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16장 군계일학 낭중지추(4)
* * *
미국에 위치한 디바인 실드 본부.
셀리나가 상황실 복도를 지나자 실장이 달려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셀리나 님.”
“그래요, 별일 없었죠?”
“예, 아직까지 특별한 동향은 없습니다. 루미나스도, 다른 테러 단체들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저는 수련실에 있을게요. 상황이 발생하면 들어오지는 마시고, 경호원들에게 먼저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셀리나 님.”
상황실장의 보고를 받은 후, 셀리나는 신성력을 전수하는 수련실로 향했다.
그리고.
끼이이익-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예, 셀리나 님.”
경호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수련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조명 아래,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신전의 석상들.
셀리나는 석상들을 지나쳐 수련실 중앙에 설치된 의자에 착석했다.
그 뒤로.
‘드디어… 드디어 모든 게 끝이구나!’
천장을 바라보고 광기에 찬 미소를 지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도 잠시.
‘아니, 아직이다. 끝까지 방심해선 안 돼.’
셀리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성공이 눈앞에 있긴 하나, 일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히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시작.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은 축포를 터트릴 때가 아니라 신중을 기해 일의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였다.
셀리나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고오오오오-
수련실 안에 흩어져 있던 신성력이 모여들더니 검게 변한 시야 속,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에서 맺은 신성력 계약을 이용, 신성력을 받아들인 자의 오감을 공유하는 스킬인 [관조]를 사용한 것이다.
셀리나는 수련실 한가운데서 정신을 집중하며, EX급 던전에 들어간 디바인 실드 헌터들의 오감을 공유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풍경을 확인한 순간.
“이, 이게 무슨…?”
셀리나는 당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 말았다.
디바인 실드 헌터들로부터 확인한 EX급 던전의 상황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셀리나의 집중은 완전히 깨져 버렸고, [관조]도 해제되어 헌터들로부터 공유받던 감각들도 사라졌다.
“저, 저게 말이 돼…? 아냐,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극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까.
셀리나는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집중을 시작, [관조]를 사용하여 EX급 던전에 들어간 헌터들의 감각을 재차 공유받았다.
그러나.
처음에 봤던 그대로였다.
자신이 고대하고 예상하던 것과 180도 다른 상황.
이제는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
셀리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끼익- 쿵-!
수련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후, 격납고로 향했다.
“세, 셀리나 님!?”
밖에서 수련실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셀리나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전원, 명령 전까지 본부에 대기하세요.”
“예? 아, 알겠습니다, 셀리나 님!”
얼음장보다 차가운 그녀의 말투에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셀리나는 격납고에 설치된 순간 이동 장치를 이용, 단숨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로 건너간 다음 인적이 드문 뒷골목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화아아악-!
셀리나의 신형이 검은 연기에 휘감기더니 로브를 입은 거대한 체구의 사내로 바뀌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휘이이익-! 탁-!
“오셨습니까, 유일하신 존재이시여.”
눈 밑에 스페이드 문양이 새겨진 신형이 낡은 지붕 위에 착지하며 거대한 체구의 사내를 환대했다.
사내를 반기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카마트라 님.”
첫 환영 인사 뒤로, 뒷골목 곳곳에서 로브를 입은 신형들이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거대한 체구의 사내로 변한 셀리나는 걸음을 멈추더니.
저 멀리, 킹덤 타워 옆에 솟아오른 피라미드 모양의 던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루미나스 전원, 리야드로 집결하라.”
* * *
위대한 일에는 많은 반대가 따른다.
어디서였을까.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던전 보초를 서던 시절, 휴대폰으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무릇 일은 규모가 커질수록 리스크도 커지기 마련이라, 큰일을 하려고 하면 그만큼 많은 반대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EX급 던전에 들어온 지금, 나는 그 말을 여실히 느꼈다.
EX급 던전 클리어를 앞에 두고, 나름 최선의 방법을 모색했는데 의견이 순순히 통일되지 않았다.
SSS급 헌터와 연합 헌터들은 말했다.
-한상우 헌터님, 다시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두 개의 임무를 동시에 한다니….
-하나도 벅차 보이는데 두 개를 동시에 한다니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다 놓칠 수도 있어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나를 하기도 벅찬데 두 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설상가상 시간도 많지 않았다.
[선택까지 남은 시간 – 50분]
공격해 오는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다 보니 진영 선택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확실히 상식적으로 봤을 때, 두 개의 임무를 동시에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몬스터의 등급은 지나치게 높고, 남은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족 진영을 선택한다면 용족 던전 때처럼 지구로 나가 인간을 몰살해야 하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반대로 인간 진영을 선택한다면 요새 앞에 있는 몬스터까지 상대해야 했다.
만약 마족 군단을 적으로 상대해야 한다면 인간 진영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전장에서 떨어진 이곳에서 시작해 마족의 거점을 치는 게 나았다.
이쪽에도 몬스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마족 거점으로 향하는 길목에 요새 앞만큼 많은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저는 마족 군단으로 가서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요새로 가서 임무를 수행해주세요. 그리고 남은 시간이 5분이 될 때까지 제가 성공하지 못하면, 그때 각자 알아서 선택하세요. 이게 싫으신 분들은 지금부터 자유롭게 선택하시고요. 대신 저와 적이 될 경우, 목숨은 보장해드릴 수 없습니다.
빠르게 의견을 밀어붙였다.
모든 걸 설명하고, 납득시킬 시간은 없었다.
