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09화 (109/169)

제109화

12장 그릇된 믿음(3)

광란의 간증이 끝난 뒤, 나는 다크어둠과 함께 예배당에 마련된 숙소를 배정받았다.

침대와 탁자, 의자가 전부인 방.

그러나 독실이라는 점과 창밖으로 보이는 통나무집들의 상태를 고려해보면 상당히 고급스런 대우에 속했다.

이방인을 정성스레 대하는 성기사 몬스터들이라니.

바깥의 헌터들이 듣는다면 거짓말하지 말라며 코웃음 칠 게 뻔했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인식표는 몬스터라는 걸 알리고 있었지만 겉으로만 봤을 땐 평범한 기사와 구분하기 힘들었고, 예배당 역시 평화로웠다.

그러나.

찢어진 일기장과 퀘스트는 말하고 있었다.

이곳이 정상적인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자세한 건… 조사해보면 알겠지.’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시작해.’

-명 받들겠습니다, 주군.

-금방 찾아오겠습니다, 로드.

-예, 마스터.

나는 불 꺼진 방안의 침대에서 일어나 작전을 시작했다.

[캐릭터 소환]으로 다크어둠뿐만 아니라 매직킹과 땡길거야까지 비전투 모드로 불러내 수색하기로 한 것이다.

수색 목적은 두 가지.

[교주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물품을 습득하세요(0/1)]

[교주의 힘을 약화시키는 물품은 예배당 숙소 내에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당 숙소에 있다는, 교주의 힘을 약화시키는 물품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주의 행방을 찾는 것이다.

간증 당시, 외팔 기사가 새벽에 교주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했지만 성기사들이 잠든 지금 교주를 발견한다면 보다 수월하게 처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환한 캐릭터들을 내보낸 뒤, 배정받은 방부터 수색해 보았다.

캐릭터들은 하이어에서 이런 수색을 많이 해본 터라 들키지 않고 알아서 잘할 것이기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기억하며 내 주위부터 차근차근 단서를 찾아 나간 것이다.

아쉽게도 당장 큰 성과는 없었다.

애초에 단출한 독실이라 물건을 숨길만 한 곳도 없었거니와 교주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물건이 이런 데 숨겨져 있을 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위로 돌아간 첫 번째 수색.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찾았습니다, 마스터.

[교주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물품을 습득하세요(1/1)]

[교주의 치부를 발견하였습니다.]

[교주의 힘이 약화됩니다.]

수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뜨면서 다크어둠이 퀘스트 아이템을 찾았다는 전언을 보내왔다.

슈슉-!

동시에 내 앞으로 등장하는 다크어둠의 신형.

나는 다크어둠이 건네는 물건을 받으며 칭찬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은 거야? 대단한데?”

“중앙 복도의 액자 뒤에 공간이 있더군요. 귀족들의 흔한 수법 중 하나라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마스터.”

다크어둠이 찾아낸 퀘스트 물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금화가 든 주머니였다.

팔뚝만 한 크기의 가죽 주머니에 든 금화 수십 개.

이게 어째서 교주의 힘을 약화시키는 건지는 알 수 없어도, 어쨌든 부가 퀘스트는 완료됐다.

그리고 희소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도 찾았습니다, 주군.

다크어둠의 뒤를 이어 땡길거야도 전언으로 무언가를 찾았다고 알려온 것이다.

쉬익-!

서둘러 방으로 복귀한 땡길거야의 신형.

그 모습에 먼저 와 있던 다크어둠이 팔짱을 끼며 비아냥거렸다.

“느려 터진 달팽이가 따로 없군, 깡통 기사.”

“흥! 절도와 빈집 털이가 주특기인 네놈보다 빠르면 네 존재 가치가 사라질 테니까 봐준 것이다.”

“쯧쯧, 변명하고는. 그래서 마스터를 제대로 보좌할 수나 있겠나? 부러우면 얘기해. 자물쇠 따는 법부터 비밀 금고 찾는 법까지, 실전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법을 수호하는 기사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군. 무식한 암살자 같으니.”

저 둘은 과연 언제쯤 사이가 좋아질까.

계속되는 티격태격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땡길거야가 찾아온 물건을 살펴봤다.

끝부분이 불규칙하게 찢겨나간 종이.

땡길거야가 찾아온 건 찢어진 일기장의 한 페이지였다.

