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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07화 (107/169)

제107화

12장 그릇된 믿음(1)

“후우,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네.”

컴퓨터와 매트리스, 그리고 가구 몇 개가 전부인 원룸.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오자 입에서 그런 소회(所懷)가 절로 나왔다.

등급 재측정, 대련, 디바인 실드 본부 방문 등.

집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대충 헌터증만 갱신하고 올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일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남은 일도 있었다.

[돌발 퀘스트 발생]

[이질적인 힘이 군주의 힘을 자극했습니다.]

[신성의 힘(0/1)]

[퀘스트를 진행할 시, 포탈이 생성되어 임시 던전으로 진입합니다.]

[경고 : 해당 던전은 지금 군주의 수준보다 조금 높은 단계의 던전입니다. 클리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오]

[선택 가능 시간 – 9시간]

퀘스트명 ‘신성의 힘’.

셀리나가 신성 각인을 시도한 후, 발생한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했다.

남은 퀘스트 선택 시간은 9시간 정도.

진입까진 여유가 있었지만, 시스템이 경고하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전, ‘군주의 성’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준비는 철저할수록 좋았으니까.

쿵-!

나는 밖에서 메고 온 보따리를 현관에 내려놓았다.

웬만한 성인 남자도 들어갈 정도로 큰 가방.

안에 든 물건들이 큰 건 아니었다.

그저.

마나 포션 100개와 오래 보관이 가능한 먹거리, 생필품 등 레이드와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한꺼번에 사다 보니 부피가 클 뿐이었다.

방안에 놓을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물론, 공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마나 포션은 인벤토리에 넣고, 다른 물품들은 어떻게든 구겨 넣으면 보관은 할 수 있었는데 수납 공간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 같은 것들이면 몰라도, 생필품까지 캐릭터들 인벤토리나 사무실에 보관할 수는 없으니까.

혼자 잠만 자던 원룸이다 보니, 워낙 좁아서 운동을 하거나 캐릭터들을 소환해서 훈련을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이번 퀘스트가 끝나면 이사 좀 해야겠어. 헌터청이 제공하는 혜택도 좀 받고.’

신대훈이 예전부터 필요한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었는데, 일이 바쁘다 보니 얘기할 틈이 없었다.

이번에 사실상 SS급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으니, 받을 수 있는 혜택도 훨씬 많아졌으리라.

나는 이번 퀘스트가 끝나면 신대훈에게 연락하리라 다짐하며 방 안으로 들어와 퀘스트를 진행할 준비를 했다.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당장은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좋아, 마나 포션은 꽉 차서 더 못 넣고…. 캐릭터는 미리 소환하는 게 낫겠지?’

인벤토리에 마나 포션 100개를 모두 넣은 후, 나는 방 한가운데에 서서 [캐릭터 소환]을 사용했다.

퀘스트 던전에 진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내가 선택한 캐릭터는.

[캐릭터 소환 : 땡길거야]

[캐릭터 : 땡길거야가 비전투 모드로 전환합니다.]

[캐릭터 소환 유지의 마나 소모량이 95% 감소합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땡길거야였다.

용족 던전처럼 매직킹을 소환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방어 능력이나 마나 소모량을 생각하면 수호 기사를 소환하는 게 나았다.

할 말이 있기도 했고.

나는 땡길거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씩 웃었다.

“아까는 고마웠다. 신성력이 주입되려는 걸 막아준 거지?”

셀리나의 얘기에 따르면 신성을 각인하려고 했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체들이 막았다고 했었다.

하여 나는 던전 브레이크로 각성했을 때처럼 땡길거야가 위협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막아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닌 듯했다.

“칭찬은 감사드리지만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러한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주군.”

“네가 안 했다고? 그럼 다른 애들이 한 거야? 다크어둠? 매직킹?”

“그들도 주군께서 말씀하시는 일과는 무관합니다. 주군의 부름을 받은 화신체는 주군의 내면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소환되지 않은, 다른 화신체들의 행동인 것 같습니다.”

“음, 그래? 몰랐던 사실이네.”

셀리나의 얘기를 들었을 때는 땡길거야와 다크어둠 등 소환 캐릭터들이 방어한 줄 알았는데, 반응을 보니 아직 소환되지 않은 다른 캐릭터들이 막아낸 듯했다.

“송구합니다, 주군. 제가 위험을 감지하고 막았어야 했는데….”

“아냐, 지금 이렇게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슬슬 출발해볼까.”

셀리나 칸데바의 신성 각인을 막은 캐릭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됐으니, 이제 당장 해야 할 일을 할 차례였다.

나는 퀘스트 창으로 보이는 선택지 중 [네]에 손가락을 가져갔고.

촤아아아악-!

방 한가운데에 생겨난 포탈로 진입했다.

그러자 그 뒤로.

섬광이 번쩍하더니 공기와 온도, 그리고 풍경이 급변했다.

따뜻하고 포근하던 원룸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숲속으로 바뀐 것이다.

더불어.

[신성의 힘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미션을 완수하고 던전을 클리어하세요.]

[난이도 : 측정 불가]

메시지도 바뀌었다.

다만 지금까지 진입했던 던전과는 그 양상이 달랐으니, 하늘이 맑은 건 둘째치고 메시지의 내용도 달랐다.

