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03화 (103/169)

제103화

11장 별들의 세상(4)

‘디바인 실드의 수장…?’

한상우는 숨을 고르며 조용히 여인을 바라봤다.

보통 사람이 아닌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슨 기전인지 알진 못해도 [신성 폭발]과 [분화], 그리고 SS급인 서지환의 스킬을 막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하지만 디바인 실드의 수장이라니.

방금까지 대련을 하고 있었던 데다 사전 정보도 없었기에, 한상우는 일단 말없이 상황을 관망했다.

그러자.

“반가워요, 한상우 헌터님. 셀리나 칸데바예요. 추천서에 있던 내용대로 확실히 실력이 뛰어나시네요.”

셀리나가 한상우 앞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유창한 한국말과 더불어 몇 번 보기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태도.

한상우는 그녀가 디바인 실드의 수장이라는 걸 믿기 힘들었지만, 지금의 범상찮은 모습과 주변의 반응을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철만과 다른 SS급 헌터들만이 아니라 최대천도 눈이 휘둥그레진 신대훈과 함께 조용히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상우는 셀리나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칭찬은 감사하지만 아쉽네요. 대련을 중단시키지 않고, 미리 온다는 얘기도 해줬다면 더 신경을 썼을 텐데 말이죠.”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서지환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는 기회를 셀리나가 앗아간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이에 맞은편에 있던 서지환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문을 열었지만.

“지, 지금 뭐라고….”

“멋대로 싸움을 끝낸 건 미안해요. 하지만 디바인 실드의 자원은 한 명 한 명이 소중해서 부상은 피하고 싶거든요. 서지환 헌터님도, 팀원이 될지도 모르는 한상우 헌터님도.”

셀리나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차분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대련장 밖에 서 있는 강철만과 다른 SS급 헌터들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했다.

“연락도 없이 와서 다들 당황하셨죠? 추천서를 받고 마침 시간이 나서 급하게 오게 됐네요.”

“아닙니다. 바쁘신 와중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대련은… 저의 패배로 끝난 상태였고요.”

셀리나의 사과에 서지환이 황급히 수습하려 애썼다. 한상우가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내비치면서 경직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풀어보려고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쉽게 풀어지는 건 아니었다.

여태껏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최대천도 대련장 위로 올라오며 말문을 열었다.

“오랜만이군요, 셀리나 칸데바. 헌터청을 방문하시는 건 자유지만, 매번 얘기도 없이 불쑥 나타나니 당황스럽습니다.”

“항상 신세를 지네요, 헌터청장님. 워낙 든든하고 믿음직하시다 보니 매번 말씀을 드린다는 걸 잊어버리고 불쑥 찾아오게 돼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 최대천 역시 셀리나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한상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한상우 헌터님, 디바인 실드 입단 추천을 받으셨나 보군요.”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만… 모르고 계셨군요. 무의식중에 청장님도 디바인 실드의 일원일 거라 생각해서,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저는 나라의 녹을 먹는 헌터청장입니다. 디바인 실드가 비영리적이라고는 하나, 해외에서 만들어진 특수한 목적의 단체인 것은 마찬가지죠. 하여 공무원인 저는 가입할 수가 없습니다. 가입할 생각도 없고요.”

“그렇군요. 청장님의 실력에 신성력이 더해지면 훨씬 위를 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우시겠군요.”

거침없이 설명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문득 듣다 보니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한상우의 말에 최대천은 재밌다는 듯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한상우 헌터님의 말씀도 틀리지는 않으니까요. 신성력이 강한 힘인 건 맞지만, 저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보는 편입니다. 헌터청장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디바인 실드에 가입하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무래도 그건 디바인 실드의 전유물인 신성력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는데, 자세히 물어볼 여유는 없었다.

한상우가 추가로 질문할 새도 없이, 최대천이 말을 덧붙였으므로.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대련이 무산되긴 했지만, 서지환 헌터님이 패배를 인정했으니 결과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등급 산정이 고민이로군요. 대련 결과에 따라 SS급을 부여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면 한상우 헌터님의 등급을 대외적으로 공표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공표요?”

“예, 사실 공표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현재 국내 SS급 헌터는 8명인데, 한상우 헌터님이 SS급이 되면 자연스레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겁니다. 등급 자체를 비공개로 한다면 굳이 SS급을 받을 필요도 없고요.”

“그렇겠네요.”

최대천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SS급 헌터는 극소수이다 보니, 한상우가 SS급으로 책정되면 그 사실을 세간에 숨길 수가 없다. 그렇게 될 경우, 마강진을 처치했을 때 한상우가 요구했던 정보 비공개 요청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에 한상우가 턱을 괴고 고민에 빠져 있자, 최대천은 나름대로 꼼꼼하게 생각해 둔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다른 해결법을 제시했다.

“하여… 한상우 헌터님의 등급은 S급으로 책정하되, SS급과 맞는 권한과 혜택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즉, 특별 S급이라는 것이죠.”

“특별 S급요? 그게 가능한가요? 오히려 더 눈에 띌 것 같은데.”

“하하.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전례가 없기는 하지만, 국내 헌터에 관련된 사항은 저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있으니까요. 이 정도는 제 허락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외부에는 평범한 S급으로 공표하되, 정보가 퍼지는 건 최대한 막겠습니다.”

