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11장 별들의 세상(7)
“후우, 기대되네. 과연 얼마나 강해져서 돌아올지….”
“그러게.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는 건 내 취향이 아니긴 한데… 이번엔 좀 궁금하네.”
헌터청 대련장.
강철만과 지소영이 디바인 실드 본부와 연결된 포탈을 보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에선 디바인 실드 신입 단원이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한상우가 셀리나와 면담을 하러 갔다.
면접은 자동 통과였으니, 이제 신성력을 전수받고 계약서를 쓰는 일만 남아 있었다.
사실상 디바인 실드 입단은 확정된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강철만은 한상우를 일찍이 눈여겨보고 직접 추천했기에 특히 뿌듯한 마음이었다.
물론, 모두가 한상우의 디바인 실드 입단을 기뻐하고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최대천과 신대훈은 다른 일 처리를 위해 한상우를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떴고, 서지환은 대련에서 패배한 충격이 컸는지 도망치듯 대련장을 떠났다.
추성태는 한상우가 복귀하는 걸 보고 싶어 했으나, 패닉에 빠진 서지환의 멘탈을 잡아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결국 헌터청 대련장엔 강철만과 지소영만이 남아 한상우를 기다렸다.
두 사람 역시 뒤에 스케줄이 밀려 일분일초가 바빴지만, 그래도 일면식이 있는 한상우가 디바인 실드에 가입했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셀리나가 얘기했던 대로 한상우가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저벅- 저벅- 화아아악-!
30분쯤 지났을까.
디바인 실드 본부와 연결된 포탈에서 한상우가 걸어 나왔다.
“오, 한상우 헌터! 입단은 잘 마쳤습니까?”
“신성력 전수는 어땠어요? 기운이 아까보다 좀 더 강해진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가 상기된 얼굴로 한상우를 맞이했다.
셀리나를 따라 본부에 다녀왔으니, 이제 정식으로 디바인 실드 단원이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뇨, 저는 디바인 실드에 입단하지 않았습니다. 신성력도 전수받지 않았고요.”
한상우의 입에선 두 사람의 기대와는 다른 대답이 나왔다.
물론.
“하핫! 한상우 헌터, 이제 보니 농담도 잘하시네요.”
“푸훗, 그러게. 진지한 얼굴로 하니 더 진짜 같네요.”
강철만과 지소영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됐으니 둘을 편하게 느낀 한상우가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웃으며 얘기했지만.
“…….”
한상우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다.
“자, 잠깐.”
“설마….”
갑자기 엄습해오는 불안감.
강철만과 지소영은 얼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화아아아악-!
한상우의 뒤를 따라 디바인 실드 본부와 연결된 포탈에서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나와 멀뚱멀뚱 서 있는 두 사람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고는.
“디바인 실드, 한국 단원분들에게 전달합니다. 한상우 헌터님의 이번 추천 건은 당사자의 거절로 보류되었습니다. 혹시 추후 입단의 의사가 있으시다면 연락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얘기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포탈 기계를 회수하고 본부로 돌아갔다.
파아아앗-!
이윽고 사라진 포탈.
대련장엔 적막이 내려앉았다.
“…한상우 헌터,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제일 먼저 침묵을 깬 건 강철만이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온 추천이 당사자의 거절로 보류됐다니.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이 몰려왔는데, 이유를 들어야만 해소될 것 같았다.
다행히 한상우는 사실대로 얘기해 주었다.
“신성력을 전수받을 수 없었습니다.”
“신성력을 전수받을 수 없었다고요?”
“예. 셀리나가 제게 신성력을 전수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원인은 저에게 있는 모양이더군요.”
“신성력 전수를 실패해? 한상우 헌터 때문에?”
“그게 가능한가…?”
한상우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오히려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미를 곱씹어 봤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설명을 하기 전보다 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한상우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보다, 저도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한상우가 입을 열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두 사람은 일제히 한상우를 돌아봤다.
“혹시 스킬을 추출한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스킬 추출이요? 그런 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너는 들어본 적 있어?”
“…아니. 나도 들어본 적 없어.”
“그렇군요. 그럼 됐습니다.”
“잠깐만요, 한상우 헌터. 설마….”
