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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37화 (137/169)

제137화

14장 선택의 끝(9)

* * *

기회는 반드시 온다.

방시현은 선택의 길이 클리어될 때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과 달리, 상황이 위태위태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SSS급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공략대가 와해될 줄 알았다.

실제로 레이드 극초반엔 그럴 기미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존재했다.

요주의 인물인 한상우와 그의 길드인 군주 길드의 길드원들.

그들이 나서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SSS급 몬스터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고, 실패할 거라 예상했던 선택의 길 레이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방시현으로선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S급 이상의 던전 레이드를 진행하다 보면 잡몹을 상대하더라도 부상자가 적지 않게 나오기 마련인데, 경미한 부상자조차 없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한상우와 길드원들의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공략대 헌터들은 짐꾼으로 B급 헌터가 있을 정도로 겨우 구색만 갖춘 수준이었지만, 군주 길드의 길드원들은 막강하다는 표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특히 자신이 따라가길 선택한 안경 헌터는 어느 정도로 실력이 있었는가 하면….

‘제기랄…. 저 자식, 독심술이라도 하나? 어떻게 내가 흡수하려고 할 때마다 돌아봐?’

지금 기습할까? 하는 마음만 먹어도 눈치챌 정도였다.

한상우가 혼자서 다섯 번째 선택의 길에 진입한 이후, 방시현은 지팡이를 든 안경 헌터를 따라 왼쪽 포탈로 진입했다.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안경 헌터가 위기에 처하면 바로 단검을 꽂아 그의 힘을 흡수하려고 한 것이다.

공략대 헌터들에게 들킬 리스크가 있긴 해도 몬스터의 소행으로 위장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

들킨다 해도, 안경 헌터의 힘이 있다면 두려울 건 없었다.

그러나.

좀처럼 그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안경 헌터는 어떤 몬스터가 달려들어도,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손쉽게 처치해냈다.

큰 움직임도 없었다.

그저 오른쪽에서 옆으로 지팡이를 휘두르기만 하면 화염과 전격 등이 방출되어 SSS급 몬스터들을 굽거나 삶아댔다.

그 틈에 흡수의 단검을 만지작거리면서 슬금슬금 다가가기라도 하면.

-아, 어디서 쥐새끼가 졸졸 따라다니네?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마치 뭘 하려는지 다 안다는 듯한 표정.

그래서 아쉬운 대로 목표물을 바꿔 전투가 일어날 때, SS급 헌터 안지은을 흡수하려고도 해봤지만.

-쓰읍…! 수작 부리지 마라.

또다시 안경 헌터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분명 몬스터와 전투 중이고, 자신과는 거리가 멀어 뭘 하는지 확인하기도 힘들 텐데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경고를 날렸다.

결국, 방시현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본색을 드러냈다간 죽도 밥도 안 되기 때문이다.

지하 감옥에서 나온 뒤, 힘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곤 했으나 100%는 아니었고, SSS급 몬스터도 손쉽게 잡는 헌터를 과연 한 번에 제압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길 한참.

위기 속에서 마침내 기회가 왔다.

모두가 한데 모인 일곱 번째 선택의 길에서 SS급 헌터 황현성이 한상우와 마찰을 빚더니 따로 임무를 클리어할 헌터들을 모집한 것이다.

방시현은 바로 지원했다.

이제 이빨을 드러낼 때였다.

선택의 길의 지도와 한상우가 했던 설명에 따르면 이번이 보스와 싸우기 전, 마지막 선택의 길이었다.

방시현은 군주 길드의 인원이 없는, 황현성이 이끄는 별동대에 합류해 임무를 완수하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이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고, 화로에 불을 붙인 순간.

-축하드립니다, 황현성 헌터님!

-역시 황현성 헌터님이십니다!

-허억, 허억….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 혼자였으면 해내지 못했을 텐데 여러분 덕분에…. 컥!!

푹-!

방시현은 뒤에서 기습해 흡수의 단검으로 황현성의 등을 찔렀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안심해 방심한 순간, 체력이 바닥난 황현성을 깔끔하게 기습한 것이다.

-화, 황현성 헌터님!”

-갑자기 저게 무슨…!

물론, 공략대 헌터들이 이를 목도하고 저지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대부분이 S급 이하라 황현성의 힘을 흡수한 방시현에겐 그저 먹이일 뿐이었다.

