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14장 선택의 끝(6)
-역시 주군이십니다. 극지방의 거인족장을 굴복시키셨군요.
-대단하십니다, 마스터. 쉽지 않은 싸움일 거라 느껴졌는데 훌륭히 해내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로드.
전투가 끝나자 소환 캐릭터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축하의 말을 건넨 건 땡길거야와 다크어둠, 매직킹뿐만이 아니었다.
“우와, 군주님의 검술은 언제 봐도 멋져요!”
“최고예요, 사장님! 꽤 강한 적이었는데 금방 쓰러뜨리셨어용!”
제장이와 연진이도 감탄한 표정으로 폴짝폴짝 뛰며 연신 박수를 쳐댔다.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쉽게 처치하지 못했을 거다. 다 너희 덕분이야.”
왠지 모르게 드는 머쓱한 기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산검을 털어내며 캐릭터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자.
“아니에요, 사장님! 저희는 그냥 옆에서 보조만 했을 뿐입니당!”
“저도 연금술사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어머! 진짜니, 꼬마 대장장이야?”
“그럼요! 멋진 지원이었어요, 연금술사님! 제가 할 게 별로 없을 정도였어요!”
연진과 제장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리더니 덕담을 주고받았다.
둘을 한 자리에 소환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제법 사이가 좋아 보였다.
전투가 끝나고 형식상의 칭찬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럼 난 이제 아이템 주우러 갈 건데 같이 갈래, 꼬마 대장장이야?”
“좋아요, 연금술사님!”
천진난만하게 같이 아이템을 회수하러 갈 정도였다.
나는 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메시지로 시선을 돌렸다.
[대장장이 – 연금술사]
[동시 소환 효과 – 상생 :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모두 금속을 다루고,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작해주며 상생하는 관계입니다. 동시 소환으로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의 모든 스탯이 5% 상승합니다.]
과연,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상생 관계였다.
전투 도중엔 급박해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상생으로 인한 스탯 상승 효과도 좋고, 둘이 비슷한 또래여서 그런지 어느 정도 죽이 맞는 모습이었다.
나는 내친김에 다섯 캐릭터의 소환 효과를 모두 살펴봤다.
[다섯 캐릭터를 동시에 소환했습니다.]
[캐릭터 간의 상성에 따라 동시 소환 효과가 발생 및 중첩됩니다.]
[수호 기사 : 상생, 상생, 중립, 대립 – 장비 능력치 5% 상승, 버프 효과 5% 상승, 충성도 3% 감소]
[암살자 : 상생, 중립, 대립, 대립 – 장비 능력치 5% 상승, 충성도 6% 감소]
[마법사 : 상생, 중립, 중립, 대립 – 장비 능력치 5% 상승, 충성도 3% 감소]
[대장장이 : 상생, 상생, 상생, 상생 – 모든 스탯 20% 상승]
[연금술사 : 상생, 상생, 중립, 중립 – 모든 스탯 10% 상승]
“음, 동시 소환 효과는 직업군에 따라 달라지는 건가. 수치는 상생은 5% 상승으로 고정이고, 대립은 3% 감소로 고정이네.”
나는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동시 소환 효과를 분석했다.
소환 캐릭터의 수가 늘어나면서 동시 소환 효과창도 복잡하게 변했다.
하지만 어려운 건 아니었다.
기본적인 매커니즘만 알면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수호 기사와 암살자, 마법사는 서포트 계열 직업군과 상생일 경우, 해당 직업군의 버프 효과를 받는다.
대장장이와 상생이면 장비 능력치 5% 상승.
연금술사와 상생이면 버프 효과 5% 상승이다.
반대로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는 상생 효과일 경우, 상대 직업이 어떻든 간에 무조건 자신의 스탯을 5% 상승시키는 효과를 받고 있었다.
이걸 토대로 놓고 보면 이번에 새로 선출된 연금술사의 경우, 수호 기사 및 대장장이와는 상생이고 암살자 및 마법사와는 중립인 걸 빠르게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보너스 효과가 많아지니, 상승하는 수치가 상당해. 앞으로 소환 캐릭터가 많아지면 더 강해지겠어.”
동시 소환 효과 중에 대립이 있긴 하지만, 전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충성도 감소 효과밖에 없고 그 수치도 3%로 미미했다.
반대로 상생 효과는 스탯, 장비 능력치, 버프 효과 상승 등 전투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수치도 5%로 낮은 편이 아니었다.
한 자릿수라서 낮게 보일 순 있지만 캐릭터 대부분이 만렙에 500레벨이 넘어 수치가 약간 상승해도 유의미한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비 능력치와 버프 효과 상승의 경우, 저레벨에서는 모든 스탯 상승 효과보다 안 좋게 느껴지지만 만렙이 되면 오히려 더 좋은 효율을 내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동시 소환 효과는 각 캐릭터들의 직업에 맞게 전투 효율을 끌어 올려주는 셈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동시 소환 효과를 분석하고 있던 그때.
“으잇차! 사장님! 거인족장이 떨어트린 물건들 가져왔습니당!”
“그래. 고생 많았다, 연진아. 제장이도 수고했어.”
“헤헤! 감사합니다, 군주님!”
두 캐릭터가 아이템들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사실 양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다.
마정석 십여 개 정도와 허리띠, 장검 등의 아이템이 다였다.
