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89화 (89/169)

제89화

10장 일취월장(2)

[용족 군단의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조우하여 던전을 클리어하세요(0/1)]

화아아악-!!

“흐음, 섬멸형 던전인가? 시작부터 몰아치진 않네.”

“예. 주위에 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드.”

포탈을 통과하자 희끄무레한 통로가 나와 매직킹을 반겼다.

동굴처럼 보이는 공간.

하지만 던전의 무대가 동굴은 아닌 듯했다. 길을 따라 걸어 밖으로 나가자.

휘이이이잉-!

산 아래에서 매캐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폐허가 된 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한바탕 한 것 같은데요.”

“그렇네. 내려가 보자.”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매직킹과 함께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몬스터가 안 보이지?”

“생명체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드.”

30분 넘게 산을 내려왔건만 몬스터는 고사하고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최소 5분에 한 마리씩 몬스터를 마주치게 되는 일반적인 던전과 현저히 다른 모습.

그래서 나는.

“텔레포트 가능하지? 저기 보이는 도시로 바로 이동한다. 걸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군.”

“알겠습니다, 로드.”

좀 더 빠른 이동을 선택했다.

매직킹을 이용해 단숨에 도시로 순간 이동한 것이다.

[캐릭터 : 매직킹이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합니다.]

[매스 텔레포트의 효과로 공간을 이동합니다.]

순식간에 바뀐 풍경.

온몸을 감싸는 섬광 뒤로 눈을 깜빡이자, 멀리 있던 부서진 성문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여기도 상황은 비슷했다.

“여기도 몬스터는 없는 것 같은데요, 로드?”

“그렇네.”

단둘이서 광역 마법인 매스 텔레포트를 이용하는 호사를 누렸으나, 산속과 마찬가지로 몬스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으니.

“사, 살려주세요….”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 분수대 앞에 엎어져 있는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인식표.

몬스터는 아니었으나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빛바랜 망자들의 왕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긴 하지만, 던전 안에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성체가 없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눈앞의 소년처럼 몬스터가 아닌 인간형의 지성체가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마냥 부정할 수도 없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존재가 날 올려다보며 말하는 건 엄연한 현실이었으니까.

소년은 우리가 경계하는 걸 느꼈는지 덜덜 떨리는 팔로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 괴물 아니에요. 그러니… 제발 물 좀….”

바짝 마른 입술과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 얼핏 봐도 탈수인 상태였다.

위협은커녕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모습.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하이어에선 몬스터가 노약자로 변신해 모험가를 유혹하는 수법은 굉장히 흔하니까.

매직킹도 그러한 함정을 알고 있는 듯 먼저 소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폴리모프를 쓴 것 같진 않지만 위험 요소가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로드.”

“그래. 문제가 없으면 이걸 건네줘.”

나는 인벤토리에서 작은 생수병을 하나 꺼내 매직킹에게 던져주었다.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 맞는다면 물을 먹이는 게 급선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판단은 옳았다.

‘어때, 매직킹?’

-몬스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따로 마법이 걸린 것도 없고요. 그런데 인간도 아닌 것 같군요. 왠지 모르게… 안식처에서 맡은 것과 비슷한 냄새도 풍기고요.

‘안식처라….’

선뜻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짐작이 가는 건 있었다.

NPC.

이 소년은 나와 같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원래부터 던전에 있던 존재로 봐야 하는데, 인간이 아니라면 남은 건 내가 아는 선에선 NPC밖에 없었다.

나는 매직킹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매직킹은 물병을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전신에 흙먼지가 잔뜩 묻은 소년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더니 한결 나아진 안색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끄윽,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데, 혹시 성함을 여쭤볼 수 있을까요?”

“성함이라… 그냥 용병이라 불러. 그보다 넌 누구지? 여긴 왜 이렇게 됐고?”

나는 소년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비록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이 NPC 같은 소년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다행히 소년은 많은 걸 알려주었다.

“제 이름은 하센이에요. 용족 군단을 토벌하러 간 아버지를 찾으러 왔어요. 여긴 광산 도시, 발데하르고요. 아버지께서 파견 간 곳이라고 해서 왔는데… 아무도 안 보여요.”

“발데하르? 랑데르크 공국의 서쪽 끝 도시를 말하는 건가?”

“엇, 알고 계시네요?”

소년 하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랑데르크 공국의 광산 도시 발데하르는 하이어에 존재하는 곳이니까.

다만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아 접근할 수 없는, 미개척지로.

‘매직킹, 여긴 혹시 하이어… 안식처 안인가?’

빛바랜 망자들의 왕이 있던 던전도 하이어와 연관이 있었지만 그건 내 퀘스트에서 파생된 것이었고, 지금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이어에 존재하는 도시가 있다니?

순간 게임 속으로 들어오기라도 한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로드. 저의 화신체 계약 상태가 안식처의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안식처와 연관되어 있지만 독립된 공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매직킹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하이어 안일 확률은 낮아 보였다.

만약 하이어 안이라면 게임 내부에 있는 매직킹의 아이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매직킹의 인벤토리를 열어 보면 여전히 제약에 따라 텅 비어 있었다.

