 안 보이시네요.”

“그게….”

이은하의 질문에 한상우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매직킹을 소환할 때 땡길거야와 다크어둠, 그리고 제장이의 소환을 모두 해제했기 때문이다.

한창 싸우는 중이고 동시 소환도 가능한데 굳이 세 명 모두 소환을 해제할 필요는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는 제장이의 소환만 해제하고 매직킹을 소환했지만.

[알림 : 마법사는 스킬 사용 시, 소환자의 마나 일부를 소모합니다. 스킬의 수준이 높을수록 마나 소모량이 커집니다.]

[공간 파동]을 무효화하자 알림 메시지와 함께 마나가 무섭게 빠져나간 탓이었다.

한상우는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 매직킹에게 쏠린 틈을 타서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의 소환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남은 마나가 10%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한상우는 마나 포션을 들이키며 대충 둘러댔다.

“잠깐 숨어서 휴식 중입니다. 곧 다시 나올 거예요.”

“아, 그렇군요. 매복 스킬의 수준이 엄청 높네요. 제가 눈치도 못 챌 정도라니….”

“그래야 마강진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매복한 친구들이 나오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될 수도 있어요.”

“예? 어떻게요?”

아까보다 루미나스 헌터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긴 했지만, 여전히 수백 명이 넘는 데다 마강진도 건재했다.

대체 어떻게 상황이 종료될 수 있다는 것일까?

이은하는 상상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상우는 대답 대신 전장을 주시했다.

멍하니 서 있던 루미나스 헌터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며 다시 무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딱 1분 준다. 무기 버리고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매직킹이 지팡이를 뻗으며 항복을 종용하자.

“뭐? 정신이 나갔나….”

“어디서 저런 미친놈이….”

루미나스 헌터들이 발끈하며 하나둘씩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살벌하게 바뀌었다.

“오호, 까부네. 방금 했던 말 취소. 너넨 즉결 처형이다.”

매직킹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자신에게 다가오는 루미나스 헌터를 지팡이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 통구이.”

그러자.

[캐릭터 : 매직킹이 인페르노를 사용합니다.]

콰앙-! 화르르르륵-!

“무, 무슨! 으아아아아악…!”

다가오던 루미나스 헌터의 발밑에서 웬 불기둥이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신형을 집어삼켰다.

방금 전까진 사람이었지만 이젠 숯이라고 불러야 어울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동료는.

“너, 꼬챙이.”

[캐릭터 : 매직킹이 아이스 스피어를 사용합니다.]

촤아악-! 푹-! 푹-! 푹-!

“커헉…!”

여러 개의 얼음 창을 날려 몸을 꿰뚫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뒤쪽에 있는 녀석에게는.

“넌, 전기 고문.”

[캐릭터 : 매직킹이 체인 라이트닝을 사용합니다.]

파지지직- 콰아아앙-!

“갸악…!”

“뭐, 뭐야! 광역 스킬이잖아! 끄아악!!”

단일 마법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광역 마법을 날렸다.

지팡이 끝에서 나아간 번개가 여러 갈래의 전격으로 바뀌어 십수 명에 달하는 루미나스 헌터들을 감전시킨 것이다.

단체로 바닥에 널브러져 몸을 부르르 떠는 그 모습에.

“웁스, 하나만 죽이려 했는데 실수했네. 연대 책임이라고 생각해라.”

매직킹은 윙크하며 사과했지만 누가 봐도 고의였다.

가볍게 사용한 스킬임에도 B급 이상의 헌터들을 일격에 보내버리는 막강한 파괴력.

이쯤 되자 마강진이 다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세 놈이 없어지고, 새로운 한 놈이 왔군.”

마강진은 매직킹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며 [공간 왜곡]을 시전했다.

앞서 [공간 파동]을 막아낸 게 우연인지 실력인지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캐릭터 : 매직킹이 디스펠을 사용합니다.]

[공간 왜곡이 해제됩니다.]

“뭐냐, 이 허접한 마법은?”

매직킹은 너무나도 쉽게 마강진의 스킬을 파훼했다.

그저 지팡이를 휘둘러 [디스펠]을 시전하는 것만으로 회전하는 공간을 정상으로 되돌려버린 것이다.

“실력이 제법이군. 마법 계열인 것 같으니 근접전으로 상대해주지.”

물론, 마강진도 보통은 아닌 인물이라 잠깐의 시간 동안 어느 정도 대비책은 마련해둔 듯했다.

[공간 왜곡]이 [공간 파동]처럼 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땅을 박차 매직킹과의 거리를 좁혔다.

마법 계열이든, 물리 계열이든 상당한 기량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쪽이든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 마강진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마강진이 도착했을 때, 매직킹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캐릭터 : 매직킹이 블링크를 사용합니다.]

“느려, 인마. 굼벵이 처먹었냐?”

짧은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는 스킬, [블링크]로 멀찍이 떨어졌다.

순간 이동의 도착 지점이 루미나스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던지라,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졌지만 별 상관없었다.

“죽여…!”

“어이쿠, 무서워라. 날려 버려야겠네!”

[캐릭터 : 매직킹이 윈드 스톰을 사용합니다.]

휘이이잉-! 콰과과과과-!!

“으아아아악!!”

수십이든 수백이든 공격하지 못하게 날려버리면 그만이므로.

매직킹은 광범위한 폭풍을 일으켜 루미나스 헌터들을 공중으로 띄운 뒤 자유낙하 시켰다.

그리고.

후우웅-!!

“느리다니까, 거북이 자식아.”

뒤늦게 추격해온 마강진의 주먹을 회피해 버리곤 다시 [블링크]로 거리를 벌렸다.

“제길, 성가신 마법사 같으니…!!”

마강진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 스킬은 [디스펠]로 해제해 버리고, 근접 공격은 [블링크]로 물러나 아예 허용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가지고 노는 듯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미쳤다…. 차원이 다른데? 스킬이 너무 강력해서 지원은 엄두도 못 내겠어.”

“맞아. 저기 들어갔다간 되려 휩쓸리고 말 거야.”

공무원 헌터들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문제점도 존재했다.

한상우가 전언으로 현 상황을 알려주었다.

‘매직킹, 신나는 건 알겠지만 빨리 끝내야 해. 남은 마나가 얼마 없어.’

매직킹이 워낙 많은 스킬을 쓰다 보니 마나 포션을 계속해서 들이켜도 남은 마나량이 20%를 넘지 못했다.

포션 섭취를 멈추면 마법 퍼레이드도 그만둘 수밖에 없는데, 그건 매직킹도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이었다.

-하핫. 죄송합니다, 로드. 그래도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금 완성했거든요, 이놈들을 모두 골로 보낼 마법진이.

디스펠과 블링크를 적절히 활용해 마강진에게서 계속 도망치던 매직킹.

그가 이동하던 땅의 궤적에는 지팡이로 그려진 마법진이 있었다.

그건 매직킹의 움직임이 단순한 도망이 아닌, 하나의 큰 그림이었다는 증거였다.

어느덧 바닥에 잔뜩 그어진 검은 선들.

“어? 이게 뭐지…?”

몇몇 루미나스 헌터들이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자, 재미난 마법의 시간이다.”

쿵-!

한창 도망 다니던 매직킹이 지팡이를 내리찍자.

[캐릭터 : 매직킹이 금제 개방을 사용합니다.]

[유폐된 차원이 개방됩니다.]

고오오-

마법진이 그려진 땅에 어둠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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