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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14화 (114/169)

제114화

13장 기지개(2)

“으윽, 갑자기 이게 무슨….”

장용진이 부츠와 방패 등 전신을 덮은 잡템을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한상우는 어기적어기적 일어나는 장용진을 주시하며 양병석에게 말했다.

“뒤로 물러나 계세요.”

“하, 하지만….”

“어서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양병석은 한상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반대편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동료 매니저들 옆으로 피신했다.

이번 일은 이미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기도 했거니와, 물러나라는 한상우의 말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과 신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용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저 술에 취해 맛이 간 눈으로 껄렁거리며 걸어와 한상우를 노려볼 뿐이었다.

“…뭐냐? 지금 나 쳤냐?”

“치다니? 네가 좋아하는 교육이지. 헌터는 민간인에게 위해를 가하면 가중 처벌 받는다는 헌터특별법도 모르나? 난 널 구해준 거야.”

“뭐? 헌터특별법? 서울역 같은 허접한 사냥터에서 노는 놈이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들어!?”

후우우웅-!

장용진은 정신도 없었지만 자제력도 없었다.

한상우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이 말하자, 도발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오른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비록 술에 취했지만 A급 헌터다운 빠르고 묵직한 공격.

‘죽어…!’

장용진은 술에 취해 뒷일 따윈 생각하지 않고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어라…?’

뭔가 이상했다.

분명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청년이 주먹에 맞아 나가떨어져야 하건만, 별안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골이 울리더니 자신의 몸이 붕 뜬 것이다.

그 뒤로.

와장창-!

시야가 빙글 돌면서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바닥을 굴렀다.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고? A급 헌터인 내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이어 찾아온 극심한 고통에 술이 깨버렸기 때문이다.

“쿨럭! 너, 너, 너… 뭐야!!”

아이템 거래소 유리 너머 바닥에 엎어져 있던 장용진이 가게에서 나오는 청년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그러자.

“뭐긴 뭐야. 네 선생님이지.”

장용진을 가게 밖으로 날려버린 청년, 한상우가 손을 풀며 다가왔다.

여유가 넘치는 걸 넘어서 아예 깔보는 듯한 태도.

이에 장용진은 분노하는 걸 넘어서 눈이 회까닥 뒤집혔다.

“너 이 새끼! 안 봐준다!!”

방금은 만취한 상태였고, 무기도 쓰지 않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방금의 일격으로 술기운은 완전히 날아가, 두려울 게 없었다.

장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허리춤의 장검을 뽑아 한상우를 아예 죽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용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아이템 쓰려고? 안 되지.”

장용진이 검을 뽑기도 전에 한상우가 [침투]로 접근해 칼자루를 발로 지그시 눌러 버렸다.

그러자.

“이 개자식이!!”

장용진은 더욱 선을 넘었다.

화르르륵-!

던전 밖에서 스킬로 타인을 공격할 경우, 그 수위에 따라 헌터청의 지하 감옥에 수감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장용진은 손아귀에 화염을 만들어 한상우를 공격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스킬 쓰려고? 그것도 안 되지.”

한상우는 허락하지 않았다.

[캐릭터 : 매직킹을 소환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디스펠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순간 소환으로 장용진의 스킬을 없애버렸다.

오직 허락하는 건.

“안 되겠다. 넌 좀 많이 맞자.”

“대체 이게 무슨…! 크헉!!”

맞는 것밖에 없었다.

한상우는 장용진의 복부와 턱에 주먹을 꽂아 넣고, 쓰러지면 발로 밟는 등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백보양보해 헌터끼리의 싸움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장용진은 헌터라는 이점을 활용해, 아무 잘못도 없는 일반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

게다가 그렇게 으스대던 힘에서 밀리자 스킬까지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나아가 건물까지 무너질 수도 있는데 전혀 거리끼는 모습이 없었다.

이런 놈을 가만히 봐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며 교육하고 있던 와중, 추가 수강생들이 등장했다.

“크! 기분 좋다! 역시 레이드 끝내고 먹는 술이 최고라니까!”

“맞아, 거기에 보상품도 팔고 분배까지 하면 딱이지! 오늘은 얼마나 벌려나.”

“형님이 먼저 가서 실력 발휘 좀 한다고 했으니 분명 높은 가격에 매입할 거야.”

