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10장 일취월장(1)
서울 전역에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와 루미나스의 헌터청 습격 사건.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부산에서도 대량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긴 했지만 서울에서 발생한 건 평균 등급이 더 높았고, 루미나스가 선진국의 헌터청을 직접 습격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대헌터시대 초창기와 비견될 정도로 위중했던 사건.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보다 더 크게 화제가 된 게 있었으니.
바로 사상자의 수가 100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B급부터 S급까지 수십 개에 달하는 던전이 터졌을 뿐만 아니라 몬스터 연구소, 헌터청 등 각종 기관을 루미나스가 침공했다.
대헌터시대 당시의 자료로 분석해 봤을 때, 이 정도 규모의 사고가 발생했다면 사망자가 천은 가볍게 넘을 만한 사건이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초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까지 속보로 서울의 상황을 다룬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상황이 종료되고 피해 상황을 집계하자 사상자는 100명도 되지 않았다.
물론, 헌터청에서 발표한 이 사상자의 수에서 천 명 이상이 사망한 루미나스 헌터들의 피해는 빠져 있었지만 그걸 포함해도 적은 수였다.
특히 민간인의 피해는 부상 32명이 전부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경악에서 감탄으로.
극적으로 해결된 상황에 사람들은 사건을 해결한 헌터청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확실히 칭찬받을 만했다.
대형 참사를 막은 것도 대단하지만, 후속 조치 또한 훌륭했다.
헌터청은 이번 일을 루미나스의 테러로 규정하고 발 빠르게 대응했다.
비록 지하 감옥의 죄수가 탈출하긴 했지만 곧바로 지명 수배를 내리고, 루미나스의 한국 지부장을 처치했음을 공표한 것이다.
또한 루미나스와 결탁한 정치인들을 색출해 긴급 체포하는 동시에 대형 길드들과 합동 작전을 펼쳐 전국 각지에 퍼져 있던 루미나스 헌터 30여 명을 추가로 체포했다.
이 모든 게 대형 사건이 터진 지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완벽에 가까운 헌터청의 대처에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언론은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헌터청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다 보니 루미나스 한국 지부장을 처치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자 관심이 쏟아진 것이다.
물론, 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빌딩 옥상에서 기자들이 촬영한 영상과 사진이 있긴 하지만 최대천이 압수해 세상에 퍼지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파트 발코니, 고층 빌딩 등 먼발치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시민들의 영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비록 멀리서 찍어 실루엣만 나오는 게 고작이고, 시야도 제한적이라 휙휙 지나가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다.
<심층 : 루미나스 한국 지부장을 처치한 인물은 누구?>
<속보 : 최대천 헌터청장, 지부장 사살은 모든 공무원 헌터들의 노력이 모인 결과. 특정 인원 지목은 보안상 밝힐 수 없어.>
<종합 : 루미나스로부터 헌터청을 지킨 공무원 헌터는 비밀 요원으로 추정. 국내외 헌터 전문가들 “신원을 파헤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뉴스에선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동영상 플랫폼에선 짤막한 전투 영상의 조회수가 순식간에 3천만을 돌파했다.
그러나 내 신상이 드러나는 일은 없었으니, 최대천이 언론과 거리를 두고 통제했으며 현장에 있던 이은하와 공무원 헌터들도 보안을 유지해준 덕분이었다.
정말 일을 잘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대처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일장일단이 있다고 했던가. 이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헌터청이 모든 역량을 루미나스에 집중한 덕분에….
“후우, 심심해 죽겠네.”
나는 원룸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일곱 번째 업적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여덟 번째 업적은 선행 조건을 달성할 시 개방됩니다.]
[선행 조건 – 레벨 250 달성(194/250)]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7/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S급 던전 클리어로 일곱 번째 업적 달성 후, 여덟 번째 선행 조건이 개방됐다.
이번 선행 조건은 레벨 250 달성으로, 제장이의 연락을 받고 헌터청에 가기 전에 여러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해서 194레벨까지 찍었다.
이제 길드도 있고 독존도 강화했겠다, A급 던전을 계속 돌면 250레벨까지는 금방일 듯했지만 당장 레이드를 할 수는 없었다.
루미나스가 수도권에 있는 A급 이상의 게이트를 전부 터트려놔서 복구하는 데 일주일가량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B급 이하 던전은 향후 한 달 동안 입찰이 완전히 끝나버렸다. 지방의 던전으로 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한동안은 서울에 거주해 달라는 신대훈의 요청이 있어 멀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집에서 하이어를 하는 것뿐이었는데,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예전엔 온종일 하이어만 해도 즐거웠지만, 각성한 이후로는 레이드를 하루라도 돌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렸다.
헬스에 중독된 사람들이 운동을 하루라도 빠트리면 몸이 찌뿌둥해서 미친다는데 꼭 그런 기분이었다.
