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12장 그릇된 믿음(4)
‘제길…!’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의식을 주관하기에 교주로 확신했던 인물이 다른 직급이었기 때문이다.
오판으로 인한 여파는 곧장 발생했다.
“아, 암살자! 암살자다!”
“저건 숲속에서 발견했던 이방인이잖아!”
“이단이다! 숲속의 이방인은 이단이었다! 즉결 처형하라!!”
지금까지 호의적이었던 성기사들이 순식간에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스릉-! 스르릉-!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던 이들이 검을 뽑으며 달려든 것이다.
“다크어둠! 성기사는 무시하고, 교주부터 찾아서 처치하도록!”
“예! 마스터!”
나는 단상 위, 귀빈석에 주르륵 서 있다가 황급히 도망치는 10여 명의 사제들을 쫓으며 소리쳤다.
인식표가 뜨지 않아 확실하진 않지만, 정황상 저들 중에 분명 교주가 있을 것이었다.
성기사들이 단상 위로 올라오기 전, 나는 다크어둠과 함께 사제들을 쫓아 각자 한 명씩 등 뒤를 베었다.
그러나.
“크악!!”
[광신의 추기경(A)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광신의 추기경(A)을 처치했습니다.]
둘 다 교주가 아니었다.
남은 인원은 예닐곱 명.
마음 같아선 전부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다크어둠이 안고 있는 아기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어 광역 스킬은 지양해야 했고, 연이어 사제들을 베자니 뒤늦게 달려온 성기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감히 추기경님을…! 신의 형벌을 받아라, 이단이여!!”
후우우웅-!
성기사가 휘두르는 검이 공기를 가르며 쇄도했다.
SS급 몬스터가 가하는 공격.
쩌어어엉-!!
나는 화산방패를 들어 검을 막아냈다.
다른 버프 없이 방패만으로 막자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최선의 대처는 성기사의 검을 피하고 사제들을 쫓는 것이었지만, 그러기엔 달려드는 성기사들이 너무 많았다.
일방적인 방어와 회피만으로는 포위망을 빠져나가기 힘들었다.
특히 방패도 없고, 한 손으로 아기까지 안고 있는 다크어둠은 지속적으로 회피하는 게 불가능했다.
결국.
‘다크어둠, 어쩔 수 없다. 최소한의 공격으로 길을 열어라.’
‘예, 마스터.’
푹-!
“크헉!!”
[캐릭터 : 다크어둠이 광기에 찬 예비 성기사(S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처치한 성기사의 수(1/100)]
[주의 : 허용치 이상의 성기사를 처치할 경우, 퀘스트는 실패 처리되며 곧바로 던전에서 추방됩니다.]
다크어둠은 단검으로 성기사의 목을 찔러 활로를 만들었는데, 그 즉시 새로운 카운트가 발생했다.
[처치한 성기사의 수(1/100)]
퀘스트 실패의 조건, 처치한 성기사 100명을 카운트하는 메시지가 뜬 것이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제압만 한다는 게 그만….”
“아니, 아직 여유가 있으니 괜찮아. 일단 넌 아기를 지키는 데 집중해!”
카운트가 올라가긴 했지만,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교주를 찾는 게 더 급선무였다.
“흐읍…!”
“으악!!”
[반월 베기] [급소 찌르기]
[광기에 찬 예비 성기사(S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처치한 성기사의 수(2/100)]
나도 앞을 막는 성기사 하나를 처치하고 사제들의 뒤를 쫓아 단상 옆에 마련된 뒷문으로 추격했다.
그러자.
저 멀리 도망치는 사제들과 길가에 놓인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마차를 타고 도망칠 심산인 듯했는데.
‘그렇게는 안 되지.’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나는 양손으로 화산검을 쥔 후, 마차를 조준하고 [분화]를 발사했다.
콰아아아앙-!!
검 끝에서 발생한 화염이 일직선으로 날아가 마차를 날려버렸다.
“……!”
“마, 말도 안 되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도주 수단.
사제들은 도망치다 말고 그대로 굳어버렸고, 나는 마차를 날리자마자 땅을 박차 예배당 첨탑으로 뛰어올랐다.
[분화]를 쓴 직후, 뒤쫓아온 성기사들이 내가 있던 자리로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후우우웅-!
“이단이 교주님을 노린다!”
“잡아라!!”
허공을 가르는 칼날들.
