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13장 기지개(5)
화륵-! 화르르륵-!
“땡길거야, 발아래 조심해! 이제 곧 용암이 솟구칠 타이밍이다!”
“예, 주군!”
용암이 이글거리는 동굴.
높다란 절벽으로 이루어진 징검돌 위에서 나는 그렇게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서걱-!
“캬악!”
“캬오올…!”
[만월 가르기]
[꼬마 불의 전사(S)를 처치했습니다.]
[꼬마 불의 전사(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어린아이 정도 되는 크기에 온몸이 화염으로 이루어진 몬스터 두 마리가 절벽 아래, 용암지대로 낙하했다.
내가 땡길거야에게 지시하는 사이, 징검다리 반대편에서 넘어오던 녀석들이 [만월 가르기]에 당한 것이다.
나름 손쉽게 처치한 S급 몬스터.
그러나 눈앞엔 방금 벤 것보다 훨씬 많은 놈들이 포진해 있었다.
S급 No. 515, 통칭 용암 던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는 용암 징검돌.
용암지대 위에 있는 징검돌들은 점프로 넘어가 밟아가면서 전진해야 하는데, 징검돌의 면적이 크지 않고 간격이 커 전투는 고사하고 건너가는 것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점프를 하다간, 건너편에 있는 수십 마리의 불꽃 몬스터들의 공격에 당해 용암지대로 떨어지기 십상이고.
그래서 원래는 폭죽이나 화살 등으로 놈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원거리에서 처리한 후, 한 칸씩 전진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타닥-!
“뛰어!”
“예, 주군!”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용암과 불의 전사들을 견제하며 조금씩 전진하던 땡길거야가 한 번에 몇 칸을 뛰어넘으려는 순간.
“캬올!”
불의 전사들의 불꽃 화살이 일제히 땡길거야를 덮쳤다.
땡길거야는 공중에서도 방패를 능수능란하게 사용,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은 뒤.
[캐릭터 : 땡길거야가 끌어오기를 사용합니다.]
파지지직-!
검 끝에서 오러의 사슬을 만들어내 나를 묶었다.
“흐읍!”
그리고 곧바로 검을 크게 휘둘러, 나를 징검다리의 건너편으로 던져 버렸다.
징검돌을 하나하나 건너가려면 시간이 너무 소요되었기에,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면 바로 [끌어오기]를 활용해 나를 던지도록 전음으로 미리 지시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멀리서 헌터를 직접 던져버린다는 공략법에 몬스터들이 당황하는 사이 나는 바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분화]
[반월 베기]
[만월 가르기]
[급소 찌르기]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연계기가 완성됐습니다.]
[연계 효과 : 월광 폭발]
[꼬마 불의 전사(S)를 처치했습니다.]
[…….]
[꼬마 불의 전사(S)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몬스터를 일격에 처치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시스템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이후의 일도 일사천리였다.
내가 몬스터들을 잡는 사이 땡길거야는 손쉽게 넘어왔고, 땡길거야가 도착 지점에 합류하자 남은 몬스터들도 금방 정리됐다.
탁-!
“고생 많았다, 땡길거야. 힘들 것 같은데 잠깐 쉬었다 갈까?”
징검돌을 모두 건넌 후, 나는 땡길거야를 돌아보며 휴식을 제안했다.
현재 이 던전은 세 번째 도는 것인데, 땡길거야만 소환된 상태에서 전투를 하다 보니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땡길거야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주군. 다만, 적들이 옛날에 주군과 단둘이서 처치했던 고블린과 비슷한 크기라, 그때 생각이 나서 재미있을 뿐입니다.”
“고블린이라…. 그래,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나는 땡길거야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와 비교해보면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마법사의 팔찌를 구하기 위해 F급 No. 12 던전에 진입했던 당시, 날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바란 것이긴 했지만 던전 보초는 F급 헌터에 불과한 내게 관심이 없어 헌터증도 대충 검사했었다.
반면, 이곳 S급 No. 515 던전에 들어왔을 때는 나를 알아보는 이들이 존재했다.