방시현은 그렇게 나머지 헌터들도 흡수의 단검을 이용해 하나하나 흡수했다.

다만.

모든 헌터들의 힘을 완전하게 흡수하지는 못했다.

쿠구구구궁-!!

[최후의 선택의 길이 열렸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여 선택의 끝을 완성하세요(0/1)]

황현성과 공략대 헌터들을 흡수하던 도중, 동굴이 울리면서 뭔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마지막 임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힘을 흡수하고 있다간 그사이에 한상우 일행이 보스 몬스터를 처치할 수도 있었다.

방시현은 [의태]를 사용해 황현성의 외형으로 바꾼 뒤, 그의 무기인 거대 망치를 들고 거점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수많은 얼음 스켈레톤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헌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헉! 저게 뭡니까! 웬 몬스터들이…!

-일단 싸우세요! 한 번 처치한 적은 또 죽이지 말고, 그다음 녀석을 처치하고요!

방시현은 천연덕스럽게 황현성을 연기했다.

그리고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한상우를 뒤따라간 다음.

-도와드리겠습니다!

기회를 포착했다.

자신을 완전히 믿는 한상우의 모습에 기습할 각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한상우의 힘까지 흡수한다면 다른 길드원들의 힘을 흡수하는 것도 시간 문제이리라.

방시현은 얼음성의 병사들을 공격하는 척하다가 방향을 틀어, 한상우의 뒤통수를 향해 거대 망치를 휘둘렀다.

이번에도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쉬이이익-!

“……?”

쩌어어어엉-!!

방시현이 휘두른 거대 망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한상우의 뒤통수를 그대로 가격했다.

그런데.

“너… 뭐하냐?”

“……!!”

뭔가 이상했다.

분명 거대 망치로 뒤통수를 가격했건만 한상우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까득-! 까드드득-!

방시현의 거대 망치가 웬 얼음 방패에 막혀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거대 망치가 한상우의 뒤통수와 가까워진 순간 허공에서 얼음 방패가 생겨나 막아낸 것이다.

[급속 냉동].

얼음 방패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한상우가 착용한, 극지방 거인족장의 허리띠의 스킬이었다.

거대 망치가 다가오는 걸 눈치챈 직후 한상우가 발동시킨 것이었는데, 방시현은 이를 알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얼음 방패의 방해.

기습은 무위로 돌아갔고,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방시현은 한상우의 질문에 거대 망치를 휘두르며 대답했다.

“알아서 뭐 하게? 그냥 얌전히 뒈져!”

방시현은 거대 망치를 휘두르며 스킬을 난사했다.

쾅-! 쾅-! 콰아아아앙-!!

거대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작열하는 폭발.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근처에서 달려들던 얼음성의 병사들도 폭발에 휩쓸려 뒤로 날아갈 정도였다.

방시현으로선 전력을 다한 공격.

그런데.

“몬스터한테 정신을 잠식당한 건가?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짐만 늘어났네.”

한상우는 차분하게 막아냈다.

동료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분개할 법도 하건만, 거대 망치의 공격을 화산방패와 얼음방패로 막으면서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해결법을 지시했다.

‘전원 집결. 진짜 보스 몬스터를 발견했다. 그리고 황현성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제압해라.’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주군.

-오, 뼈다귀들이 보기 좋게 모여 있군요. 보스 몬스터는 제가 처치하겠습니다, 로드.

-황현성은 죽일까요, 마스터?

‘아니, 죽이진 말고 제압만 해. 어떻게 된 건지는 확인해봐야 하니, 바로 죽일 순 없지.’

소환을 해제했다가 다시 할 필요도 없었다.

캐릭터들은 순식간에 한상우 옆으로 복귀했고,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땡길거야는 [동료 보호]로 한상우를 보호하고, [끌어오기]를 이용해 주변의 얼음 스켈레톤들을 당겨 처치했다.

다크어둠은 [쾌속 이동]으로 거대 망치를 들고 있는 황현성에게 접근, 옆구리를 발로 차 저 멀리 날려버렸다.

마지막으로 매직킹은.

[캐릭터 : 매직킹이 블링크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금제 개방을 사용합니다.]

[유폐된 차원이 개방됩니다.]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하여, 진짜 보스 몬스터가 있는 얼음 스켈레톤 무리들 주위를 빙글 돌더니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그러자.