성기사들도 나처럼 첨탑 위로 뛰어오르려 했지만, 무거운 갑옷 때문인지 쉽게 올라오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그사이, 나는 다른 도주 경로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사제들을 바라보며 고심했다.
이렇게 계속 술래잡기를 하기엔 내 쪽에서 불리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놈들을 관찰하던 그때.
‘잠깐, 혹시…?’
뜬금없이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연관성이 없고 가능성도 낮긴 하지만, 조금 전에 얻었던 물건을 활용하면 교주를 찾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대로 실패하는 것보다는 낫기에 나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인벤토리에 넣어놨던 퀘스트 아이템, 금화가 든 자루를 꺼내 첨탑 위에서 아래로 향해 흩뿌렸다.
촤르르륵-!!
첨탑 아래,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성기사들을 향해 낙화하는 금화들.
반응은 곧장 나타났다.
“뭐야? 웬 반짝이는 동전이…?”
“그, 금화! 금화다! 하늘에서 금화가 떨어지고 있어!!”
“비켜! 내가 주울 거야!!”
돈이 가진 위력은 대단했다.
입에 거품을 물며 날 죽이려 들던 성기사들이 금화가 떨어지자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성기사들은 아예 무릎까지 땅에 대고 떨어진 금화를 줍기 바빴다.
달라진 건 성기사뿐만이 아니었다.
“헉! 저 자루는…!”
지금껏 도망칠 궁리만 하던 사제들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것이다.
특히 그중, 난쟁이처럼 체구가 작은 사제는 아예 성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달려와 금화를 줍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내 피 같은 돈이…! 누가 신의 공물을 탐하느냐!!”
다른 사제들과 달리 유달리 적극적으로 재물을 탐하며 권위를 드러내는 인물 하나.
깊이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다크어둠, 저 녀석이다.’
-확인했습니다, 마스터.
나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다크어둠도 빠르게 반응했다.
예배당 안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며 성기사들을 따돌리다가 창가를 지나가는 순간, 금화를 줍는 사제에게 단검을 투척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쨍그랑-!
“크악…!”
다크어둠이 단검을 날린 순간, 사제는 몸을 숙여 목숨을 부지했다.
금화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기에 단검이 목에 꽂히지 않고 로브의 모자 부분만 베고 지나간 것이다.
실패로 돌아간 공격.
그러나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비록 사제의 목숨을 끊진 못했지만, 로브가 잘려 나가자 녀석의 머리 위로 인식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기만하는 광신의 교주]
아무래도 로브에 인식표를 가리는 효과가 있었던 듯했는데, 손상을 입힌 덕분에 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교주.
돼지처럼 허겁지겁 금화를 집던 녀석이, 바로 그토록 애타게 찾던 교주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음…?”
로브의 효과가 풀리면서 인식표가 완전히 드러났는데.
[기만하는 광신의 교주(D)]
어째 교주의 등급이 낮았다.
그것도 현저하게.
“으, 으악! 간악한 이교도가 감히!!”
게다가 명색이 교주면 차분하거나 성스러운 느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놈은 그것도 아니었다.
가볍고 천박했다.
길게 볼 것도 없었다.
나는 금화에 정신 팔린 성기사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침투]로 녀석에게 쇄도했다.
그러자 교주는.
“자, 자, 잠깐! 내 말을 들어봐!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땅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 날 올려다보더니 설득을 시도했다.
“난 아무 잘못 없어! 모든 건 신의 뜻대로 했을 뿐이야!”
“사람들을 속여 재산을 빼앗고 아기를 죽이는 게 신의 뜻인가?”
“그, 그건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것뿐이야! 난 강제로 하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억울해 보이는 모습.
그러나 녀석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광신의 세뇌가 침투합니다.]
[군주의 특성, 평정이 발동합니다.]
[정신 계열 마법에 저항합니다.]
입으로는 결백을 주장하는 한편, 손으로는 스킬을 사용해 나를 세뇌하려고 한 것이다.
나름 애는 썼지만 그게 내게 통할 리는 없었다. 나에게는 [평정]이 있었으니까.
나는 코웃음을 치며 화산검을 휘둘렀다.
“그딴 궤변은 네놈이 믿는 신한테나 하도록.”
촤악-!!
공중에 흩날리는 핏줄기.
“헉! 교주님…!”
“이단이 교주님을 시해했다!!”
뒤늦게 성기사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달려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나는 교주를 벤 후, 다시 높이 점프해 첨탑 위로 올랐다. 그리고 퀘스트가 완료되길 기다렸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분명 교주의 몸을 갈랐는데도 처치 메시지가 뜨지 않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 동강 난 교주의 몸이 갑자기 꾸물거리면서 붙더니.
