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40화 (140/169)

제140화

15장 스타의 삶(2)

* * *

“후, 헌터청 오는 것도 고역이네.”

헌터청 엘리베이터 안.

나는 청장실이 있는 층의 버튼을 누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은신]으로 행인들한테서 빠져나와 자유를 만끽한 것도 잠시.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진 뒤 [은신]을 해제했는데, 이번에는 헌터청 앞에 포진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휩쓸리고 말았다.

-엇, 저 사람… 혹시 한상우 헌터 아니야?

-오오, 한상우 헌터다!

-한상우 헌터님! 이번 SSS급 던전 클리어의 주역으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SSS급 던전 클리어라는 대사건에 취잿거리가 없을까 하고 대기하던 기자들이 나를 알아보고 우르르 달려온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은신]을 하는 수밖에 없었고, 혼자서 엘리베이터까지 타고 난 뒤에야 해제할 수 있었다.

헌터청 로비에서 [은신]을 풀었다간 이번엔 기자가 아니라 감사를 표하는 공무원 헌터들에게 둘러싸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유명인들이 사람 많은 곳을 피하는지 알겠네.’

예전에는 몰랐지만, 겪어 보니 역시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띵-! 25층입니다.

나는 그렇게 유명인들의 심정을 공감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청장님, 이번엔 일본 헌터청장이 대화 요청을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따 회신한다고 하게. 우선 미국에서 온 연락부터… 아! 오셨습니까, 한상우 헌터님.”

비서와 경호원들이 있는 입구에서 곧바로 최대천과 마주쳤다.

청장실이 아닌 프론트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을 보니 여간 바쁜 게 아닌 듯했다.

조금 전, 나와 안지은에게 보고를 듣고 대국민 브리핑을 진행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못한 듯했다.

“일이 줄어들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 청장님.”

“하하, 이게 다 한상우 헌터님께서 SSS급 던전 클리어라는 위업을 이루신 덕분이지요. 그래도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기쁠 따름입니다. 그럼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바쁘긴 하지만 좋은 이유로 바빠서인지, 최대천은 미소와 함께 활짝 핀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나는 최대천과 함께 헌터청장실로 이동했다.

그러자 예전과 조금 달라진 분위기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크게 변한 건 없었으나 몇몇 소소한 부분들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예전에 방문했을 때 앉았던 소파에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문이 좀 바뀐 것 같군요.”

“예전에 누군가 침입한 적이 있어서요. 그 뒤로 보안에 좀 신경을 썼습니다.”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을 소환했던 방의 문이 바뀌어 있었다.

사실 보안과 크게 상관없는 것이지만, 그땐 내 능력을 몰랐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최대천도 이제는 진실을 알고 있기에 재미있다는 듯 눈웃음을 짓더니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신대훈 과장에게 요청하신 건부터 얘기를 나누어 보죠. 새로운 친구 두 분의 헌터증이 필요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이번 레이드처럼 앞으로 소환 캐릭터들이 활약할 일이 많아질 테니, 기본적인 신상 정보는 마련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SSS급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한 후, 나는 신대훈 과장에게 매직킹과 연진의 헌터증 발급을 요청했다.

두 캐릭터는 군주 길드를 창설한 이후에 소환하게 되어 다른 캐릭터들처럼 신분증을 대체할 수 있는 헌터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일이란 터지기 전에 미리 대비하는 게 가장 좋은 법.

당장은 세 캐릭터들 모두 군주 길드의 길드원이라는 것에서 그치고 있지만, 그들에게 관심이 모일 상황을 고려하면 미리 신분을 만들어둘 필요성이 있었다.

특히 매직킹과 연진은 김수호와 이암 등 가명을 가지고 있는 두 캐릭터와 다르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 심층 취재가 시작되면 난감해질 수도 있었다.

최대천도 내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꼼꼼한 대비입니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헌터증을 발급받을 분을 한 번 뵐 수 있겠습니까? 헌터증은 얼마든지 만들어드릴 수 있지만, 저라도 그분들의 얼굴을 알아야 대처가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아, 참고로 한 분은 알고 있습니다. 안경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계시던 분 맞지요?”

“그렇습니다. 매직킹이라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보셨으니 나머지 한 친구만 보여드리면 되겠군요.”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캐릭터 소환 : 연진]

나는 최대천의 부탁에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끼이이익-

“버려진 돌에 새로운 가치를! 안녕하세용, 사장님!”

새롭게 바뀐 문이 열리면서 해맑은 소녀가 튀어나왔다.

흠칫.

예상치 못한 상황인 듯 최대천은 고개를 돌리며 몸을 멈칫했으나, 처음 보는 캐릭터 앞이라 그런지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로군요. 하지만 힘은… 스킬 방해 효과가 있는 문을 가볍게 통과할 정도니, 상당히 강력할 것 같습니다.”

“여느 헌터한테 지지는 않을 겁니다. 확인되셨다면 소환 해제하겠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아이라서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요.”

“아, 그래서 안전장치로 방 안에서 소환하신 거로군요. 알겠습니다.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짧게 설명한 뒤, 연진의 소환을 해제했다.

그러자 최대천이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다시 말했다.

