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10장 일취월장(7)
고오오오-
광산 중턱의 채굴장 위로 스산한 바람이 불며 먹구름이 몰려왔다.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
“……?”
용족 몬스터들은 진군하다 말고 멈춰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단순히 날씨가 바뀌어서는 아니었다.
저들도 느낀 것이다.
보이지 않는 차원 너머로 강력한 힘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파직- 파지지직-!
잿빛 구름 아래, 푸른빛의 포탈이 생성됐다.
여느 포탈과 달리 광산을 집어삼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
그 속에서 나온 것 역시 일반적인 관념을 깨부수는 크기였다.
“크르르….”
드래곤.
푸른빛의 비늘로 전신을 덮은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이며 채굴장 위로 활공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
용족 군단을 향해 브레스를 방사했다.
“프라키아!”
“케에에엑…!!”
몬스터들이 혼비백산하며 각자의 무기와 방패를 들어 브레스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화르르르륵-!!
“끄아아아악!!”
드래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화염은 용족 몬스터들을 단숨에 녹여버렸고, 종국엔 더욱 강력해진 화력으로 폭발했다.
쩌어어어어엉-!!
지축을 울리고, 막대한 후폭풍이 몰아치는 폭발이 일어났고, 화마는 지상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집어삼켰다.
단 한 번의 공격.
그러나 그 파괴력은 채굴장을 내달리던 용족 군단의 3할이 날아갈 정도로 막강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늘을 나는 저 드래곤은 한때 파멸의 아버지라 불렸던 고대의 용, 루드리아니까.
나는 메시지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캐릭터 : 땡길거야가 와이번을 탄 용족 군단의 기사(S)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정예 용족 군단의 궁수(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안내 메시지와 땡길거야가 사용한 스킬의 정보가 떠올라 있었다.
[스킬 : Lv 3. 수호의 맹약 – 고룡 루드리아를 잠시 소환, 전방에 파멸의 불꽃을 방사해 광역 폭발을 일으킵니다. 마나 1,000 소모.]
[수호의 맹약].
용족과의 전쟁 당시, 땡길거야는 고룡 루드리아와 전투를 벌였고, 치열한 접전 끝에 녀석을 파멸의 아버지로 만들었던 수정체를 부쉈다.
덕분에 루드리아는 이성을 되찾았고, 그 감사의 의미로 자신을 일시적으로 소환할 수 있게 해주는 계약을 맺었다.
900레벨이 넘어 메인 퀘스트를 깨면 습득하는, 수호 기사의 몇 안 되는 광역 공격 스킬.
건물을 무너트리고, 폭발이 일어나는 등 파괴력이 워낙 강해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음껏 써도 상관없었다.
마나 소모가 크고 쿨타임도 20분으로 제법 긴 편이라 자주 쓰진 못하지만, 한 번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대, 대체 저게 무슨…!”
기고만장하던 용족 군단장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전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일렀다.
땡길거야의 [수호의 맹약] 뒤로, 다크어둠의 광역 스킬이 이어졌다.
사아아아아-
드래곤의 브레스가 닿지 않은 용족 군단의 발아래에서 작은 씨앗처럼 생긴 암흑 포자들이 솟아났다.
그리고 그 뒤로.
“어둠을 잊은 자들에게 태초의 안식을.”
다크어둠이 용족 군단을 향해 쌍단검을 긋자.
쩌적- 펑펑-! 퍼퍼퍼퍼퍼펑-!!
“캬아악!!”
암흑 포자들이 폭발하면서 시커먼 불꽃이 용족 몬스터들을 녹여버렸다.
땡길거야의 [수호의 맹약]과 비슷한 화염 계열 광역 스킬.
드래곤의 브레스만큼 범위가 넓진 않았지만, 화력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정예 용족 군단의 창기사(S)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정예 용족 군단의 기사단장(SS)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수많은 몬스터가 쓰러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SS급 몬스터도 한방에 소멸했다.
다크어둠이 터트린 포자의 정체는.