파직-! 파지지지직-!!
무수히 많은 빛과 에너지를 방출하며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기만의 교주(SSS)]
난쟁이에서 거인으로.
D급에서 SSS급으로.
인간에서 괴물로.
육체와 등급, 외형이 모두 변한 것이다.
더불어.
“아둔한 이단 같으니. 결국, 힘을 쓰게 만드는군.”
“으, 으아아아악!!”
“머리가 깨질 것 같아! 크아아악!!”
성기사들 역시 모습이 변했다.
[광신에게 잠식당한 성기사(SS)]
“그르르….”
기만의 교주가 손바닥을 펼쳐 힘을 방출하자, 성기사들도 몸집이 커지고 이성을 잃더니 오크와 비슷한 외모가 된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이 근처의 성기사에 국한된 게 아닌 듯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광신에게 잠식당한 성기사(SS)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광신에게 잠식당한 성기사(S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힘 +2를 획득합니다.]
[처치한 성기사의 수(22/100)]
-죄송합니다, 주군. 성기사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감옥에서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었는데, 놈들이 갑자기 발광하며 강해져 처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은 구출 인원은 10명 정도인데 금방 끝내겠습니다, 로드.
양동 작전으로 지하의 수용자들을 구출하던 쪽에서도 광신에게 잠식당한 성기사를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게다가 그 수도 한두 명이 아닌 듯 순식간에 20명을 넘어섰다.
퀘스트 실패와 점점 가까워지는 수.
‘괜찮으니까 사람들부터 구출해.’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땡길거야와 매직킹을 다독였다.
[처치한 성기사의 수(36/100)]
[처치한 성기사의 수(45/100)]
[처치한 성기사의 수(56/100)]
둘이 처치하는 성기사의 수는 계속해서 올라갔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광신에게 잠식당한 성기사(SS)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광신에게 잠식당한 성기사(S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스탯 +1을 획득합니다.]
[레벨 300을 돌파했습니다.]
[300레벨 달성의 효과로 무작위로 스킬 중 하나의 스킬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7에서 8로 상승합니다.]
[스킬 레벨 상승에 따라 동시 소환 가능한 캐릭터의 수가 증가합니다.]
[유일 스킬 : Lv 8. 캐릭터 소환]
[현재 소환 캐릭터 : (3/4)]
[보유 캐릭터 : 4]
[선출 가능 횟수 : 0]
둘이 SS급 몬스터인 성기사들을 빠르게 잡아준 덕분에 레벨이 300을 돌파했고, 그 보상으로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올랐다.
거기에 더불어.
-주군,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탈출시켰습니다.
-곧 복귀하겠습니다, 로드.
[감금되어 있던 망자의 가족과 동료들을 모두 구출했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 완화됩니다.]
[교주를 처치하여 망자의 한을 풀어주세요(0/1)]
[주의 : 성기사를 200명 이상 처치하거나 사망할 경우, 해당 던전의 클리어는 실패 처리되며 자동으로 퇴출됩니다.]
[처치한 성기사의 수(56/200)]
지하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던 수용자들을 모두 구출하자, 처치할 수 있는 성기사의 수가 100명에서 200명으로 늘어났다.
땡길거야와 매직킹이 처치한 50여 명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증가한 것이다.
이전보다 좋아진 결과.
그때, 아기를 안은 다크어둠이 내 옆에 착지하며 말했다.
“아기는 무사합니다, 마스터.”
“안고 싸우느라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마스터.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도 전투를 하기엔 불편할 거야.”
이왕이면 다크어둠도 전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이 유리했기에 나는 곧바로 대책을 내놓았다.
마침 동시 소환 가능한 캐릭터의 수도 증가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캐릭터 소환 : 제장이]
“제장아, 다크어둠 대신 아기 좀 보호해줘.”
“예! 군주님!”
나는 첨탑 지붕에 제장이를 소환한 후, 다크어둠이 안고 있던 아기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땡길거야와 매직킹도 내 옆으로 다시 소환했다.
“다들 준비됐지?”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주군.”
“당연합니다, 로드.”
“예, 마스터.”
씩씩하게 돌아오는 대답들.
“자, 그럼 쓸어버리자!”
나는 피식 웃으며 캐릭터들과 함께 첨탑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하아아아앗!!”
광신도들과 전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