“그런데 저기 거래소 앞에 싸움 일어났네.”

“킥킥, 싸움이 아니라 완전 일방적으로 처맞는데?”

“잠깐, 저기 맞고 있는 사람…. 우리 형님 아니야?”

장용진과 레이드를 끝내고 함께 술을 마신 길드원 셋이 비틀거리며 거래소로 다가오다 교육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혀, 형님…!”

“저 자식이 뒈질려고…!”

세 사람은 재빠르게 달려가 한상우에게 협공을 가했다.

정면에서 한 명이 시선을 끌고, 양옆에서 두 사람이 접근하여 레이드를 하듯 협공을 펼친 것이다.

각 개인의 등급은 B급이지만, 합이 워낙 잘 맞아 웬만한 A급 헌터라도 쉽게 파훼하지는 못할 거라고 자신하는 공격이었다.

그런데.

쉬익-!

한상우는 몸과 고개를 살짝 트는 것만으로 전부 피해버렸다.

세 사람이 내지른 주먹의 궤적을 파악하고, 빈틈을 찾아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회피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너희도 교육 좀 받아야겠다.”

한상우는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정면의 헌터는 발로 복부를 차 멀리 날려버리고, 양옆으로 접근한 헌터들은 한쪽 팔을 잡고 교차시켜 서로 얼굴이 부딪치도록 만들었다.

쿵-!

“크악!!”

아이템 거래소 앞에서 퍼지는 둔탁한 소음과 비명.

뒤늦게 나타난 동료 길드원들도 장용진을 따라 바닥을 굴렀다.

많이 고통스러운 듯 데굴데굴 구르는 세 명의 장정.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너희들은 늦게 왔으니까 속성 코스로 진도 빼자.”

한상우는 다시 한번 손을 푼 후, 장용진과 번갈아 가며 동료 길드원들을 팼다.

“으악!”

“크허억!!”

“사, 살려주세요!”

중간중간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살려달라는 애원도 들려왔지만, 한상우는 매타작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마냥 맞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한두 번 장용진이 반격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더 큰 보복으로 돌아왔다.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튀, 튀어! 이 새끼 괴물이야!!”

장용진의 외침을 시작으로 줄행랑이 시작됐다.

그러나 네 사람 중 도주에 성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사방으로 흩어지며 각자도생을 꿈꿨지만, 한상우는 순간 소환으로 땡길거야의 [끌어오기]를 사용해 네 명을 자신의 앞으로 당겨왔다.

“어디 가려고? 수업 아직 안 끝났는데.”

“왜,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선생님께선 피해입으신 게 없잖아요!”

“뭐…?”

완벽하게 돌아온 정신.

반말로 일관하던 장용진이 무릎을 꿇고 퉁퉁 부은 얼굴로 한상우를 올려다보며 존댓말로 물었다.

예의가 주입된 건 보기 좋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상우는 어이가 없었다.

장용진은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걸 당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장용진 생각에는, 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는가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원래 가해자는 절대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그렇게 행동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걸 모른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왜 이러긴. 네가 내 단골 가게를 망치려 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한상우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네 사람을 내려다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너 교육 좋아하잖아? 나도 좋아해, 참교육.”

“아, 아닙니다. 저 교육 싫어해요! 공부 싫어합니다! 학교 다닐 때도 돌대가리였어요! 으아아아악!!!”

장용진의 구슬픈 고백 뒤로 한상우의 교육은 계속되었다.

* * *

“우와, 저거 뭐야? 웬 길거리에서 기합을 받고 있지?”

“저거 유칼 길드 헌터들 아니야?”

서울역 사냥터의 아이템 거래소.

사람들이 하나둘씩 근처를 지나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하나.”

“개념을!”

“둘.”

“챙기자…!”

“목소리가 작다. 하나.”

“개념을!!”

“둘.”

“챙기자!!”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유리가 깨져 난장판이 된 아이템 거래소 앞에서 네 명의 헌터들이 구령에 맞춰 팔굽혀 펴기를 하면서 ‘개념을 챙기자’라는 구호를 외친 것이다.

물론 헌터답게, 특별히 무거운 장비들을 풀템으로 장착한 상태였다.

