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46화 (146/169)

제146화

15장 스타의 삶(8)

* * *

큰 힘은 나를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캐릭터 소환]을 얻고 스킬의 사기성을 알게 됐던 당시, 나는 그렇게 예상했었다.

하지만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 얻는 필요 이상의 주목은,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오히려 독이 되고 족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충분한 힘을 쌓기 전까지는 힘이 드러나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당장은 조용할지라도, 잠룡이 되어 기다리면 때는 자연스럽게 올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대로, 힘을 숨기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속보] 헌터청, 사우디아라비아 원정대 결성.>

<[긴급] 헌터청장 최대천, 사우디아라비아 원정대의 대장으로 한상우 헌터 임명.>

<[특종] SSS급 던전 클리어의 주역 한상우, S급에서 SS급으로 헌터 등급 상향.>

세상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뉴스에서는 해당 사안을 대서특필하였고.

<미친, 강철만이랑 한상우까지 전부 보낸다고?>

<하긴 요즘 물오른 거 생각하면 한상우가 맡는 게 맞지ㅋㅋㅋ>

<…….>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나에 대한 글로 도배가 되었다.

기존에도 SSS급 던전 클리어로 화제가 되긴 했지만 백 명이 넘는 다른 헌터들도 있어서 어느 정도 집중도가 분산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오롯이 나 혼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한상우 헌터님이 원정대의 대장을 맡기에 부족한 분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뿔테 안경을 쓴 SS급 헌터 성재경이 나를 원정대장에 임명하겠다는 최대천의 발언에 의견을 낸 것이다.

-개인의 무력과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원정대장은 강철만 헌터님이 맡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던전 공략대를 맡은 경험으로는 국내에 강철만을 따라갈 사람이 없고, SSS급이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자격으로는 강철만 헌터가 제격이죠.

서지환도 성재경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자.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눈길이 강철만에게로 쏠렸다.

강철만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듯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재경과 서지환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강철만이 가진 지휘 능력과 국내에서의 인지도, 독보적인 경력을 생각하면 그가 원정대장을 맡아도 이상할 건 없었다.

내가 가진 [캐릭터 소환]과 군주로서의 지휘 능력에 대해서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나도 아직 최대천의 말에 대답을 하기 전이었기에, 지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강철만의 의사.

강철만은 천천히 입을 열었고.

-저는 인정합니다. 한상우 헌터님이 원정대의 대장을 맡는 것을요.

-……!

담담하게 최대천의 말을 긍정했다.

-등급과 레벨이 중요한 척도이기는 합니다. 제가 SS급 헌터로서 최전선에서 지휘한 경력도 분명히 더 많겠죠.

-아신 길드의 길드장이기도 하고….

-예.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한상우 헌터에게 세계 최초의 SSS급 던전 클리어의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요. SS급 던전이라도, 사상자 없이 클리어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단호한 강철만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강철만이 어떤 말을 할지, 조금만 더 들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린 지금 전대미문의 EX급 던전에 도전하고자 하죠. 횟수만 다를 뿐 여러 명 있는 SS급 던전 클리어 경험자와 단 한 명뿐인 SSS급 클리어 경험자. EX급 던전 공략에 어느 쪽이 더 힘이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강철만의 말에 더이상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철만의 말은 정론 그 자체였으니까.

-무엇보다, 저로서도 갓 SSS급 달았다고 적임자를 밀어내고 원정대장 자리를 차지한 적폐 소리는 듣고 싶지 않군요. 그러니 저로서도 한상우 헌터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원정대의 대장을요.

강철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씩 웃었다. 그 웃음 덕분에 다소 무겁게 깔려 있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풀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나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원정대장은 제가 맡도록 하죠.

원정대장을 꼭 맡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맡아서 얻는 것도 있지만, 귀찮은 일도 생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강철만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그 정도의 귀찮음은 감수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작금의 내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SSS급 헌터, 강철만이 그 자리에 걸맞은, 호탕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뭐죠?

물론 그렇다고 맨입으로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SSS급이 되신 강철만 헌터님의 레벨을 알고 싶습니다.

-제 레벨이요? 네, 가르쳐드리죠. 지금 바로 등급 재심사를 받아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상우 헌터님께서는 어쩌시겠습니까? S급 판정을 받은 게 마지막이셨는데, 갱신을 하시겠습니까?

-잘됐네요. 안 그래도 조만간 재심사를 받을 생각이었으니까요.

현재, 강철만에 대해 밝혀진 것은 SSS급으로 601 이상의 레벨이라는 것뿐.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목표가 구체적으로 몇 레벨일지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그렇게 강철만과 나는, 최대천과 신대훈의 참관 아래 등급 재심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강철만]

[레벨 – 623]

[한상우]

[레벨 – 550]

-헉! 강철만 헌터의 레벨이 진짜 601을 넘었습니다, 청장님. SSS급 헌터의 기준을 충족했습니다.

-대단하군. 하지만 한상우 헌터님도 만만찮네. 마지막으로 검사했을 때의 레벨이 297이었는데 지금은 SS급 중에서도 최상급 수준인 550이로군. 정말 믿기 힘든 성장 속도야. 이 정도라면 SSS급도 금방일 것 같네.

강철만은 레벨을 공개해 한국에서도 SSS급 헌터로 인정받았고, 나도 새로 심사를 받아 SS급 헌터로 등급을 상향시켰다.

최대천의 의견에 힘을 싣기 위해서인 것도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SSS급에 달하는 레벨이 되면 의심을 살 테니 미리 포석을 깔아둔 것이다.

결국 최대천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정대의 대장이 되었고.

“잠시 출발 시간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한상우 헌터님.”

