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16장 군계일학 낭중지추(5)
머리에 난 두 개의 뿔.
푸르스름한 피부를 제외하면 언뜻 인간 같아 보이는 외형.
용족 군단장보다도 더 큰 몸집.
쿵-! 콰직-! 쿵-!
EX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 마족 군단장이 검과 방패로 천막들을 날리며 다가왔다.
더불어.
“감히 하찮은 인간 주제에 이 몸을 도발하다니.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되었느냐?”
언어도 구사했다.
마족 진영 깊숙한 곳에 있던 녀석은 내 도발에 응해 친히 행차해줬다는 듯 거드름을 피웠다.
자신만만한 걸 넘어 오만함마저 느껴지는 태도.
스스로의 위용에 심취한 듯 마족 군단장은 방패를 내리고 성큼성큼 다가오며 내게 질문도 던졌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는 대신 땅을 박찼고.
[발화] [만월 가르기]
“하아앗…!”
화산검을 강화시킨 다음, 초승달 형태의 오러를 날리며 거리를 좁혔다.
[선택까지 남은 시간 – 25분]
헌터 연합과 약속한 5분까지 남은 시간은 단 20분뿐.
그 전에 녀석을 처치해야 했기에, 만담을 주고받을 여유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깡-!!
“하찮은 인간이라 주제 파악도 못하고 명을 재촉하는구나.”
마족 군단장은 너무나도 쉽게 공격을 막아냈다.
방패를 휘둘러 [만월 가르기]를 옆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무위로 돌아간 선제공격.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예상하고, 후속타를 준비해뒀으니까.
“전원 공격!”
“예, 주군!”
“오만한 마족에게 죽음의 안식을…!”
“지져주마, 이 뿔대가리야!!”
“저도 도울게용!”
내 외침 뒤로, 만렙 캐릭터들이 치고 나가면서 [신성 폭발], [그림자 긋기], [체인 라이트닝] 등 각자의 스킬을 퍼부었다.
연진도 미약하지만 [워터 플라스크]를 던져 [체인 라이트닝]의 파괴력을 증폭시켰다.
마족 군단장 등장 직후, 녀석을 발견했다는 전언을 보내자마자 모두 합류한 것이다.
캐릭터들이 쏟아붓는, 가공할 파괴력의 스킬들.
하지만 캐릭터들의 스킬은 마족 군단장에게 닿지조차 못했으니.
“무엄하도다! 감히 군단장님께 위해를 가하려 하다니!”
캉-! 까강-! 화아아아악-!!
[마족 군단 호위대장(EX)]
[마족 군단 마법대장(EX)]
[마족 군단 수비대장(EX)]
[마족 군단 지원대장(EX)]
스킬들이 쇄도한 순간, 네 명의 대장 몬스터들이 나와 검과 보호막 등으로 캐릭터들의 스킬을 모두 방어한 탓이었다.
내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마족 군단장과의 거리를 좁혀 [요새 뚫기]를 사용했으나.
“감히 어딜…!”
쿠웅-!!
수비대장이 성문만 한 방패를 앞세워 군단장에게 향하던 오러 랜스를 막아버렸다.
그 뒤로 날아드는 호위대장의 검.
나는 뒤로 훌쩍 뛰어 반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제길, 저런 게 있었군.’
마족 군단장의 인식표 아래에 떠 있는 버프 효과를 보며 이를 갈았다.
[확고한 지지]
[마족 군단장은 네 명의 대장들의 지지를 받는 상태입니다.]
[지지 하나당 스탯이 30%,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상승합니다.]
[현재 지지 : 4개]
마족 군단장은 네 명의 대장들 호위를 받을 뿐만 아니라 지지를 받아 여러 능력치들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상태였다.
“하찮은 놈들이 떼거지로 나타났구나. 모두 쓸어주마!!”
강고한 마족 군단장이 분노를 토해내며 나와 캐릭터들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쩌어어어어어어엉-!!
땅이 폭발하면서 거대한 오러 웨이브가 우리를 덮쳤다.
해일이 연상될 정도로 크고 강한 마족 군단장의 공격.
다행히 나와 캐릭터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를 사용했고, 매직킹도 보호막을 펼쳐 녀석의 오러를 막아냈으니까.
하지만.
