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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27화 (127/169)

제127화

13장 기지개(15)

“……!!”

최대천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상우를 쳐다봤다.

그쯤 하라니.

설마 자신이 무얼 하는지 눈치챈 것일까?

순간, 뜨끔했지만 최대천은 재빠르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쯤 하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한상우 헌터님.”

10년 가까이 되어가는 헌터 생활 동안 [시험 전투]를 눈치챈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대천은 이번에도 별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치미 떼실 생각이라면 접으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지켜봤으니까요. 최대천 청장님께서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

“……!”

한상우는 뭔가 아는 듯한 눈치였다.

분명 현실에서 최대천은 땀만 흘리고 있을 뿐인데 정확하게 ‘스킬’을 사용하는 걸 봤다고 얘기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최대천은 당혹스러움이 몰려왔으나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증거도 없었고, 단순히 떠보는 것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시험 전투]는 오직 사용 당사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스킬로 타인이 겉으로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은 없었다.

“스킬이라니….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시겠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저도 청장님을 시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스릉-

최대천이 계속 부인하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한상우는 검을 뽑아 늘어트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최대천을 주시했다.

동시에.

타닥-!

사막 한가운데서 드랍템을 줍던 금발 헌터와 안경 헌터도 눈 깜빡할 사이에 한상우의 옆에 자리 잡았다.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하는 [블링크]를 이용해 단숨에 거리를 좁힌 것이다.

그러나 한상우는 두 헌터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저 최대천을 바라보며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을 뿐이었다.

“제가 동료들을 구경하는 틈을 타, 가상과 현실이 섞인 세계를 구축해 여러 번 기습을 시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최대천의 눈과 입이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래졌다.

단순히 놀란 수준이 아니었다.

최대천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반면, 한상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진짜 알고 있었으니까.

최대천이 어떤 스킬을 사용했는지.

-로드, 옆에 있는 자가 계속 가상 마법을 쓰고 있습니다.

조금 전 두 캐릭터의 아이템 습득을 구경하던 순간, 매직킹이 전언을 보내왔다.

한상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가상 마법?’

-예, 보여드리겠습니다.

한상우의 물음에 매직킹은 아이템을 줍는 척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파앗-!

한상우 앞의 허공에 네모난 홀로그램이 떴는데 마치 CCTV처럼 자신과 최대천이 있는 장소를 비추고 있었다.

‘이게 뭐지, 매직킹?’

-로드의 옆에 있는 자가 지금 쓰고 있는 마법입니다. 마력의 파장을 채집해 로드께서도 볼 수 있도록 시각화한 것이죠.

매직킹의 대답에 한상우는 유심히 화면을 바라봤다.

처음엔 CCTV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실과 미묘하게 달랐다.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최대천은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화면 속의 최대천은 돌연 검을 뽑으며 기습을 감행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화면 속의 공격이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최대천의 기습은 [동료 보호]에 막혔고, 그 뒤로 재빠르게 지원 온 땡길거야와 매직킹에게 반격당해 절명했으니까.

화면 속 세계는 꺼졌고, 현실은 여전히 평화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영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과 비슷하지만 다르게.

공격은 베기 대신 찌르기로 바꾸었고, 땡길거야와 매직킹이 나타나자 첫 공격을 피해냈다.

물론, 그럼에도 두 번째 반격까지는 피하지 못해 실패로 귀결됐다.

그때, 스킬 분석을 마친 매직킹이 전언을 날렸다.

-가상의 세계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래를 유추해내는 마법 같습니다. 옆에 있는 자가 로드에게 계속 도전하고 있군요.

-죽일까요, 주군?

-좋은 생각입니다, 수호 기사님. 왠지 모르게 암살자가 떠오르는 제안이지만요.

매직킹과 땡길거야는 태연하게 아이템을 주우며 의견을 개진했다.

최대천이 가상 스킬로 암살을 도모하는 것 같으니 처치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니, 우선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무턱대고 죽이기엔 너무 큰 인물이야.’

한상우는 두 캐릭터의 의견을 반려했다.

응징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었다.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암살을 시도하는 모습을 봤을 때, 최악의 경우 최대천이 적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러 정황상 그럴 가능성은 낮았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위해나 증거 없이 최대천 정도의 인물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만약 최대천이 특정한 이유로, 단순한 시험 목적으로 사용했던 거라면?

최소한 최대천이 왜 이러는지는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또 어차피 저런 식의 기습으로, 자신을 쓰러트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으니까.

그래서 한상우는 모르는 척, 매직킹이 띄워주는 화면을 계속 바라봤는데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대천은 실패가 반복되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많아져도 계속해서 도전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최대천이 파훼법을 찾아냈다. 단순 무식하게 검을 강화시켜 처음부터 냅다 후려치자 보호막이 깨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기습이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한상우의 목이 베이려는 순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나타난 단검이 최대천의 검을 쳐냈으니까.

그러나.

그건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나는 광경이었고, 한상우는 곧바로 조치를 취했다.

화면이 꺼지고, 최대천이 다시 한번 스킬을 쓰려던 순간, 그쯤 하라고 제지를 가했던 것이다.

암살하려는 시도도 괘씸했지만 비밀이 드러날 뻔한 게 더 컸다.

한상우는 무표정하지만 분노가 서린 얼굴로 최대천을 노려보며 말했다.

