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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01화 (101/169)

제101화

11장 별들의 세상(2)

“음? 대련…?”

“갑자기?”

“으하하핫! 순위 떨어져서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했나 본데? 농담 한번 살벌해!”

서지환의 갑작스러운 대련 제안.

강철만과 지소영은 당황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고, 추성태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데.

“농담 아닙니다만?”

“…….”

서지환은 진심이었다.

이번엔 스킬 검증실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차가워진 분위기.

신대훈이 재빠르게 진화에 나섰지만.

“서지환 길드장님, 재심사 절차에 대련 항목은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경우이니,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서지환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논거가 빈약하긴 하지만, 어떡해서든 한상우를 찍어 누르고 싶었던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누구는 디바인 실드 입단까지 5년이 넘게 걸렸는데, 헌터가 된 지 1년도 안 된 놈이 홀라당 들어오겠다고? SS급도 따고? 그렇게는 안 되지.’

텃세였다.

디바인 실드가 어떤 곳인가.

세계의 정의라 불리며 전세계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이들만 입단할 수 있는 곳이다.

서지환 자신은 디바인 실드에 입단하기 위해 무려 5년이란 시간 동안 개고생을 했는데, 각성한 지 1년도 안 된 녀석이 입단 추천을 받는다?

추천 자체를 취소할 순 없겠지만, 배알이 꼴려 참을 수가 없었다.

서지환은 선배로서 냉혹한 현실을 알려 주겠다는 명목으로 한상우를 밟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련이 쉽게 성사되지는 않았다.

최대천이 나서서 사태를 중재하려 한 것이다.

“심사 항목으로 대련을 시행한 전례는 없네. 그런데도 대련을 제안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나?”

“레벨과 스탯, 스킬 간의 차이가 크니까요. 등급 산정은 던전 진입을 위해서인데, 재심사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면 실질적인 전력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벨에 비해 강한 사람이 있는 만큼, 레벨에 비해 약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흐음, 실질적인 전력 체크라….”

서지환의 말에 최대천이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뜬금없고 당황스러운 제안이긴 하지만 레벨과 스탯, 스킬 간의 차이가 커서 종합적인 등급을 매기는 게 힘든 건 사실이었다.

다만 이 부분에 관해선 자신이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최대천이 한상우 옆으로 다가가서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택권은 한상우 헌터님께 있으니까요. 거절하셔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뿐, 결국 등급은 책정될 테니까요.”

하지만 한상우는 길게 고민하지도 않고 담담히 대답했다.

“아뇨, 응하도록 하죠.”

“정말이십니까?”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한상우는 서지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서지환 길드장님이 대련에서 질 경우, 제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

몇 번째 찾아오는 적막인 걸까.

한상우의 발언에 스킬 검증실이 또다시 고요해졌는데, 이전과는 그 궤가 달랐다.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눈도 휘둥그렇게 떴다.

그 정도로 폭탄 발언이었다.

서지환은 대한민국에 8명밖에 없는 SS급 헌터이자 대길드의 길드장이다. 그런 이에게 자신더러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다니.

서지환의 대련 제안만큼 뜬금없기는 했지만, 한상우도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서지환의 제안이 도발이라는 걸 눈치채고 그에 맞춰 대응한 것이다.

용족 던전에서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했던 당시, 강철만의 문자엔 그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저번 사태가 무사히 끝나면서, 국내에서 반대하던 사람도 한상우의 활약을 인정하고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그 말인즉, 국내 디바인 실드엔 강철만 말고도 여러 팀원이 있는데 그중 자신의 추천을 반대하는 이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과연 누굴까.

문자를 받아보고 궁금증이 생겨도 알 방법이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물론 그 인물이 서지환이 아닐 수도 있지만, 본보기로라도 한번 기선제압을 할 필요는 있었다.

스탯과 스킬의 차이가 크다는 이유를 대긴 했지만, 주변에서 풍기는 날카로운 기운을 봤을 때 그런 이성적인 이유만은 아니라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한상우의 의도를 알 리 없는 이들로선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특히 폭탄 발언의 타깃인 서지환은 심히 빡치는 듯 이마에 핏줄까지 세우며 반박했다.

“내가 왜 그런 내기를 해야 하죠?”

“그렇게 치면, 저는 왜 서지환 길드장님과 대련을 해야 합니까? 카드를 건네셨으면 섞는 건 제가 해야죠. 그리고 만약 지더라도 그리 손해 보는 일도 아닐 겁니다. 제가 서지환 길드장님보다 한 살 많은 걸로 알고 있으니까요. 만약 이게 싫으시다면… 안 하시면 됩니다.”

한상우는 싫으면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스킬 검증실을 나가려 했다.

누가 봐도 도발하는 듯한 모습.

그러자.

빠드득-

서지환이 이를 악물며 한상우를 노려봤다.

두 사람의 마음속에 침전해 있던 견제심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와 부딪쳤다.

흡사 스파크가 튀듯 따끔거리는 분위기.

주변 사람들도 그제야 눈치챘다.