“흠, 그거나 다시 한번 맞춰 볼까.”
할 일이 없으니 예전에 했던 걸 자연스레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하이어에서 제장이의 자동사냥을 돌려놓은 후,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두 번째 열쇠 조각]
[등급 : 일반]
[특징 : 두 번째 열쇠 조각입니다.]
[효과 : 모든 열쇠 조각을 모으면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4/5)]
검지만 한 크기의 황금색 쇠붙이.
다름 아닌 마강진에게 획득한 열쇠 조각이었다.
마강진을 처치한 직후, 녀석의 주머니에서 웬 펜던트가 흘러나와 챙겼는데 집에 와서 살펴보니 [두 번째 열쇠 조각]이 들어 있었다.
이로써.
다섯 번째부터 두 번째까지.
총 네 개의 열쇠 조각이 모였다.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마땅히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네 개의 열쇠 조각을 퍼즐처럼 맞춰 봤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열쇠의 사용법을 물어볼 루미나스 헌터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아이템 하단에 기술된 효과를 봤을 때, 첫 번째 열쇠 조각도 모아야 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열쇠 조각은 어떻게 찾지…. 루미나스 녀석들 본거지에 쳐들어가야 하나.”
마지막 하나만 남아서일까, 할 일이 없어서일까.
지금까진 열쇠 조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남은 하나를 찾아내서 열쇠 조각을 완성하고 싶은 욕망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때.
‘매직킹을 소환해볼까?’
뜬금없이 발상이 하나 떠올랐다.
하이어에서 메인 에피소드 전개가 막힐 때면 마법사한테 가서 조언을 구하는 퀘스트가 뜨기 때문이다.
현실은 하이어와 달라서 도움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시도해서 손해 볼 것도 없었다.
하이어도 워낙 많이 해서 잠깐 쉬어도 되고 말이다.
결론을 내린 나는 서둘러 [캐릭터 소환]을 사용했다.
[캐릭터 : 매직킹이 비전투 모드로 소환됩니다.]
[캐릭터 소환 유지의 마나 소모량이 95% 감소합니다.]
“무한한 우주를 탐구하는 자에게 지혜의 축복을. 부르셨습니까, 로드.”
동그란 은테 안경을 낀 회색 머리칼의 청년이 백금 지팡이를 든 채 내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은 아니었다. 집에 있는 동안 혹시나 마법사의 히든 퀘스트가 있을까 봐 몇 번 소환해 봤으니까.
별 소득은 없었지만, 덕분에 매직킹은 원룸에 꽤 적응한 상태가 되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녀석에게 네 개의 열쇠를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이건 다섯 개를 모아야 하는 아이템이야. 네 개는 모았는데 나머지 하나를 찾을 수 있을까?”
“음…. 이건 봉인 아이템이군요.”
“봉인 아이템?”
“예, 하나의 아이템에 봉인 마법을 걸어 여러 개로 분리한 겁니다. 다섯 개 중 네 개를 가지고 계시니, 이렇게 되면 나머지 하나는 금방 추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추적할 수 있나?”
“예, 가능합니다.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네요.”
“그래? 얼마나 걸리지?”
희소식이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매직킹이 남은 열쇠 조각을 추적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로드. 바로 여기에 있으니까요.”
“음…?”
남은 열쇠 조각이 이곳, 내 방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매직킹이 두 번째 열쇠 조각이 들어 있던 마강진의 펜던트를 집으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 조각입니다, 로드.”
“그게 마지막 조각이라고? 모양이 다른데? 아이템 정보도 안 뜨고.”
“그건 암호화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펜던트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순서에 따라 마나를 주입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죠.”
“그래? 하지만 순서를 모르지 않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암호화하는 과정에서 정해진 순서를 입력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나의 흔적이 남게 되죠. 그 마나의 흔적을 역으로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그럼 결국….”
매직킹은 그렇게 말하고는 펜던트 위에 손을 얹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딸각-! 번쩍-!!
“이렇게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죠.”
펜던트가 섬광을 방출하더니 동그란 열쇠 머리 모양으로 바뀌었다.
나는 매직킹이 변화시킨 금붙이를 건네받았다.
그러자.
[첫 번째 열쇠 조각]
[등급 : 일반]
[특징 : 첫 번째 열쇠 조각입니다.]
[효과 : 모든 열쇠 조각을 모으면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5/5)]
아까와 다르게 반투명한 글자가 떠올랐다.
“이게 열쇠 조각이었다고…?”
“아마 원주인도 몰랐을 겁니다. 암호화 때문에 마법에 통달하지 않았다면 해법은커녕 그 기운조차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요.”
“대단해. 역시 만렙 마법사다워.”