다행히 반대하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캐릭터들과 함께 마족 군단장을 상대하고, 연합 헌터들은 요새로 가서 연합 군단장이 가지고 있는 신념의 정수를 탈취하는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캐릭터 : 매직킹이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합니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매직킹의 [매스 텔레포트]를 이용, 연합 헌터들을 요새 뒤편의 감시가 없는 쪽으로 옮겨준 다음, 나는 캐릭터들과 함께 마족 진영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까지 순간 이동한 것이다.
마음 같아선 마족 군단장 코앞으로 바로 가고 싶었지만, 결계가 쳐져 있어 불가능했다.
[매스 텔레포트]로 이동할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마족 진영의 크기가 워낙 넓다 보니 몬스터가 없는 지역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꾸웍…?”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하자마자 진영지 안쪽에 있던 마계 코볼트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족 군단 정예 병사(EX)]
[마족 군단 정예 기사(EX)]
주변에 포진해 있던 마족 군단의 병력들도 나와 캐릭터들을 발견하고 몰려들었다.
도망갈 길 없이, 완벽히 포위당한 거나 다름이 없었지만.
“얘들아.”
“예, 주군.”
“말씀하세용, 사장님!”
“쓸어버려.”
나는 마나 포션을 마시며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이미 전력 비교는 끝났기 때문이다.
모든 힘을 개방한 캐릭터들의 전력과 눈앞의 몬스터들의 전력 차이는 불보듯 뻔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수호의 맹약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암폭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금제 개방을 사용합니다.]
[유폐된 차원이 개방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화염방사를 사용합니다.]
고오오오- 화르륵-! 콰아아아아-!!
“크허억!!”
“꿰에에엑…!”
눈치 볼 인원도, 살펴야 할 지형도 없는 지금.
캐릭터들은 가히 최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네 방위를 각자 한 면씩.
땡길거야는 브레스를 방사하는 드래곤 루드리아를 소환해 마족 병사와 기사들을 녹여버렸고.
다크어둠은 지옥에서 채집한 포자를 터트려 마계 몬스터들에게 암흑 불꽃을 선사하였으며.
“크하하핫! 바비큐 파티다, 사악한 마계의 버러지 쉐키들아!!”
매직킹은 공허충을 소환하는 것도 모자라 지팡이로 화염까지 방사하며 적들을 집어삼켰다.
연진의 활약도 작지 않았다.
“나와랑, 내 작품!”
[캐릭터 : 연진이 제작을 사용합니다.]
[제작 : 평작이 연성됩니다.]
“쿠어엉!”
연진이 완드를 휘두르자 땅에서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3m 크기의 바위골렘이 만들어졌다.
연금술사가 전투에서 활용하는 소환수였다.
바위골렘, 평작은 지축을 울리며 앞으로 뛰어나가더니 양주먹을 휘둘러 마계 코볼트들을 날려버렸다.
네 명의 캐릭터가 적진 한복판에서 벌이는 활약.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곧장 땅을 박차고 나가 마족 군단장을 찾아 나섰다.
양옆과 뒤쪽은 세 명의 만렙 캐릭터들이 막아주니 나는 연진과 함께 정면의 적들만 상대하면 됐다.
물론, 일이 수월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남은 마나 – 68%]
만렙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광역 스킬을 사용하다 보니 제법 성장했음에도 마나가 눈에 띄게 소모되었다.
게다가 몰려드는 적들의 수도 점차 늘어났다.
마족 군단의 본거지여서 그런 걸까.
눈앞의 적들을 아무리 해치워도 적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우우우웅-! 파앗-!
마족 진영을 돌아다니면서 보니 벌판 곳곳에 열린 붉은 포탈에서, 마족 군단과 마계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
잡몹을 모두 처치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최대한 빨리 보스 몬스터를 찾아 처치해야 했다.
그러나.
벌판이 너무 넓어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젠장, 어디 있는 거지?”
“키에에에엑!!”
나는 화산검을 휘둘러 마계 코볼트를 베어버리며 이를 갈았다.
보스 몬스터가 있을 걸로 예상되는, 크기가 큰 천막을 위주로 수색했지만 마족 군단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크윽! 제길, 다리를 베이다니.
-저런 멍청한…! 주군, 암살자가 다쳤습니다. 잠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칫! 네놈 도움 따윈 필요 없다!
-고집부리지 말고, 내 뒤에서 상처를 치료하라.
-…10초만 부탁하지.
캐릭터들도 조금씩 부상을 입었다.
적의 수가 워낙 많고, 등급 또한 EX급이다 보니 조금씩 유효타가 들어가고 있었다.
[선택까지 남은 시간 – 30분]
시간도 어느새 20분이나 흐른 상태였다.
선택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빨리 찾아야 돼…!’
“캬아아악!!”
이제 나는 몬스터 처치는 뒤로 미뤄둔 채 마족 진영을 활보했다.
중간중간 몬스터들이 무기를 휘두르고 오러를 날려댔지만, 화산방패로 막거나 [침투]로 회피하며 몬스터 사이를 헤집었다.
동시에.
[압도]
군주의 힘을 방출하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나와라, 군단장! 비겁하게 언제까지 숨어 있을 셈이냐!”
그러자 도발이 통한 것일까?
나는 수많은 반대와 역경을 뚫고 마침내.
“…숨어? 내가? 재밌는 녀석이 기어들어왔구나.”
[강고한 마족 군단장(EX)]
EX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와 조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