고개를 기웃하는 지소영과 달리 강철만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디바인 실드 입단을 거절한 한상우와, 들어본 적 없는 스킬 추출에 대한 이야기.
강철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시나리오가 이미 완성된 듯했다.
거기에 한상우는 살을 더 붙여줄 생각이 없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잠깐만요, 그럼 신성력을 전수받지 않고 디바인 실드에만 가입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럼 되잖아요!”
심각한 표정의 강철만을 뒤로 하고, 약간 들뜬 목소리로 지소영이 말했다. 이 방법이라면 디바인 실드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아뇨, 셀리나 칸데바와 이야기를 해봤으나 저랑 디바인 실드는 맞지 않을 것 같아서요. 신경 써주신 건 감사하지만, 입단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
한상우가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하자, 지소영은 더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침묵을 유지했다.
그 와중, 먼저 침묵을 깨고 말한 건 강철만이었다.
“…어쩔 수 없죠. 한상우 헌터의 뜻이 그렇다면. 대신, 이전처럼 협력 정도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 대가는 충분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물론이죠. 또 큰일이 생기면 연락해 주세요. 저도 가능한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성력 전수나 디바인 실드의 구린 구석과는 별개로, 그들의 활동 자체에는 불만이 없었기에 협조는 가능할 듯했다.
“아쉽네요. 그래도 보류 상태라고 했으니,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생각이 바뀔 일은 없겠지만.
한상우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나중에 또 연락하죠. 뒤에 밀린 스케줄이 있어서.”
강철만은 한상우의 어깨를 다독인 뒤, 지소영과 함께 대련장을 나섰다.
“…….”
어느덧 한상우 혼자 남게 된 대련장.
강철만과 지소영 앞에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한상우의 기분은 싱숭생숭했다.
강철만과 협력해서 루미나스를 격퇴해 왔기에 디바인 실드와 나름대로 내적 친밀감이 있었는데,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캐릭터들에 의해 튕겨 나간 신성력과 스킬을 추출하고, 주입한다는 등의 정황도 전부 의심스러웠다.
은근히 가지고 있던 신뢰가 사라진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선 디바인 실드 본부의 위치를 알게 됐고, 그들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도 파악하게 됐다.
또 결정적으로.
[돌발 퀘스트 발생]
[이질적인 힘이 군주의 힘을 자극했습니다.]
[신성의 힘(0/1)]
[퀘스트를 진행할 시, 포탈이 생성되어 임시 던전으로 진입합니다.]
[경고 : 해당 던전은 지금 군주의 수준보다 조금 높은 단계의 던전입니다. 클리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오]
[선택 가능 시간 – 12시간]
셀리나의 신성력 전수 시도 직후, 그녀의 힘이 내부의 무언가를 건드렸는지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다.
설명을 보니 예전에 100레벨을 달성했을 때 빛바랜 망자들의 왕이 있던 던전처럼 임시 던전을 여는 형식이었다.
비록 신성력은 전수받지 못했지만, 셀리나의 힘이 촉매가 되어 돌발 퀘스트를 불러일으킨 듯했다.
어려운 단계의 던전이라고 하니 조금 걱정도 됐지만, 물러날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런 도전을 거쳐왔기에 지금, 이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었으니까.
‘외부의 힘은 없어도 괜찮아. 나한텐 그보다 더 뛰어난 잠재력이 있으니까.’
한상우는 대련장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 * *
사각- 사각-
성북동 대저택 거실.
날카로운 면도칼을 든 미용사가 손을 움직이자 기다란 수염이 흰 천을 따라 뭉텅이로 떨어졌다.
그러자.
“음…. 좋구만. 얼마 만에 누리는 일상인지 모르겠네.”
의자에 앉아 면도를 받던 방시현이 만족스러운 평가를 내놓았다.
헌터청 지하 감옥에서 나온 지도 어언 일주일.
그간 방시현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누리지 못했던 휴식을 취하는 것에 집중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오랜 기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며, 씻지도 못했던 만큼 푹 쉬고 기력을 회복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어언 일주일.
충분히 휴식을 즐긴 뒤 마지막으로 이발과 면도까지 마치자, 이제 좀 사람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방시현은 거울에 비추는 자신의 미모를 만끽하며 씩 웃었는데, 그런 여유는 얼마 지나지 않고 깨지고 말았다.