“하핫! 과찬이십니다, 로드.”
실마리나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소환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가 따라왔다.
나는 매직킹을 칭찬한 후, 책상 위에 각기 다른 모양의 열쇠 조각들을 올려놓았다.
변화는 곧바로 일어났다.
다섯 개의 열쇠 조각을 퍼즐 맞추듯 정확하게 끼워서 맞추자.
파아아앗-!
금빛 섬광이 일면서 열쇠 조각들이 하나의 열쇠로 재탄생했다.
드디어 완성하게 된 열쇠 조각.
과연 어떤 아이템이 될 것인가.
기대감을 가지며 나는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용족 군단의 황금 열쇠]
[등급 : 알 수 없음]
[효과 : 던전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특징 : 열쇠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봉인된 던전이 열립니다. 일회용입니다.]
루미나스의 간부들이 들고 있던 만큼 뭔가 좋은 것일 줄 알았는데, 등급은 알 수 없고 효과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던전이 봉인되어 있다니.
그때, 매직킹이 옆에서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뭐가 봉인되어 있나 했더니 던전이었네요. 어떤 던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로드.”
“쉽지 않다고? 네가 클리어 못 할 정도인가?”
“후후, 설마요. 제가 클리어하지 못하는 던전은 없습니다, 로드. 일반적인 기사와 마법사의 수준에서 어렵다는 뜻이죠.”
“그래? 그럼 잘됐네. 마침 심심했는데 마실을 잠깐 다녀와야겠어.”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레이드가 막혔는데 집에서 던전을 돌 수 있다니.
나는 곧바로 열쇠를 작동시키려 했다.
그 순간, 매직킹이 지팡이를 내밀어 날 급하게 저지하며 말했다.
“포탈을 생성하면 꽤 강한 파동이 발생할 겁니다. 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는데, 지금 하고 싶으시다면 열쇠 조각 주위로 결계를 쳐 드리겠습니다.”
“꽤 강한 봉인이 걸려 있나 보네.”
“예. 마나도 많이 소모될 걸로 예상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로드?”
“그래. 어차피 그 정도로 강한 파동이 일어난다면 여기서 하는 게 낫겠어.”
건물이 무너질 정도라면 밖에서 했다간 대번에 이목을 끌 테니 집 안에서 하는 게 나았다.
마나가 소모되긴 할 테지만 쉬는 동안 틈틈이 아이템 거래소에서 산 중급 마나 포션이 백 개에 달했기에 마나는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그렇게 매직킹의 제안에 동의하자.
“시작하겠습니다, 로드.”
[캐릭터 : 매직킹이 전투 모드로 전환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맹약의 보호막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강력한 스킬을 사용하여 시전자의 마나 일부를 소모합니다.]
[남은 마나 – 89%]
카앙-!
무수한 메시지와 함께 손에 쥔 황금 열쇠 겉에 반투명한 보호막이 씌워졌다.
“그럼 열어 볼까?”
“예. 문제없을 겁니다, 로드.”
나는 원룸 중앙에 서서 허공에 대고 열쇠를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그러자.
쿵-!
[용족 군단의 황금 열쇠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던전이 개방됩니다.]
촤아아아악-!!
열쇠가 한 차례 진동하더니 포탈을 만들어내면서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매직킹이 보호막을 친 덕분인지 별다른 외부의 충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저.
[용족 군단의 던전]
[등급 : 알 수 없음]
[특징 : 미해결 던전입니다.]
[경고 : 오직 강한 힘을 가진 자만이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인원 제한 : 없음]
[해당 던전 클리어에 실패할 경우, 열쇠는 다시 열쇠 조각으로 나뉘어 흩어집니다.]
여러 정보를 띄우며 황금빛 아공간이 자태를 뽐낼 뿐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등급은 안 나와 있네. 경험치 좀 많이 줬으면 좋겠는데.”
“로드의 세계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S급 이상은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거 희소식이네.”
S급 이상의 미해결 던전에 혼자 진입하는데 좋아하다니.
누군가 듣는다면 미친놈인 줄 알 테지만….
맞다. 나는 지금 사흘 동안 레이드를 뛰지 못했기에 한 달 넘게 헬스장을 못 간 헬스 중독자처럼 정신이 나간 상태다.
어느 정도냐면 이 던전은 무력을 추종하는 루미나스들이 비밀리에 수집한 아이템에서 나온 것이니 품질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좋아, 그럼 들어가 볼까.”
“보좌하겠습니다, 로드.”
“음, 그래. 같이 사냥해보자.”
매직킹이 마나를 많이 잡아먹긴 하지만 열쇠 조각의 비밀을 푼 만큼 효율은 확실하게 있을 듯했다.
과연, 이 던전엔 어떤 몬스터와 보상이 있을 것인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황금빛 포탈에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