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16장 군계일학 낭중지추(6)
‘됐다…!’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화산검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땡길거야의 충성도가 최대치에 도달하자, 내가 예상하고 바랐던 ‘보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처음 얻은 이후로 줄곧 주력으로 활약하던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5식이라면, 분명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도 모르고, 마족 군단장은 기고만장했다.
“큭큭, 하찮은 인간놈들을 모두 쓸어버리도록 하라!”
녀석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마족 군단 지원대장의 치료를 받으며,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확실히 상황이 안 좋긴 했다.
“쳇, 일단 참모의 목부터 따야겠군! 깡통 기사! 동료 보호를 걸어줘!”
“마법대장의 마법이 까다로우니 무리하지 말도록!”
다크어둠과 땡길거야는 합을 맞춰 호위대장과 마법대장을 상대했으나, 그렇게 쉽게 처치할 수는 없었고.
“앗! 마법사님, 마물들이 얼음벽을 넘어오고 있어용!”
“이 망할 뿔대가리들이 밥 먹고 번식만 했나…!”
“으아아아! 이쪽도 뚫립니다! 강철! 전격!!”
연진과 매직킹, 제장이도 사방에서 밀려드는 잡몹들을 처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얼음벽으로 만든 저지선은 점점 짧아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처치되는 것보다 몰려오는 몬스터가 더 많았다.
점점 불리해지는 형국.
“크하하핫! 주제도 모르는 녀석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어라!!”
“키케엑!!”
마족 군단장뿐만 아니라 잡몹들도 낮게 웃으며 돌격해왔다.
승리를 예감한 듯한 모습.
“진짜… 우습기 짝이 없군.”
“크캬아아악!!”
나는 마나 포션을 마시고 몸을 일으킨 다음, 화산검을 연속으로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앙-!!
[발화] [요새 뚫기] [분화]
[마계 코볼트(EX)를 처치했습니다.]
[…….]
[마계 코볼트(EX)를 처치했습니다.]
무방비로 달려들던 마계 코볼트 십여 마리가 화염을 내뿜는 오러 랜스에 꿰뚫려 순식간에 먼지로 변해 소멸했다.
지옥? 그게 뭔지는 내가 보여주지.
나는 몬스터들을 처치한 뒤, 캐릭터들을 지나쳐 마족 군단장에게 달려가며 전언을 날렸다.
‘전원, 광역 스킬 사용!’
-예, 알겠습니다!
[선택까지 남은 시간 – 10분]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광역 스킬의 쿨타임도 끝났다.
화력을 집중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기다렸으니, 이제 과실을 수확할 차례였다.
캐릭터들은 내 명령에 따라 각자의 광역 스킬을 사용했다.
시작은 땡길거야였다.
“참회를 맹세한 고대의 용이여! 사악한 적들에게 파멸의 불꽃을!!”
[캐릭터 : 땡길거야가 수호의 맹약을 사용합니다.]
콰아아아아아아-!!
창공에서 포탈을 타고 넘어온 드래곤 루드리아가 브레스를 뿜어 마계 코볼트와 마계 코볼트, 마계 트롤, 마계 오우거 등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물들을 쓸어버렸다.
그 뒤로.
“궁중 샌님, 수비대장부터 노리도록.”
“역시 암살자라 그런가 배포가 작군요. 난 전부 다 노릴 겁니다.”
다크어둠과 매직킹이 움직였다.
물론, 마족 군단장과 참모들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적의 특공이 온다. 전원 방어 태세를 갖추어라!”
“예, 군단장님!!”
수비대장은 성문만 한 방패를 앞세워 전면을 담당했고, 지원대장은 지팡이를 휘둘러 사방으로 방어막을 펼쳤다.
마족 군단장과 다른 참모 둘도 자세를 잡고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두 캐릭터의 공격은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암폭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금제 개방을 사용합니다.]
[유폐된 차원이 개방됩니다.]
“무, 무슨…!”
퍼버버버벙-! 콰아아아아-!!
다크어둠이 흩뿌린 암흑 포자와 [금제 개방]에서 나온 공허충의 광선포가 마족 군단장과 참모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그 결과.
“크허어어억!!”
[캐릭터 : 다크어둠이 마족 군단 마법대장(EX)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마족 군단 호위대장(EX)을 처치했습니다.]
참모 둘이 소멸했다.
만렙 캐릭터 둘의 광역 필살기를 동시에 맞자,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당한 것이다.
그나마 마족 군단장과 수비대장, 지원대장은 방패와 회복 마법으로 어떻게 버티고 있었지만, 남은 녀석들도 곧 소멸할 것이었다.