끼이이익-
“방시현 님, 방금 헌터청의 정보원에게 연락이 왔는데 한상우가 등급 재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비서 윤채연이 들어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온 터였다.
“뭐? 그놈이 밖으로 나왔다고?”
방시현은 곧바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보고는 사실이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느껴지던 열쇠 던전의 기운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방시현이 말끔해진 이맛살을 세게 구기며 말했다.
“말도 안 돼…. 그 많은 적을 전부 쓸어 버렸다고? 몬스터들의 등급도 SS급 이상일 텐데?”
열쇠 던전.
1년 전, 방시현이 수감되기 전 마지막 레이드에서 발견한 특정 던전으로 입장할 수 있는 열쇠였다.
열쇠는 보물 상자 속에 쪽지와 함께 들어 있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몬스터 등급 : SS-SSS급>
<주의 : 최종 단계를 클리어하지 못할 경우, 던전 내부의 몬스터가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방시현은 홀로 열쇠를 이용해 던전에 진입했고, 곧 그 가치를 확인했다.
비록 광산에 포진한 SS급 용족 몬스터 수백 마리 때문에 최종 단계까지 가진 못했지만, 던전의 특성과 난이도를 잘만 이용하면 현실의 국가와 전쟁을 벌이는 것도 가능할 듯했다.
SSS급 보스 몬스터와 그 휘하의 몬스터들을 밖으로 끌고 와 수도권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SS급 헌터들을 제거해 각성자로만 이루어진 신인류 구축에 첫걸음을 떼려 한 것이다.
일정 범위 이상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공격성도 다소 떨어지는 다른 SS급 던전과는 다른 점이 많았으니까.
물론.
[해당 던전 클리어에 실패할 경우, 열쇠는 다시 열쇠 조각으로 나뉘어 흩어집니다.]
라는 열쇠의 특성 때문에 다시 열쇠 조각을 모아야 했다. 그나마 두 조각은 빠르게 찾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미처 찾기 전에 헌터청에 체포당하는 바람에 봉인해 마강진에게 맡긴 상황이었다.
탈옥 뒤 들은 바에 따르면, 방시현의 명령에 따라 열쇠를 다 모으기는 했으나 보관하던 이들이 전부 한상우에게 당해 열쇠를 뺏겼다고 했던가.
뺏긴 게 열 받기는 했지만 동시에 크게 아쉽지도 않았다. 당시 루미나스 한국 지부의 전력이 모두 들어가도, 풀컨디션의 방시현이 없었다면 어차피 들어가자마자 전멸했을 테니까.
그만큼 열쇠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강하고, 그 수도 많다고 볼 수 있었는데 한상우라는 헌터 혼자서 그걸 클리어했다니.
방시현은 작금의 사태가 믿기지 않았으나 한편으론 흥미롭기도 했다.
“재밌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리고 클리어했다면 굉장한 보상을 손에 넣었을 텐데, 엄청 탐나는걸?”
어떻게 던전을 클리어했는지는 몰라도 고난이도의 던전을 클리어한 만큼 분명 좋은 보상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슬슬 밥값을 하러 가보실까? 윤 비서, 출전할 준비해.”
방시현은 잘라낸 머리칼과 수염으로 가득한 천을 걷고, 의자에서 일어나며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막 자리에서 일어난 그때.
우우우웅-.
윤채연이 진동하는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난감해진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바, 방시현 님. 아쉽지만 한상우는 다음에 처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왜?”
“방금 본부에서 총사령관님 직속 명령으로 당분간 한상우 헌터와 관련된 모든 작전을 중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갑자기? 어이없네. 어제까지만 해도 발견 즉시 척살하라고 재촉한 인간들이 왜 그래?”
윤채연의 보고에 방시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한상우를 제거하고 열쇠 등 루미나스의 물품을 회수하라고 명령했던 본부가 하루아침에 태도를 180도 바꿨기 때문이다.
“이유를 한번 알아볼까요?”
윤채연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인 듯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방시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어차피 고기는 살이 오를수록 더 맛있는 법이니까. 좀 더 성장시키고 잡아먹어도 상관없어.”
방시현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한상우의 사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놈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난 더 좋으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