-두 분만 들어가십니까? 이 던전은 S급이라 권장 파티 인원이 최소 다섯 명은 되는…. 헉! 혹시 한상우 헌터님 아니십니까? 저번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헛, 혹시 악수 한 번만 해줄 수 있으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S급 던전은 그 위험성 때문에, 길드 등의 외부 업체에 보초 외주를 주는 저랭크의 던전과 달리 헌터청에서 직접 보초를 세워 관리한다. 그렇기에 보초를 맡고 있던 공무원 헌터가 나를 알아본 것이다.
최대천이 정보 통제를 해준 덕에 외부에는 내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았지만, 헌터청 사태 때 루미나스와 전투를 벌이면서 얼굴이 드러났기에 공무원 헌터들은 나를 알아보고 있었다.
소소하긴 하지만 F급 던전에 들어갈 때와 비교하면 나를 알아보는 이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그땐 마나가 한참 부족하여 몰이 사냥과 순간 소환 등을 활용해야 할 정도로 땡길거야를 오래 소환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투 모드를 유지하며 24시간 소환 업적을 진행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마나의 양이 막대해졌다.
문득 느끼게 되는 성장의 순간.
땡길거야의 말에 잠깐 옛 기억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는데, 그래서 나는.
“좋아, 그러면 그때처럼 보스까지 한 번에 클리어해 볼까?”
땡길거야에게 예전처럼 몹몰이를 제안했다.
여기서부터는 징검돌 같은 구간이 없어서 마침 몹몰이를 하기에 딱 좋았다.
“알겠습니다, 주군. 하지만 이 던전의 보스는 두 마리인데, 두 녀석을 동시에 처치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때처럼 저 혼자 모두 잡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땡길거야도 내 제안에 동의했다.
다만 그때와 완전히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을 듯했는데, 이번 던전은 두 보스 몬스터의 체력을 동시에 0%로 만들어야 클리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릭터 소환 업적 때문에 몹몰이의 하이라이트인 순간 소환을 활용할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기분만 내는 거고, 고블린 때와는 다르게 나도 많이 강해졌으니까.
“당연하지.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 긴말할 것 없이 바로 시작하자.”
“예. 알겠습니다, 주군.”
대화를 끝낸 후, 나는 땅을 박차 땡길거야와 함께 동굴을 질주했다.
그러자.
“캬캬올!”
“케에엑…!”
기다란 통로에 포진해 있던 꼬마 불의 전사와 난폭한 불의 전사 등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발광하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작은 불씨부터 말처럼 생긴 거대한 화마 몬스터까지.
크기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따라온 것이다.
길은 앞서 던전을 몇 번 클리어했기에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터였다.
둘이서 하는 몹몰이.
고블린 던전 때처럼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제대로 될까 싶었는데, 다행히 땡길거야와의 호흡은 환상적이었다.
고블린 몹몰이처럼 어그로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뛰면서 보스방을 향해 직진한 것이다.
이 정도면 옛날과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사냥 속도였다.
[쌍둥이 샐러맨더(S)]
[쌍둥이 샐러맨더(S)]
얼마나 달렸을까.
등 뒤로 몬스터 떼를 붙인 채 뛰고 있는데 저 멀리, 널따란 방에 자리 잡은 보스 몬스터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자, 땡길거야.”
“명 받들겠습니다, 주군.”
마침내 시작된 몹몰이의 백미.
우리는 데칼코마니처럼 동시에, 똑같이 움직였다.
우선 등과 머리 위로 화염이 이글거리는 도마뱀 보스 몬스터를 지나쳐 방구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캬캬올!!”
“갸아악!!”
보스 몬스터와 잡몹들을 일직선 형태로 늘어서게 만든 다음.
[반월 베기]
[만월 가르기]
[급소 찌르기]
선두에 있는 보스 몬스터에게 [반월 베기]를 먹이고, 뒤에 있는 잡몹들에겐 [만월 가르기]를 사용한 후, [급소 찌르기]로 마무리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압도]를 발산해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의 능력치를 떨어트리고, 용족 군단장의 갑옷을 개방해 [용기탱천]까지 사용했다.