“신중히 대답하셔야 할 겁니다. 왜 절 암살하려고 하셨죠?”

“대, 대체 제 스킬을 어떻게 파악하신 겁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최대천 청장님께서 절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죠. 혹시 루미나스입니까?”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한상우 헌터님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 스킬을 파악할 수 있다면…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상우는 포커페이스를 지키기 위해 구겨지려고 하는 미간을 참아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지금 하고 계신 말씀, 설득력이 없다는 거 청장님도 알고 계실 텐데요. 과거와 현재가 반드시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제가 기회를 두 번이나 드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소명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무슨 스킬을 쓰셨는지와, 왜 기습하셨는지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만약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청장님의 얘기가 다르면… 저는 청장님을 적으로 판단하고 처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

최대천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하게 됐는지.

최대천은 한상우와 양옆을 포위하고 있는 두 명의 헌터들을 곁눈질로 살펴봤다.

반항은 무의미했다.

수많은 [시험 전투]를 한 결과, 이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상태였다.

결국, 저항의 의지를 완전히 잃은 최대천은 무기도 꺼내지 않은 채 빈손으로 해명을 시작했다.

“…제 스킬 이름은 ‘시험 전투’. 1분 동안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가상이긴 하나 일종의 미래 예측인 셈이지요. 저는 이걸 통해 헌터 생활 동안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었습니다. 혜안이라는 이명이 붙은 것도 이 스킬 덕분이지요.”

혜안의 최대천.

최대천은 대헌터시대 초창기부터 그런 이명이 붙었었다.

레이드 도중, 그의 조언으로 큰 위기나 화를 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대천의 능력을 예지로 추측했는데 직접 들으니 비슷하나 그 궤가 살짝 달랐다.

“저는 이 스킬을 레이드에 주로 쓰지만 종종 다른 헌터들의 전투력을 측정할 때도 사용합니다. 어차피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혈투가 벌어져도 가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아무런 피해도 발생하지 않으니까요. 한상우 헌터님께 사용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었지만 기습이 아니면 여기 계신 헌터님들에게 막히더군요. 이번에 과했던 건, 부끄럽게도 오기가 생겨서였습니다. 두 헌터님들의 방어가 워낙 견고하셔서 뚫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저를 진짜 암살하려고 하신 건 아니고요?”

“전혀 아닙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애초에 한상우 헌터님께 위해를 가하려 했다면… 이렇게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기습 말고도 다른 방법은 많이 있으니까요. 특급 헌터증을 발급해드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길드 창설을 도와드리지도 않았겠지요. 무엇보다 제가 한상우 헌터님을 시해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습니다.”

최대천은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사실 그건 한상우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시험 전투]를 지켜봤던 것도, 최대천이 자신을 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만약 자신을 다치거나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굳이 이렇게 단독으로 할 이유가 없었다.

헌터청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하면 이것보다 훨씬 쉽고 효율적인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굳이 암살이 아니더라도 헌터로서 한상우의 활동을 틀어막을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대화를 나눌수록 뚜렷해지는 진실.

그러나 한상우는 섣불리 대답하거나 결정하지 않았다.

그사이, 최대천의 해명은 계속되었다.

검을 늘어뜨리고 서 있는 한상우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것이다.

“비록 가상의 세계이지만 한상우 헌터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한 점을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단 한 가지는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한상우 헌터님이 잘되길 응원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료분들의 정체와 한상우 헌터님의 폭발적인 성장의 비법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일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요.”

최대천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소회도 곁들였다.

살기 위해 무작정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헌터청장으로서의 의견도 덧붙인 것이다.

목소리에서 진심이 묻어나왔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만약 자신이 모든 걸 오픈하진 않아도, [캐릭터 소환]을 최대천에게 언급만 했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최대천의 소명을 모두 들은 후, 한상우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소명 감사드립니다, 청장님.”

선택지는 총 세 가지였다.

죽이거나, 뭉개거나, 드러내거나.

여기서 최대천을 죽인다면 앞으로 [캐릭터 소환]을 눈치채는 사람들을 모두 제거해야 할 것이다.

뭉개고 넘어간다면 추후 다른 이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드러낸다면….

‘예측은 힘들어. 전례가 없는, 지상 최강급 능력이니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벌어져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지금 자신은 충분히 강해졌으니까.

게다가.

적절한 선택을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을 든든한 지원군으로 둘 수도 있었다.

‘이거… 꽤 큰 이득이네.’

사실 지금은 드러낸다 해도 한상우 입장에서 손해는 아니었다.

원래 각성한 후, 헌터청에서 검출되었어야 할 스킬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고 이어져 온 것이니까.

그 덕에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고, 최대천의 비밀 스킬도 알게 되었으니 [캐릭터 소환]을 숨긴 이득은 극한까지 뽑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답을 돌려드릴 차례인 것 같군요. 제 대답은….”

한상우는 결단을 내렸다.

늘어뜨렸던 화산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캐릭터 소환 : 다크어둠]

“두려움을 잊은 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새로운 캐릭터를 소환하고, 화산검은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인사드리죠. 제 동료들입니다.”

“……!”

한상우는 만렙 캐릭터 세 명을 최대천에게 소개했다.

[캐릭터 소환]을 당당하게 밝히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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