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15장 스타의 삶(3)
* * *
최대천에게 받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길을 걸으니 나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단순히 이동을 하는 것뿐이라면, 다른 스킬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굳이 최대천에게 모자와 마스크를 빌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와! 너무너무 예뻐요, 사장님! 이거 진짜 제가 입어도 돼용?”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옷입니다, 로드. 감사히 입겠습니다.”
서울의 고급 백화점 안.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연진과 브라운 롱코트를 입은 매직킹이 자신들의 옷을 바라보며 감사를 전해왔다.
헌터청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구한 뒤, 나는 근처에 있는 백화점으로 와 매직킹을 부르고 연진을 소환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전에 땡길거야와 다크어둠, 제장이에게 이곳에서 입을 옷을 사줬던 것처럼 두 캐릭터에게도 선물하기 위함이었다.
가명도 부여했다.
매직킹은 직업을 살려 마도성으로, 연진은 이름을 살려 하연진으로.
조금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명이었는데 다행히 두 캐릭터 모두 좋아해 주는 모습이었다.
“예쁜 이름도 하나 더 부여해 주시고 감사해용, 사장님!”
“저도 감사드립니다, 로드. 이곳에서 필요할 때 쓰도록 하겠습니다.”
“기뻐해주니 고맙네. 그럼 슬슬 다음 코스로 넘어가 볼까?”
이름을 정해주고, 옷도 샀으니 이젠 밥을 먹을 차례였다.
나는 두 캐릭터와 함께 미리 생각해둔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길을 가다 보니 문득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냥 다 같이 먹자. 매직킹, 땡길거야와 다크어둠 좀 데려와.”
“알겠습니다, 로드.”
“제장이, 너도 나와.”
[캐릭터 소환 : 제장이]
“오늘 하루도 힘찬 담금질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주님!”
한적한 골목길에서 다섯 캐릭터를 모두 불러냈다.
원래는 매직킹과 연진만 데리고 밥을 먹으려 했다.
인원이 많아지면 번잡하기도 하고, 세 캐릭터는 저번에 뷔페에서 거하게 먹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려다 보니 나머지 세 캐릭터한테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밥은 먹여야지.’
아무리 식사와 취침이 필요 없는 캐릭터라 하더라도, 모처럼 맞이하는 휴식 시간인데 덩그러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마침 다섯 캐릭터를 모두 소환해서 확인할 것도 있었고.
‘잠깐 사용해볼까?’
충성도 업적 3을 수행하느라 소환을 취소했다가 바로 앞에 다시 소환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매직킹이 두 캐릭터를 데리러 간 사이, 이번에 새로 얻은 보상인 [친위대]를 사용했다.
그러자.
[친위대(0/5)]
[현재 친위대로 등록한 캐릭터가 없습니다.]
[후보군의 닉네임을 끌어 친위대로 등록해주세요.]
[후보군]
[땡길거야] [다크어둠] [매직킹] [연진] [제장이]
새로운 창이 형성되었다.
사용법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메시지창에 나와 있는 설명대로 후보군에 있는 캐릭터들의 닉네임을 꾹 누르고, 친위대로 끌어 올리자.
[캐릭터 : 땡길거야가 친위대로 편성되었습니다.]
글자가 이동하면서 친위대로 등록되었다. 이렇게 반복하길 다섯 번.
[친위대(5/5)]
[친위대 편성 목록]
[땡길거야] [다크어둠] [매직킹] [연진] [제장이]
[후보군]
[없음]
[친위대가 완성되었습니다.]
[친위대 편성 효과가 발동합니다.]
[친위대 편성 효과]
[효과 1 : 군주의 특성 – 압도의 효과 10% 상승]
[효과 2 : 친위대 소속 캐릭터의 모든 스탯 5% 상승]
[효과 3 : 캐릭터 소환의 마나 소모량 10% 감소]
소환 캐릭터 다섯 명 모두 친위대가 되어 친위대 편성 효과가 발생했다.
비전투 모드였기에 첫 번째와 두 번째 효과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세 번째 효과는 어느 정도 체감이 되었으니, 비전투 모드 중임에도 마나 소모 속도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괜찮네. 다섯 캐릭터 다 소환해도 마나 소모가 심하지 않고. 근데 이건 영구적인 건가?’
효과는 좋았으나 시험해볼 게 몇 개 더 있었다.
“제장아, 잠깐만 소환 해제할게.”
“알겠습니다, 군주님!”
잠시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하자.
[친위대(4/5)]
[친위대 필수 인원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친위대 편성 효과가 사라집니다.]
친위대의 현재 인원수가 하나 줄어들더니 편성 효과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제장이를 소환하자.