몬스터한테서는 처음 겪어보는 파괴력이었다.
단순히 검을 한 번, 땅으로 내리쳤을 뿐이건만.
“캬악!”
“키에에에엑!!”
우리의 뒤편에서 습격하려던 마계 코볼트 수십 마리가 수많은 천막들과 함께 소멸했다.
만약 어떠한 방어 수단도 없이 이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다면?
저 몬스터들처럼 아마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마족 군단장은 지금까지 봐왔던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신중하게 탐색전만 펼치고 있을 여력은 없었다.
“주군, 얼른 처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적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습니다.”
땡길거야의 말마따나 잡몹들이 계속 몰려오거니와.
[선택까지 남은 시간 – 20분]
공격을 주고받는 사이 또 시간이 흘러, 약속 시간까지도 15분밖에 남지 않아 최대한 빨리 결판을 내야 했다.
나는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분화]를 날리며 땡길거야에게 물었다.
“수호의 맹약은?”
“광역 피해를 입히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금제 개방까진 10분가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로드.”
“암폭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역 스킬로 승부를 보고 싶었지만, 쿨타임 탓에 10분 남짓 기다려야 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지금으로선 기다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마족 군단장부터 처치한다. 나머지는 그다음이다.”
“예, 마스터.”
어차피 보스 몬스터만 처치하면 끝이다.
목표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고, 그 뒤로는 매직킹의 [매스 텔레포트]로 탈출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광역기는 아직 쿨타임이고, 마족 군단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한 만큼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아직 소환하지 않은 캐릭터도 소환했다.
[캐릭터 소환 : 제장이]
“부르셨습니까, 군주님!”
“제장아, 대장장이의 일격으로 수비대장의 방패를 날린다! 실시!”
“넵! 실시!”
제장이는 양손으로 망치를 쥐고는 선두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가소롭구나!”
“군단장님께는 닿지 못한다!”
“전원 공격!!”
마족 군단의 대응이 이어졌다.
네 명의 대장들이 군단장을 호위하는 동시에 잡몹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퀴에에에엑!”
“캬아아아악!!”
수백 마리가 넘는 잡몹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그 순간.
“잡몹들은 제가 막을게용!”
연진이 나섰다.
[캐릭터 : 연진이 워터 플라스크를 던집니다.]
[캐릭터 : 연진이 결빙 플라스크를 던집니다.]
우리가 전방으로 달려가는 길목의 양옆으로 물과 얼음의 플라스크를 던져 높고 단단한 얼음벽을 형성시킨 것이다.
퍽퍽-!
“쿠에에엑!!”
나와 만렙 캐릭터들에게 쇄도하던 잡몹들은 얼음벽에 막혀 순간 움직임이 멈췄다.
그사이, 제장이는 마족 군단장 앞에서 성문만 한 방패를 앞세우고 있는 수비대장한테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700레벨이 되면서 획득한 새로운 스킬을 사용했다.
“간다아아아앗!!”
[캐릭터 : 제장이가 대장장이의 일격을 사용합니다.]
작은 망치 위로 반투명한 형태의 오러 망치가 솟아났다.
제장이가 언제나 쥐고 있던 망치보다 수십 배는 큰 오러의 망치.
그리고 그 크기에 부끄럽지 않게, 파괴력 또한 어마어마했다.
제장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오러 망치를 휘두르자.
콰아아아아아앙-!!
“크악!!”
마족 군단 수비대장이 성문만 한 방패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그 순간.
“전원, 지금이다!”
“알고 있어, 깡통 기사!”
“엄호 부탁합니다!”
만렙 캐릭터들의 합을 맞춘 연계 공격이 이어졌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끌어오기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파훼의 창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배후 강타를 사용합니다.]
땡길거야가 오러 사슬로 나머지 세 명의 마족 대장들을 당기자 매직킹과 다크어둠이 마족 군단장에게 쇄도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른다.
매직킹은 앞에서 [파훼의 창]을, 다크어둠은 뒤통수 위에서 나타나 [배후 강타]를 먹이는 합동 공격.
한데 두 공격 모두 통하지는 않았다.
“이놈들이!!”
마족 군단장도 가지고 있던 방패를 움직여 매직킹의 창을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다크어둠의 공격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크헉…!”