그때였다.

“용병님들, 혹시 저희 공국 분들이신가요? 그럼 제발 저희 아버지 좀 구해주세요!”

[첫 번째 선택의 길이 열렸습니다.]

[1. 소년의 안내에 따라 광산으로 이동한다.]

[보상 미리보기 : 추후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2. 왔던 길을 되돌아가 포탈을 통해 던전을 나간다.]

[보상 미리보기 : 획득할 수 있는 보상이 없습니다.]

하센의 부탁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처음 보는 형식이었다.

선택지가 떠오르다니.

하이어에선 흔하게 볼 수 있지만 현실의 던전에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진행 방식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현상.

그러나.

‘재밌네. 선택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니.’

중요한 건 퀘스트가 선택지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나타났다는 것이고, 소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런 보상도 없이 던전이 끝난다는 것이었다.

-고민이 깊어 보이십니다, 로드. 그냥 소년을 무시하고 몬스터를 찾아볼까요? 수색 범위를 넓히면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 일단 이대로 진행한다. 소년의 안내를 따라서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아.’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매직킹이 다른 방법을 제안했지만, 나는 흐름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루미나스가 모은 아이템에서 어째서 하이어와 연관된 던전이 나타난 건진 알 수 없었지만, 계속 진행한다고 해서 해가 될 건 없어 보였다.

나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소년을 일으키며 말문을 열었다.

“너희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있니?”

“피난민들한테 들었는데 아마 저 광산 너머에 계실 거래요. 그런데 다들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광산 안에 토벌군이 막지 못한 용족 군단의 침투조가 있을 거라면서요.”

하센이 도시 뒤쪽의 높다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해진 경로.

목표를 정했으니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 건 상관없어. 매직킹, 바로 출발한다. 매스 텔레포트 사용해줘.”

“예, 로드. 바로 시전하겠습니다.”

명령이 떨어지자 매직킹이 마나를 모은 뒤, 백금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파앗-!

[캐릭터 : 매직킹이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합니다.]

[매스 텔레포트의 효과로 공간을 이동합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빛이 전신을 감싸면서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분수대가 있는 광장에서 거대한 공동이 보이는 동굴 입구로.

“헉! 이, 이게 뭐죠? 갑자기 이상한 곳이 보여요!”

“광산 입구야. 내 뒤에 바짝 붙어 있어. 아버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지, 진짜요? 감사합니다, 용병님!!”

하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법을 처음 경험하니 놀랄 만도 했다.

나는 짧은 설명으로 하센을 진정시킨 후, 지팡이로 동굴 입구를 툭툭 치고 있는 매직킹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계인가?”

“그렇습니다, 로드. 하지만 그냥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밖에서 진입하면 사라지는 일회용 결계라 해제되면 다시 생성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인즉….”

“안에 있는 놈들이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거네.”

“맞습니다, 로드.”

밖에서 진입하는 것만 허용되는 일회용 결계.

이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한 번 해제하면 다시 만들 수 없으니 이 안에 존재하는 몬스터를 모두 섬멸할 자신이 없으면 진입해선 안 됐다.

꼬마인 하센도 이게 시사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래서 바로 광산에 오지 못했어요. 피난민분들이 신신당부했거든요. 여기의 결계가 깨지면 피난이 소용없게 되니 대책 없이는 절대 깨지 말라고요.”

공포심이 느껴지는 조언.

확실히 피난민들이 만류할 만했다.

“그르르….”

입구에서 결계를 살펴보는 사이, 광산 안쪽에 있던 용족 군단의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마중을 나온 것이다.

시커먼 공동 안쪽으로 보이는 수만 해도 수십 마리는 훌쩍 넘어 보였다.

게다가.

[정예 용족 군단 기사(S)]

[정예 용족 군단 창병(S)]

[정예 용족 군단 궁수(S)]

놈들은 단순히 수만 많지 않았다.

4m는 족히 넘을 법한 키에 한눈에 봐도 단단해 보이는 무기와 갑옷을 장착한 S급 몬스터였다.

“히익…!!”

용족 몬스터의 몸집에 충격을 받은 것일까.

하센은 내 뒤에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어디 소년뿐일까. 저 정도 병력이라면 SS급 헌터라도 일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매직킹, 쓸어버려.”

“알겠습니다, 로드.”

나는 한쪽 입꼬리가 절로 올라갈 정도로 즐거울 뿐이었다.

긴장하지 않는 건 매직킹도 마찬가지였다.

종잇장만큼 얇은 결계를 코앞에 두고 수십 마리의 몬스터와 대치하게 됐지만 매직킹은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저.

“단체로 몰려오면 쫄 줄 알았냐? 전부 다 오늘 저녁 반찬으로 만들어주마, 통닭 쉐리들아.”

지팡이를 휘둘러 전투의 신호탄을 쏠 뿐이었다.

[광산의 결계가 해제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화염 방사를 사용합니다.]

화르르르르르륵-!!

결계 해제와 함께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

폭렙 파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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