[스킬 : Lv 3. 암폭 – 지옥의 입구에서 채집한 암흑 불꽃, 흑화의 포자를 심고 터트립니다. 피격당한 적은 흑화에 불타 지속 데미지를 받습니다. 마나 1,200 소모. 현재 420개 보유.]
지옥의 입구에서 채집해온 것이었다.
강력한 파괴력을 뽐내지만 모두 소진할 시, 포자를 다시 채집해와야 하는 소모성 스킬.
다크어둠의 필살기급 광역 스킬 역시 피해 범위가 넓고, 통제할 수도 없어 땡길거야의 광역 스킬처럼 이제껏 최대한 사용을 자제해왔다.
적절한 스킬의 배분과 활용.
하이어의 스킬 개수는 직업과 레벨에 따라 다르지만, 만렙이 되면 최종적으로 필살기 스킬은 3개, 일반 스킬은 18개가 된다.
스킬 개수가 많은 만큼 활용도 중요한데, 특히 이건 인게임보다 현실에서 더 그렇다.
게임 내에선 스킬을 막 사용해도 괜찮지만, 현실에선 무심코 사용했다간 건물이 부서지거나 동료가 다치는 등 여러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 캐릭터들의 필살기급 스킬을 최대한 자제해왔다.
주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기도 하고, 사실 필살기급 스킬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999레벨 캐릭터가 보유하고 있는 힘은 강력했는데, 이건 용족 군단장도 느낀 모양새였다.
“네놈부터 정리해주마…!!”
용족 군단 중 절반에 가까운 병력이 스킬 두 개에 쓸려나가자 직접 움직인 것이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용족 군단장이 발군의 속도로 다가와 창을 휘둘렀지만.
챙-!!
내게 닿는 일은 없었다.
“주군을 뵈려면 나를 넘어야 할 것이다.”
땡길거야가 한발 앞서 도착해 내 앞에서 방패로 녀석의 창을 막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거하겠습니다, 마스터.”
다크어둠도 용족 군단장의 등 뒤에서 나타나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
“어, 어느 틈에…!!”
순식간에 내어준 허점.
당황한 용족 군단장이 서둘러 창을 돌려 방어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교활한 용족 군단장을 처치했습니다.]
콰앙-!!
“크헉…!!”
다크어둠의 쌍단검이 용족 군단장의 뒷덜미에 내리꽂히며 굉음과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일격.
SSS급 보스 몬스터지만 단 한방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지금까지 태연할 수 있는 이유였다.
헌터청의 분석에 따르면 SSS급은 601레벨 이상인데, 용족 군단장은 후하게 쳐도 700레벨이 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현실의 기준으로 보면 700도 분명 높은 레벨이지만, 내가 소환한 만렙 캐릭터들 앞에선 그저 풋내기일 뿐이다.
레벨이 전부는 아니고 상성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300 가까이 레벨이 차이가 난다면 큰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용족 군단장이 나타나도 바로 공격하는 대신 추가 보상을 비롯한 전체적인 동향을 살폈던 것이다.
아무리 SSS급 보스 몬스터라 하더라도 만렙 캐릭터를 이용하면 바로 처치할 수 있으니까.
과연, 다크어둠이 공격하자 용족 군단장은 일격에 쓰러졌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이 정도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앞으로 쓰러지던 용족 군단장이 몸을 일으켜 창을 휘두른 것이다.
“……!”
다크어둠은 재빠르게 거리를 벌리고, 땡길거야는 방패를 들어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진상은 곧 밝혀졌다.
[교활한 용족 군단장이 대리 희생을 통해 생명을 회복합니다.]
[교활한 용족 군단장을 처치할 시, 용족 군단의 몬스터의 목숨이 대신 사라집니다.]
[희생한 용족 몬스터는 언데드로 변하며 교활한 용족 군단장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대리 희생].
군단장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부하의 목숨을 대가로 목숨을 부지하고 회복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녀석의 인식표 위에 떠 오른 설명을 보면서 말했다.
“쳇, 성가신 능력을 가지고 있군.”
“큭큭, 열등한 놈들에게 영광스러운 희생의 기회를 주는 것이지…!”