[친위대(5/5)]
[친위대가 완성되었습니다.]
[친위대 편성 효과가 발동합니다.]
친위대 효과의 필수 조건인 인원 다섯 명이 충족되면서 효과가 나타났다.
‘역시 현재 친위대에 등록된 캐릭터가 모두 소환되어야 하네. 그나마 소환할 때마다 일일이 지정할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다.’
친위대 편성의 효과는 영구적인 게 아니라 소환된 캐릭터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친위대 효과를 보려면 친위대로 편성된 다섯 캐릭터가 모두 소환돼야 했다.
하나라도 소환을 해제하면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다섯 캐릭터를 모두 소환했을 때의 폭발력이 훨씬 강해진다는 점에선 분명 큰 이득이었다.
그렇게 친위대의 사용법을 살펴보는 사이.
[캐릭터 : 매직킹이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합니다.]
“데려왔습니다, 로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군.”
“마법사의 복장에 맞춰 전에 하사해주신 옷을 입고 왔습니다, 마스터.”
매직킹이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을 데리고 왔다.
두 캐릭터는 센스 있게 갑옷과 암살복이 아닌, 전에 사주었던 네이비 셋업 슈트와 브라운 가죽 재킷, 청바지를 입고 왔다.
“잘했어. 제장이도 갈아입을래?”
“네! 알겠습니다, 군주님!”
제장이는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소환 캐릭터의 착장 교체를 감지했습니다.]
[비전투 모드용 인벤토리가 자동으로 열립니다.]
[착용 해제한 아이템은 비전투 인벤토리에 보관되며 전투 모드 전환 시, 입고 있는 복장과 자동으로 교체됩니다.]
[캐릭터 : 제장이가 착용 아이템을 해제했습니다.]
대장장이의 가죽 갑옷에서 셔츠와 멜빵 바지로 착장을 바꾸었다.
그 뒤로.
“자, 그럼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나는 다섯 명의 캐릭터들을 데리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때, 제장이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혹시 저번에 갔던 곳에 가는 건가요, 군주님!”
“아니, 이번엔 다른 곳이야.”
캐릭터들의 음식 취향을 모르니, 이전처럼 뷔페를 가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제외했다.
모자와 마스크가 있다고 해도 밥을 먹을 땐 쓸 수가 없으니 개방된 곳에서 먹으면 관심이 집중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번에 세 명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을 끌기도 했고.
나는 휴대폰으로 프라이빗룸이 있는 음식점을 검색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있었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별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고급 고깃집이었다.
나는 캐릭터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고, 방을 배정받아 메뉴별로 음식을 시켰다.
치이이이익-!
불판 위에 올라가는 소고기들.
나는 두 개의 테이블 가운데에 앉아 양옆으로 고기를 구워주었다.
그러자.
“너무 맛있습니다, 마스터.”
“이곳은 요리사들의 실력뿐만 아니라 식재 또한 질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주군.”
“와구와구! 환상적인 맛이에요, 군주님!”
“고기도 고기지만 소스 배합의 비율이 환상적입니다, 로드.”
소고기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는 한우이기 때문일까.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캐릭터들은 고기가 구워지는 족족 입에 넣기 바쁜 모습이었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우와, 사장님! 이거 전부 엄청 비싸 보이는데, 정말로 마음껏 먹어도 되는 건가용? 파산하시는 거 아니에요?”
잡화 상점 운영으로 돈 계산에 빠삭한 연진은 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며 깨작깨작 먹는 모습이었다.
물론, 한우가 비싸긴 했다.
하지만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돈이라면 이제 차고 넘칠 정도로 있기도 하거니와.
<이은하 헌터(2시간 전) - 한상우 헌터님, 겨우 회복해서 이제야 연락드리네요. 방금 소식 들었어요. SSS급까지 중첩된 던전을 클리어하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그리고 정말 감사드려요. 저와 제 팀원들을 살려주셔서.>
<이은하 헌터님이 외식 상품권 십만 원권 1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이은하 헌터(1시간 전) - 최대천 청장님께 들었어요. 길드원분들과 회식하러 가신다면서요? 꼭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직접 찾아뵈어야 하지만 아직 병원에서 검사가 남아서, 퇴원 후에 꼭 찾아뵐게요. 맛있게 드세요!>
조금 전, 중첩 던전에서 구해줘서 감사하다며 이은하가 외식 상품권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나는 연진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음껏 먹어도 돼. 돈이라면 가게를 통째로 사고도 남을 정도로 있으니까.”
“와…. 역시 제 사장님이세요! 알겠습니다, 마음껏 먹을게용!”
마음이 편안해지니 식욕이 도는 것일까.