그대로 쌍단검에 뒷목을 찔려 고통 섞인 비명을 토해냈다.
공격은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EX급 보스 몬스터이기 때문일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마족 군단장은 일격에 소멸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고한 마족 군단장님께 위대하신 마신의 가호를…!”
마족 군단장이 부상을 입자, 땡길거야에게 끌려갔던 마족 군단 지원대장이 지팡이를 높게 들며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휘이이이이잉-!
갑자기 마족 군단장의 머리 위로 검은빛의 가루가 흩날리더니 다크어둠이 만든 뒷목의 상처가 회복되었다.
마족 군단장이 금방 기운을 차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감히 하찮은 놈들이…!”
마족 군단장은 앞뒤로 검을 휘둘렀고.
“크윽, 젠장!”
“물러나야 합니다, 암살자!”
다크어둠과 매직킹은 녀석의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협공이 끝날 듯했는데, 아직 남은 수가 있었다.
마족 군단장이 광분하는 사이, 내가 [침투]를 사용해 녀석의 옆구리로 파고든 것이다.
“……!”
찰나.
녀석이 나를 놓친 건 잠깐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발화]
[반월 베기] [만월 가르기] [급소 찌르기]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연계기가 완성됐습니다.]
[연계 효과 : 월광 폭발]
콰아아아아아앙-!!
마족 군단장의 옆구리에서 터져 나오는 푸른 불꽃.
만렙 캐릭터들과 합을 맞춘 협공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난 듯했는데.
“크윽! 이 애송이 놈이!!”
“……!”
결과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마족 군단장의 체력이 커서 [월광 폭발]로도 정리가 되지 않은 것이다.
녀석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큰 피해를 입긴 했으나 반대편의 손을 움직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 덕분에.
공격받자마자 검을 휘둘러 내게 반격을 할 수 있었고.
쩌어어어어어엉-!!
나는 녀석이 휘두른 검의 오러에 휩쓸려 먼 거리를 날아갔다.
“주군…!”
“사, 사장님!!”
“크윽!!”
삐이이이이-!
몇 바퀴를 굴렀을까.
이명과 함께 캐릭터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반격당하는 와중, 화산방패를 들어 치명상은 피했다.
그러나 몸 곳곳에 경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전황도 좋지 않게 흘러갔다.
“크윽, 이 망할 마물 놈들이!!”
“괜찮으십니까, 로드! 전략을 바꿔 잡몹부터 처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족 군단장에게 공격을 집중한 사이, 잡몹들이 얼음벽을 깨고 다가와 캐릭터들을 습격한 것이다.
마족 군단장은 수비대장의 보호 아래, 지원대장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나머지 마족 대장들도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만렙 캐릭터들을 압박했다.
심지어.
[선택까지 남은 시간 – 15분]
약속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고작해야 10분 남짓.
촉박해지는 시간과 함께, 희망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포기하지 않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몸을 일으키는 사이,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마족 진영 임무가 완수됐습니다.]
[마족 진영 임무 : 라크시아 연합군단장이 보유하고 있는 신념의 정수 획득하기(1/1)]
[인간 진영 임무 : 마족 군단장이 보유하고 있는 마신의 파편 파괴하기(0/1)]
바로, 요새 뒤에 내려줬던 헌터 연합이 임무 하나를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충성도 업적 5가 완료되었습니다.]
[캐릭터 네 명 동시 소환 일주일 동안 유지하기 - 100%]
[보상이 수여됩니다.]
[선택한 캐릭터가 충성도 300을 획득합니다.]
지난 일주일간 수행했던 충성도 업적 5도 완료되면서 보상이 들어왔다.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충성도 상승에 따른 효과를 놓고 봤을 때, 지금 이 순간.
가장 높은 효용을 보여줄 캐릭터가 누구인지는 자명했으니까.
“하아, 하아…. 제발 내 판단이 맞기를.”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충성도 업적 5의 보상을 수령했다.
그리고.
[캐릭터 : 땡길거야의 충성도가 300 상승합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
[현재 충성도 – 999 / 999]
[충성도가 999를 돌파하여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스킬 레벨이 4에서 5로 상승합니다.]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파괴력이 증가합니다.]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5식이 개방됩니다.]
제국기사단 검술의, 마지막 비기를 습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