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10장 일취월장(9)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자신의 목숨 또한 소모되고 있는데 미친놈처럼 웃음을 흘리다니.
아니, 웃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창에서 파생되는 오러의 세기와 공격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몰살 당하는 몬스터와 용족 군단장을 번갈아 쳐다본 뒤, 녀석의 비밀을 눈치채고 재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매직킹, 캐스팅 중지!’
“끝이다, 이 도마뱀 먹이 쉐끼덜아!!”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캐릭터 : 매직킹이 금제 개방을 사용합니다.]
[유폐된 차원이 개방됩니다.]
매직킹은 막대한 마나를 소모하는 스킬, [금제 개방]을 써버린 것이다.
콰아아아- 콰드드드득-!!
“캬아아아악!!”
용족 군단의 발밑에 형성된 검은 마법진에서 심연의 공허충이 솟아나왔고, 수백 마리에 달하는 용족 몬스터들이 먹이로 전락해 공허충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어느덧 채굴장에는 용족 몬스터가 수십 마리도 채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용족 군단장의 목숨들.
하지만 나는 용족 군단 섬멸이라는 목적 달성 직전에.
[캐릭터 : 매직킹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전장에서 활약하던 두 캐릭터의 소환을 해제해 버렸다.
그러자.
“호오, 왜 갑자기 그만두는 거지? 내 목숨을 모두 소진시킨다고 하지 않았나?”
용족 군단장이 뒤로 물러난 후, 비릿하게 웃으며 질문했다.
나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눈치챘거든. 중간에 네 녀석이 동족 흡수로 능력을 바꿨다는 걸 말이야.”
[동족 흡수].
하이어의 보스 몬스터 중에는 잡몹을 처치하면 오히려 강해지는 녀석들이 있다. 그리고 그 특징 중 하나가 잡몹 처치 시, 작은 빛의 가루들이 보스 몬스터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점점 강해진다는 땡길거야의 보고를 듣고 보니, 매직킹과 다크어둠이 용족 몬스터를 처치할 때마다 웬 빛의 가루들이 용족 군단장의 몸으로 흡수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투 도중, 녀석이 능력을 [대리 희생]에서 [동족 흡수]로 바꾼 것이다.
어쩐지 강해지는 것 외에도 공격이 소극적으로 바뀌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능력을 바꾸면서 남은 목숨도 하나로 고정되어 몸을 사린 것 같았다.
녀석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떴다.
“큭큭, 눈치 한번 빠르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전략이 들키자 남은 용족 몬스터들 옆으로 빠르게 이동하더니.
“쿠, 쿠르륵…?”
촤아아아악-!!
거대한 창을 휘둘러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하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족 흡수 완료.]
[교활한 용족 군단장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남은 부하들을 모두 죽여 자신의 힘을 완성한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제 녀석의 목숨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대폭 상승한 능력치.
분위기만 봤을 때, 저 정도면 만렙 몬스터나 다름없어 상대하기 까다로울 테지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었다.
능력이 바뀌고 남은 용족 몬스터도 없어서, 이제 녀석의 목숨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사태를 쉽게 해결하긴 힘들어 보였으니.
[남은 마나 – 5%]
매직킹의 고위 스킬 사용으로 마나가 바닥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마나 회복을 위해 마지막 남은 포션을 마시려 했지만.
“감히 허튼짓을…!”
멀리서 용족 군단장이 오러가 실린 창을 휘둘러 포션 복용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촤아아악-!!
땅을 가르며 다가오는 용족 군단장의 오러.
녀석의 공격이 내게 큰 피해를 입힌 건 아니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수호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매직킹과 다크어둠의 소환은 해제했지만, 남아 있던 땡길거야가 내 앞으로 이동해 방패를 치켜들었으므로.
다만.
콰아아아앙-!!
오러와 [수호의 방패]가 부딪쳐 생긴 폭발 직후, 용족 군단장이 거리를 좁히는 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회복하게 둘 것 같으냐!!”
“쳇!!”
[동족 흡수]로 스탯이 왕창 올라서일까.
용족 군단장은 육중한 몸임에도 어느새 내 등 뒤에 도착해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거대한 창.
나는 재빨리 화산방패를 들어 올렸다.
방어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쩌어어어어엉-!!
코앞에서 터지는 막대한 충격파에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주군…!”
땡길거야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쿵-! 쿵-! 투두두두둑-!!
몇 바퀴나 바닥을 굴렀을까.
“으윽, 제길….”
사지는 멀쩡했지만 바닥에 엎어진 채 고개를 들어보니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크아악! 정말 성가신 녀석이군!!”
내가 바닥을 구르는 사이, 땡길거야가 [제국기사단의 검술]과 [신성 폭발]로 용족 군단장에게 피해를 줬으나 완전히 처치하진 못한 것이다.
힘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남은 마나 – 0%]
[마나가 부족합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의 소환이 해제됩니다.]
마나가 바닥나 마무리를 짓지 못했을 뿐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남은 마나 포션 한 병마저도 바닥을 구르면서 깨져 버렸다.
설상가상.
“슬슬 끝을 볼 때다, 이방인이여!”
상처를 모두 회복한 용족 군단장이 거대한 창을 휘둘러 다시 한번 오러를 날렸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내게 닿지 못했으니.
“흐아아아앗…!”
카셀이 대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오러를 받아쳐 튕겨낸 탓이었다.
과연, 용족과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사답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많은 시간을 벌지는 못했다.