그러자.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연계기가 완성됐습니다.]
[연계 효과 : 월광폭발]
콰아아아앙-! 쩌저적-!!
동굴 천장과 벽이 무너질 정도로 막대한 폭발이 발생했다.
물론 통로부터 몰아온 몬스터의 수가 워낙 많고, 보스 몬스터도 화염 계열 공격엔 어느 정도 내성이 있어서 그것만으로 모두 정리할 수는 없었다.
“콰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
[월광폭발] 이후, 만신창이가 된 쌍둥이 샐러맨더가 입을 쩍 벌리더니 우리를 향해 화염을 방사했다.
그래서 땡길거야와 나는.
검 끝으로 놈들을 조준하고 각자의 원거리 스킬을 더 난사했다.
화염을 더 큰 화염으로 제압하려고 한 것이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신성 폭발을 사용합니다.]
땡길거야는 별의 폭발에서 나오는 힘, [신성 폭발]을 발포했고.
[발화] [분화]
나는 화산검에 이글거리는 화염을 만들어낸 후, 검 끝으로 방출한 것이다.
쩌어어어엉-!!
네 개의 화염이 보스 방 중앙에서 맞부딪치며 지축을 울렸다.
결과는.
화아아아악-!!
“키에에에엑!!”
[꼬마 불의 전사(S)를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꼬마 불의 전사(S)를 처치했습니다.]
[쌍둥이 불의 제왕(S)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쌍둥이 불의 제왕(S)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2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스탯 +2를 획득합니다.]
우리의 압승이었다.
한 호흡의 동작만으로 S급 던전의 보스와 잡몹을 처치한 것이다.
“멋진 합격(合擊)이었습니다, 주군.”
땡길거야도 인정할 정도로 괜찮았던 협공.
그 보상도 달콤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한층 더 성장하셨군요.”
“고맙다, 땡길거야.”
이번 던전 클리어를 통해.
[충성도 업적 1]
[캐릭터 소환 24시간 유지하기 – 43%]
충성도 업적은 절반 가까이 클리어 됐고.
[여덟 번째 업적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여덟 번째 업적 – 레벨 350 달성(350/350)]
[메시지를 터치할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8/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레벨은 350이 되어 여덟 번째 업적 또한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터치해 곧바로 보상을 수령하자.
[여덟 번째 히든 퀘스트의 보상을 획득합니다.]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8에서 9로 증가합니다.]
[유일 스킬 : Lv 9. 캐릭터 소환]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선출 가능 횟수가 1회 충전됩니다.]
[현재 소환 캐릭터 : (1/4)]
[보유 캐릭터 : 4]
[선출 가능 횟수 : 1]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상승하면서 선출 가능 횟수가 증가했다.
‘좋아, 이번엔 누가 나오는지 볼까?’
오랜만에 얻은 캐릭터 선출의 기회.
아낄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곧장 선출을 사용했다.
그 순간.
[다섯 번째 캐릭터를 소환합니다.]
[선출되는 캐릭터는 무작위입니다.]
번쩍-!
익숙한 메시지와 함께 섬광이 번쩍이더니 해맑은 표정의 소녀가 나타났다.
분홍빛 머리칼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드레스를 입고, 손에는 나무로 된 짧은 지팡이를 든 모습.
이번에 소환된 캐릭터는.
[캐릭터 명 - 연진]
[레벨 - 682]
[직업 - 연금술사]
<스탯>
[힘 : 355] [민첩 : 284] [지력 : 653] [체력 : 406] [마력 : 631]
<스킬>
[연성] [변환] [분해] [바꿔치기] [투척] [합성] [제작 : 평작] [수상한 가루] [결빙 플라스크] […….]
[충성도 – 540 / 999]
“제 이름은 연진!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연금술사랍니당! 그쪽이신가요, 제가 모셔야 할 사장님이!”
심심풀이로 키웠던 부캐, 연금술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