목숨을 잃어도 자신이 죽지 않기 때문일까.
“하앗…!”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신성 폭발을 사용합니다.]
콰앙-! 쩌어어어엉-!!
다크어둠과 땡길거야가 연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저 멀리 진열을 정비하고 있는 용족 몬스터 한두 마리가 대신 쓰러질 뿐 용족 군단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네놈만 죽이면 모든 게 끝이다!!”
실시간으로 몸을 회복하며 내게 돌진해올 뿐이었다.
다른 용족 몬스터들을 모두 죽인 뒤 군단장을 죽이면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러면 나에게 접근하는 녀석을 막을 수 없었다.
땡길거야와 다크어둠도 순간 당황해 대처하지 못했고, 군단장을 그 틈을 파고들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드는 창날.
나는 화산방패의 [용암 전개]로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SSS급의 공격이라 그런 걸까?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앙-!!
“크윽…!”
막아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창을 받아내긴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막강한 충격이 온몸에 전해진 것이다.
“주군…!”
[캐릭터 : 땡길거야가 끌어오기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를 사용합니다.]
놀란 땡길거야가 재빠르게 스킬을 사용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파지직-! 쨍그랑-!
[끌어 오기]는 보스 몬스터를 끌어오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고, [동료 보호]는 용족 군단장이 창을 여러 차례 휘두르자 얼마 가지 못해 깨져버렸다.
내 방어력이 낮다 보니, 방패로 막지 않는 이상 [동료 보호]로도 오래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잠깐의 시간은 벌 수 있었으니, 나는 그 틈에 빠르게 전언으로 명령을 내렸다.
‘땡길거야는 날 보호하고, 다크어둠은 일반 용족 몬스터 처치에 집중한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저를 활용하십시오, 주군!
-얼른 끝내겠습니다, 마스터!
땡길거야는 내 앞으로 와서 용족 군단장의 공격을 상대했고, 다크어둠은 다시 용족 군단을 향해 돌진했다.
다만 확실히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니었다.
땡길거야가 최대한 용족 군단장을 막는다고 해도 녀석은 그걸 무시하고 내게 달려들 뿐이었다.
끼긱-! 끼기기긱-!!
화산방패와 창이 교착 상태를 이루는 가운데, 용족 군단장도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큭큭큭, 내 부하들을 먼저 처치할 심산인 것 같은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힘든 일이긴 했다.
다크어둠의 사냥 속도가 빠르다고는 해도 적은 S급 몬스터 수천 마리인 데다, 지금도 계속 포탈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당장 전황만 놓고 보면 용족 군단 몰살 이전에 내가 먼저 쓰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무엇보다 세 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소환하는 이상 나의 마나도 한계가 있었다.
틈이 날 때마다 계속 마나 포션을 마시고 있었지만, 지금도 빠른 속도로 마나가 소비됐다.
하지만 희망은 존재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군주님!”
“잠시 여기 있거라, 하센!”
“네, 아빠!”
제장이와 카셀이 전장에 합류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싸움으로 얻은 것도 있었으니까.
[캐릭터 : 다크어둠이 정예 용족 군단의 병사(S)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정예 용족 군단의 기사(S)를 처치했습니다.]
연속해서 메시지가 떠오르는 가운데,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버틴다고?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네가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뭣…?”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힘 +2, 마력 +1을 획득합니다.]
[축하합니다!]
[레벨 250 달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선행 조건 – 레벨 250 달성(250/250)]
[선행 조건 완수 보상으로 군주의 힘이 강화됩니다.]
[강화된 군주의 힘을 어디에 사용할지 결정하세요.]
[강화 / 개방]
[두 개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무수히 많은 메시지.
쩌어어엉-!!
“크윽…!!”
나는 화산방패의 [기폭]으로 용족 군단장을 뒤로 밀어낸 다음, 재빠르게 보상을 수령했다.
그리고 연이어서.
[강화 특성으로 압도를 선택하셨습니다.]
[군주의 특성, 압도가 강화됩니다.]
강화된 압도를 방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