“약해빠진 녀석이 주제 파악도 할 줄 모르는구나…!”
후우우웅-! 콰아앙-!!
“크헉!!”
오러를 날린 직후, 용족 군단장이 직접 움직여 거대한 창을 휘두르자 몇 합을 버티지 못하고 나처럼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구른 것이다.
챙그랑-!
카셀이 들고 있던 대검도 충격에 튕겨져 나와 내 눈앞까지 날아왔다.
10초도 채 되지 않은 전투.
그래도 아주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카셀이 용족 군단장을 상대하는 그 찰나, 손아귀와 땅바닥에 묻어 있는 마나 포션을 핥아 조금이라도 마나를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얼마 되지 않는 양이었다.
[남은 마나 – 3%]
기껏해야 순간 소환 두세 번 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나에게는 아직 비장의 카드가 남아 있었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무기도 생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코앞에 떨어져 있는 카셀의 대검을 집어 들었다.
[랑데르크의 대검]
[등급 : 영웅]
[효과 : 공격력 +480]
[스킬 : Lv 1. 기사의 긍지 – 일시적으로 공격력을 3배 증가시킵니다. 마나 10 소모.]
[스킬 : Lv 2. 심판의 검 – 대검 주위로 발산과 응집이 자유로운 오러 블레이드를 2배 증폭시켜 생성합니다. 오러의 강도와 길이는 사용자의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10분당 마나 2 소모.]
[숭고한 의지 : 용족과 마족 등 심연의 존재들에겐 공격력과 스킬의 효과가 300% 상승합니다.]
무려 영웅 등급의 대검이었다.
게다가 공격 특화라는 대검의 특성 또한 잘 드러나 기본 공격력이 500에 달할 뿐만 아니라, 공격력과 오러 역시 엄청난 가성비로 증폭시킬 수 있었다.
한 방을 노린다면 이것만큼 좋은 무기가 없었다.
나는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캐릭터 인벤토리에 넣은 후, 양손으로 대검을 쥐며 말했다.
“잠깐 빌리겠습니다, 카셀.”
“큭큭, 그걸 든다고 상황이 변할 것 같나? 마지막 기회를 주도록 하지. 내 밑으로 들어와라, 인간이여.”
“닭대가리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내 밑으로….”
용족 군단장이 발걸음을 내디디며 다시 한번 종용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을 하다 말고 대검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깡-!!
말을 끝맺기도 전이건만 용족 군단장이 단숨에 거리를 좁혀 창을 내리쳤기 때문이다.
“큭큭, 멀리서 견제할 힘조차 없는 주제에 입만 살았구나…!”
“크윽!!”
재빠르게 막긴 했지만, 후속타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용족 군단장과의 스탯 차이에 [동족 흡수]로 인한 강화까지 더해지니 단순한 공격조차 버티기 힘들었다.
덜덜 떨리는 팔과 다리.
“끝이다!!”
용족 군단장도 승기를 눈치챘는지 환한 표정으로 창을 힘껏 치켜들어 다시금 내려쳤다.
무서운 기세로 내려오는 창날의 오러.
그 순간 나는.
[캐릭터 소환 : 땡길거야]
[캐릭터 : 땡길거야가 수호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순간 소환으로 용족 군단장의 창을 막아냄과 동시에.
“매직킹!!”
“갑니다, 로드!!”
[캐릭터 소환 : 매직킹]
[캐릭터 : 매직킹이 파훼의 창을 사용합니다.]
[Lv. Max 파훼의 창 – 지팡이 위로 날카로운 오러를 형성시킵니다. 오러에 꿰뚫린 적은 모든 마법적 효과가 파훼됩니다. 보유 마나 절반 소모.]
매직킹도 순간 소환해 [파훼의 창]을 내질렀다.
999레벨에 얻는 마법사의 최종 필살기로 지팡이 끝에 형성된 오러를 창처럼 찌르는 스킬.
버프, 디버프 등 적에게 부여된 온갖 마법 효과를 지울 뿐만 아니라 남은 마나에 따라서 10만에 달하는 고정 데미지가 들어갈 정도로 막강하다.
이걸 먹이기 위해 나는 지금까지 힘든 척 연기했다.
얼마 남지 않은 마나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건 이 스킬밖에 없기에.
그리고 이 창의 강력함은 용족 군단장도 알아보는 듯했다.
“무, 무슨…!”
[파훼의 창]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눈이 휘둥그레 뜨며 뒤로 물러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푸욱-!
“크헉…!!”
매직킹의 지팡이 위로 형성된 검은 오러가 용족 군단장의 갑옷을 뚫고 들어갔다.
[파훼의 주문이 작용합니다.]
[교활한 용족 군단장에게 걸린 모든 효과가 사라집니다.]
[동족 흡수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빠르게 소멸되는 버프 효과.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지만, 아직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용족 군단장의 [동족 흡수] 효과가 모두 사라지자마자.
[캐릭터 : 매직킹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남은 마나 – 1%]
남은 마나를 쥐어짜 [기사의 긍지]와 [심판의 검]으로 강화한 랑데르크의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반월 베기] [만월 가르기] [급소 찌르기]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연계기가 완성됐습니다.]
[연계 효과 : 월광 폭발]
콰아아아아앙-!!
화산검을 썼을 때보다 10배는 더 푸른 섬광과 불꽃이 터지면서.
[교활한 용족 군단장(SSS)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스탯을 +1 획득합니다.]
SSS급 보스 몬스터가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