고오오오오오-

얼음 스켈레톤 무리의 발 아래로 어둠이 드리우더니 그 속에서 공허충이 내뿜는 보라색 광선이 솟구쳤다.

단 일격.

하지만 파괴력은 압도적이었다.

보랏빛 광선은 얼음 스켈레톤 수십 마리를 꿰뚫은 것도 모자라 얼음 동굴의 천장까지 뚫어버렸다.

그 결과.

[캐릭터 : 매직킹이 교활한 얼음성의 섭정(SSS)을 처치했습니다.]

[…….]

[캐릭터 : 매직킹이 얼음성의 병사(SSS)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민첩 +1을 획득합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였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여 선택의 끝을 완성하세요(1/1)]

임무가 완료되었고, 한상우의 레벨도 상승했다.

후두두두둑-!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자 계속해서 살아나던 얼음 스켈레톤 천여 마리도 생명력을 잃어 바닥에 허물어졌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종료된 상황.

“이, 이게 무슨…?”

다크어둠의 발에 차여 바닥을 굴렀던 방시현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입을 쩍 벌렸다.

한상우와 그의 길드원들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가히 압도적이라고 해도 부족할 무력.

심지어 이들은 강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전투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음? 로드. 말씀하신 저 녀석, 좀 이상한데요? 뭔가 기운이 다른 것 같습니다.”

“기운이 다르다고?”

“예, 잠시만요.”

스킬 시전을 끝낸 후, 회색 머리칼의 안경 헌터가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지팡이를 휘둘렀는데.

[모든 마법적 효과가 사라집니다.]

[의태가 해제됩니다.]

전신이 맑아지는 기운이 감돌더니, [의태]가 강제로 해제됐다.

“어, 어…?”

원래대로 돌아온 모습.

방시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황현성으로 변신했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이 해제하기 이전, 스킬이 강제로 종료된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반면, 한상우와 군주 길드의 길드원들은 스킬이 해제된 방시현의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외형 변경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네요, 로드.”

“공략대에 저런 얼굴은 없었던 것 같은데…. 본 사람 있어?”

“제 기억에도 없습니다, 주군.”

“아무래도 처음부터 외형을 바꾼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마스터. 종종 마법에 조예가 있는 암살자나 첩자들이 쓰는 방법인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자신을 동그랗게 에워싸고 내려다보며 토론을 할 뿐이었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두고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는 포식자 같은 모습.

그 속에서 방시현은.

‘제길, 이제 와서 보니… 기회가 아니라 위기였잖아!’

이내 깨달았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듯,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역시 위기가 될 수 있음을.

그러나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한상우가 얼음보다 차가운 눈빛으로 방시현을 노려보며 물었다.

“너, 뭐냐?”

“저, 저는….”

방시현은 벌벌 떨면서 말끝을 흐려, 불쌍한 척을 하며 시간을 끌고 머리를 굴렸다.

도무지 무력으로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흡수의 단검으로 한 명씩 힘을 흡수한다면 모르겠는데, 애초에 그럴 만한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방시현의 목표는 생존으로 바뀌었다.

SSS급 던전은 클리어됐고, 자신도 정체가 발각되어 목표가 어그러졌으니 우선 목숨부터 부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상우와 그의 길드원들이 자신의 진짜 정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의태]는 공략대에 들어가기 싫어한 지인의 부탁으로 한 거라고 하고, 한상우를 공격한 건 황현성과 임무 수행 도중 몬스터한테 정신을 잠식당해서 그런 거라고 할까? 그래, 일단 그렇게 속아넘기자.’

방시현은 한상우가 제 입으로 했던 말에 살을 덧붙여 활용할 생각을 했다.

잘 생각해 보면 빈틈투성이의 논리지만, 던전에선 이보다 더 기상천외한 일이 많이 벌어지기에 얼핏 들으면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상우 헌터님! 던전이 클리어됐어요! 진짜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군요!”

멀리서 안지은이 창을 쥔 채 해맑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예, 다행히 금방 처치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모습을 바꿔서 공략대에 잠입해 있었습니다.”

“네? 잠입요?”

안지은이 한상우의 얘기를 듣고는 얼음 바닥에 앉아 있는 방시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저, 저자는… 루미나스의 방시현!”

한상우를 속이려던 방시현의 계획은 완전히 으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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