“하아아아앗!!”
다크어둠과 매직킹의 광역 필살기 직후, 내가 마무리하기 위해 폭발을 뚫고 쇄도했으니까.
“크윽! 이 하찮은 인간 놈들이…!”
부하들이 당하자 분한 것일까.
쩌어어어어엉-!!
전신이 상처로 가득한 마족 군단장이 검을 내리쳐 아까와 같은 강력한 오러를 쏟아냈다.
조금 전이라면 꼼짝없이 당했을 공격.
그러나 이제는 경험이 생겨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나는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오러 파도를 피해냈다.
동시에.
[체화 해제]
[용기탱천]
[5분 동안 스탯과 스킬의 효과가 2배 증가합니다.]
신화급 갑옷, ‘용족 군단장의 갑옷’의 봉인을 해제했다.
느려지는 시계와 극한으로 치닫는 감각.
“이런 쥐새끼가!”
마족 군단장은 아래에서 위로 검의 방향을 틀었고, 나는 쏟아지는 오러 속에서 화산검을 내리쳤다.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5식]
[최후의 일격]
오러 소드와 맞부딪치는 제국기사단 검술의 마지막 비기.
그 순간.
번쩍-!
마족 진영에 섬광이 번쩍이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새하얀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단말마도 없었다.
땅에 착지해 한쪽 무릎을 꿇자.
[강고한 마족 군단장(EX)을 처치했습니다.]
마족 군단장은 순백의 폭발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저 위에서 아래로, 화산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그 일격에 마족 군단장이 검과 함께 두 동강 나 소멸한 것이다.
[최후의 일격]이라는 검술명에 걸맞은 막강한 파괴력.
물론, 그에 걸맞은 반동도 존재했다.
“하아, 하아…. 체력이 바닥이네.”
[남은 체력 – 1%]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5식 [최후의 일격]은 마나가 아니라 현재 체력의 99%를 소모하여 일섬(一閃), 섬광의 일격을 가하는 기술이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전투 불능이 되기에 동료를 보호해야 하는 탱커인 수호 기사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다.
체력이 바닥나면, 등급이 낮은 몬스터의 공격이라도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히 군단장님을…!”
“복수다!!”
실제로 마족 군단장을 처치한 직후, 옆에 있던 수비대장과 지원대장이 분개하며 방패와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놈들의 공격은 내게 닿지 못했으니.
“주군!!”
[캐릭터 : 땡길거야가 동료 보호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다크어둠이 그림자 긋기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블링크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파훼의 창을 사용합니다.]
공격이 날아드는 순간, 땡길거야가 내게 보호막을 씌웠을 뿐만 아니라 다크어둠과 매직킹도 두 몬스터에게 쇄도해 마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깡-! 콰직-! 콰드득-!
“끄아아아악!!”
[캐릭터 : 다크어둠이 마족 군단 수비대장(EX)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매직킹이 마족 군단 지원대장(EX)을 처치했습니다.]
먼지로 변해 소멸하는 마족 군단의 참모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칠게 숨을 내쉬다가 캐릭터들의 공을 치하했다.
“후우…. 고맙다, 다들.”
“아닙니다, 로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솔선수범하여 앞장서주시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마스터.”
“최후의 일격은 실패하면 그대로 끝나기에 저도 감히 쓸 엄두도 못 내는 검술인데 정말… 엄청난 결단이었습니다, 주군. 많이 힘드실 텐데 잠깐 쉬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걱정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어.”
이로써 남은 보스 몬스터는 없었지만,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인간 진영 임무 : 마족 군단장이 보유하고 있는 마신의 파편 파괴하기(0/1)]
인간 진영의 임무는 마족 군단장을 처치하는 게 아니라 녀석이 보유한 아이템을 파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수많은 드랍템들 사이, 나는 주먹만 한 크기에 검은빛을 발하는 파편 하나를 주워들었다.
[마신의 파편]
[등급 : 알 수 없음]
[마신의 힘이 담긴 파편입니다.]
[마신을 모시는 이가 가질 시, 여러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발현 효과 : 마계와 연결된 포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념의 정수에 넣을 시, 파괴됩니다.]
단번에 찾은 퀘스트 아이템.
그런데.
“신념의 정수에 넣어야 한다고…?”
퀘스트를 완료하는 방법이 예상과 달랐다.
마신의 파편을 신념의 정수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닥에 놓은 뒤, 화산검으로 내려쳐 봤으나.
깡-! 깡-!!