<검술 훈련 도중, 검이 닿지도 않았는데 허수아비의 가슴에 흠집이 났다. 성기사가 말하길 광신께서 굽어살피는 증거라고 했다. 공물을 좀 더 바치면 먼 거리에서도 벨 수 있을 것이고, 기술을 연마하면 성기사도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성기사라니…! 마음 같아선 억만금을 바치고 싶었지만 내겐 돈이 없었다. 가진 거라곤 날 기다리는 처자식뿐이었다. 결국, 내가 바친 것은…. - 07. 27. 클라코>

내용과 날짜를 보아하니 예배당에서 발견한 것과 이어지는 듯했다.

효과 역시 그랬다.

긴 글자들을 모두 읽어 내려가자.

[망자의 한을 추가로 발견하였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 완화됩니다.]

[교주를 처치하여 망자의 한을 풀어주세요(0/1)]

[주의 : 성기사를 100명 이상 처치할 경우, 해당 던전의 클리어는 실패 처리되며 자동으로 퇴출됩니다.]

예배당에서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이 완화되었다.

이로써 던전 클리어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됐다고 볼 수 있는데, 내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기를 당하고, 결국엔 처자식까지 바친 것인가.’

결론이 나오진 않았지만, 일기장의 내용을 봤을 때 그런 식으로 귀결됐을 확률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허수아비에 난 흠집은 근처에 있던 성기사의 소행일 것이다.

일기의 주인인 클라코가 크게 반응하자 뼛속까지 긁어먹기 위해 신을 들먹이며 공물을 바치라고 한 것일 테고.

이런 건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단체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다.

자신들이 행운이나 불행처럼 보이는 일을 만든 뒤, 그것을 신의 행위라 하며 상대방에게 거짓된 믿음을 주고 더 많은 공물과 헌금을 뜯어내는 것이다.

물론 아직 결말이 나오지 않았기에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내 추측은 현실이 되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현실은 더 참혹했다.

슈화악-!

“로드,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너도 뭘 찾은 거야?”

“예. 퀘스트 아이템은 아니지만, 이번 일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요.”

찢어진 일기장을 읽는 사이, 갑자기 매직킹이 내 앞으로 순간 이동하더니 지팡이를 휘둘러 공중에 홀로그램으로 된 화면을 띄웠다.

미세한 마나 구체를 공중에 띄워 카메라처럼 활용하는 스킬, [정찰]이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저게… 뭐지?”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땡길거야와 다크어둠도 할 말을 잃고 인상을 찌푸렸다.

매직킹이 화면을 보며 설명했다.

“정찰 스킬로 주변을 관찰하던 도중 발견한 지하 수용소입니다. 건물이 지대에 비해 1층의 높이가 높아서 숨겨진 공간이 있나 했더니 이런 게 있더군요. 넓이는 이곳, 예배당 숙소와 비슷하며 수용 인원은 대략 100명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화면 속, 무수히 많은 철창과 그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넝마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옷들을 입은 모습.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수용 인원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었다.

간간이 중년 남성도 보이긴 했으나 8할 이상이 여성이었고, 심지어 갓난아기까지 포함한 아이들도 여럿 보였다.

나는 매직킹이 보여주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강제로 감금한 것 같아 보이는데.”

그러자 땡길거야가 분노를 참기 힘들다는 듯 건틀릿을 낀 주먹을 꽉 쥐며 말문을 열었다.

“궁중 마법사여, 출입구는 어디 있지?”

“출입구는 찾는 중이었어. 1층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결계가 강하고 복잡해서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한 30분 정도?”

“잠깐, 설마 구출하려는 건 아니겠지, 깡통 기사?”

법을 지키는 수호 기사다운 반응이었으나 다크어둠은 팔짱을 낀 채 그렇게 물었다.

땡길거야가 다크어둠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비록 제국법의 적용을 받는 곳은 아니지만, 약자들이 착취당하는 걸 지켜보는 건 기사로서 용납할 수 없다.”

“쓸데없는 정의감 아닌가? 우리는 마스터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지금 구출 작전을 펼쳤다간 교주를 찾기도 전에 300명이 넘는 성기사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들을 적으로 돌리게 되면 죽이지 않고는 제압할 수 없을 테니 마스터의 임무는 실패하게 되겠지.”