“지소영, 이거… 그거지? 신경전?”

“그런 것 같은데? 뜬금없이 웬 대련인가 했더니….”

“이야, 웬만하면 주눅 들어서 대답도 못 할 텐데. 역시 한상우, 저 친구 보통이 아니구만!”

강철만과 지소영, 추성태는 두 사람의 신경전에 헛웃음을 지으며 감탄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좋습니다, 하죠. 대신 봐주지 않을 거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바라던 바입니다.”

서지환이 한상우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대련이 성사됐다.

뭔가 등급 재심사라는 본질적인 의도에서는 약간 벗어나게 되는 것 같았지만.

“처, 청장님. 괜찮을까요? 아무리 대련이라고 해도 두 사람의 레벨 차이가….”

“흠, 나라도 강제로 막을 권한은 없네. 두 사람이 하고 싶다는데 어떡하겠나?”

최대천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도 궁금한 탓이었다.

마강진을 처치한 한상우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물론 대련인 만큼 사활을 걸진 않을 테고, 건물의 내구도 때문에 파괴력이 강한 스킬도 사용하진 못할 테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최대천이 스킬 검증실을 나서며 말했다.

“그럼 대련장으로 이동하도록 하죠. 루미나스 때문에 일부 부서지긴 했지만 사용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겁니다.”

대련장은 특별관 옆에 있는 체육관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

대련장으로 향하는 길, 신대훈이 한상우 옆을 걸으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상우 헌터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상대는 천궁 서지환입니다.”

“괜찮습니다. 한번 경험해보는 거죠. 그리고 대련이니 죽진 않을 겁니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약간 격해져서 그렇지, 대련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어차피 목숨을 잃을 위험도 거의 없고, 여기서 이긴다면 SS급 헌터를 발아래 두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누군가 듣는다면 건방지다고 할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한상우는 이미 홍진성과 마강진을 처치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그 누구도 잡지 못한 SSS급 보스 몬스터까지 처치했다.

[캐릭터 소환]의 힘을 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자체적으로 쌓은 데이터만 봐도 SS급 헌터는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신대훈은 한상우를 걱정하는 게 당연했는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세 대련장에 도착했다.

신대훈이 대련장 구석에서 주먹만 한 장치를 가져와서 한상우와 서지환의 가슴에 부착하며 말했다.

“일회용 보호 장치입니다. 신체 곡선을 따라 보호막을 생성하죠. 보호막은 피격당할 때마다 소모되며, 먼저 수치가 0이 되는 쪽이 패배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경기 시간은 10분이고, 어느 쪽이든 보호막이 모두 소진되면 그 즉시 전투를 중단해 주셔야 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예.”

“그럼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대련을 준비해 주십시오.”

한상우와 서지환은 농구 코트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대련장으로 들어가 양 끝의 시작 지점에 위치했다.

그러자.

파앗-!

<경기장 보호막 – 1,000,000 / 1,000,000>

<서지환 – 100,000 / 100,000>

<한상우 – 100,000 / 100,000>

전광판으로 대련장 주위와 서지환, 한상우의 보호막 수치가 떠올랐다.

5분 전까지만 해도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던 대련이 진짜 현실이 된 것이다.

이에 강철만은 재밌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옆에 있는 지소영과 추성태에게 물었다.

“내기해볼까? 다들 누가 이길 것 같아?”

“음?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야? 내기를 하기엔 전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나?”

“동감일세. 한상우, 저 친구의 스탯과 레벨만 봐도 아직 SS급은 아니야. 그리고 여러 활약을 했다곤 하지만 그건 신원미상의 친구들의 도움도 있었으니, 저 친구 혼자만의 실력은 아니잖아?”

강철만의 말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한상우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나, 여러 지표를 봤을 때 아직 서지환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야.”

강철만은 대련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 사이.

“대련 시작하겠습니다.”

삐이이-!

<남은 시간 – 9분 58초>

신호음과 함께 대련이 시작됐다.

줄어들기 시작한 경기 시간.

하지만 대련장 안의 두 사람은 요지부동이었으니.

“활 안 꺼냅니까?”

“단검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요.”

“후회하실 텐데요. 안 봐줄 겁니다.”

“제 걱정은 말고 마음껏 해요.”

한상우는 서지환이 활을 들지 않았기에 움직이지 않았고, 서지환은 SS급 랭커의 위엄을 보이고자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한상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반대편에 서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천궁(天弓) 서지환.

하늘의 활이라는 이명을 가진 헌터로 활을 주무기로 쓰는데, 이번 대련에서는 보조 무기인 단검만 들고 있었다.

속내는 단순했다.

‘흥, 기껏해야 A급 수준인데? 이 정도는 단검으로도 충분해. 스킬이야 피하면 그만이고.’

등급 재측정으로 스탯과 스킬의 위력을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 단검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지고 딴말하지 마시길.”

“……!”

본격적으로 대련이 시작된 순간, 서지환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짤막한 인사 후, 잠깐 눈을 깜빡였는데.

쉬이이이익-!

어느새 한상우가 코앞까지 다가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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