최대천이 대화를 나누던 도중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신대훈이 헐레벌떡 달려와 대답했다.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헌터증은 S급으로 발급하되, 던전 입찰 우선권 같은 내부적인 권한 설정은 SS급으로 설정하면 되니까요. 몇몇 시스템을 손봐야 하지만, 금방 반영할 수 있습니다.”

신대훈은 서둘러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헌터청에서 무소속인 데다 SS급 전력을 가지고 있는 헌터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게 됐으니까.

최대천 청장이 ‘특별 S급’이라는 혜택을 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한상우도 그 속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로서도 손해 볼 게 없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을 뿐.

저쪽에서 선을 넘는다면, 손을 놔버리면 그만이다.

지금의 한상우에겐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고맙네, 인사과장. 그럼 이 부분은 나중에 매듭짓기로 하지요. 헌터증도 바로 발급받으면 좋겠지만…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 뒤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대천의 시선이 한상우 너머에 서 있는 셀리나를 향했다.

그러자.

“배려 감사드려요, 헌터청장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셀리나가 한상우를 바라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멋지네요. 추천서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B급이라고 보고를 받았는데, 벌써 SS급에 준하는 특별 S급이라니. 과연, 추천서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성장세예요.”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은 어떻게 진행되죠?”

“기본 면접은 통과하셨어요. 원래는 저쪽에 있는 요원들과 대련해서 이기고, 특정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는 등의 시험이 있지만…. 루미나스의 한국 지부장인 마강진을 처치하신 분에게 다른 시험은 필요가 없겠죠.”

“시험이 필요 없다면….”

“미국에 있는 본부로 가서 신성력을 전수받고, 디바인 실드에 입단하시기 위한 계약서만 쓰면 돼요.”

이렇게 직접 찾아와 입단을 권유하기도 하고 별도의 시험 같은 것도 필요 없다고 하니, 신성력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당장 제안을 받아들인다 해도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선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미국이라… 알겠습니다. 일단 비행기 표부터 알아보고 다음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아,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 바로 저랑 가시면 되니까요.”

“지금 바로요?”

“네. 저한텐 비행기보다 더 빠른 이동 수단이 있거든요.”

딸각-!

셀리나의 말에 대련장 입구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경호원 중 한 명이 네모난 서류 가방을 바닥에 놓고 열었다.

그러자.

촤아아아악-!!

파공음이 일면서 가방 위로 소형 포탈이 생겨났다.

일전에 마강진이 보여준 스킬과 비슷했는데, 다른 점이라면 일렁이는 포탈 뒤로 연결된 공간의 배경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마 셀리나가 아까 순식간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이 스킬 덕분이겠지.

널따란 공간에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돌아다니는 풍경.

“디바인 실드 본부와 연결된 포탈이에요. 이걸 이용하면 미국까지 10초도 안 걸리죠. 신성력을 전수받고 계약서를 쓰는 것도 한 시간 안에 끝날 거예요. 지금 그 정도 시간은 내줄 수 있으시죠?”

“네, 그렇긴 합니다만….”

일사천리라고 해야 할까.

등급 재심사부터 디바인 실드 면접까지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있자 한상우는 말끝을 흐렸다.

‘뭔가 이상한데.’

일이 잘 풀려도 너무 잘 풀려서 어색함이 느껴졌다.

많은 SS급 헌터들이 가입했고 세간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디바인 실드지만,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다 보니 괜한 기분이 든 것이다.

한상우가 묘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 사이에 강철만과 지소영, 추성태가 가까이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합니다, 한상우 헌터. 추천한 보람이 있네요. 이렇게 빨리 면접을 통과할 줄은 몰랐습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한상우 헌터는 볼 때마다 예상을 뛰어넘네요. 같은 팀원이 되면 재밌겠어요.”

“으하핫! 몇 년 만에 디바인 실드 동료가 늘어나는 건지 모르겠군. 정식 단원이 되면 거하게 한잔하자고!”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모습.

‘특별한 속셈은 없는 것 같은데….’

아직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강철만을 비롯한 SS급 헌터들은 한상우에게 뚜렷한 호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들 감사합니다.”

“그럼 잠깐 다녀오실래요, 한상우 헌터님?”

“예, 그러죠.”

한상우는 경계심을 완전히 풀진 않은 채 셀리나의 뒤를 따라 포탈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녀오세요.”

서지환이 짤막한 인사를 남겼다.

한상우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뒤에 뭔가 호칭이 하나 빠진 것 같은데요? 서지환 길드장님.”

“크윽! 다녀오십시오, 혀…임.”

“혀임이 뭡니까?”

“다녀오십시오, 형님!”

대련 시작 전에 내걸었던 조건.

패배할 시, 한상우를 형님이라고 부를 것.

서지환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속셈이었지만, 한상우는 잊지 않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에 소리를 치는 건 지적할 만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니까, 한 번쯤은 봐줄 만도 했다.

SS급이자 대길드의 길드장인 서지환이 저 한마디를 뱉게 만든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예, 다녀올게요.”

한상우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셀리나를 따라 포탈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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