마치 군대에서 얼차려를 받는 듯한 모습.

이른 아침 거래소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헌터와 직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구체적으로 캐물을 수는 없었다.

어쩐지 능숙하게 기합을 주며 명령을 하는 남자와, 팔굽혀 펴기를 하는 남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였기에.

“너희들, 앞으로 한 번만 더 술 먹고 행패 부린다는 소리 들리기라도 하면 그땐 진짜 죽는다. 알겠나?”

“예, 옛! 알겠습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명심했으면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한 차례 더 훈계한 뒤, 한상우는 장용진을 비롯한 유칼 길드의 길드원들을 모두 보냈다.

해가 중천에 뜰 때쯤이 되자,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많아져 통행을 방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먹었을 거라 생각했기에, 한상우는 경고를 남기며 교육을 종료했다.

물론.

“어쭈? 밍기적거리지? 십, 구, 팔, 칠….”

우당탕탕-!

마지막까지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어찌 됐든 진상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것이다.

이에 거래소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양병석이 한상우에게 다가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헌터님.”

“아닙니다. 간단히 제압하고 신고하는 게 최선이긴 한데, 그러면 또 나중에 와서 행패를 부릴 것 같아서요. 추한 꼴을 보여드린 것 같네요.”

“저도 그 점이 걱정됐지만, 다행히 헌터님께서 크게 혼내 주셨으니 더 이상 오지 않을 것 같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매장 유리가 부서진 건 좀 아쉽네요. 제가 변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헌터님! 저건 본사에 말해서 유칼 길드에 청구하면 됩니다. 오히려 제가 헌터님께 사례금을 드려야지요!”

한상우는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최대한 도와주려 했지만, 양병석은 손을 흔들어 거절하고는 어떻게든 보답하려고 했다.

다만 한상우도 사례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괜찮습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그럼 혹시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어떻게든 저도 헌터님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사례금은 거절했지만 양병석은 자신이 도움을 받은 것처럼 어떻게든 한상우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 했다.

필요한 거라….

한상우는 잠깐 고민하다 잊고 있었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참, 혹시 강철 골렘의 심장을 구할 수 있을까요?”

“강철 골렘의 심장 말씀이십니까?”

“지금 당장 필요한데 온라인 거래소에는 매물이 없더라고요. 희귀 품목은 오프라인에서 먼저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혹시 구할 수 있을까요? 가격은 최고가도 괜찮습니다.”

서울역 사냥터에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알아봤지만, 강철 골렘의 심장은 구할 수가 없었다.

하여 한상우는 레이드를 하며 모은 아이템을 판매하고 그 대금으로 오프라인에서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진상 교육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다행히 방금 계획이 떠올랐는데.

해결책도 금세 나왔다.

한상우의 말에 양병석이 눈을 크게 뜨며 손뼉을 친 것이다.

“오오, 마침 오늘 매물이 들어온 게 있습니다! 며칠 전, 먼저 웨이팅을 걸어 놓은 손님이 계시지만 한상우 헌터님께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아닙니다. 오늘 큰 도움 주셨는데 이런 것으로라도 보답해 드리고 싶군요. 혹시 몇 개 필요한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오늘 들어온 건 네 개입니다. 부족하시다면 다른 매장도 수소문해보겠습니다.”

“네 개라…. 잠시만요.”

한상우는 잠깐 메시지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완성까지 남은 시간 – 15시간 30분]

[시간 단축 재료 : 강철 골렘의 심장]

[시간 단축 재료 1개당 제작 시간이 6시간 단축됩니다.]

거래소에 방문하기 전, 제장이를 길드 사무실에 두고 왔기에 [격상]은 계속 진행중이었다.

남은 시간 15시간 30분.

강철 골렘의 심장을 두 개를 산다면 3시간 반이 남을 것이고, 세 개를 산다면 바로 완료될 것이었다.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한상우는 돈을 아끼는 것보다 시간을 아끼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세 개면 될 것 같습니다.”

“넵! 그럼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얘기를 듣고 매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양병석의 모습은, 강철 골렘을 만들어서라도 가져올 기세였다.

결초보은이라고 했던가.

보답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일에 한상우는 씩 미소를 지었다.

커지는 기대감.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제 곧 새로운 화산검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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