보통 던전에 진입하면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라고 하거나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데, 막연하게 미션을 완수하라는 임무만 내려온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전에 도전했던 용족 던전과 같은 느낌이었다.

“주변에 신변을 위협하는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군.”

“희소식이긴 한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군.”

다행히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공격을 퍼붓는 몬스터는 없었으나, 임무가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차근차근 찾아 나가면 되니까. 그리고 내게는 수색을 도와줄 지원군도 있었다.

[캐릭터 소환 : 다크어둠]

[캐릭터 소환 : 매직킹]

[비전투 모드가 활성화됩니다.]

나는 다크어둠과 매직킹도 소환했다.

당장 몬스터가 있지도 않았기에, 비전투 모드로 소환하면 마나를 아끼면서도 수색과 경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셋의 궁합이 썩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세 캐릭터를 동시에 소환했습니다.]

[캐릭터 간의 상성에 따라 동시 소환 효과가 발생 및 중첩됩니다.]

[수호 기사 : 중립, 대립 – 충성도 3% 감소]

[암살자 : 대립, 대립 – 충성도 6% 감소]

[마법사 : 중립, 대립 – 충성도 3% 감소]

[수호 기사 – 마법사]

[동시 소환 효과 – 중립 : 수호 기사와 마법사는 같은 왕을 모시지만 검술과 마법,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여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관계입니다. 동시 소환으로 인한 영향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암살자 – 마법사]

[동시 소환 효과 – 대립 : 암살자와 마법사는 하층민과 귀족, 상반되는 신분으로 대립하는 관계입니다. 동시 소환으로 암살자와 마법사의 충성도가 일시적으로 3% 하락합니다.]

동시 소환 효과를 살펴보니 상생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동시 소환 효과에 적힌 관계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오랜만이군, 정신 나간 마법사. 미리 경고하는데 마스터 앞에서 사고 치면 목숨이 위험할 거다.”

“웃기네. 천방지축 그 자체인 뒷골목 고아가 사고를 운운하다니.”

“둘 다 주군 앞에서 추한 모습 보이지 말도록.”

다크어둠과 매직킹이 한마디씩 내뱉으며 으르렁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호 기사와 마법사의 관계는 중립이라 더 시끄러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세 사람이 더 이상 다투지 않도록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자자, 각자 흩어져서 퀘스트와 관련된 것 같은 게 보이면 보고하도록.”

“바로 찾아오겠습니다, 주군.”

“다녀오겠습니다, 로드.”

타앗-!

효과는 확실했다.

땡길거야와 매직킹은 곧바로 대답했고, 다크어둠은 대답도 생략한 채 수풀 사이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답이 돌아왔다.

-여기 수상한 흔적이 있습니다, 마스터.

먼저 출발한 덕분인지 다크어둠이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나는 다크어둠의 안내에 따라 수풀을 해치고 나아가 수상한 흔적을 마주했다.

다크어둠이 찾은 건 다름 아닌.

“미라인가….”

고목에 기대어 있는, 삐쩍 마른 시체였다.

시간이 제법 지난 듯 보였으나 부패하지도 않고, 완전히 뼈만 남지도 않은 모습.

더더욱 수상한 건 그 옆에 웬 찢어진 노트가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함정은 없는 것 같군요. 주워 드리겠습니다, 마스터.”

나는 다크어둠이 건네주는 노트를 받아 읽었다.

<성기사는 말했다. 신을 믿으면 고통밖에 존재하지 않는 삶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성실히 따랐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건…. 아아, 그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됐었는데. - 08. 17. 클라코>

찢어진 일기장.

정확히 일기장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날짜와 날인된 서명을 보니 그렇게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와 한탄으로 가득한 내용.

정황상 미라가 남긴 것으로 보였는데, 가능한 내용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듯했다.

딱 봐도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게,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단서들이 나중에 필요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역시나 찢어진 일기장을 모두 읽은 순간이었다.

[광신도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교주를 처치하여 망자의 한을 풀어주세요(0/1)]

[주의 : 성기사를 10명 이상 처치할 경우, 해당 던전의 클리어는 실패 처리되며 자동으로 퇴출됩니다.]

메시지가 떠오르면서 퀘스트가 갱신되더니.

쿵쿵-! 쿵쿵쿵쿵-!!

“누구냐!”

“감히 신성한 구역에 침입하다니! 하늘의 천벌이 두렵지도 않은가!”

숲속에서 성기사들이 나타나 나와 다크어둠에게 검을 겨눴다.

[광기에 찬 예비 성기사(SS)]

수는 30여 명, 등급은 SS급.

강해 보이긴 하나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죽일까요, 마스터?”

내겐 만렙인 다크어둠이 바로 옆에 있는 데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바로 목을 딸게요, 로드.

-금방 지원하겠습니다, 주군.

근처에서 수색하던 매직킹과 땡길거야도 기습을 눈치채고 내 쪽으로 합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10분도 걸리지 않을 전투.

하지만 나는 섣불리 성기사들을 죽일 수 없었다.

우선 퀘스트의 내용 자체가 성기사를 10명 넘게 죽이면 안 되기도 하거니와.

분명 몬스터임에도 성기사들도 막무가내로 공격해오지 않은 탓이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성기사 중 대장으로 보이는, 황금색 망토를 착용한 기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더니 나를 바라보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이방인 같은데… 혹시 신을 믿으십니까?”

“뭐…?”

참으로 황당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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