금속음만 날 뿐 마신의 파편은 깨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선택까지 남은 시간 – 8분]
아직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방법을 모색했다.
“매직킹, 헌터 연합이 있는 곳까지 매스 텔레포트 가능해?”
“예, 로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제 물건을 하나 심어두었습니다.”
“좋아, 바로 간다.”
그리고.
“사장님, 이제 플라스크가 바닥났어용! 더 이상 얼음벽을 만들 수가 없어요!”
“저도 한계예요, 군주님!”
뒤쪽에서 얼음벽을 치고 망치를 휘두르며 잡몹들을 상대하고 있던 연진과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했다.
이제 충성도 업적도 끝났으니, 억지로 소환을 유지하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쿠워어어어어!!”
“키에에에에에엑!!”
그 여파로 수백을 넘어 수천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얼음벽을 깨부수며 달려들었으나 상관없었다.
[캐릭터 : 매직킹이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합니다.]
나와 캐릭터들은 마족 진영에서 벗어나 헌터 연합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으니까.
그런데.
“음…?”
풍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벌판에서 벌판으로.
분명 매스 텔레포트를 사용하긴 했는데, 헌터 연합이 요새 안이 아니라 성 밖의 벌판에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으아아아아! 그만 쫓아와, 이 자식들아!!”
“아니, 저놈들은 갑옷도 입었으면서 뭐 저렇게 빠른 거야!”
“강철만 헌터님! 우리 언제까지 도망쳐야 합니까!”
“잡아라! 저 이방인들이 연합군단장님의 보물을 훔쳐 갔다!”
헌터 연합은 라크시아 연합군단을 제압한 게 아니라, 신념의 정수만 탈취해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헌터 수백 명이 벌판을 내달리고, 그 뒤로 기사 천여 명이 따라붙다니.
비겁하다고 해야 할까, 영리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헌터 연합은 성공적으로 마족 진영의 임무를 완수해냈다.
이제 남은 건 마신의 파편을 파괴해 인간 진영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뿐.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땅을 박차고 [침투]를 사용, 나란히 헌터들 옆을 달렸다.
그러자.
“헛! 한상우 헌터님! 무사하셨군요!!”
강철만이 바로 나를 인지하고 반겼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세상 해맑아 보이는 표정.
그러나 친절하게 인사를 주고받을 여유는 없었다.
[선택까지 남은 시간 – 6분]
어느덧 약속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나는 강철만에게 외쳤다.
“잠깐 신념의 정수 좀 주십시오!”
“네, 여기 있습니다!”
강철만이 들고 있던 유리병을 던져주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나는 곧바로 마신의 파편을 유리병 안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우우우우웅-! 파아아앗-!!
신념의 정수 안에 들어간 마신의 파편에서 검은빛이 새어 나오더니.
파사사삭-!
그대로 산산조각 나며 정수 속에 스며들었다.
그 뒤로.
[마신의 파편을 파괴했습니다.]
[인간 진영 임무가 완수됐습니다.]
[인간 진영 임무 : 마족 군단장이 보유하고 있는 마신의 파편 파괴하기(1/1)]
[마족 진영 임무가 완수됐습니다.]
[마족 진영 임무 : 라크시아 연합군단장이 보유하고 있는 신념의 정수 획득하기(1/1)]
[축하합니다!]
[주어지는 임무를 완수하여 던전을 클리어하세요(2/1)]
[두 개의 임무를 모두 수행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추가 보상 : 던전 내의 모든 마계 몬스터들이 소멸합니다.]
[EX급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캬아아아악…!”
“키에에에엑!!”
우우웅-! 퍼엉-! 콰앙-! 콰직-!
[마계 트롤(EX)이 처치됐습니다.]
[마족 군단 정예 기사(EX)가 처치됐습니다.]
[마족 군단 정예 마법사(EX)가 처치됐습니다.]
벌판 위에 있던 모든 마계 몬스터들이 폭발하고, 붉은 포탈들이 소멸하면서 EX급 던전이 클리어됐다.
이에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이 추격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 마물들이 사라졌어…?”
“이겼다! 이겼어! 라크시아가 마족 군단을 물리쳤다!!”
벌판에 울려퍼지는 기쁨의 함성.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EX급 던전이 클리어됐어!!”
“해냈다! 우리가 해냈다고…!!”
나에게도 큰 의미였다.
이번 EX급 던전 클리어를 통해.
[열 번째 업적을 클리어했습니다.]
[EX급 던전을 클리어하세요(1/1)]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10/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길고 길었던 히든 퀘스트, 군주의 업적을 끝낼 수 있었으니까.