하지만 연진과 제장이의 체구가 워낙 작다 보니 품에 안고 있는 아이템의 양이 꽤 많아 보였다.
후두둑-!
눈밭으로 떨어지는 중간 보스 몬스터의 드랍 아이템들.
SSS급 몬스터인 만큼 마정석은 등급이 높은 편이었지만, 그 외의 드랍 아이템은 크게 주목할 만한 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희소 등급 정도로, 지금 레벨에서는 눈에 차지 않는 게 많았다.
그중 허리띠는 제법 볼 만했다.
[극지방 거인족장의 허리띠]
[등급 : 영웅]
[효과 : 방어 +120]
[스킬 : Lv 1. 급속 냉동 – 착용자 반경 5m 내에 얼음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착용자에게 갑작스러운 충격이 가해질 경우, 대기 중의 수증기를 빠르게 얼려 얼음 방패를 만들어냅니다. 1초당 마나 3 소모.]
[패시브 스킬 : Lv 1. 얼음 내성 – 얼음 계열 저항력 +2을 획득합니다.]
영웅 등급에 얼음 계열 저항력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거인족장이 썼던 얼음방패 스킬도 들어 있었다.
대박이라고 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쓸만한 능력이었다.
조금 전 전투에서 거인족장이 처음에 내 공격을 막아냈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진 못해도, 한 번 정도는 조커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듯했다.
사실 온전히 말해, 지금 당장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반적인 던전은 파티 단위로 입장했을 시 최종적인 정산을 통해 아이템을 분배하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니 일단 착용하고 있자. 분배해야 되면 그때 주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일단 아이템을 착용했다.
위험천만한 SSS급 던전에서 영웅 등급 아이템을 하나 더 장비할 수 있는데, 규칙 때문에 방치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번 스테이지는 나 혼자서 잡은 거나 다름없는데, 소유권을 주장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필요 없다 싶으면 레이드가 끝난 뒤 내놓고, 쓸모 있다 싶으면 정식으로 소유권을 주장하면 된다.
“좋아. 얘들아, 고생 많았다. 필요하면 또 부를게.”
“네! 언제든 불러주세요, 군주님!”
“저도요, 사장님!”
나는 마정석과 잡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제장이와 연진의 소환도 해제했다.
비전투 모드가 있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마나를 아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전투가 일어나지도 않을 테니까.
몸을 돌려 설산의 평지 쪽으로 향하자 이전에는 없었던 포탈이 생성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진입하자.
[여섯 번째 선택의 길에 진입하였습니다.]
새로운 메시지와 함께 달라진 공간이 나를 반겼다.
10평 남짓한 동굴 안.
주변은 어두컴컴했고, 동굴 가운데엔 모닥불 하나만 피어 있었다.
춥고 광활한 설산에서 따뜻하고 아늑한 동굴 안으로 바뀐 풍경.
워낙 추운 곳에 있다 와서 그런지, 온몸에 쌓인 피로가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는데 기분 좋은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두 가지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0/1)]
[보상 1 – 부상 치유 및 마나 회복]
[보상 2 - 보스 몬스터 10% 약화]
중간 보스 이후의 휴식 공간이어서 그런 것일까.
이번 선택의 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바로 보상이 나타났다.
시스템에 뜬 보상은 두 개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었다.
내 몸을 회복시킬 것인가, 보스 몬스터를 약화시킬 것인가.
고민할 것도 없었다.
부상은 없고, 마나는 마나 포션으로 충당하면 되니까.
나는 두 번째 보상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러자.
[보상 2를 선택하셨습니다.]
[보스 몬스터의 전반적인 능력치가 10% 약화됩니다.]
[두 가지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1/1)]
[임무를 완수하셨습니다. 다음 길이 열립니다.]
임무가 완수되면서 반대편 벽에 포탈이 생성되었다.
‘음, 진짜 약화된 거… 맞겠지?’
보상 선정이 완료되긴 했으나 보스 몬스터가 보이는 게 아니니 제대로 보상이 적용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시스템을 믿고 가는 수밖에.
나는 그렇게 결론 내린 뒤, 혹시나 숨겨진 보상이 있을까 동굴 안을 한 바퀴 돌아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히든 보상은 보이지 않았다.
동굴 벽을 빠짐없이 꾹꾹 눌러봤지만 진짜 벽일 뿐 그 어떤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쩝,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없네.”
나는 혀를 차고 포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전 던전들에서의 경험을 떠올려, 혹시라도 히든 피스가 있을까 싶어 동굴 안을 여기저기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넓은 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다른 RPG와 달리, 제한된 공간과 선택지를 바탕으로 하는 던전 탐색 RPG는 이런 식의 히든 피스를 마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쉽긴 하지만 여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체념한 뒤, 마지막으로 모닥불에 손만 녹이고 포탈로 들어가려던 그때.
“음…? 잠깐.”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벽과 바닥 등, 동굴에서 살필 수 있는 곳은 모두 꼼꼼하게 확인했다.
하지만 아직 딱 하나, 확인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건 이 동굴에서 가장 눈에 띄고,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곳.
바로 모닥불 속이었다.
꿀꺽.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샐러맨더의 가죽 장갑을 똑바로 했다.
가죽 장갑이 가지고 있는 화염 내성 덕분에 모닥불에 손을 집어넣어도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갑을 낀 손을 천천히 움직여, 모닥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장작이 아닌 무언가 다른 물건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