“그럼 네 녀석은 핍박받는 자들을 무시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당장 목숨이 위험해 보이지는 않으니 임무가 끝나고 구해줘도 된다는 얘기다. 정말 머리가 텅 빈 깡통이 따로 없군.”

땡길거야의 분노를 다크어둠은 차디찬 냉소로 받아쳤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처지는 안타까우나 구출 작전을 펼칠 경우 성기사들이 몰려올 텐데, 녀석들의 등급이 SS급인지라 처치하지 않고 제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 풀리면 사람들을 구하지도 못하고, 퀘스트도 클리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동정심만 가지고 사태를 작전을 수행하기엔 지하 수용소로 내려갈 여유도 없었다.

딸그락- 딸그락-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이 설전을 벌이던 그때, 창밖으로 보이는 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창가로 다가가 보니 커다란 마차 한 대가 수행원 10여 명을 대동한 채 예배당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마차의 등장에 맞춰.

저벅- 저벅-

“새벽 예배 시간입니다, 형제들이여.”

“함께 가시죠.”

성기사 두 명이 나와 다크어둠을 찾아왔다.

“예, 곧 가도록 하죠.”

나는 [캐릭터 소환]이 들키지 않도록 땡길거야와 매직킹의 소환을 해제한 뒤, 성기사들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예배당으로 오시면 됩니다.”

끼이이익- 탁-

다행히 성기사는 별다른 특이점을 눈치채지 못한 듯, 문을 닫고 방에서 멀어졌다.

나는 다시 땡길거야와 매직킹을 소환했다.

그리고.

“나와 다크어둠은 예배당으로 간다. 땡길거야와 매직킹, 너희 둘은 지하 수용소의 출입구를 찾고 내가 지시를 내리면 구출 작전을 펼치도록.”

내가 내린 결론은 양동 작전.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의 의견을 통합할 수 있는 지시를 내렸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로드.”

“마스터 말씀대로 동시에 작전을 수행한다면 괜찮을 것 같군요.”

“정의를 실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군.”

“그럼 시작하자, 얘들아.”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땡길거야와 매직킹을 방에 남겨둔 후, 나는 다크어둠과 함께 예배당으로 이동했다.

걸어가면서 보니 다행히 숙소에 남은 성기사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교주가 오기 때문일까.

낮보다 예배당에 모인 성기사의 수가 훨씬 많은 듯했다.

400명은 족히 넘는 듯한 수.

나는 다크어둠과 최대한 앞자리에 자리 잡았다.

단상 위에 올라서서 로브의 모자를 눌러쓴 사제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사실 처음엔 교주를 발견하면 바로 암살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마차를 타고 온 수행원과 사제들의 머리 위에는 인식표가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교주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되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를 잡고 나자.

“자, 지금부터 신성의 힘을 부여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제물을 놓아 주십시오.”

로브를 눌러쓴 사제가 근엄한 말투로 명령을 내리자 성기사 한 명이 품에 바구니를 안은 채 올라와 제단 위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모두 제물을 위한 기도를 올립시다. 광신이시여, 맑고 깨끗한 영혼을 드시고 신성의 힘을 내려주소서!”

“응애! 응애!”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공물을 훼손하기 위해 사제가 칼을 높게 치켜들었는데, 보자기에서 웬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유심히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갓난아기.

제단 위에 올라온 건 아직 돌도 지난 것 같지 않은 아기였다.

하지만 예배당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떴다.

“광신이시여, 저희에게 부디 신성의 힘을…!”

“신성의 힘을…!”

검을 치켜든 사제의 말을 복창하며 동조한 것이다.

이로써 이곳이 사이비 교단이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사제의 검이 아기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금, 시작한다.’

-예, 마스터.

-출입구 발견했습니다, 로드.

-수용소는 박살 내버리겠습니다, 주군.

나는 몸을 움직이는 동시에 소환한 캐릭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작전은 즉각 이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고요하던 예배당 숙소 1층에선 폭발이 일어났고.

“뭐, 뭐야…!”

다크어둠은 재빠른 몸놀림을 이용해 제단 위의 아기를 구출해 냈으며.

[침투] [반월 베기]

나는 사제 앞으로 쇄도해 화산검을 휘둘렀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크헉…!”

아기는 생채기 하나 없이 구출해냈고, 의식을 주관하던 사제도 오러에 베여 일격에 절명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분명 모든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야 했으나.

[광신의 추기경(A)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화산검에 베인 사제가 교주가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