“한상우 헌터님을 뵐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게 생겨 매번 놀라는 것 같군요. 정말 엄청난 성과입니다.”

“아뇨, 아직 부족합니다.”

“아직도 부족하다니, 더더욱 놀랍네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추후 계획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들으셨을지 모르지만, SSS급 던전이 있는 전 세계의 국가들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한상우 헌터님을 모시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저를요?”

“예, 정확하게는 한상우 헌터님과 군주 길드의 길드원들이라고는 하지만요. 만약 원하신다면 레이드 비용과 참가 조건, 일정 등 여러 가지를 조율해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헌터님의 의사니까요.”

세계 곳곳에 있는 SSS급 던전 레이드라….

솔직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앞에 다른 SSS급 던전인 용족 군단의 던전과 광신도 던전을 클리어하긴 했지만, 이번 SSS급 던전 레이드를 통해 확실하게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나와 캐릭터들만으로도 SSS급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난이도 측면에서만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조건을 맞춰준다는 말을 보면 얼마나 SSS급 던전의 클리어에 목을 매는지도 알 만했다.

하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다.

세계 각국의 SSS급 던전을 클리어해준다면 돈이야 분명 조 단위로 쓸어 담을 수 있을 테지만, 지금 내겐 돈보다는 열 번째 업적의 사전 조건 달성에 필요할 경험치가 더 필요했다.

돈이야 이미 부족하지 않게 가지고 있었고, 돈은 목적으로 삼지 않아도 강해지다 보면 자연히 따라 들어올 테니까.

그리고 SSS급 던전에서 레벨업을 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조건을 맞춰준다고는 해도 혼자 들어가게 놔두진 않을 것 같으니 [독존]까지 고려하면 혼자 SS급을 도는 쪽이 더 효율적이었다.

“당분간은 성장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서요. 돈이야 나중에 얼마든지 벌면 되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상우 헌터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 전까지, 다른 나라에서 오는 의뢰는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도 얘기가 나온 김에 드리고픈 요청이 있는데, 혹시 혼자 독점할 수 있는 SS급 던전이 있을까요?”

“SS급 던전의 독점이요? 허허,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전에 황현성 헌터가 깨어나서 직접 부탁했습니다. 한상우 헌터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요. 돈이든 던전이든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몽땅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마침 황현성 헌터가 독점 권한을 가지고 있는 SS급 던전이 하나 있습니다.”

“황현성 헌터의 SS급 던전이요?”

“네. 던전의 순환이 빨라, 시간만 투자한다면 빠른 레벨업이 가능한 곳이죠. 길드가 없는 황현성 헌터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독점권을 줬던 건데, 거길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대천의 말에 나는 내심 놀랐다.

뭔가를 바라고 황현성과 헌터들을 살렸던 것도 아니고, 던전에서 봤던 황현성의 성격상 은혜를 갚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보상이 따라오다니.

따지자면 소모한 것도 방시현의 탈출석뿐이었기에, 순수한 선행이 큰 이득이 되어 돌아온 격이었다.

그리고 그 성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황현성 헌터가 그런 부탁을 했었군요. 고맙네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자세한 위치는 신대훈 과장을 통해 전송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더 나누고픈 얘기가 있으실까요?”

“괜찮습니다. 저도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얼추 필요한 얘기는 거의 다 나눈 것 같았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반쯤 몸을 일으킨 순간, 최대천은 다시 자리에 착석하더니.

“아참, 깜빡했군요. 한상우 헌터님께 드릴 것이 있습니다.”

탁자 아래에서 웬 네모난 상자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한번 열어보시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최대천이 내민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낯익은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극지방 거인족장의 허리띠.

SSS급 던전에서 획득했지만 마지막에 정산을 위해 반납했던 아이템이었다.

황현성으로 변한 방시현의 기습을 한 차례 막아준, 나름 요긴하게 썼던 물품.

나는 허리띠를 들어 아이템 정보를 살펴보며 말했다.

“SSS급 던전에서 나온 물품은 정산 후 정산 금액을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한다고 들었는데요.”

“예. 맞습니다. 원래라면 참가자들의 동의하에 아이템을 받거나, 전부 돈으로 정산해 차등 분배하지요. 하지만 이건 정산액과 별개로 한상우 헌터님의 것입니다.”

“그런가요? 저는 분명히 정산에 포함했었습니다만.”

“한상우 헌터님이 SSS급 던전에서 해주신 일을 생각하면 이 허리띠 하나만으로는 모자랄 정도입니다. 오히려 신화급 아이템이 아니라 저희가 죄송하지요.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거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불어 정산 금액도 그대로 입금될 겁니다.”

최대천의 눈빛과 말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쯤 되니 거절하는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나는 극지방 거인족장의 허리띠를 예전처럼 착용하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잘 쓰도록 하죠. SS급 던전도 잘 쓰겠습니다.”

“혹시라도 더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한상우 헌터님게 필요한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대천과 악수를 한 후,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런데 청장실을 나서려던 그때, 이번엔 내가 깜빡하고 있던 게 떠올랐다.

지금 상황에서, 계획해 둔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다 말고 최대천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참, 혹시 모자랑 마스크 좀 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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