연진은 내 말을 듣더니 잘라 놓았던 고기를 아예 퍼먹듯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레이드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캐릭터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소중한 이들과 즐겁고 재밌게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지.
고깃집에 들어온 이후, 나는 양쪽으로 고기를 굽느라 밥 한 숟갈 뜨지 못했지만, 캐릭터들이 맛있게 먹으니 그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캐릭터들과 즐거운 회식 시간을 보내던 그때.
“저거 강철만 아니야?”
“행방불명이었다는데, SSS급 던전 클리어가 끝나니까 나타나네?”
방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닫힌 문 안쪽까지 크게 들릴 만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레벨이 오르며 예민해진 감각이 느끼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문을 열고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강철만입니다.
홀 한가운데에 놓인 TV 속, 기자회견을 하는 강철만의 모습과 경청하는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강철만의 기자 회견이라니.
나는 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뉴스를 틀었다.
기자 회견은 방금 막 시작한 것 같았다.
찰칵-! 찰칵-! 차차차찰칵-!!
플래시가 끝없이 터지는 가운데.
강철만은 지소영, 추성태, 서지환, 성재경 등 다른 네 명의 SS급 헌터들을 옆에 두고 입을 열었다.
-우선 SSS급 던전 레이드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국내 헌터로서 레이드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 말씀드립니다. 저희들은 타국의 요청에 의해, 일주일가량 던전에서 레이드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던전 공략 도중 SSS급 던전의 발생과 클리어가 이어져, 이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 말이 진짜야? SSS급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서 내뺐던 건 아니고?”
“그러니까 말이야. 클리어되자마자 나타난 것도 그렇고….”
강철만의 말이 이어지자, 시민들의 입에서 불평 섞인 의심들이 흘러나왔다.
평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강철만인 만큼 기대도 컸는데, 이번 SSS급 던전 공략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실망한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해당 소식은 세 시간 전, 작전 종료 후 저희 공략대가 던전 밖으로 나왔을 때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상자 한 명 없이, 최초의 SSS급 던전 클리어라는 성과를 이뤄낸 공략대에게 큰 감사와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더불어. 한 가지 소식도 추가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강철만은 종이를 내려놓더니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 저는 미국의 국제 헌터청에서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SSS급 헌터가 되었습니다.
“……!”
다소 흉흉하던 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국내 최초의 SSS급 헌터라는 점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SSS급 던전 레이드에 참가하지 못한 것에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번에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린 것을 만회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조국을 위해 더욱 큰 힘을 쏟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귀국해서 상세하게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철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SS급 헌터들과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기자 회견을 마무리했다.
그러자.
“와…. SSS급 헌터? 그럼 레벨이 몇이라는 소리야?”
“최소 601이 넘는다는 건데? 지금 SSS급 헌터는 미국이랑 중국에 한 명씩 있지 않나?”
조금 날카롭던 여론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홀에 있는 손님들은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았고.
<그럼 우리나라도 SSS급 헌터 보유국이 된 건가? 미국과 중국에 이은 SSS급 헌터 보유국이라니…!>
<죽은 크리스토퍼 포함하면 네 번째이긴 한데, 그것만 해도 ㅎㄷㄷ...>
인터넷 댓글 역시 강철만을 좋게 보는 시선으로 가득했다.
그럴 만했다.
시민들의 입장에선 겹경사였으니까.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SSS급 던전을 클리어했고, 대한민국의 대표 헌터였던 강철만 또한 SSS급 헌터가 되어 대한민국의 국력을 한 단계 더 높였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일까?
‘재밌네, 강철만. 이번에도 1등을 차지했어.’
나는 속에서 뜨거운 열망이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헌터가 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
그간 나는 끝없는 노력을 통해 성장했고, 세계 최초로 SSS급 던전도 클리어해냈다.
그래서.
이제 강철만의 자리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SSS급 던전 클리어 이후에는 뛰어넘었다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강철만이 나한테서 하이어 랭킹 1위의 자리를 빼앗았듯, 나도 강철만보다 강해져 국내 헌터의 1위 자리를 빼앗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강철만은 대한민국 최초의 SSS급 헌터 타이틀을 가져가며 다시 내 위로 올라갔다.
아직도 내게는 올라가야 할 계단이 남아 있었다.
최고가 되고 싶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인생의 화두가 다시금 불붙었다.
헌터도, 하이어도 반드시 1위를 찍어주마.
“얘들아, 다 먹었지?”
“예, 주군.”
“네! 맛있었어용, 사장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대훈 과장이 보낸, 황현성의 SS급 던전 위치를 보며 말했다.
“가자, 레벨업 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