“예, 다녀오세요.”

지금은 이렇게 인천국제공항의 귀빈실에서 출국을 기다리게 되었다.

“와, 저분들이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원정대야?”

“미쳤다, 완전 개쩐다. 저게 최상급 헌터들의 모습이구나!”

귀빈실 안팎에서 들려오는 말들.

의자에 앉아 폰을 보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느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귀빈실 밖은 원정대를 촬영하고자 모인 기자들로 북적였고.

귀빈실 안은 내 캐릭터들과 원정대의 SS급 헌터들을 보좌하기 위해 온 헌터청의 수행 인원들이 한데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SSS급 던전 공략 이후로 이 정도로 많은 인파를 본 것은 처음이라 그런가, 캐릭터들도 신기해할 정도였다.

“우와!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 사장님!”

“요즘 주군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역시 카리스마는 숨겨지지 않나 보군요.”

“너무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모두 죽일까요, 마스터?”

“소음을 차단하는 마법을 시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로드.”

“아니, 괜찮다. 앞으로 피곤해질 테니, 바깥은 신경 쓰지 말고 푹 쉬어.”

사우디아라비아 원정길.

나는 제장이를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을 모두 소환해 대동했다.

타국과의 연합인 만큼 인원 체크를 신경 쓸 필요가 있기도 하거니와.

[충성도 업적 5]

[캐릭터 네 명 동시 소환 일주일 동안 유지하기 - 29%]

원정대 대장이 된 이후, 이틀가량 주어진 준비 기간 동안 캐릭터들로 레이드를 돌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레벨은 10이 더 올라 560이 되었고, 충성도 업적 5는 29%나 채울 수 있었다.

나름 알차게 쓴 시간.

그래서 캐릭터들을 소환한 것에 후회는 없었는데, 장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호, 이분들이 그 유명한 군주 길드의 길드원 분들이군요! 반갑습니다, 대천 길드의 길드장 추성태입니다!”

“얘기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뵈니 신기하네요. 그런데… 한상우 헌터님? 여기 계신 숙녀분도 헌터이신가요? 나이가 꽤 어려 보이는데요.”

대놓고 소환을 하다 보니 추성태와 지소영 등 다른 헌터들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SSS급 던전 안에서야 레이드 진행 중이었으니 대화가 거의 없었지만, 여기서는 여유가 있으니 다들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왔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네! 저도 헌터예요! 사장님과 함께 몬스터를 무찌르죠! 나이는 어리지만 밥값은 해용!”

“저도 반갑습니다. 실력이 출중한 분들과 함께 사냥을 나선다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붙임성이 뛰어난 연진과 두뇌 회전이 빠른 매직킹이 전면에 나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반갑습니다, 군주 길드 헌터 여러분. 강철만입니다. 특히 두 분은 예전에 폐공장에서 홍진성을 상대한 이후로 오랜만에 뵙는군요.”

강철만.

예전에 땡길거야와 다크어둠을 본 적 있는, 하이어의 고인물이 알은체를 하며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나는 연진과 매직킹을 바라보다가 강철만 쪽으로 이동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강철만이라면 이들이 게임 캐릭터라는 걸 알아챌 가능성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셨군요, 강철만 길드장님. 두 사람은 한국말이 서툽니다. 저한테 말씀하시죠.”

“그렇군요. 그런데 한상우 헌터님, 혹시 ‘하이어’라는 게임 아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 그게 말이죠. 하이어라고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게임이 있거든요. 그런데 길드원분들의 옷차림이 거기 나오는 캐릭터들의 옷과 너무 비슷해서 말입니다. 혹시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 만드신 옷인가 해서요. 하하하!”

과연 하이어 랭킹 1위인 걸까.

강철만은 역시 캐릭터들을 보고 하이어를 생각해냈다.

다만 게임 캐릭터를 직접 소환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하는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이어를 좋아해 거기에서 모티브로 삼은 건 줄로만 알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강철만에게 굳이 진실을 알려줄 필요도 없거니와.

“오오, 다들 여기 계셨군요!”

강철만과 대화를 나누던 그때, 한 인물이 우리 사이를 파고들어 악수를 청해왔기 때문이다.

유성태.

바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

정장을 입은 그는 귀빈실에 오자마자 나와 강철만에게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찰칵-! 찰칵-!

동시에 쏟아지는 수행원들의 카메라 셔터 세례.

대통령은 사진이 잘 찍히도록 움직임을 잠깐 멈추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계 최초, EX급 던전 레이드에 참가해 주시다니 정말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니, 부디 모두 무사 귀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헌터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지만 격려를 받으니 힘이 나는군요. 좋은 소식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그간 이런 경험이 많아서일까.

침묵하는 나와 반대로 강철만은 대통령의 격려에 악수와 미소로 화답했고.

“헌터님들의 성공이 곧 대한민국의 성공입니다. 힘내십시오, 헌터님들!”

대통령은 주먹을 불끈 쥐고 귀빈실의 헌터들을 돌아보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언뜻 봤을 땐 너무 과한 배웅이 아닌가 싶었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됐다.

이번 EX급 던전 레이드에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받는 돈을 합치면 수십조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예산의 10%에 달하는 거금이 단 한 번의 레이드에 달려 있으니 대통령이 나서서 배웅을 할 만했다.

나도 그렇지만, 그만큼 이번 레이드엔 걸린 게 많았다.

그래서일까.

소식을 전하는 수행원의 얼굴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상우 헌터님, 출발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슬슬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격려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다가온 출정 시간.

나는 네 명의 캐릭터와 다섯 명의 SS급 헌터, 그리고 수십 명의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는 전세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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